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와 무관한 경고

허리 통증은 적어도 50세가 넘은 뒤에야 찾아오는 고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몇 달 전, 늘 그렇듯 마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왼쪽 엉덩이뼈 부근과 다리 전체가 시큰거리고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잠시 쉬면 나아지겠지’ 하는 안일한 셀프 진단은 며칠간의 고생 끝에 병원행으로 이어졌다. 진단명은 디스크 직전 단계, 곧 ‘위험’ 선에 서 있다는 결론이었다. 놀란 토끼 눈을 하곤 “저 아직 30대인데요?”라고 반문하자, 의사는 더 나이 어린 환자들도 비슷한 증상으로 내원한다며, 허리 통증은 노화의 전유물이 아님을 일깨워주었다. 평생 엄마에게 자세를 바로 하라는 잔소리를 들어도 꿈쩍하지 않던 내가 이제야 자세를 교정하기로 결심한 건 단순히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 내 눈길을 사로잡는 여성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우아한 아우라의 비밀이 바로 바른 자세이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의자 안쪽 끝에 붙이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정수리를 하늘로 끌어올린 듯한 고고한 자세. 이는 늘 의자 끝에 겨우 걸터앉아 기대다시피 키보드를 두드리던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매달 ‘우아하고 강인한 여성’을 외치는 뷰티 에디터인 내가 누구보다 먼저 가져야 할 자세이기도 했다.

 

내 몸이 말하는 균형의 법칙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해 찾은 곳은 ‘더 리셋’. 회복 운동 권위자 홍정기 교수가 있는 곳이다. 상담은 통증을 느끼는 정도와 부위, 하루 업무 시간, 운동 횟수 등 생활 습관을 세세히 짚어가는 것으로 시작됐다. 상담하며 가장 솔깃한 건 이미 허리에 여러 번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지만 통증은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듯할 뿐,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나의 고백에 대한 그의 의견이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무조건 디스크가 원인은 아닙니다. 디스크가 터지지 않았는데도 허리 통증을 겪는 경우, 원인은 주로 근육의 불균형 때문으로 볼 수 있죠. 일부 근육은 뻣뻣하게 굳어 있고, 일부는 약해져 제 역할을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 결과 척추가 제 위치를 벗어나며 통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홍정기 교수는 굳은 근육을 풀어주고, 약해진 근육은 강화하는 교정 운동만 제대로 익혀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했다. 이후 근기능 검사와 체형 분석으로 나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 검사에서는 ‘매우 좋음’과 ‘좋음’을 받았지만, 좌우 균형 지표는 ‘보통’. 그 외에도 신체 근육 상태 등을 점검할 수 있는 다양한 검사 끝에 결론적으로 내 허리 통증의 원인은 고관절과 척추 주변 근육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시 말해, 코어 근육 즉 체간을 이루는 복부 근육과 척추를 지탱하는 심부 근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요통이 나타난 것이다. 코어는 단순히 복근이 아니라, 척추를 곧게 세우고 골반을 안정시키며 움직임의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 근육군을 뜻한다. 그런데 이 근육들이 약해지거나 일부가 굳어버리면 척추는 정렬을 잃고, 작은 움직임에도 통증이 나타난다고 한다. 나도 그 패턴에 해당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받쳐주는 힘’이 사라진 상태였던 것이다. 진단을 듣자, 그동안 창피할 만큼 아무렇게나 앉아 긴 시간을 보내온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며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하다’고만 여기던 내 몸의 상태가 사실은 ‘나아질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도 들었다. 앞으로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하지 않았다.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들, 긴 시간이나 고강도 훈련이 아닌, 본래 내 몸이 지니고 있었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되찾는 것이 핵심이었다.

 

작은 동작이 만든 큰 변화

첫 번째 동작은 매일 자기 전에 누워서 다리를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고관절 뒤쪽 근육의 유연성을 점검하는 기본 테스트로 다리가 90도까지 무리 없이 올라가야 정상이다. 도중에 머리가 들리거나 무릎이 구부러진다면 고관절이 이미 경직된 상태라는 신호. 나는 절반도 안 되는 45도 정도가 한계였다. 처음에는 좌절감이 앞섰지만, 통증이 느껴지는 지점에서 잠시 멈추고, 매일 조금씩 각도를 늘려갔다. 두 번째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고관절을 늘이는 스트레칭이다. 양쪽 무릎을 바닥에 댄 채 상체를 바르게 세우고, 한쪽 무릎을 앞으로 세운 뒤 양손을 무릎 위에 포갠다. 그 상태에서 몸을 살짝 앞으로 밀면, 다른 쪽 고관절이 길게 늘어나면서 묵직하게 굳어 있던 부위가 풀리는 느낌이 전해진다. 평소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나는 의외로 이 동작을 했을 때 가장 시원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는 업무 습관 자체를 바꾸는 시도를 했다. 예전에는 한번 자리에 앉으면 두세 시간은 꼼짝하지 않았지만, 계속 앉아 있는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했다. 그리고 1시간마다 틈틈이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했다. 폼롤러를 이용하면 가장 좋지만 사무실이라는 한계가 있어, 엘리베이터 손잡이를 활용해 허리와 고관절 주변을 가볍게 눌러주었다. 간단한 동작일 뿐인데 긴장된 근막이 서서히 풀리며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런 처방을 받은 시점에 비행을 앞두고 있었다. 평소라면 30~40분만 앉아 있어도 다리와 허리가 저릿해져 좁은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 컸다. 하지만 2주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이전과 같은 강도의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 있게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변화는 통증 완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무심코 다리를 꼬거나 허리와 어깨의 힘을 뺀 채 구부정하게 앉거나 서는 자세가 눈에 띄게 줄었고, 자연스레 주변의 반응도 달라졌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세가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됐다. 물론 업무에 치여 피곤할 때면 예전의 구부정한 자세로 돌아가려는 순간도 있지만 이제는 무엇이 잘못된 자세인지, 어떤 동작이 내 몸에 부담을 주는지 정확히 알기에 방치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가장 큰 성과는 단순한 통증 완화가 아니라 ‘제대로 된 자세’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다.

 

곧게 선다는 의미

홍정기 교수와 대화하며 또 하나 새롭게 정립한 것은 ‘바른 자세’의 정의였다. 우리는 흔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뒤로 젖히며 견갑골을 모으는 것을 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루 중 깨어 있는 16시간 정도를 내내 그런 자세로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홍정기 교수 역시 자세에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등이 말리거나 골반이 눕는 듯한 자세를 취해도 괜찮습니다. 바른 자세를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 거죠. 중요한 건 ‘중립’ 상태를 찾는 것입니다. 허리를 어딘가에 완전히 기대면 힘이 덜 드는 것 같지만, 사실 허리와 골반에는 부담이 더 많이 갑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꼿꼿이 세운 자세 역시 몸을 긴장시키죠.” 결국 핵심은 내가 힘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피로하지 않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상태다.

자세는 단순히 척추 건강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목이 앞으로 빠지면 경추에 무리가 가 두통으로 이어지고, 어깨가 말리면 움직임이 제한되며 통증을 유발한다. 등이 구부러지면 소화와 순환이 방해받고, 허리와 골반이 무너지면 다리 근육조차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처럼 구부정하고 비뚤어진 자세는 신체 기능뿐만 아니라 이미지에도 영향을 준다. 더 나이 들어 보이고, 전체적인 인상에 부정적인 인상을 드리운다. 우리는 동안을 위해 피부에 공을 들이고, 저속 노화를 위해 먹는 것을 관리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정작 더 근본적인 ‘자세 나이’의 중요성은 간과해온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의 오랜 습관대로 의자에 기대고 싶은 유혹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통증에서 자유로운 내일을 위해, 그리고 우아하게 곧추선 자세로 당당히 설 나 자신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곧게 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