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베스트와 원피스 앤디 앤 뎁(Andy & Debb), 귀고리 케이트 앤 켈리(KatenKelly).

그런 친구가 있다.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긴커녕 나보다 허술하고 엉성해서 도움을 받기보다는 왠지 손해 보는 기분으로 챙기면서 만나게 되는 친구. 그런데도 그 친구를 계속 만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나한테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위로하거나 해결책을 찾아주려고 하기보다 자기 일처럼 나와 함께 울어주는 식이다. 다른 무엇보다 진심만큼은 믿을 수 있는 친구, 내가 만난 강예원은 그런 느낌의 여자다.

강예원은 지금 영화 <조선미녀삼총사>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액션과 코믹이 뒤섞인 영화의 배경은 조선시대. 강예원이 맡은 역할 ‘홍단’은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보는 푼수 주부 검객이다. 미모와 무공을 갖춘 실력파 검객 ‘진옥’(하지원)과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터프한 검객 ‘가비’(손가인)는 홍단과 함께 조선 팔도의 수배자들을 잡아들이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설정과 줄거리로 짐작할 수 있는 대로, <조선미녀삼총사>는 영화관에 팝콘과 콜라를 가지고 들어가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오락물이다. 강예원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보다는, 본격적인 코미디는 아니라도 즐기며 볼 수 있는 대중적 코드의 영화들을 선택하곤 했다. 최근의 <점쟁이들>이 그랬고, <1번가의 기적> <해운대> <퀵>에서 맡은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속의 그녀는 야무지지 못한 허당 짓을 하거나 본의 아니게 소동에 휘말리는 걸로 관객을 웃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영화에 한번쯤은 등장하는 그녀의 사랑, 슬픔, 눈물은 작은 파동을 일으킨다.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하면서 오열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짠한 마음이 들게 한다. 우리 대개가 그렇다. 숨 막히게 매혹적이지도 않고, 모자란 정체를 발각당하며, 성공보다 실패를 자주 하면서 산다. 그렇지만 웃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우리는 짠한 존재들이다. 보통 여자들의 페르소나라는 건 그러니까, 비극의 여주인공보다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아온 강예원의 모습에 다름 아닌 것이다.

강예원의 필모그래피에도 비극적인 인물은 등장한다. 의붓아버지를 죽이고 복역수가 된 <하모니>의 ‘유미’와 아픈 가족사를 지닌 <헬로우 고스트>의 ‘연수’가 그들이다. 특히 유미는 강예원이 연기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을 만큼 어두운 인물이었다. 강예원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음대 출신 유미 역할에 제격인 조건이긴 하지만, 그녀의 연기가 기억되는 게 그 때문은 아니다. 딱딱한 외피 안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사는 강예원의 유미는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원피스 프라다(Prada), 오른손에 낀 반지 캘빈 클라인 워치 앤 주얼리(Calvin Klein Watch & Jewelry), 왼손에 낀 반지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셔츠와 스커트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귀고리 쥬얼카운티(Jewel County), 팔찌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화이트 재킷과 팬츠 맥 앤 로건(Mag & Logan), 반지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귀고리 쥬얼카운티(Jewel County), 구두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강예원의 화보를 준비하면서 <하모니>의 스틸 컷 하나를 찾았다. 죄수복을 입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었다. 강예원에게 상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당황하거나 박장대소하는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이 있었다는 게 새삼스러웠지만, 깊은 슬픔에 잠긴 그 얼굴은 처연하고 아름다웠다.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와 같다.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주는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도 인생의 어느 길목을 지나다 봉변을 당하면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된다. 인터뷰를 하면서 웃는 얼굴보다 슬픈 얼굴이 더 예쁘더라고 하자 강예원이 대답 끝에 눈물을 보였다. 자주 드러나지 않는 자기 안의 슬픔과 마주한 때문일 것이다. <조선미녀삼총사>에서 그녀는 예의 그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관객은 설 연휴에 개봉할 이번 영화를 보면서 복잡한 생각을 접어둔 채 웃을 것이고, 가끔씩 옆 사람과 남의 관람을 방해하며 떠들기도 하면서 영화를 즐길 것이다. 지금 강예원이 보여주는 연기가 그녀의 연기 인생에서 최고점에 도달한 것 같지는 않다. 더 발전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꼭 다른 캐릭터의 연기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강예원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은 그녀의 진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시사 전인데, 감은 어떤가?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오락 영화다. 한국판 판타지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사들이 나오는. 만화영화 같기도 하다. 옷도 그렇고. 남자들과 싸우고, 뛰어다니고, 바다에 뛰어들어 촬영하고 그랬다. 내가 이런 영화를 몇 번이나 찍을 수 있으며, 여배우 중에 이런 영화를 찍을 기회를 얻은 배우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참 행복했다. 관객이 즐기면 그걸로 좋다. 리얼리티가 있는 영화는 아니니까.

보통 이렇게 여주인공이 여럿인 영화는 배우도 스태프도 부담스럽다. 모든 사람이 그 점을 많이 걱정한 것 같다. 첫날부터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각종 기계 하며, 모기장까지 없는 것 없이 준비했더라. 아늑한 조명까지 설치해 우리 셋만 쉴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줬다. 모니터도 따로 설치하고. 신기한 게 아주 많았다. 이게 뭐지…. 셋 다 행복했다. 오뎅차가 오는 날도 있고, 붕어빵을 하루 종일 만들어주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배려가 과하니까 부담스럽더라. 그래도 행복하긴 했다.(웃음) 내가 중간이니까 잘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스태프들 볼 때마다 피곤하지 않냐고 묻고, 안마도 해주고, 가급적 촬영장에 먼저 도착하려고 애쓰고 그랬다.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고,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지원 언니도 끝나고 나서 울더라. 이제까지 촬영한 중에 가장 행복했다고.

배우의 이미지와 실제 성격은 비슷할 때도 있지만 전혀 다를 때도 많다.
강예원은 어떤 편인가? 극과 극인 것 같다.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데, 밝은 건 상대를 위한 것이고, 실제로는 긍정적이긴 해도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편이다. 사람들이랑 일할 때 나오는 성격이 있더라. 내가 뭔가 해야 할 것 같고,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고. 내가 망가져서 남들이 편해질 수 있으면 어느 순간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럼 금세 지친다. 지친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좋게 거절하기도 하고 사정이 있으면 말도 하기 시작했다. 어려운데, 그래도 나중에 원망 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은 것 같다. ‘정말 피곤하게 만드네’ 이런 생각 안 하는 게 나한테도 좋고 상대방한테도 좋더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는데 그 고마움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서 요즘에는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남을 배려한다는 건, 그만큼 예민하게 산다는 거다. 그만큼 돌아오는 것 같다. 이쪽저쪽 사람 신경 쓰고 아파하고. 하지만 아이 같은 데가 있어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에 따라 내 마음도 확 달라진다. 다행히 주위 사람이 다 착하고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아서 내가 힘들어하지 않게 도와준다. 거기서 보상받는 것 같다. 서로 오고 가는 게 없었다면, 사람이 싫어졌을 거고 사람한테 데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거다. 배우로서 경력만 봐도 상처 없이 온 것 같진 않다. 촬영 때마다 사람들 있는 데서 야단치면서 욕을 하는 감독이 있었다. 그때가 스무 살, 스물한 살 때였는데 그 후로 5년 동안 그 사람이 꿈에 나왔다. 꿈에서 늘 그 사람을 때렸다. 어려서 친구한테 맞은 적이 있는데 그 친구 꿈도 3년을 꿨다. 그렇고 보니 난 소심한 사람인 것 같다.

요즘엔 강예원 하면 엉뚱하게 <1박2일>이 먼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더라.
일단 남자들이랑 잘 지낸다. 남자가 편하다. 그렇다고 자주 어울리진 않는다. 여자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편하다. 놀고, 영화 보고, 쇼핑하고, 맛있는 거 먹고. 술을 안 좋아한다. 마셔야 하는 날은 작정하고 마시고. 토해가며 마시면서 분위기를 따라간다. 어려서부터 남자들한테 섹시한 이미지로 비치는 게 콤플렉스였다. 몸도 가리고 다니고, 남자들의 시선이 싫어서 일부러 더 털털하게 굴었다. 너 나 여자로 보면 안 돼 이 자식, 하면서 걸걸하게. 그러다 보니까 남자들도 나를 편하게 생각하더라. (차)태현 오빠는 여배우들이랑 잘 지낼 것 같지만, 내성적이고, 낯가리고, 자기 사람 말고는 시사회에 초대 안 하는 사람이다. 그 오빠는 안다. 내가 얼마나 낯을 가리는지. 설경구, 김인권, 고창석, 오달수, 송새벽 오빠와도 친하다.

전부 구수한 분들이네. 웃기지 않나? 그 사람들이랑 내가 같이 치킨 뜯고 있는 거.(웃음)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거기 있는 내가 웃긴 거다. 그들도 여배우랑 같이 치킨 먹고 싶어 하는 남자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 예쁜 여배우들 데려가면 좋아하지도 않는다. 괜히 싫어한다. 진짜 성격 이상하다고 내가 뭐라고 하는데, 다들 촌스럽다, 남자들이. 근데 사실 수줍음이 많은 거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몇 년간 한 작품 중에서 <하모니>의 연기가 좋았다. 화보 시안 작업을 하면서 사진을 찾아보니, 웃는 것보다 슬퍼 보일 때 더 예쁘더라. 다른 작품과 톤이 완전히 다른 작업인데 어땠는지 궁금하다. 물론 그 작품에선 노래를 해야 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노래 때문에 그 작품을 한 건 아니다. 노래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를 해서 노래 욕심은 없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말도 별로 없고, 표정과 눈빛으로 가야 하는데, 내가 워낙 슬픈 사람인 것 같다. 그걸 보여주기 싫어하고, 가지고 있는 걸 표현 안 하려고 하고. 나는 피에로 같은 구석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눈물 날 것 같아. 왜 자극하나. 왠지 모르겠다. 외로움이 너무 크다. 부모님도 좋으시고, 넉넉하게 자랐는데…. 그래서 돌이켜보기도 한다. 내가 일이 힘들어서 그랬나? 그래서 내가 이런 슬픔을 느끼는 건가? 사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을 줄 몰랐다. 넌 왜 그렇게 슬퍼 보여, 무슨 일 있니, 어두워, 그랬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내가 웃기다고 하더라. 너만 보면 너무 재미있어, 왜 이렇게 재미있게 생겼어, 하면서. 내가 받는 것도 중요하고, 내가 갖는 감정도 중요한데,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기쁨이나 그 가치는 좀 다른 느낌이더라.

앞으로 강예원은 어떤 연기를 하게 될까? 마흔이 넘으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을 것 같다. 지금은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 배우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고, 배우는 동전의 앞뒤처럼 갑자기 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 이제 변한다, 관객에게 변화를 조금씩 알려주면서 관객과 발맞춰 변해가고 싶다. 40대가 됐을 때, 그때는 진짜 바닥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러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