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소리치지 않아도, 진심은 자연스럽게 닿는다는 것. ‘소프트 파워 뷰티’는 요란하지 않다. 그 대신 오래 남는다. 공감과 신뢰, 그리고 따뜻한 온도로 사람과 사람, 브랜드와 소비자가 연결되는 새로운 시대의 뷰티 언어인 부드러운 힘. 빛은 강하게 쏘일 때보다 부드럽게 퍼질 때 더 멀리 간다.

요즘 내 SNS 알고리즘을 장악한 카테고리는 ‘고자극 뷰티 아이템’이다. 한 번만 발라도 문신까지 가려지는 파운데이션, 액체처럼 주르르 흘러내리는 블러셔,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하이라이터까지. 화려한 영상미와 극적인 상황 설정이 맞물린 각종 제품 광고가 쏟아진다. 한 번 보고 나면 알고리즘이 끝없이 추천하는 통에 홀린 듯 구매 버튼을 누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내 택배 상자를 설레며 기다리다 두세 번 써본 뒤 서랍 속으로 사라진 제품들. 이렇게 사들인 물건이 잔뜩 쌓인 화장대를 보며 문득 현타가 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작 자주 손이 가는 제품은 이런 ‘고자극’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바이럴 없이도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들고, 공격적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인상. 그 부드럽고 단단한 힘이 바로 ‘소프트 파워 뷰티’다.

소프트 파워 뷰티의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는 글로시에(Glossier)다. 이들의 역사는 블로그에서 시작됐다. 글로시에를 론칭한 에밀리 와이스(Emily Weiss)는 당시 패션 매거진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로 활동했는데, 촬영장에서 모델의 태닝한 피부를 보고 패션과 다른 뷰티의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길로 화장품 자체가 아니라 화장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블로그를 운영했고, 마침내 글로시에라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글로시에는 그 탄생 일화처럼,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언어가 브랜드를 만들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의견을 즉각 반영하고, 패키지의 디자인과 색감조차 오가는 댓글 속에서 진화했다. 글로시에의 SNS 피드는 언제나 실제 제품을 사용하는 유저 중심이다. 셀럽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피부와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 경험은 결국 ‘뷰티는 나를 표현하는 언어’라는 새로운 신념으로 이어졌고, 글로시에는 브랜드보다 커뮤니티가 먼저 존재하는 ‘소프트 파워’의 모델이 되었다. 글로시에의 사용자 경험(UX)은 단순하지만 관계 지향적이다. 판매보다는 참여, 완성보다는 과정의 감정에 집중한다. 이 느리지만 확실한 호흡은 브랜드를 향한 영속적 신뢰를 만든다. 이솝(Aēsop)은 소통의 방식을 정반대로 택해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그들은 말 대신 ‘쉼’을 제안한다. SNS에서도 정보를 나열하기보다 조용한 리듬과 여백을 통해 브랜드의 감각을 경험하게 만든다. 웹사이트를 열면 단정한 활자, 깊은 여백, 느린 전환 속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사용자가 서두르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 즉 ‘디지털적 사유의 여백’을 설계한 것이다. 이솝의 매장과 웹사이트나 SNS 피드는 모두 같은 리듬으로 호흡한다. 그들은 공감 대신 ‘존중’으로 연결되고, 그 존중의 태도는 곧 브랜드의 정체성이 된다. 놀라운 효능으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형성한 드렁크엘리펀트(DrunkElephant)의 시작 또한 마케팅이 아니었다. 창립자 파니 매스터슨(Tiffany Masterson)은 ‘피부가 민감한 사람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화장품’을 찾지 못한 소비자였다. 그래서 그는 성분 하나하나를 직접 연구했으며, 브랜드의 첫걸음부터 핵심은 ‘혁신’이 아니라 ‘투명성’이었다. 이 정직함이 곧 커뮤니티의 기반이 되었다. 드렁크엘리펀트의 SNS는 일방적 홍보물이 아니라, 소비자와 피부 상태, 루틴, 제품 반응을 공유하는 피부 일기장처럼 기능한다. 사용자들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원칙과 태도에 공감하며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브랜드가 ‘우리가 잘났어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소비자 스스로 그들의 언어를 이어받아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 이들은 바이럴 대신 신뢰형 확산을 택한 것이다. 제품은 단순하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 필요 없는 것은 덜고, 남은 것에 집중한다. 단기적 트렌드보다 ‘피부가 진짜로 좋아지는 경험’을 팔고, 그 경험이 다시 다른 소비자의 신뢰를 부른다. 이 선순환이 바로 드렁크엘리펀트 커뮤니티의 구조다.

국내에도 이런 행보를 보이는 브랜드가 있다. 론칭한 지 2년 남짓 된 나르카(narka)는 이러한 소프트 파워의 철학을 가장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브랜드다. ‘에포트리스 리치(Effortless Rich)’,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 속에서 나타나는 풍부한 아름다움. 이들을 대변하는 이 키워드처럼, 나르카는 화려한 포장이나 과한 연출을 지양한다. 머릿결의 윤기, 햇살 아래 자연스럽게 빛나는 피부, 그 순간의 ‘진짜 질감’을 비주얼로 담는다. 브랜드명 ‘나르카’ 또한 특별한 어원 대신 ‘옆집에 사는 감각적이고 따뜻한 소녀’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브랜드를 의인화하면, 친근하고 포용력 있으며 자연스러운 세련미를 가진 친구. 소비자가 느끼는 나르카의 매력은 바로 그 소녀 같은 진정성이다. 나르카의 커뮤니티는 ‘카인더(Kinder)’라 불린다. 이들은 브랜드의 팔로어가 아니라 공동 창작자다. 신제품을 내놓기 전 나르카는 항상 사전 체험단을 모집한다. 인플루언서보다 브랜드의 철학을 이해하는 고객을 우선시하고, 모든 응답을 직접 검토해 선정한다. 나르카의 브랜딩 철학은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신뢰를 향한다. 무차별적 할인이나 공격적 바이럴보다 제품을 사용하는 경험 자체가 기억되게 하는 것. ‘가치 소비’라는 개념을 UX로 구현하는 셈이다. 그래서 제품의 품질에서 단 하나라도 불완전한 부분이 발견되면 그들은 출시를 미룬다. 세범 미스트의 전량 폐기 결정은 손실보다 신뢰를 택한 대표적인 예다. 이런 선택이 거듭될수록, 브랜드는 소비자와의 관계 안에서 단단해진다. 결국 나르카가 만드는 것은 헤어 케어 제품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다.

지금껏 언급한 브랜드들이 가진 공통점은 단 하나다. 세상에 소리치지 않아도, 진심은 자연스럽게 닿는다는 것. 소프트 파워 뷰티는 요란하지 않다. 그 대신 오래 남는다. 공감과 신뢰, 그리고 따뜻한 온도로 사람과 사람, 브랜드와 소비자가 연결되는 새로운 시대의 뷰티 언어인 부드러운 힘. 빛은 강하게 쏘일 때보다, 부드럽게 퍼질 때 더 멀리 간다. 그리고 지금, 뷰티의 세계에는 그 빛이 다시 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