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있다. 사지 멀쩡한 아버지는 돈 한 푼 벌지 않고 자식들을 떠맡길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종교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고, 허리를 다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돈을 벌지 못할 거라면 집을 나가라는 남편의 등쌀에 집을 나왔다. 그래도 동생은 아버지 옆에 간신히 붙어 있다. 소년은 집을 나와 천주교의 보육 시설인 ‘이삭의 집’이라는 그룹 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행여 그곳에서 버림받고 끔찍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게 될까봐 자신의 부모에게도 지은 적 없는 웃음을 보육원 원장에게 보이고, 마음에도 없는 신부가 되겠노라며 신실한 척 꾸며낸 신앙심도 보여준다. 원장이 화를 내며 집어 던진 음식을 말끔하게 치우고 나서는 보육원으로 온 후원 물품을 훔쳐다 친구들에게 판다. 친구에게 누명을 씌우고, 살아남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건 일상이다. 이 열일곱 소년을 책임져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소년은 비겁하고 비열하며 구질구질하게라도 살아남기로 했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 <거인>은 사는 게 숨이 차도록 힘든 상처투성이 소년의 이야기다. 최우식이 그 소년 ‘영재’를 연기했고, <거인>으로 최우식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선뜻 하겠다고 하지 못했어요. ‘아니요, 안 할래요, 무서워요’라고 말했죠. <거인> 시나리오 초고는 지금보다 더 쌨어요. 영재는 악만 남은 아이였고, 엄마 아빠에게 쌍욕도 했죠. 고슴도치처럼 가까이 오는 사람을 모두 찔렀어요. 지금 껏 밝은 역할만 해왔고, 그런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영재를 설득시킬 수 있을 지 걱정됐죠. 처음에는 겁이 나서 못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도전하기로 결심한 건 제 개인적인 고민의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이에요. <거인>을 제안받았을 때 제 연기에 대한 고민이 컸거든요. 뭐랄까, 제자리걸음하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카메라가 편해져서 편하게 까불고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밝고 개구쟁이 같은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전혀 다른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하겠다고 선뜻 나서기 힘들었던 건 <거인>이 여러모로 다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옥탑방 왕세자>의 잔머리 대마왕 ‘도치산’이나 구멍투성이인 엉뚱한 악역을 연기한 <운명처럼 널 사랑해> 속 최우식은 언제나 유쾌했고 밝고 웃기는 놈이었다.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선 최우식은 딱 그런 남자였다. 이를테면 스
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스튜디오를 여기저기 구경하다 스케이트보드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타보거나 나무로 된 벽을 보며 ‘불이 나도 안전한 거냐’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남자. 그러니까,영재는 분명 그에게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보여준 캐릭터와 다른 것은 물론 영재는 최우식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서 자란 아이고, 상상해본 적 없는 삶을 사는 소년이니 말이다.
게다가 영재는 <거인>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이 고스란히 투영된 캐릭터다. “굳이 제 자신이 감독님과똑같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감정은 흉내 낸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 관객이 보게 될 사람은 저 자신이니까요.감독님이 제 연기를 보고 ‘야, 나는 그렇게 안 했어’하는 식으로 디렉션을 주었다면 연기하기가 더 힘들었을 거예요. 감독님이 저보다 딱 세 살 많아요. 그래서 촬영장이 마치 동네 형이랑 연기 지망생이 함께 졸업 작품을 찍는 현장 같았어요.
가끔 의견이 맞지 않을 때면 싸우고 짜증도 내고 욕도 하다가 술 한잔 마시면서 풀고, 그야말로 형제처럼 지냈어요. 감독님이 제 걱정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소소한 잔소리도 엄청 많이 하세요. 이를테면 ‘항상 인사 잘해야 한다.’’ “네 방은 알아서 잘 치워라.” 꼭 엄마 같죠. 이 일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중에는 좋은 인연도 많았지만 김태용 감독님과는 특히 그 관계가 가깝고 깊어요.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도요.”
<거인> 촬영장은 함께 연기한 배우는 물론 스태프까지 대부분이 또래였다. 현장의 모두가 서툰 사람들이고, 대신 모두의 꿈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술을 마시는데 이상하게 씁쓸했어요. 내가 아무리 앞으로 경험이 많아지고 나이가 들더라도 이렇게 모두 친구처럼 지내는 현장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
길지 않은 그의 연기 인생에서 <거인>은 두 번째 도전이었다. 그의 첫 도전은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열한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그의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도 연출 관련 수업을 들었고, 언젠가 연기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러다 친구가 한국에서 배우 오디션 볼 것을 권했다. 그렇게 어느 기획사의 오디션에 서류를 보냈고, 한국으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답장을 받았다. 오디션 이틀 전에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 얼렁뚱땅 한국에 왔고 덜컥 배우가 되었다.
“철없는 스무 살의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그때 스물다섯 살만 되었더라도 아마 캐나다를 떠나지 못했을 거예요. 아주 많은 걸 버리고 와야 했거든요. 아무런 준비 없이 종이 한 장 들고 벌벌 떨며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했어요. 연기를 공부한 적도 없고 한국어 발음도 어색했죠. 지금보다 삐쩍 말랐고, 캐나다에서는 늘 땡볕에서 놀아 시커멓기까지 했어요. 그런 제가 오디션에 붙은 거예요.” 수업을 땡땡이치고 강에 가서 수영하고, 할 일이 없는 날에는 친구들이랑 뒷산에 올라 풀을 뜯으며 놀던 스무 살의 최우식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배우가 되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밤새도록 온갖 가게들의 네온사인이 켜 있고, 아무리 늦은 시간에도 술을 마실 수 있어,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난리’가 났었다. 그렇게 들뜬 상태로 시작한 한국 생활은 이제 많이 가라앉았다. “요즘은 술을 마시려면 친구와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조용하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요. 일이 없는 날에는 낚시도 다니고 청계산, 관악산, 아차산 등으로 등산도 가요. 그렇게 밖에서 에너지를 쏟지만, 정반대로 집에 가만히 틀어 박혀 있는 것도 좋아해요. 혼자서 술도 마시고, 그냥 조용히 있어요. 외로울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강아지 초코가 있어서 다행이죠.”
들떠 있던 한국 생활은 이제 안정되었고, <거인>을 향한 칭찬과 그 거인을 연기한 최우식에 대한 박수를 뒤로하고 그는 배우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영재를 연기하면서 나 안에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알았죠. 물론 제 연기를 본 사람이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관계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단 세 명만이라도 내가 연기하는 새로운 캐릭터에 공감하고 마음이 움직인다면 만족해요. 그렇게 또 하나의 틀을 만드는 거죠.”
<거인>은 그에게 많은 첫 경험을 안겨주었다. 친형처럼 지내게 된 감독을 만났고,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처음으로 캐릭터에 빠져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감이 생겼다. “솔직히 <거인>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연기가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요즘 더 재미있어진 거죠. 그리고 예전에는 없었던 기회가 좀 더 많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드라마 감독님들만 겨우 저를 ‘아, 쟤 그 까불거리는 애’ 하는 정도로 알아봐주었다면 이제는 영화감독님 중에도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있거든요. 감독님에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제 다른 모습의 폴더가 늘어난 것 같아요. 물론 그만큼 부담도 많이 돼요. 당장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 <오만과 편견>도 잘 해내야 하고,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할지, 그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작품이 들어오기나 할지 걱정도 물론 돼요. 앞으로 더 잘해나가야겠죠.”
<오만과 편견> 촬영이 한창인 와중에 그의 또 다른 영화 <빅 매치>가 개봉한다. 대사는 딱 하나 ‘60억!’. 모든 장면을 신하균과 함께했다.그래서 행복했다. “신하균 선배님과 단둘이 호흡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선배의 연기를 제가 잘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요즘 그에겐 재미있는 일도, 행복한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20대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얼마 전에 형이 <거인> 시사회를 보려고 캐나다에서 왔어요. 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데 형이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부모님을 만날 날이 1년에 고작 2주밖에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늦둥이다 보니 아버지가 나이가 많으세요. 그래서 문득 20대가 가기 전에 배우로서 좀 더 안정된 위치에 자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를 볼 날이 아주 많지는 않을 텐데, 그 전에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주인공에 대한 욕심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배우로서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드리고 싶은 거죠.”
아마도 그의 바람은 실현될 것이다. 그는 요즘 부쩍 연기하는 것이 행복해졌고, 지금의 길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로서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큰 짐을 던 기분이다. “일단 신발끈 매듭을 잘 지은 것 같아요. 이제부터 잘해야죠. 지금이 제일 위험한 시기인지도 몰라요. 포장은 잘해놓았으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포장 속을 잘 채워 넣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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