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TV로 마주했을 땐 그야말로 쇼킹했다. 밝게 빛나는 은발에 비현실적인 느낌을 더하는 연녹색 눈, 그리고 특수 분장에 가까워 보이는 강렬한 메이크업까지. 지난해, 데뷔 후 세 번째 싱글 ‘다칠 준비가 돼 있어’로 무대에 오른 빅스를 두고 아이돌 그룹의 독특한 퍼포먼스에 누구 못지않게 단련된 K-POP 팬들마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에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휘청거리는 안무와 보름달이 휘영청 뜬 무대장치까지, 뱀파이어 컨셉트로 완벽히 변신한 이들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누군가는 신선한 비주얼이라고 재미있게 받아들였고, 누군가는 아이돌 그룹의 무리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칫 괴상한 시도로 끝날 뻔한 무대는 컨셉트를 정교하게 구현해낸 섬세한 퍼포먼스와 캐치한 사운드의 노래가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를 일으켰고, 빅스의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이어진 발표곡 ‘Hyde’와 ‘저주인형’에서 이들은 ‘지킬 앤 하이드’와 ‘부두 인형’을 모티프로 한 색다른 무대를 만들었고, 마침내 공중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며 자신들의 과감한 선택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짧은 뮤지컬을 보는 듯한 빅스의 무대는 아이돌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판타지를 선사한다. 그리고 두 번째 미니 앨범, <Error>에서 이들은 또 한번의 ‘비주얼 쇼크’를 준비하고 있다.
새 앨범이 나왔어요. 뮤직비디오를 보니 이번에도 컨셉트가 독특하더라고요. 라비 네. 두 번째 미니 앨범이고, 타이틀 곡 ‘Error’를 위해 사이보그 컨셉트를 준비했어요. 그동안은 신스팝 느낌의 곡들을 많이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멜로디도 그렇고 배경에 스트링 세션 연주도 들어가서 서정적이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곡들이 들어 있어요. 미니 앨범에는 총 7곡이 실렸고요. 엔 특히 이번 미니 앨범 중 ‘What U Waiting For’는 라비가 직접 쓴 곡이라 의미가 커요. 연습생 때부터 자기 방에서 6~7시간씩 작업에 몰두하다가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내비치던 라비라서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직접 곡 전체를 쓰는 것도 모자라 프로듀싱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켄 ‘Error’의 홍빈이 파트 가사도 라비가 쓴 거예요. 멋있죠. 엔 ‘Error’의 사이보그 컨셉트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드리자면, 한 여자를 사랑하던 남자가 그녀에게 큰 상처를 받은 후 심장을 제외한 자기 몸의 모든 부분을 사이보그로 변형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어요. 라비 뮤직비디오에서는 홍빈이가 주인공을 맡아서 오열하는 모습도 나와요. 사이보그 컨셉트라 아무래도 비주얼이 강하긴 하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슬프고 여린 모습을 담고 있다는 반전이 있어서 매력적이에요.
그러고 보니 뮤직비디오에서 홍빈씨의 ‘상의 탈의 신’이 화제였어요. 운동을 많이 한 것 같던데요? 홍빈 앨범 준비하면서 드라마 <기분 좋은 날>도 찍고, 단독 콘서트도 준비하던 때라 잠을 줄여가며 운동을 해야 했어요. 사실 그렇게 많이 노출될 줄은 몰랐어요. 오히려 뮤직비디오를 찍을 당시에는 슬림해 보이고 싶어서 살을 확 뺐었는데 엄청 근육질인 것처럼 나와서 당황했어요.(웃음)
홍빈씨 외에는 어느 분이 제일 운동을 열심히 하나요? 라비 아, 저…인가봐요.(웃음) 다른 멤버들은 연기 활동 때문에 개인 스케줄이 많은데 저는 곡 작업만 하다 보니 낮에는 시간 여유가 있거든요. 엔 형도 열심히 해요. 엔 저는 운동은 열심히 하는데 식단 조절을 잘 못해요. 아예 굶으면 굶었지 건강식 챙겨 먹고 이런 걸 잘 못하는 스타일인데, 라비는 어제도 멤버들 밥 먹는데 혼자 닭 가슴살을 구워 와서 먹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이에요.
다시 타이틀곡 ‘Error’의 사이보그 컨셉트 이야기로 돌아오면, 전에 못지않게 강렬한 캐릭터가 완성된 것 같아요. 뮤직비디오에서도 멤버들의 몸 일부가 기계로 변한 모습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사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비주얼인데 그런 위험부담에 대한 걱정은 없나요? 엔 솔직히 걱정은 없어요.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 멜로디, 노랫말까지 모든 게 특색 있는 컨셉트에 걸맞은 한 가지 스토리로 이어지는 것, 그게 빅스만이 할 수 있는 저희만의 색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좀 더 많은 분께 어필하는 게 도전이자 숙제라고 생각하지 걱정으로 여기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소속사와 함께 컨셉트를 정하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거든요. 빅스 모두의 아이디어가 총동원돼요. 평소에 툭툭 던져두는 편이죠. ‘다칠 준비가 돼 있어’의 뱀파이어 컨셉트도 혁이가 영화 <트와일라잇>을 보고 아이디어를 낸 데서 출발했어요. 말도 안 되는 것도 많이 던져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술사, 하다못해 타잔도 나왔어요.(웃음) 해외 팬들에게도 익숙한 동화나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데뷔 직후부터 유튜브를 통해 멤버들이 직접 콘티를 짜고 영상으로 찍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빅스 TV>를 방송했죠. 솔직히 1백 회까지 하리라고는 예상 못 했어요. 라비 지난 5월에 100회로 첫 시즌을 마무리하고 얼마 전 시즌2를 시작했어요. 첫 화는 반쯤 장난으로 녹화한 거였는데 일이 너무 커져버렸죠. 사실 신인으로서 데뷔 초반에 방송에 나올 기회가 많지 않은데 직접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우연찮게 생겨서 큰 행운이었어요. 시즌 2에서는 진짜 방송처럼 멋지게 보여드리고 싶어서 카메라 수도 늘리고 직접 로고송도 만들었어요. 요새 유행하는 ‘셀카봉’도 준비했죠.(웃음) 켄 방송 시작 때 등장하는 캐리커처는 제가 직접 그린 거예요. 두 번째 시즌이니만큼 정성을 많이 들이고 있어요. 홍빈 지난겨울 스키장에 공연하러 갔을 때 거기서 우연찮게 <빅스 TV>를 찍었거든요. 전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멤버들끼리 눈싸움을 하는 모습이 꼭 다 같이 휴가 온 거 같았거든요. 평소엔 스케줄이 워낙 바빠서 다 같이 놀러 갈 여유가 없다 보니 생소하면서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엔 혁이가 눈싸움을 너무 열심히 하더라고요, 글쎄. 라비 사실 멤버들이랑 항상 함께 있다 보니 작정하고 어디를 놀러 가진 못해도 순간순간을 즐겨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홍빈씨의 생일이었죠. 멤버들과 보냈나요? 홍빈 그날은 제 모든 정성을 쏟아부어서 컴백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정말이지 뜻 깊은 생일이었어요.(웃음) 혁 지방에서 공연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느라 정신이 없었죠. 결국 홍빈 형은 새벽에 자다 말고 생일 케이크를 받았어요. 엔 트렁크에 케이크를 숨겨두었는데 아무래도 휴게소 한복판에서 축하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새벽에 축하해주었어요.
데뷔 전부터 다 같이 숙소에서 생활했나요? 홍빈 네. 저는 저희끼리 거실에서 수다 떠는 거 정말 좋아해요. 그러다 결국 아래층에 사는 분이 올라오신 적이 있어요. 모두 방에 들어가 숨고 엔 형을 혼자 내보냈어요. 이웃 분께는 정말 죄송했지만 그때 곤란해 하던 엔 형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웃음) 엔 심지어 저는 그냥 멤버들의 수다를 경청만 했을 뿐인데 말이죠! 초인종 소리가 나니까 다들 각자 방으로 두두두 달려가 숨고 순식간에 저 혼자 거실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어요. 결국 이웃 분께 혼자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려야 했어요. 라비 근데 요새는 많이 안 떠들어요. 엔 맞아요. 사실 요새는 수다를 떨기보다 배달된 야식을 같이 먹으면서 예능 프로그램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데뷔 초기에는 정말 입 아프게 얘기도 많이 하고 난리법석을 피우면서 장난도 많이 치고 그랬는데, 요새는 그렇게 느긋하게 코미디 프로 같이 보면서 웃고 그러는 게 재미있어요.
그건 꼭 연인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이랑 비슷하네요.(웃음) 엔 그러게요. 곧 권태기가 오는 거 아닐까요? 하하. 빅스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이거예요, 팀워크. 라비 친형제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요. 함께 지낸 시간이 이젠 제법 되니까 각자 성격을 맞추기도 쉬워졌고, 간혹 다투고 나서도 푸는 법도 알게 되었고요. 진짜 형제들이 툭탁거리며 싸우다가 금세 화해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엔 지금은 말을 안 해도 서로 어떤 생각 하는지 짐작이 가요. 저희는 같이 자는 멤버도 매일 바뀌어요. 라비 원래 엔과 켄, 레오, 홍빈이가 큰방, 저와 혁이가 작은방을 썼었는데, 지금은 켄이 주로 제가 자던 방에서 혁이와 자고 나머지 네 명 중 한 명이 돌아가면서 거실에서 자는 등, 매일 룸메이트가 바뀌어요. 엔 전 그게 참 좋더라고요.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랑 누가 더 친하고 그런 게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가만히 보면 다들 서로서로 친밀한 관계예요. 장난칠 때 죽이 잘 맞는 멤버, 영화 취향 비슷한 멤버, 게임 좋아하는 멤버 등등 여러 가지로 얽혀 있죠.
이제는 개인 활동이 많아져서 그런 시간도 줄어들지 않았나요? 켄 오히려 얘깃거리가 더 많이 생겨서 좋아요. 첫 연기 활동으로 시트콤 <하숙 24번지>에 출연 중인데 대본을 읽고 있으면 멤버들이 옆에서 관심도 가져주고, 대본 맞춰주겠다고 나서기도 해요. 서로 관심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라비 켄 형이 항상 시트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첫 연기 활동을 시트콤으로 시작했어요. 근데 홍빈이도 예전에 학생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고선 실제로 첫 드라마에서 학생 역을 맡았거든요. 엔 형도 드라마 <호텔킹>에 출연했고. 그렇게 멤버들 각자의 꿈이 구체화되고, 다들 스스로 상상하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신기해요.
그런 서로가 대견하게 느껴질 때도 있나요? 엔 전 요새 홍빈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예전에는 마냥 즐겁고 가벼운 분위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표정이나 몸짓에서 깊이 있는 분위기가 나거든요. 자신만의 아우라가 생겼어요. 이런 말 처음 해봐요. 항상 혼자 생각하던 건데. 라비 막내 혁이 같은 경우는 그냥,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죠. 키도 부쩍 크고 몸도 좋아지고 젖살도 빠지고 눈매도 어른스러워지고. 홍빈 예전에는 혁이가 순수의 결정체 같은 느낌이었는데 요새는 형들 놀리는 재미를 알아버렸어요. 라비 혁이가 백지였는데 많이 더러워졌어요.(웃음) 엔 얼마 전에는 라비가 연습생 시절 랩 하는 영상을 돌려 보게 되었는데요, 실력만 놓고 보더라도 엄청나게 달라졌더라고요. 생각이 깊어지고 아는 게 많아진 느낌? 홍빈 실력과 표현력, 꿈을 이루려는 열정이 커진 게 느껴져서 자극을 많이 받아요. 라비 아, 이거 칭찬 릴레이 같네요. 엔 형은 노련해지고, 무대에서 자신이 멋있게 보이는 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혁 엔 형은 진짜 데뷔 때보다 훨씬 능숙해졌어요. 동생인 제가 봐도 대견해요. 하하. 엔 고마워, 혁아.(웃음) 레오는 지금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콘서트에서 자작곡으로 많은 팬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풀하우스>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도 했고. 그러고 보면 저희가 처음에 꿈꾼 목표는 모두 이루어진 것 같아요.
그럼 다음 빅스의 목표는 무엇이 될까요? 엔 트렌드가 되고 싶어요. ‘음악 차트, 가요 프로그램 1위’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세운 새로운 목표예요. 빅스가 하는 음악, 무대, 패션, 모든 게 트렌드가 되는 거요. 켄 저는 진짜 죽을 만큼 엄청 바빠져서 죽기 직전까지 스케줄을 이어나갈 정도로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하나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라비 메인 프로듀서로서 빅스의 음악을 책임져보고 싶어요. 레오 전 목표보다 바람이 있어요. 빅스 멤버들이 하나씩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가는 게 제겐 일종의 게임 속을 탐험하는 ‘퀘스트’처럼 재미있게 느껴지거든요. 앞으로도 멤버들과 목표를 계속 이루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