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코트와 수트 모두 엔트로페(Entrofe), 구두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블랙 재킷과 팬츠, 화이트 셔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실버 메탈 시계 펜디 워치(Fendi Watch).

데님 셔츠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 버건디 컬러 니트 풀오버 발란타인(Ballantyne), 블랙 팬츠 디올 옴므(Dior Homme), 브라운 구두 알도(Aldo).

셔츠 노스프로젝트 바이 비이커(Norse Projects by Beaker), 지오메트릭 패턴 팬츠 플러스 바이 커드(Flus by Kud), 그레이 머플러 발란타인(Ballantyne).

하늘색 롱 코트 철동 바이 커드(Cheol Dong by Kud), 블루 체크 셔츠 문수 권 바이 커드(MunSoo Kwon by Kud), 와인 컬러 벨벳 팬츠 디파트먼트 파이브 바이 비이커(Department Five by Beaker), 구두 유나이티드 누드(United Nude).

딱 1년 전이겠다. 2012년 12월쯤인가, 폭설 때문에 거리에 나온 차들이 오도 가도 못했던 날 몇 명의 스타가 폭설 때문에 지하철을 탔다며 인증샷을 올렸다. 그중 하나가 지창욱이었다. ‘신분당선이 생겨 좋다’는 멘트와 함께 올라온 그의 인증샷은 폭설이 내린 그날, 많은 인터넷 뉴스를 장식했다. 참 별게 다 뉴스거리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고 다시 12월, 지난겨울보다 눈도 더 많이 내리고 추위는 더 혹독할 거라는 겨울, 그는 50부작 사극 <기황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 밤샘 촬영이 이어지는 빡빡한 스케줄 사이 어쩌다 촬영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끝난 날(물론 아주 늦은 밤이다) 그를 마주했다. <기황후>에서 그는 참 이상한 황제 ‘타환’을 연기한다. 명색이 왕인데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목숨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제 한 몸 지켜낼 힘도 없다. 지질한 황제 타환은 몸만 어른이지, 아이처럼 귀여운 구석도 있다. 유일하게 마음을 준 ‘기승냥’(하지원)에게는 애교에 투정까지 부리고, 그녀의 마음이 자신을 향하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서글프게 눈물을 흘린다. 한 회에 그가 연기해야 하는 감정의 진폭은 꽤 크다. “타환은 아주 입체적인 캐릭터예요. 철없는 아이 같지만 아픔이 있고, 때론 울분을 삭여야 하죠. 감정을 얼만큼 드러내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을 엄청 많이 했어요.”

<기황후>는 16회 차 정도 촬영을 마쳤다. 미니시리즈로 따지면 작품 하나에 해당하는 분량이지만 최종회가 될 50부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일 드라마도 해보고 주말 드라마도 해봤으니 오랫동안 호흡을 유지해야 하는 작품이 처음은 아니에요.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죠. 반년 가까이 하나에 집중해야 하니까요. 잠도 잘 못 자고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연기를 기계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계속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캐릭터가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일관된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의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주말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은 그런 고민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작품이다. “많이 괴로웠어요. 하루는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조진웅 형이랑 강남 한복판의 설렁탕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제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다가 펑펑 운 적도 있어요. 형이 그때 이렇게 말해줬어요. ‘힘들면 힘들어하는 게 맞고, 눈물이 나면 우는 게 맞다. 왜 자꾸 감정을 감추고 부정하느냐.’ 그렇게 함께 출연했던 형과 선생님, 작가님 덕분에 작품을 무사히 마친 것 같아요. 작가님은 지금도 저를 그때 극 중 이름인 ‘미풍’이라고 부르세요. 아마 그때 연기를 포기했더라면 다시는 이 일로 돌아오지 못했을 거예요.”

 

“<기황후>가 끝나면 난 더 이상 타환으로 살지 않겠죠.
하지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남아요.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이 생기면서
점점 내가 진정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선배들이 항상 말하죠. 배우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고.
처음엔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느낌이 와요.
하지만 여전히 ‘좋은 배우란 어떤 배우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어요. 계속 고민해봐야죠.”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작품에서 연기하며 희열이나 뿌듯함이 아닌 괴로운 마음이 컸던 건, 그때까지도 ‘이 바닥’은 그에게, ‘이상한 나라’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그에게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데, 우리는 대수로운 일인 양 떠들며 특별한 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와 ‘연예인’이 사는 세상은 다르니까, 평범한 일을 그들이 하면 특별한 것이 되는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어느 날 문득 막연하게 ‘배우’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여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창욱은 그날로 문과에서 예체능으로 진로를 바꾸고 연극영화과 입학을 준비한다. 누군가는 중학교 때부터 연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데 그는 고작 석 달을 준비하고 덜컥 합격했다. “너무 쉽게 합격하니 연극영화과가 별거 아닌 것 같았죠. 저는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면 매일 막 신나게 놀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저랑 완전히 달랐죠. 아주 오래전부터 이 길을 준비한 친구들은 세상을 초월한 사람들 같았어요. 모두 이미 예술가처럼 느껴졌어요. 다들 독특하고 이상해 보였죠. 수업에 들어가면 신체 훈련이랍시고 바닥을 막 구르는데 너무 어색했어요.

나 혼자만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1년 동안 학교에 가지 않고 방황했어요.” 불안한 시작이었지만 그는 결국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곧 죽어도 연기를 하겠노라고 바득바득 우기며 엄마에게 상처 줘가며 진로를 결정했는데 시작도 해보지 않고 관둘 수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방황하는 동안 수업 대신 선배를 따라다니며 단편영화를 촬영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미친 소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촬영장에서 보니 꼭 필요한 수업이었던 거죠. 다시 시작하고 나서도 후회한 적이 많아요. ‘나한테 소질이 없나’하는 생각이 들 때는 눈앞이 캄캄하죠.” 후회의 순간을 뒤로하고 지금의 지창욱이 그만의 타환을 제대로 만들어내고 있는 건, 그리고 준비 없이 들어온 이상한 나라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사람들 덕분이다. 연기를 시작하고 알게 된 선배와 감독, 작가의 조언과 가르침 그리고 응원.

2013년의 끝자락, 지창욱은 요즘 꽤 행복할 것 같다. <기황후>가 방송하는 날이면 그의 연기를 칭찬하는 뉴스가 어김없이 업데이트 되고, 드라마 속 그의 모습을 캡처하는 블로거도 부쩍 많아진 것 같다. 그래, 칭찬 속에 사는 건 좋은 일일 거다. “사실 사람들 반응은 잘 보지 않으려고 해요. 뮤지컬 <쓰릴 미>를 할 때였는데, 그때 제 연기를 두고 엄청나게 많은 리플이 달렸어요. ‘저 연기는 이렇게 하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식의 의견이었죠. 팬층이 두껍고 많은 배우가 거쳐간 작품이라 더 그랬을 거예요. 그 많은 의견을 읽고 나니 나중에는 제 연기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고 흔들리더라고요. 점점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이제는 댓글이나 평을 잘 읽지 않아요. 대신 대본을 읽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죠. 내가 하는 역할에 사명감을 가지고 누구보다 나 자신이 캐릭터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연기에 스스로 확신이 없으면 결국 중심을 잃고 캐릭터는 두루뭉술하게 흘러가버리더라고요.” 지창욱에게 2013년의 시작은 뮤지컬 <그날들>이었다. 1월부터 연습을 시작한 <그날들>은 지난 한 해 가장 큰맘먹고 한 도전이기도 하다. 흥행 성적도 좋았고 지창욱은 이 작품으로 뮤지컬 어워즈에서 신인상도 받았다. 뮤지컬은 그에게 꿈이었다. 그 꿈이 이뤄져 무대에 오른 자신이 신기할 만큼. “스물한 살에 제 생애 첫 독립영화 촬영을 마치고 대학로에서 오디션을 봤어요. 알과핵 소극장이란 곳인데 그곳에서 일주일간 공연을 했죠. 주인공 한 명이 이끌어가는 형식이 아니라 몇 개의 단막극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뮤지컬이에요. 그때 엄청나게 혼났어요. 그 뒤로 뮤지컬 무대에 꼭 다시 서고 싶다는 꿈을 꿨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가창 수업도 듣고 혼자 뮤지컬 곡 연습도 하곤 했죠.” 그러다 <쓰릴 미>를 하고 <그날들> 무대에 올랐다. “그거 알아요? 죽도록 연습하는데 마음만큼 안 되는 거예요. 어느 날인가는 갑자기 ‘내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안 찍었으면 확 도망가려고 했어요. 그때 장유정 감독님이 큰 힘이 됐어요. 힘들고 막히면 무조건 감독님한테 풀었죠. 술 먹고 감독님 앞에서 막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제가 사회에서 ‘엄마’라고 부르는 분이 되었죠.” “주사가 술 먹고 우는 건가봐요.(웃음)” “아니에요! 절대! 진짜!”

지창욱에게 2014년의 시작은 당연히 <기황후>다. 아직 절반도 채오지 않았으니 당분간은 ‘딴짓’을 상상할 수도 없다. 연말에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날 계획도, 친구들을 만나 밤새 술을 마시는 계획도 한참 미뤄둬야 할 판이다. 인터뷰하는 동안 몇 번이나 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의 착하고 건강한 청년의 이미지 때문에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그를 보고 놀라기도 한단다. 하긴 <기황후> 이전의 그는 늘 착실한 누군가였다. 일탈과는 좀처럼 상관 없을 것 같은 남자. “작품이 없을 때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보낼 때도 있어요. 갑자기 문득 뭔가가 하고 싶으면 실행에 옮겨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하루는 갑자기 새벽 4시에 여행을 가고 싶었어요. 무작정 대충 짐을 싸 집을 나섰죠. 그런데 계산을 잘못 한 거예요. 해가 뜨고 나니까 잠이 막 쏟아지는 거죠. 그래서 일단 휴게소에서 잠을 자고 가기로 했어요.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을 뜨니 정오가 다 됐더라고요. 대충 세수하고 다시 길을 떠났어요. 그렇게 슬렁슬렁 가다 보니 부산이더라고요.” 드라마 <다섯 손가락>이 끝난 뒤에는 술만 마시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매일 나가던 촬영장에 나갈 수 없고, 매일 만나던 스태프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공허해 일주일을 꼬박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일주일 내내 한 일이라곤 술을 마시거나 자거나 혹은 술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공허한 마음을 조금 달래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이런저런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하나 끝내고 나면 결국 남는 건 사람인 것 같아요. <기황후>가 끝나면 난 더 이상 타환으로 살지 않겠죠. 하지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남아요.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이 생기면서 점점 내가 진정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선배들이 항상 말하죠. 배우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고. 처음엔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느낌이 와요. 하지만 여전히 ‘좋은 배우란 어떤 배우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어요. 계속 고민해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