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로우 코트 김필

카키 이중 라펠 코트 아발란치(Avalanche), 아이보리 터틀넥 비슬로우(BESLOW).

랄프 로렌 데님앤서플라이 팬츠 김필

스트라이프 니트 톱 랄프 로렌 데님앤서플라이(Ralph Lauren Denim&Supply), 데님 팬츠 이스트쿤스트(ist kunst), 브라운 워커 울버린(Wolverine).

김필 버버리 니트 질샌더

무통 재킷 버버리(Burberry), 그레이 니트 풀오버 질샌더(Jil Sander).

“확신 반, 의문 반이었어요. 조금만 틀어져도 모든 게 잘못될 수 있으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고 서로 양보도 많이 했죠. 경연하는 동안은 휴대폰도 쓸 수 없고 합숙을 하면서 외부랑 철저히 차단되기 때문에 사실 사람들 반응이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몰랐어요. 그 미션이 연습을 진짜 짧게 한 무대였어요. 미션 시작 30분 만에 진언이가 편곡을 완성하고, 한 시간 뒤 보컬 파트도 다 짠 거예요. 우리가 예선 ‘슈퍼위크’ 사상 가장 잠을 많이 잔 팀이었대요. 10시간 잤거든요.(웃음) 컨디션 조절하려고 그랬는데 그게 주효했어요.” <슈퍼스타K 6>가 시작될 때 시청자는 물론이고 심사위원, 그리고 후보자 자신들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대였다. 1차 합격자끼리 팀을 이뤄 하룻밤 사이에 주어진 곡을 소화하는 예선 콜라보레이션 무대에서 곽진언과 임도혁, 김필은 ‘벗님들’이라는 팀명으로 포크 밴드 이치현과 벗님들의 노래 ‘당신만이’를 불렀다. 여섯 시즌을 거치면서 수많은 참가자들의 경연곡을 들어온 가수 이승철은 심사를 위한 표정 관리도 할 새 없이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무대였다고 극찬했다. 온갖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벗님들’과 ‘당신만이’가 차지했다. 프로듀싱 능력이 남다른 곽진언의 편곡은 1970년대 발표된 원곡에 세련된 멋을 더했고, 임도혁의 맑은 고음은 곽진언의 차분한 저음과 어우러져 곡에 담백하게 녹아들었다. 그리고 김필. 카랑카랑한 듯 독특한 음색으로 한 음, 한 음 정성 들여 내는 이 남자의 노래는 애절함을 넘어 절절하기까지 했다. 경쟁자와 함께하는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무대에서, 김필은 두 사람과 따뜻한 동료애가 느껴지는 완벽한 하모니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순간만은 오디션 참가자도 예선 후보자도 아니었다. 그저 뮤지션 김필이자, 무대에 선 가수였다. 대한민국에 더 이상 노래 잘하는 사람이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오랜 기간 계속돼온 음악 경연 프로그램 열풍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그런 배짱과 진지함, 음악에 대한 원초적인 애정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실력을 두루 갖춘 참가자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김필이라는 가수를 발견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1960년대 KBS 라디오 악단의 단장이었으며 가수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1964), 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1965) 등 4백여 곡을 작곡했고 지금도 공연 활동을 하는 트럼펫 연주가이자 작곡가 김인배다. 피는 못 속인다고, 일찌감치 가수의 재능을 발견한 그였지만 그건 음악에 친숙해서이기보다 음악이 필요해서였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릴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스무 살 전까지 울산과 부산, 진주를 옮겨 다니며 살았거든요. 이사를 자주 하고 그때마다 친구도 바뀌고 낯선 곳에 적응해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어린 마음에 그런 일들이 쉽지 않고 근본적인 외로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혼자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또 주변 사람들이 곧잘 한다고 칭찬해주니 더 관심도 갔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진주에 있는 대학교(지구환경공학과)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음악 말고는 도저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모님을 설득해 그해 바로 서울에 올라와서 실용음악과 입시를 준비했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음악을 위한 삶이 시작되었다.

랄프 로렌 데님앤서플라이 팬츠 이스트 쿤스트 워커

스트라이프 니트 톱 랄프 로렌 데님앤서플라이(Ralph Lauren Denim&Supply), 데님 팬츠 이스트쿤스트(ist kunst), 브라운 워커 울버린(Wolverine).

랄프 로렌 블루 라벨 코트 슈츠

캐멀 컬러 롱 코트 랄프 로렌 블루 라벨(Ralph Lauren Blue Label), 블랙 모직 팬츠 송지오 옴므(Songzio Homme), 페이턴트 레이스업 슈즈 캠퍼(Camper).

필생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인생을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토록 원해서 선택한 길이었지만 뮤지션으로서 그의 삶은 여전히 외로움이 짙었다. 2011년 8월 마침내 싱글 <바보같이 또 울어요>를 낸 후로 올해 4월 <Cry> 발표 때까지 총 7개의 싱글 앨범을 내면서 제법 큰 규모의 음반사와도 작업을 했고, 좋은 동료도 많이 만났지만 대중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짓눌려 주저앉지 않으려면 계속 달려야만 했다.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지고 싶었고 그런 자신을 인정받고 싶었다. 제멋에 겨워 산다지만 그런 나를 사람들이, 세상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헛된 욕심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계속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 같은 뮤지션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어려웠죠. 싱글 앨범을 내도 활동이란 게 거의 없었어요. 4월에 발표한 <Cry>는 수록곡 2곡을 모두 제가 작사·작곡했기에 싱어송라이터로 첫발을 내디딘, 저로서는 포부가 큰 앨범이었거든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모든 게 어려워졌어요. 대부분 공연이 취소되는 힘든 시기였으니까요. 그런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는 와중에 <슈퍼스타K> 출연을 결정했어요. 나를 더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길인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이번이 마지막이야. 만약 잘 안 되면 나는 정말 음악을 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는 예선인 슈퍼위크 콜라보레이션 미션에서 ‘당신만이’로 단숨에 화제에 오른 이후, 계속되는 경연 과정 중 라이벌 미션에서 곽진언과 부른 ‘걱정 말아요 그대’로 또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지친 삶이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어깨를 토닥이는 두 남자의 목소리가 마치 나한테 하는 위로 같아서 결국엔 눈물이 나오는, 듣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감정선을 건드리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한 건 라이벌 미션인데도 서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두 남자의 무대 위 ‘케미’ 때문이자,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마음을 정교하게 표현해내는 김필의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노래가 지닌 매력은 그런 거다. 한 소절 한 소절을 섬세하게 짚어나가 듣는 사람에게 기술적인 감동과 정신적 교감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노래하시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가사를 보고 떠올리게 되는 장면들이 있거든요. 경험에서 나오는 저만의 상황들. 그런 걸 많이 회상하면서 노래해요.”
그는 이렇게 단독 컷을 찍는 화보 촬영은 처음이라 어색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포즈를 취할 줄 알았다. 인터넷에는 그가 <슈퍼스타K 6>에서 입고 나온 의상이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를 묻는 글들이 보일 정도로 노래만큼이나 스타일도 뛰어난 멋쟁이다. 음악 하는 친구는 물론 패션, 스포츠 등 다방면의 지인을 두고 있는 그는 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도 어떤 노래를 듣다 좋으면 아티스트가 누군지, 그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며 공연 무대를 찾아보거든요. 그렇게 저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모아다가 제 음악과 함께 콜라보레이션하는 게 제가 뮤지션으로서 가고 싶은 길이에요. 전 음악을 하는 사람이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멋있어 보이는 게 좋고, 음악 하는 동안 제게 그런 모습이 계속 있었으면 해요. 그 멋이 없어지는 순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요. 단정 짓지 않는 게 제 삶의 모토거든요. 제 색깔을 노래면 노래, 이렇게 하나로 국한시키기보다는 계속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게 목표예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포부도 있는 그는 방송에서 ‘큰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큰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다 같이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신경 쓰는 뮤지션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음악을 소중하게 여기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음악 한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걱정하기보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큰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