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결이 비치는 눈꽃 같은 하얀 저고리와 연둣빛 치마 한은희 한복, 머리 장식으로 사용한 귀고리와 목걸이, 반지는 ‘트리니티’ 컬렉션과 ‘파리 누벨바그’ 컬렉션으로 모두 까르띠에(Cartier).

#1

개인도, 사회도 원형과 본질을 찾게 되는 시점을 맞는다. 성장이 아닌 반성을 구할 만큼 완숙의 목전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되짚지 않고 더 이상 가는 것은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건 없다. 예컨대 설날 식구들이 모여 떡국 먹는 자리에서 지금 우리 밥상에 오른 음식이 어떻게 시작됐고 오늘에 이어져왔는지를 과거로 추적해가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건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아닐뿐더러, 부담스럽거나 위험한 일도 아니다. 넘치는 풍요의 지척에 빈곤이 공존하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먹고살기 위해서 겪는 생활의 고단함을 감수할 명분이 필요한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밥상 위 음식을 매개로 과거를 탐구하고 거기에서 현재와 미래의 우리 모습을 발견해보자는 기획에 불편하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이 기획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건 우리 밥상에 오르는 음식의 연원을 찾아 이제는 잊혀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앞으로 차릴 밥상을 떠올리게 할 가이드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그건, 이영애다.

 

 

#2

배우들이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는 건 흔한 일이 됐다. 대중과 친숙하면서 감성적인 배우의 목소리가 갖는 흡인력 때문이다. 그러나 설날 방영되는 SBS 다큐멘터리 <이영애의 만찬>에서 이영애는 단순히 목소리 출연만 한 게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그녀의 일상과 그녀가 한국 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 팔도의 진상품으로 차린 밥상으로 백성들의 형편을 짐작하던 소박한 왕의 수라상의 숨겨진 비밀을 찾고, 피렌체와 한국에서 직접 기획하고 준비해 선보인 한식 만찬까지 중심에 이영애를 두고 있다. 이런 역할에 그녀보다 더 적합한 배우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는 이영애를 아시아의 스타로 만든 드라마 <대장금>이 방송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한식 열풍을 일으킨 이영애의 캐스팅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던 그녀에게 일련의 변화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번 출연은 결코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몇 해 전, 결혼을 하고, 쌍둥이의 엄마가 되는 동안 좀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던 이영애를 만나 결혼 후 첫 화보를 찍었다. 하루 종일 떨어져 지낸 아이들 생각에 조급해진 그녀가 인터뷰는 경기도 이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흐릿해졌지만, 수화기 너머의 남자를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여보”라고 부르던 것과 아이들 이유식거리는 꼭 직접 산다며 백화점으로 향하던 마지막 모습은 아직 기억한다. 보통의 삶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던 그녀는 아직은 어떤 일보다도 아이들을 키우고 누군가의 아내로 사는 현재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 그사이 두 아이는 엄마의 밥상에서 자라 세 살이 됐다. 이따금 인터넷에는 양평의 집 근처에서 그녀를 봤다는 사람들의 사진과 글이 올라온다. 동네 단골 빵집에서 봤다는 사람, 마트에서 마주쳤는데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의 얘기를 통해 나는 그녀가 그렇게 애써 누리고 싶어했던 평범한 일상에 안전하게 착지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 그 무렵이었다면, 아마도 다큐멘터리 출연은 쉽게 성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영애는 여자로, 엄마로, 배우로서의 삶에서 균형의 지점을 발견했고, 더 이상 흔들리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자연에서 모티프를 얻은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뒤꽂이로 응용했다. 재규어 귀고리와 목걸이, 앵무새 귀고리 등등 모두 까르띠에(Cartier), 기계로는 만들 수 없는, 가지를 이용한 천연 염색이 만들어낸 경이로움. 핸드메이드로 직조해 보랏빛에 깊이감을 더했다. 한은희 한복

 

 

#3

<마리끌레르> 표지에 한복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든 처음이 그런 것처럼 실패에 관한 우려와 긴장이 없을 수 없었다.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 주인공이 이영애이기 때문이다. 아름답다는 문어적 표현을 나도 모르게 고백하듯 내뱉게 만드는 그녀의 고전적이고 우아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을 때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했다. 그 그림을 궁금한 채로 남겨둔다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이 분명했다. 이영애가 입을 한복이 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온 한복 디자이너 한은희 선생의 작품이라는 점도 믿을 구석이었다. 화려한 색과 태를 뽐내는 과시적인 한복이 아니라, 고운 자태를 가린 듯 은근하게 드러내는 것이 선생의 옷이다. 선생의 한복은 정적이고 담백한 순간 가장 빛을 발하는 이영애의 외모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기도 하다. 한복의 본래적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아방가르드한 스타일링은 일부러 배제했다. 과도한 세트도 마찬가지다. 컨셉트와 공간에 소품처럼 들어간 인물을 찍고 싶지 않았다. 화보를 보는 사람과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교감할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바랐고, 이영애도 이에 동감했다. 화보 작업에 동참한 모든 스태프는 나이에서 우러나오는 원숙미와 나이를 거스르는 청초함 사이를 오가는 이영애의 모습에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과도한 변형으로 새롭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현대성을 지닌 한복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욕심이 더해져 촬영은 예상보다 훨씬 늦게야 끝이 났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건강한 윤기가 도는 피부로 표현하기 위해 베이스 제품을 바르기 전에 70여 가지 한방 성분이 피부 노화를 예방하는 쫀득한 질감의 크림 ‘환유고’를 바른다. ‘럭셔리 비비 SPF20/Pa++’를 얇게 펴 발라 피부 톤과 결을 정돈한 뒤, 구슬 타입의 파우더 블러셔 ‘궁중 비비 환 파우더’를 광대뼈 부분에 덧발라 고급스러운 윤기로 빛나는 피부를 연출한다. 입술에는 자연스러운 핑크 컬러의 ‘럭셔리 립스틱 #12 핑크’를 발라 단아한 느낌의 메이크업을 완성한다. 모두 더 히스토리 오브 후 제품.

탐스러운 포도송이 같은 담수 진주의 롱 네크리스와 귀고리로 머리를 땋아 장식했다. 가락지처럼 한복과 어우러지는 반지들까지 모두 ‘트리니티’ 컬렉션으로 까르띠에(Cartier), 연분홍 치마와 부드러운 옥색 저고리 한은희 한복

#4

화보를 찍고 며칠 뒤, 이영애는 오랜 시간 준비한 만찬을 선보였다. 한국에 머무는 외교 사절과 언제든 한식의 외교 사절이 될 수 있는 국내 인사들이 모인 자리였다. 드라마를 위해 요리를 배우고, 남편과 아이를 위해 요리를 하는 주부 이영애는 ‘맛을 그리는’ 재능을 가진 요리 천재 ‘장금이’가 아니다.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이영애는 지금까지 여배우로서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른 일을 해내야 했다. 그녀는 이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보통 밥상을 수줍게 공개했고,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저 멀리 몽골에서 한식 밥상의 연원과 철학을 발견하기 위해 애썼다. 도움의 손길을 청하는 일도 이영애의 몫이었다. 이날 만찬은 롯데호텔 총주방장인 이병우 조리장과 도예가 이능호, 디자이너 한은희 선생이 힘을 더해 완성됐다. 다시 만난 이영애는 분주하게 밥상을 준비해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맞아야 하는 여느 여자처럼 보였고, 자신을 아시아의 스타로 키워준 <대장금>에 대한 감사와 책임을 다하는 배우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세상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비로소 그녀는 세상과 완전하게 섞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