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인 패턴의 맨투맨 티셔츠와 블랙 팬츠 모두 카이(Kye), 블랙 워커 팀버랜드(Timberland).

자신조차 어리둥절한 관심이다. 아이돌 그룹 M.I.B의 강남이 예능 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로 올라선 건 고작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생활을 체험하는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투입된 강남은 곧이어 MBC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와 <헬로! 이방인>에 등장하더니, 막 시작한 JTBC의 토크 프로그램 <속사정 쌀롱> MC 자리까지 줄줄이 꿰찼다. 본인도 얼떨떨해하는 지금의 인기는 사실 <나 혼자 산다>에서 그가 처음 등장한 회를 보면 금방 수긍이 간다. 화면에 등장하는 강남은 그야말로 황당한 캐릭터다. 어깨에 닿는 노랗게 탈색한 긴 머리에 매서운 눈매를 하고는 통장 정리를 하러 들른 은행에서 처음 보는 직원을 붙잡고 잔고 3천4백22원뿐인 자신의 상황에 대해 푸념하더니, 지하철역 계단에서 마주친 무거운 짐을 든 어르신에게 마치 친할머니에게 하듯 스스럼없이 “이거 들어드릴까?” 하며 짐을 덜어준다. 하이라이트는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청년에게 스마트폰으로 무얼 그리 재미있게 보느냐며 다짜고짜 말을 걸면서 시작한다. 알고 보니 동갑인 청년에게 자신의 통장 잔고를 털어놓으며 하소연하더니 문득 연애사를 캐묻고, 끝내 전화번호까지 교환하며 친근하게 “잘 가!”를 외치는 모습은 당황스러움과 유쾌함이 절반씩 뒤섞인 묘한 즐거움을 준다.

본명은 나메카와 야스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강남은 종잡을 수 없어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예능 대세다. 인사는 항상 예의 바르게 90도로 하지만 어눌한 한국어는 반말과 존댓말을 넘나들고, 트위터에서는 엉망진창이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 어쩐지 단숨에 이해되는 희한한 한국어 맞춤법으로 하루 일과를 알린다(“차령하면서 샤부샤부 머곳숨. 군데 샤부샤부눈 머고두머고두 베가 안 차…”). 결정적인 건 이 모든 게 방송용이거나 꾸며낸 모습이 아닌 ‘리얼 강남’이라는 사실이다. 녹물이 나오는 낡은 단독주택에서 반쪽만 따뜻해지는 전기장판에 몸을 녹일 때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다가도, 천둥벌거숭이처럼 학교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못 말리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스스럼없이 자신을 보여주는 솔직함과 예상을 벗어나는 거침없는 리액션으로 주변인에게 다가서는 강남의 친화력에 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빨려 들어가는 참이다. 노홍철 이후로 이렇게 산만하고 엉뚱하면서도 친근한 캐릭터는 오랜만이다.

블랙 바이커 재킷 케이케이엑스엑스(KKXX), 네오프렌 소재의 맨투맨 티셔츠 팜트리(Palm Tree), 스포티한 팬츠와 레깅스 모두 코쿤투자이(KTZ),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눈 깜짝할 새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강남이지만, 그는 사실 2012년 그룹 M.I.B로 데뷔해 정규 앨범을 두 장이나 낸 3년 차 가수다. 어릴 때부터 TV 무대에 서는 가수들을 동경했고, 중학교 3학년 때 유학 간 하와이에서 우연히 KBS <열린음악회>를 방청한 것이 결정적으로 그를 가수의 길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박진영, 신화 선배님 무대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원래 선배님들 노래를 좋아했었는데 직접 무대를 보니까 아예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거죠. 그리고 무대에서 노래가 딱 나오는데 관중들이 ‘우와아아아’ 하고 엄청나게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저도 그걸 너무 느끼고 싶었어요.” 다시 돌아간 일본에서 마침내 밴드 멤버로 무대에 섰지만 대중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그러다 지금의 소속사 대표를 만나서 한국에 건너왔다. “대표님이 제가 노래하는 건 들어보지도 않고 바로 스카우트하셨어요. 제가 만나자마자 대표님에게 막 악수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너무 좋으셨대요. 그래서 ‘얘는 되겠다’ 싶어서 데려왔는데, 될 때까지 3년이나 걸린 거죠.”(웃음) 당시 소속사엔 타이거 JK와 리쌍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음악 선배로 있었고, 그의 그룹 M.I.B도 아이돌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면서도 조금 더 음악적인 역량으로 주목받는 팀이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막 데뷔하는 신인 아이돌 그룹이 첫 앨범으로 11곡을 꼭꼭 채워 넣은 정규 음반을 내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컸지만, 현실적인 리스크 또한 그 못지않게 컸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돈 아깝게. 그렇지 않아요? 싱글 한두 개 좀 내보면서 활동할 수도 있는데. 한 곡에 제작비가 얼만데, 그렇잖아요. 사실 처음엔 대박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만만치 않더라고요. 우리 탓인 것 같아요. 소속사에서는 방송 무대도 잡아주고 준비 다 시켜줬는데, 제가 그 무대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거겠죠. 올해 초에 나온 두 번째 정규 앨범에도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담았어요. 앨범 이름을 <The Maginot Line>으로 짓고, 이 앨범이 우리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근데 또 잘 안 되었어요. 되게 힘들더라고요. 지난여름엔 일주일에 스케줄이 하나 있었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생각이 많아지고 매일 불안한 감이 있었어요.”

그런 그는 지금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스케줄의 홍수’를 경험하고 있다. 강남은 그런 일상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한 듯하다. 촬영장에 온 그는 한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침대를 옮기다가 부딪혀 손가락 마디가 부러졌다고 한다. 척 봐도 가벼운 부상은 아닌데 그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 급히 붕대를 풀었다. 포토그래퍼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사진에 잘 나오고 싶다고 고집스럽게 맨손으로 포즈를 취했다. 음악을 계속 할 생각이냐는 질문엔 신중한 태도로 답했다. “인지도가 올라갔으니까 이때 음반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렇게 급하게 낸 노래가 별로이면 결국 또 외면당하게 될 테니까요. 여전히 제 꿈은 좋은 가수거든요. 가수로서 꼭 정상을 찍고 싶어요.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매일 생각해요.” 무조건적인 열성을 보이는 그를 응원하고픈 마음이 든다. 포기하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미련함은 언젠가 꼭 보상을 받는다는 걸 믿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