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준 화보

점퍼와 셔츠, 팬츠 모두 생 로랑(Saint Laurent)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출근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심지어 입에 넣어주는 데다, 그녀가 곤경에 처하기라도 하면 언제 어디서나 불쑥 나타나 도와주고, 여자친구가 투정을 부리면 무조건 자기가 잘못했다며 키스와 함께 귀엽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이 남자는 그 여자보다 무려 열네 살 어리다. 드라마 속에나 있는 이토록 판타스틱한 남자. 얼마 전 종영한 <마녀의 연애> 속 윤동하는 멋지고 훈훈하며 게다가 사랑스럽다. 이 윤동하를 완성한 건 박서준이다. 그리고 아마도 여전히 많은 여자들은 궁금해할 것이다. 실제의 박서준도 윤동하처럼 멋지고 훈훈하며 사랑스러울지. 그리고 짐짓 닮은 구석이 많을 거라고 기대할 것이다.

 

박서준 화보

“닮은 부분도 물론 있겠죠.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동하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동하라는 인물을 나로서 표현하고 싶었죠. 그 옷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옷을 입는 거예요. 대본 속 상황을 보고 최대한 그 상황에 맞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나라면 누군가를 아주 많이 사랑할 때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했죠. 사람들이 ‘박서준도 윤동하처럼 사랑할 거야’ 하고 생각해준다면 저로서는 가장 만족스러운 반응일 것 같아요.

물론 저와 동하가 닮은 점도 분명 있어요. 가령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여자만 보이고,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질투하는 모습도 닮았고. 그런데 사실 ‘어떤 윤동하를 만들어야겠다’고 미리정한 건 없었어요. 다만 상황, 상황을 연기했고, 그게 한 회가 되고, 그것들이 모여 16회의 드라마가 끝나고 윤동하가 완성된 거죠.”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첫 주연작을 잘해냈다. 그의 말마따나, ‘박서준표 로코란 이런 거다’ 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많은 여자들이 그가 만들어낸 판타지에 빠졌다. 두달 넘게 이어진 밤샘 촬영에 체력은 바닥에 떨어지고 몸은 힘들었지만, 이전 작품에 비해 부쩍 많아진 분량은 오히려 그를 즐겁게 했다. “촬영 신이 많은만큼 제가 한번 시도해보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많아 재미있게 촬영한 것 같아요.”

 

박서준

레더 핀턱 셔츠와 와이드 팬츠 모두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내가 박서준이라는 배우를 기억하기 시작한 건 <금 나와라 뚝딱!>에 출연한 무렵인 것 같다. 늘 사고를 달고 다니는 철딱서니 없는 막내, 서자라서 겪는 서글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점점 더 귀여워지고 동시에 믿음직스러운 남자. 그리고 다음 작품인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는 김지수의 남동생을 연기했다. 누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고,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으며, 웃고 있지만 슬픔을 누르고 누르는 남자. 그러더니 이제는 (조금 낯간지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국민 연하남으로 ‘등극’했다.

그러니까, 스물일곱의 이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화려하게 등장한 스타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랫동안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남들과 출발점이 달랐을 뿐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연기 아카데미에 다녔고, 이후 연기학과에 들어갔죠. 하지만 서둘러 데뷔하기 보다는 군대에 다녀오기로 했어요. 시작이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출발점이 다를 뿐이죠. 달리기 경주를 할 때도 1번 레인과 8번 레인이 인코스와 아웃코스라는 점만 다를 뿐, 누가 더 늦게 출발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금껏 배우라는 길에 대한 확신이 무너진 적은 없었다. “군대에 가서는 오히려 더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신이 들었어요. 어서 제대로 된 현장에서 다른 프로 배우들과 작품을 만들어가고 싶었어요. 그 현장에서 연기를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무척 궁금했죠. 물론 힘든 순간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에요. 군대에서는 마치 내 시간만 멈춘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럴 때 또래 배우들이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죠. 과연 나도 저곳에 설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리고 생각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안 될 거라고 포기할 순 없다고. 일단 한번 해보고 내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봐야겠다고.

 

박서준 화보

화이트 티셔츠 올세인츠(All Saints), 팬츠 노앙(Nohant), 롱 카디건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구두 소다 옴므(Soda Homme)

박서준이 <마리끌레르> 카메라 앞에 선 건, 드라마가 종영한 지 막 이틀이 지난 날이었다. 밤샘 촬영이 석 달 가까이 이어졌고, 촬영하는 내내 집에서 자는 시간보다 차에서 자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얼굴이 조금 까칠해 보였지만, 카메라 앞의 박서준은 노련했다. 한 컷 한 컷 마칠 때마다 186cm의 큰 키에 걸맞은 어떤 바지를 입든 발목이 드러나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화보 촬영 당일은 그로서는 아주 오랜만에 스케줄이 일찍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동하를 내려놓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거란다.

“지금은 그냥 스케줄에서 벗어나 푹 쉬고 싶어요. 아직까지 전 제대로 된 취미가 없어요. 취미를 만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작년에 방콕에 다녀온 게 제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그 전에는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생활했으니 해외여행을 갈 만한 돈이 없었죠. 무엇보다 여행을 다니는 것보다 배우로서 준비하는 일이 더 급했고요. 그런데 한번 여행을 다녀오니, 참 좋더라고요. 뭔가 자신을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박서준 화보

재킷과 팬츠 모두 루치오 바노티 바이 디옴(Luccio Vanotti by Diom), 구두 어그 오스트레일리아(UGG Australia)

아마도 그는 그리 오래 쉬지 않고 다음 작품으로 돌아올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가는 것도, 취미를 가져보고 싶은 마음도 다시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의 일상이 온통 작품으로만 채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 박서준의 일상은 배우 박서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연기가 재미있다는 거.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엄청나게 큰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다른 인물의 삶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에 배우라는 직업이 좋다는 말에 크게 공감이 가지 않고요. 연기를 하는 게 그 인물의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제게는 대본을 보지 않는 시간도 중요하죠. 연기하지 않는 순간에는 저를 대본에 가두지 말고 풀어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일상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이 더 잘 느껴지니까요. 살면서 마주하는 행복, 분노, 기쁨 같은 감정을 느끼며 ‘아, 나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죠. 그렇게 나를 알아가다 보면, 어떤 감정이든 표현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겨요.”

물론 배우가 되기 전 그의 일상과 배우가 되고 난 후 그의 일상이 같을 수는 없다. 이제는 혼자 돌아 다니다 보면 불쑥 그의 일상이 방해받을 때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예전처럼 버스며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고 싶은데 불쑥불쑥 불편한 일이 생길 때가 있어요. 왠지 항상 표정 관리를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한번은 혹시 ‘내가 연예인병이라도 걸렸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웃음) 일단,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내 사적인 시간을 방해받는 것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거겠죠.”

 

김서룡 옴므

카디건과 니트 터틀넥 스웨터 모두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인터뷰를 하는 내내 확신에찬 답을 꺼내놓은 그지만, 명쾌하게 답을 말하지 못한 질문도 있었다. 하나는 좋은 배우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또 하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 전자는 아직 자신만의 연기 철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했고, 후자는 아직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해 답할 수 없단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계획은 이제부터 세워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군대에 있을 때 마음먹은 대로 살아왔어요. 제대하면 소속사를 찾고, 좀 더 준비를 하다 작품을 하고, 이름을 조금씩 알리고 그다음엔 더 많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계획. 그런데 사실 저는 계산적으로 치밀하게 사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하고 싶은 일이 연기였고, 마음 가는 대로 몸이 움직인 것뿐이죠. 하지만 분명한 건, 매 작품 보여주는 제 연기가 제게는 곧 ‘답’ 이라는 거예요. 왜 그렇게 했을까 반성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연기한 저 자신을 존중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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