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자인 선수의 시간은 수직으로 쌓이며 흐른다.
빠르게 나아가기보다 한 지점을 붙잡고 오래 버티는 일.
위로 향하는 움직임 속에서 균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지속하게 하는 감각이 된다.

블랙 톱과 팬츠 모두 Chanel.

블랙 톱과 팬츠 모두 Chanel,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균형은 어떤 감각인가요? 스포츠 클라이밍은 힘으로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 힘과 미세한 밸런스를 맞춰가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운동이라고 느끼고요. 불안정한 순간이 많지만, 그걸 억지로 통제하기보다는 미세한 변화를 느끼고 캐치하면서 목표 지점을 향해 가는 감각에 가까운 것 같아요. 손의 각도, 손가락 모양, 발의 위치 같은 아주 작은 차이들이 큰 변화를 만들기 때문에, 이런 미세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암벽 위에서는 어떤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나요? 많은 분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두려움보다는 몰입을 가장 크게 느껴요.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면 잡생각이 다 사라지고, 눈앞의 홀드와 제 몸에만 집중하게 되거든요. 그 몰입이 가장 크게 느껴집니다.
샤넬과 함께 글로벌 캠페인을 촬영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일단 제가 오랫동안 스포츠 클라이밍을 했지만, 그처럼 다른 종목,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는 흔치 않거든요. 그래서 그 자체가 되게 재미있었어요. 또 샤넬에 대해서도 기존에는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직접 프랑스에 가서 많은 것을 체험하면서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요. 캠페인 촬영도 하고,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도 돌아보고, 서재 같은 공간에도 가봤죠. 또 가브리엘 샤넬이 휴식을 취했던 라 파우자(La Pausa)라는 별장에도 갔어요. 그곳은 일반 사람들에겐 공개하지 않는 곳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고, 그곳에서 샤넬의 이야기나 스토리를 들은 것도 되게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이번 캠페인은 여성 스포츠 선수 간의 연결과 연대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실제로 느낀 유대감은 어땠나요? 선수들하고 처음 만나서 시간을 보냈는데, 제가 영어를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어요. 그렇지만 같이 스포츠를 업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굳이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서로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선수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무척 의미 깊었어요.
김길리 선수와의 만남은 어땠나요? 제가 사실 제 운동에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다른 종목 선수들을 잘 몰랐어요. 길리 선수도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알게 됐죠. 처음 봤을 때부터 길리 선수도 본인의 종목에 엄청난 열정을 쏟고 있다는 게 마음으로 느껴졌어요. 저도 그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 깊이 공감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진행된 다음에 길리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해서 좋은 성과를 많이 거뒀잖아요. 직접 만나고 길리 선수에 대해 알게 된 상태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니까 훨씬 더 기쁘고 각별하게 느껴졌어요. 저도 그런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더 흐뭇하고,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커리어를 잘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김길리 선수를 포함한 후배 선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감각이 있다면요? 사실 스포츠 클라이밍을 비롯한 많은 스포츠가 힘이 중요해 보이잖아요. 근데 실제로는 그 힘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가 더 중요해요. 그래서 힘을 더 쓰는 연습보다 덜 쓰는 감각을 터득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클라이밍도 힘을 많이 준다고 잘 올라가는 게 아니라, 힘을 빼면서 필요한 순간에만 힘을 쓰고, 그 힘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어가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이건 스포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중요한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균형은 어떻게 유지해왔나요? 저도 이렇게 오래 선수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오랫동안 선수로서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내가 이걸 계속 좋아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훈련도 중요하고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어느 순간 부담이 되기 시작하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같은 훈련을 하더라도 내가 이걸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인지 늘 체크해요. 만약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너무 지쳤다고 느끼면 과감하게 휴식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훈련을 쉬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지금은 좋은 휴식도 훈련이라고 생각하며 균형을 맞춰요.
결과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나요? 결과만으로 나를 판단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과로만 나를 정의하게 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결과보다 그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하루하루 쌓아가는 과정이 저한테는 더 소중하고, 이런 과정이 쌓이면서 나를 바라보는 기준도 자연스럽게 폭넓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항상 좋은 결과만 낸 건 아니에요. 특히 작년에는 부상도 겪고 힘든 순간도 많았어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나를 정의하는 건 단순한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컨디션이나 나만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면요? 특별한 걸 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걸 선호해요.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을 마시는 습관이 있어요. 그리고 좋은 향을 맡는 걸 좋아해서 샤넬 향수를 뿌리면서 기분 전환을 하기도 합니다.
출산 이후 변화가 있었나요? 사실 출산 이후 다시 선수 생활을 할 계획은 없었어요. 아기도 가질 계획이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찾아온 일이었어요. 출산 이후에는 스포츠 클라이밍을 대하는 마음이 더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결과를 크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내가 이 과정에 얼마나 진심을 다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제가 ‘믿음’과 ‘감사’라는 타투를 새겼는데,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임하는 게 더 중요해졌어요.
스포츠 선수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스포츠는 다른 선수와 경쟁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한계에 계속 부딪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한계를 마주하는 태도에서 아름다움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요? 저는 스포츠 클라이밍을 할 때 제 모습이 가장 나답고 좋아요. 평상시에는 그다지 활발한 편이 아닌데, 스포츠 클라이밍을 할 때는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거든요. 그 순간의 제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앞으로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이 모습을 지키고 싶어요.


수없이 반복된 움직임 속에서 손끝에 축적된 감각은 ‘CC LEAGUE BY CHANEL BEAUTY’가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닮아있다.

블랙 톱과 팬츠 모두 Chanel.

김길리 선수가 입은 톱 Chanel,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자인 선수가 입은 톱과 팬츠 모두 Chan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