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은 아슬아슬하다. 승부를 예측할 수 없고 확률은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아무리 타짜여도 승리를 늘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 역전이 가능한 한탕에 성공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인생 말아먹을 수도 있다. <타짜: 신의 손>(이하 <타짜2>)은 제목 그대로 ‘타짜들’이 주인공이다. 우리는 이미 ‘고니’가 등장한 <타짜>에서 고스톱의 재미를 봤다. 배신, 음모, 의리, 사랑 등이 얽히고설킨 도박판은 꽤 재미있었고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고니의 조카가 떠오르는 타짜로 돌아왔고, 신세경은 그 조카의 연인이자 전문 도박꾼인 ‘허미나’를 연기한다. 허미나는 신세경이 지금껏 연기해온 여자들과는 다른 점이 많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 한 번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그 여자와도, 갈대처럼 이리저리 마음이 흔들리던 <남자가 사랑할 때>의 그 여자와도 다르다. 솔직하고 과감해졌으며 자유롭고 능동적인 여자가 되었다. 9월 개봉을 앞둔 영화는 아직 완성본이 공개되지 않았고 신세경의 한 판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녀는 ‘고’했다.
6개월 만이다. 한창 <타짜2>를 촬영할 때 만났는데, 한 달 후면 개봉한다. 영화는 잘 나온 것 같나?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다. 무엇보다 <타짜2>가 기대되는 점은 각자의 색깔이 분명하고 강렬한 캐릭터들로 꽉꽉 채워졌다는 거다.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가 매력적이다.
흥행한 작품의 속편이기 때문에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게다가 <타짜>에서 김혜수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대사는 여전히 생생하다. 그만큼 김혜수가 연기한 여주인공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담감이 전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원작 만화도 1편부터 4편까지 모두 다른 이야기다. 속편은 다른 이야기이고 다른 캐릭터이기 때문에 특별히 전작과 비교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전작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은 나에게 나쁜 기운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기를 좀 더 의욕적으로 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되지 않았을까?
트레일러를 보니 이전에 연기했던 캐릭터와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더라. 신세경이 승부를 던질 줄 아는 도박사를 연기하다니. 극 중 허미나는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 중 손에 꼽을 만큼 홀딱 반해버린 캐릭터다. 능동적이고 당당한 여자다. 성격만 놓고 보면 부족한 점이 없다. 말하자면 슈퍼히어로? 의리 있고, 생색내지 않으며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허미나에게 홀딱 반한 이유가 당신과 닮아서일까? 아니면 허미나를 닮고 싶어서일까? 허미나는 나와 닮은 점도 있지만 닮고 싶은 여자이기도 하다. 내가 바라던 여성상? 나는 화려한 꽃보다는 소나무처럼 멋진 여자가 되고 싶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인가? 점점 감정을 숨기며 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꺼낸 말 한마디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고 그 한마디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질 때도 있다. 굳이 주관적인 생각을 드러내면서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요즘은 SNS도 안 하는 것 같더라. 얼마 전에 폭파했다. 계정 없애는 것을 계정 폭파, 줄여서 계폭이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시작했는데 점점 내 생각을 그런 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면서 잘 안 하게 됐다. 그러다 결국 며칠 전에 계정을 아예 없앴다.
전문 도박사를 연기했으니 화투도 많이 배웠겠다. 이번 영화에 출연하면서 처음 배웠는데 정말 잘한다. 운도 따르고 돈도 잘 딴다.(웃음)
고스톱의 매력은 뭘까? 사람을 자만하지 못하게 한다.
철학적인 답변이다. 너무 거창하게 포장한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화투를 할 때 몇 번 연속으로 따다 보면 기분도 좋고 오늘은 왠지 ‘나의 날’인 것만 같다. 그런데 그렇게 자만하는 순간 운이 저리로 가버린다.
아, 운이 최고점에 다다랐을 때 빠질 줄 알아야 돈도 따겠다. 그렇다. 그래서 제목이 <타짜: 신의 손>이다. 신의 손의 경지에 이르면, 운이 최고점을 찍었을 때 빠질 줄 안다는 의미다.
화투를 치다 보면 이런 말을 하지 않나. ‘못 먹어도 고!’ 그렇게 ‘고’했다가 후회한 적 있나? 물론 있지. 그런데 얘기할 수는 없다.(웃음) 하지만 그런 적이 분명 있다. 사람들은 왜 그런 걸까? 확률이 반반도 아니고 못 먹을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고’하는 심리.
이번 영화에 대한 감은 어떤가? 아직까지 영화로 대박을 친 적은 없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오락 영화라 흥행하지 않으면 배우에게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물론 잘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좋은 스코어보다 내가 그 캐릭터를 얼마나 잘 소화했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허미나는 지금껏 내가 보여준 적 없는 면이 많은 캐릭터다. 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 속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슬픈 일보다는 즐거운 일이 많은 사람? 낙관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한다.
이미지를 떠올리면 발랄한 또래보다는 조금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의 당신은 유쾌하고 잘 웃는다. 대중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억울할 것 같다. 고정관념이란 건 너무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 깨기가 힘들다. 그런데 나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 게 꼭 나쁠 것만도 없다. 일을 일찍 시작한 편이니 앞으로 갈 길이 멀고, 천천히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내 이미지를 깰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이미지 때문에 연기자로서 스펙트럼이 좁아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늘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다. 스타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롤러코스터처럼 변화무쌍하다.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인기도 화투랑 비슷하다. 운이 도는 거다. 아니, 인생이 화투랑 비슷하다. 고스톱 한판에 인생을 살아가는 진리가 모두 들어 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촬영장이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멀티캐스팅도 좋은 현장 분위기에 한몫했을 것 같다. 물론 어마어마하게 많은 힘이 됐다. 보통 작품을 들어갈 때 마음의 짐과 고민을 짊어지고 가게 되는데 이번 작품은 많은 것이 명확했다. 함께 촬영하는 동료, 선배 배우와의 호흡도 좋았고, 감독님도 늘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안을 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영화를 촬영하는 순간이 너무 즐거워서 크랭크업을 하자마자 서둘러 여행을 준비했다. 끝나고 나면 공허함 때문에 힘들어질 것 같아 걱정됐기 때문이다.
동유럽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부모님과 함께 떠나 중간에 아는 언니가 합류했다. 크랭크업한 지 일주일 만에 여행을 떠난 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안 그랬으면 분명 엄청 힘든 일상을 보냈을 거다.
여행이 주는 힘은 무엇일까? 일과 밀당을 할 수 있다. 세상은 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그리고 사람도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로지 연기뿐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연기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해야 균형이 맞는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서 여행이 좋은 걸 수도 있겠다. 그런 것도 있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어서다. 보통 사람은 행복감을 느낄 때 절대적인 기준을 두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한다. 그런데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 준거집단이 아니다. 그 사람들의 삶과 내 삶을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고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사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지. 한국에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흔들릴 일 없이 잘 살 수 있을 거다.
여행을 가면 낯선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나? ‘나 여배우야’라고 소개하나? 잘 다가간다. 하지만 절대 내 직업을 말하진 않는다. 그냥 학생이라고 말한다.(웃음)
영화가 끝나자마자 여행을 다녀왔고, 이제는 영화 홍보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테고, 그런 와중에 드라마 <아이언맨>에 캐스팅되었다. 좀 쉬어 갈 생각은 없었나? 나는 인연을 믿는다. 아무리 원해도 내 것이 아닌 건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을 만나게 된 건 운명이고 인연이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질문을 준비했다. 당신의 요즘을 말해달라. 오늘 들은 음악, 요즘 읽은 책,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 같은. 오늘은 킹 크룰(King Krule)의 ‘베이비 블루(Baby Blue)’를 들었다. 최근에 읽은 책은 김영하 작가의 <여름의 묘약>. 작가가 프로방스 여행을 다녀와 쓴 에세이인데 처음에는 음식에 대한 묘사 때문에 빠져들었다. 멜론 하나를 설명하는 데도 침이 꿀떡꿀떡 넘어갈 만큼 묘사가 생생하다.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군도>. 그리고 어서 <프란시스 하>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