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타이다이 카디건 쟈딕 앤 볼테르(Zadig & Voltaire).

이효리

캐시미어 카디건, 니트 톱, 팬츠, 스니커즈, 모자, 선글라스 모두 쟈딕 앤 볼테르(Zadig & Voltaire).

 

언제부턴가 1990년대는 복고와 추억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돌 그룹이 처음 등장했고 그들에 대한 팬덤이 시작된 시절이었다. 하얀색 비옷을 입은 H.O.T. 팬들과 노란색 비옷을 입은 젝스키스 팬들이 서로의 ‘오빠’를 응원하던 때였고, 한 반 아이들이 SES 팬과 핑클 팬으로 갈렸다. 이효리는 그때도 핑클에서 ‘섹시’의 아이콘이었다. 뭔가 대단한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밀레니엄이 아무 일 없이 지나고 시간은 계속 흘러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다시 등장했다. 199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걸그룹이 훨씬 과감하고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섹시 컨셉트의 다른 누군가가 등장할 때마다 ‘제2의 이효리’라는 말이 따른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분명히 달라졌다. 어느 날 훌쩍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몸뻬’를 입고 맨 얼굴로 밭에서 일을 하고 아침 밥상을 차리고 반려견과 느릿한 일상을 보내며 종종 소길댁으로서 블로그를 통해 소소한 일상을 전한다. 평화롭고 느릿한 일상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방향에 대한 확실한 신념,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 지금 이효리의 삶은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제주도를 떠나 오랜만에 도시에서 잠시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제주에만 있으니 조금 아쉬운 것도 있고 도시 생활이 그립기도 하고 해서 좋은 공연이나 전시도 보고 맛집도 많이 찾아다녀보려고요.

제주도에서 보내는 일상을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어요. 자신의 삶과 생각을 다른 사람과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친하게 지내는 루시드폴 오빠가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걸 보는데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해보게 되었어요.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결혼을 하고 제주에 정착해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발견하는 사소한 재미와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블로그를 통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죠.

핑클로서 활동하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당신을 보고 아무도 당신이 언젠가 어느 섬에 내려가 유유자적한 삶을 살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당신은 어느 순간 드라마틱하게 변한 걸까요? 어떤 특정한 사건 때문에 갑자기 변한 건 아니에요. 다만 언제부터인가 제 안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했어요. 내 안의 진짜 내가 ‘더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고, 점점 제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어요.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온 방식을 조금씩 바꿔봤죠. 삶의 방식을 바꾸는 데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난 지금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화려한 모습보다 수수한 모습에 더 익숙해진 것 같아요. 셀러브리티로서 수수한 삶을 그대로 대중에게 보여주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부담스럽진 않아요. 어차피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거니까요. 그건 문제가 아닌데 요즘엔 이런 생각을 해요.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찬사받고 싶어 그러는지도 모른다고. 말하자면 ‘중독’ 같은 거죠. 지금도 예전처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비로소 내 존재감을 느끼는 건지도 몰라요.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서울을 떠나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 때로는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밤에는 정말 캄캄하고 조용해요. 밤이 밤 같고 낮이 낮 같아서 좋아요. 아쉬운 건 친구들과 가족을 자주 못 보는 것, 그리고 자장면 배달이 안 된다는 것?(웃음)

 

타이다이 슬리브리스 톱, 팬츠, 스니커즈, 목걸이 모두 쟈딕 앤 볼테르(Zadig & Voltaire).

 

삶의 터전을 옮겼으니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났을 것 같아요. 새로운 인연이 당신에게 미친 특별한 영향이 있나요? 여기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저를 TV에서 봤던 사람들이에요. 저에 대한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하지만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서로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편안해요. 배울 것도 많고요.

당신도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겠지만, 당신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요즘 당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남편이요. 저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죠. 남편은 항상 차분한 에너지로 저를 안정시켜줘요.

요즘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행복하게 건강하게 사는 것. 그래서 요즘 요가에 집중하고 있어요.

올해의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소길댁으로서든 혹은 가수로서든.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아! 피아노를 배워보려고 해요. 잘될지는 모르지만.(웃음).

언젠가 ‘요즘 사람답게 살고 있어 좋다’고 말했어요. ‘사람답게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사람은 원래 선하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경쟁하고 그러다 보면 지치고, 다시 악다구니를 쓰고. 이렇게 살아가는 건 우리의 원래 모습이 아니에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 역시 확실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어요. 다만 누군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는 삶, 그건 사람다운 삶이 아닌 게 분명해요.

스스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쌍용차의 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요. 전 사실 용기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매일 왔다 갔다 하는 평범한 사람이죠. 제가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과는 또 다르게 살고 있을 거예요.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을 보면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숙연해져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외면하는 이슈, 약자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문제에 대한 신념을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지금까지 자연과 동물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얻은 답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중 하나라도 망가지면 결국 전부 망가지는 거죠. 지금은 ‘저 사람’이 약자지만 다음엔 내가 약자가 될 수 있어요. 어느 하나가 망가지면 결국 다 망가지는 거죠.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제가 관심 갖는 이유는 그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