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영화를 보고 나면 스토리보다 한순간의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메이크업 아티스트 ‘에메랄드 비전스’를 발견했다. 그는 이에 공감하듯, 영화의 한 장면을 메이크업으로 재해석하고 있었다. 2017년부터 영화학을 전공하기 시작한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장면 속 색감과 디테일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단순히 영화를 ‘보는’ 걸 넘어 ‘입는’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경험하고자 했고, 그 안에서 감정적인 연결을 발견했다. 그에겐 이 작업이 일종의 초현실적인 행위이며, 매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것. 에메랄드가 가장 큰 영감을 받는 존재는 반사회적 시선을 지닌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와 화려한 드랙(Drag) 문화로, 이 둘은 실험정신과 예술 안에서 뷰티가 지닌 가치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에메랄드는 작업을 할 때, 영화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될 만큼 강렬한 신(Scene)을 골라낸다. 그리고 하나의 컬러 팔레트와 즉흥적인 터치만으로 메이크업을 완성한다. 보통 세네 시간 정도 작업하며, 이 시간은 그에게 일종의 명상과도 같다. 생각을 덜어내고 공백에 가까운 상태에 도달할 때, 비로소 창의성이 폭발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작업 중에서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1975)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룩은 그에게 가장 깊은 애정을 안긴다.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그 영화의 풍경을 얼굴 위에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에메랄드는 예상치 못한 멋진 결과물이 나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전했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는다. “예술 속 표현엔 한계가 없다”고 말하며, 최근에는 메이크업을 넘어 신체와 결합하는 ‘웨어러블 아트(Wearable Art)’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작업의 스펙트럼은 넓어졌지만, 그가 끝까지 지키려는 건 진정성이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가 담긴 결과물만이 진짜라고 믿는다. 동시에 꾸준함과 휴식의 균형, 즉 ‘웰니스’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는다.

예술과 뷰티의 경계에서 새로운 언어를 써 내려가는 중인 에메랄드. 그의 작업은 유연하게,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언제나 새롭고, 정직하며, 무엇보다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그의 다음 장면이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