
지난가을, 누나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과 슬픔이 혼재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던 누나를 닮은 또 다른 존재가 찾아온다는 건 설레는 일이었지만, 앞으로 누나의 몸에 남을 흔적들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린 듯했다. 시간이 지나 누나의 배는 점점 더 부풀어 올랐고, 처음엔 숨은그림찾기 같던 초음파 속 작은 점이 점점 분명한 얼굴을 가진 누군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출산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아기의 탯줄이 유난히 짧아 자연분만은 어렵고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 출산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결정으로 이어졌기에 더욱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도 누나는 담담했고,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 씩씩한 모습을 보며 나는 다짐했다. 출산 후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 산모를 위한 케어 방법을 정리해 알려주자고. 나처럼 누군가의 회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를 만들자고 말이다.
변화를 마주하는 시간
“애 낳는 순간, 몸은 예전 같지 않아.” 엄마가 늘 하던 말이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 몸이 많이 달라진다는 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누나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체감이 달랐다. 체중이 늘면서 복직근과 골반은 계속해서 틀어지고, 가슴은 ‘곧 바닥에 닿겠다’ 싶을 만큼 처진다고 했다. 원래도 숱이 많지 않던 누나의 머리는 더 휑해졌고, 평생 트러블이라곤 모르던 피부엔 쥐젖과 기미가 눈에 띄게 늘었다. 대부분 호르몬 변화로 인한 증상이라며 웃어넘기려 하면서도 체형은 되돌리기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했다. 궁 산후조리원의 장경희 대표에 따르면, 탈모나 피부 트러블은 대체로 일시적이지만 체형 변화는 집중적인 관리가 따르지 않으면 되돌리는 데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는 골든 타임은 출산 후 6개월. 임신 중 분비된 관절 이완 호르몬인 릴랙신이 체내에 남아 있어 관절과 인대를 회복하기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때 도수 치료나 맞춤 운동을 병행하면 골반 안정과 근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출산 후 산모의 현실은 제 몸 하나 가누기도 버거울 터. 이 시기에 병원과 헬스장을 오가는 건 사실상 어렵다. 이때 할 수 있는 최선은 집에서 손쉽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간단한 스트레칭이다. 신체 근육 이완에 도움을 주는 복식 호흡과 케겔 운동, 벽 밀기처럼 간단한 동작부터 시작해 익숙해지면 누운 상태로 엉덩이를 드는 브리지나 무릎을 꿇고 등을 위아래로 수축·이완하는 고양이 소 자세로 척추 유연성을 조금씩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수칙은 ‘절대 무리하지 말 것’. 통증이 생기지 않는 범위에서 천천히 하되, 불편하게 느껴지면 바로 멈추고 쉬는 게 정답이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기에 접어들면, 체중 조절과 근력 운동을 하고 보정 속옷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분만 방식에 따라 집중해야 할 부위도 조금씩 다르다. 자연분만은 초기 회복 속도가 빠르지만 골반과 하체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도수 치료와 교정 스트레칭이 효과적이다. 그 반면에 회복이 상대적으로 더딘 제왕절개수술을 한 경우에는 절개 부위의 통증 완화를 위해 온찜질과 마사지를 자주 하고 보호대를 활용하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 장경희 대표는 가장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산후조리원 대표로서 수많은 산모의 회복 과정을 지켜봤어요. 불안한 변화 속에서도, 결국 몸은 스스로 리듬을 찾아가요.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됩니다.” 대부분의 변화는 시간이 해결해주지만, 예외도 있다. 바로 피부다. 혹여 피부가 심하게 가렵다면 임신성 피부병을 의심해볼 수 있다. 여기에 물집이나 염증이 동반된다면 임신성 포진일 위험성이 있으므로 바로 병원을 찾는 편이 바람직하다. 또한 유방 주변 피부가 붉고 통증이 있다면 유방염일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전문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다 보니 출산은 끝이 아니라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여정의 시작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 길 위에서 몸은 조금씩 낯설어지고 마음은 자주 흔들리겠지만, 결국 예전의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더 단단해질 것이다. 변화는 불안하지만, 회복은 결국 사랑을 닮아 있다.
마음부터 피어나는 단단함
“내가 정말 아기를 사랑할 수 있을까?” 출산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누나가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치 자연의 섭리를 묻는 질문처럼 답이 정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사회는 모성애를 너무나 당연하게 요구한다. 정작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나와 같은 고민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교 연구진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출산 직후 즉각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산모가 전체의 약 15%에 이른다고 한다. 새로운 존재를 받아들이고, 돌봄이라는 낯선 역할과 부모를 향해 천사처럼 웃는 미디어 속 장면과 다르게 오직 울음으로만 소통하는 신생아에게 익숙해지기 위해 누구에게나 시간이 필요하다. 출산 후 여성의 뇌는 호르몬 변화와 함께 ‘모성 뇌’로 서서히 변해간다. 중요한 건 이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탓하지 않는 것.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이상적이며, 때로는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다. 같은 상황을 겪는 누군가와 나누는 공감과 대화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내 안의 ‘사회적 자아’를 다시 세우는 데 큰 힘이 된다. 중앙대학교광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희진 교수는 “자신이 예전 같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도, 생명을 탄생시킨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산후우울증 발병률은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다. 보건 문제를 다루는 학술 저널 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전체 산모 중 약 17%가 산후 우울감을 겪는다. 그래서 더더욱 중요한 건 아주 사소할지라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연습을 해나가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 오늘 내가 잘해낸 일을 떠올려보기. 감정이 가라앉을 때, 그 생각이 사실인지 한번 더 점검해보기 같은 식이다. 또 산모가 새로운 취미나 관심사를 통해 또 다른 정체성을 찾아갈 때 우울감도 뚜렷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니 출산은 단순히 누군가를 탄생시키는 일을 넘어 자신 안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와 도널드 위니코트(Donald Winnicott)는 산모가 출산을 통해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이행하는 이 시기를 ‘통과의례’라 불렀다. 많은 이가 이 시기를 힘들게 겪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기였다고 말한다. 누나도 아직은 낯설고 조심스럽지만, 첫 모유 수유를 하던 순간 생애 처음 느껴보는 사랑에 조금씩 눈이 트였다고 했다. 이상적인 엄마란 결국 허구에 가깝다.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만의 방식으로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이다. 아이와 함께 웃기, 실수해도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기, 육아하는 동안 하루하루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정해보기.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와 아이 사이엔 그 누구의 틀도 아닌 ‘우리만의 관계’가 자리 잡게 된다.
이 글을 마무리하려던 찰나,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매일 딸의 사진을 가족 단체 채팅방에 올리는 누나의 연락이었다. “해온이, 너무 예뻐.” 별다른 말 없이, 그 말만 반복하는 누나를 보며 안도감이 들었다. 누나는 앞으로 힘든 날이 많겠지만, 그만큼 웃을 날도 많을 것이다. 흉터가 영광의 흔적으로 남는 그날까지, 나는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응원할 수밖에 없다. 누나, 진심으로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