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인공 남녀의 사연 많은 밀당 스토리에 조금씩 지쳐갈 때, 탁 치고 나오면서 때론 코믹하게, 가끔은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연 커플의 러브 라인이 반갑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 고백부터 뽀뽀까지 제법 빠르게 진도를 빼던 속 시원한 커플이 있었다. 바로 작품 속 배경이 된 <모스트> 편집팀의 두 막내 ‘준우’와 ‘한설’이다. 회가 거듭될수록 주인공 커플 못지않게 이 두 사람의 뒷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졌고, 새침한 듯 귀여운 한설과 더없이 순진해서 매력적이던 준우가 이루는 ‘케미’는 산뜻했다. 토끼 같은 눈으로 헤벌쭉 웃으며 동생같이 귀엽게 굴다가도,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부단히 애쓰는 준우는 금세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남자다. 이런 준우를 특유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더해 연기한 배우 박유환. 드라마 속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그를 만났다.
<모스트> 매거진의 패션팀 어시스턴트로 열심히 뛰어다니던 준우가 오늘은 화보 촬영의 주인공이 되어 나타났네요. 신기해요. 모든 스태프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 화보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흐름이 잘 읽혀서 반가워요.
오늘이 <모스트>의 화보 촬영 날이라면 준우는 지금 뭘 하고 있었을까요? 절대 이렇게 못 앉아 있죠! 분주하게 소품을 챙기고 모델들의 의상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어야죠.(웃음)
워낙 반응이 좋기도 했고, 준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박유환을 보여줄 수 있었던 드라마라 보내기 아쉬웠을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시작하면 무조건 끝이 있고, 그때마다 늘 아쉽긴 한데 <그녀는 예뻤다>는 유난히 더 그러네요. 이번 작품을 찍을 땐 매일같이 설레었어요. 한설과 러브 라인을 만드는 것도 두근거렸고, 편집팀 선배들과 지내는 것도 좋았죠. 드라마에서처럼 실제로도 다들 흥이 많아서 늘 즐겁게 어울렸거든요.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뭔가요? 스무 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아서 의미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유천이 형이 연기 연습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날부터 꾸준히 기본기를 배웠고, 차츰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활동하기 시작했죠.
형이 드라마 모니터도 가끔 해주나요? 제 방에 들어와 제가 연기한 준우를 흉내 내면서 장난을 치기도 해요.(웃음) 형하고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안 해요. 마주 앉아 그런 얘기 하는 건 왠지 좀 쑥스럽더라고요. 그냥 가끔 둘이 집에서 술 한잔하면서 ‘이번에 그 연기 좋더라’ 가볍게 이야기하는 정도예요. 그래도 조용히 뒤에서 지켜봐주는 형 덕분에 항상 든든해요.
박유천의 동생으로 받는 사람들의 관심, 형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전혀 없어요. 우린 가족이잖아요. 가족의 존재가 부담스러울 리가 없죠. 다만 어릴 때, 그러니까 제가 연기자가 되기 전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벅찰 때도 있긴 했어요. 하지만 성인이 되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뒤에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형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제가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숨에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되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배우 박유환의 이름으로 한 계단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고 싶어요.
형을 보며 열정을 키워 도전한 연기. 몇 년간 직접 해보니 어떤가요? 작품을 찍을 때마다, 한 캐릭터씩 맡을 때마다 진정한 제 모습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희한해요. 분명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로맨스가 필요해 3>와 <그녀는 예뻤다>에서 경쾌한 캐릭터를 연기했으니 이젠 성격이 다른 인물이 욕심날 것 같아요. 특정한 장르나 역할이 욕심난다기보다는 그냥 원래 제 목소리 톤으로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한번 맡아보고 싶어요. 준우가 되었을 땐 늘 높은 목소리 톤으로 대사를 했는데, 제 진짜 목소리는 좀 낮고 차분한 편이거든요. 나긋나긋한 말투로 연기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인물을 맡아보고 싶어요.
전작을 끝내고 이번 드라마로 돌아오기까지 쉬는 기간이 꽤 길었어요. 많이 쉬었어요. 가까운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죠. 혼자 생각을 많이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려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서 외로운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하죠.
의외예요. 잘 웃고 밝아서 늘 주변이 북적북적 붐비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요. 조금씩 그렇게 변해가는 중이에요. 연기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걸 불편해하고 친한 사람들만 조용히 만나는 스타일이었는데, 여러 작품을 찍으면서 성격이 밝아졌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알아가고,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배우는 점도 많고요. 일종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차츰 성장해가는 것 같아요.
<그녀는 예뻤다>의 준우는 늘 생기 넘치고 활달한 캐릭터였어요. 좋아하는 여자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는 준우. 요즘 애완남, 포켓남으로 불리던데 마음에 들어요? 좋죠. 준우랑 잘 어울리는 말이잖아요. 제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아서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다들 절 얼마나 놀렸는데요. 제가 도착하면 ‘와, 포켓남이다!’ 하면서요.(웃음)
어떤 부분이 그렇게 오글거렸어요? 편집팀에서 일하는 장면을 찍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내가 다니는 회사다, 나는 팀의 막내다’라고 생각하는 게 편했거든요. 그런데 한설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신은 꽤 힘들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회에서 ‘결혼은 너 원할 때 언제든지 하자’ 하는 대사에 귀여운 애드리브를 섞는 부분이요. 그런 대사를 순진한 말투와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해야 하니 참 쑥스럽더라고요.
준우 말고 실제 박유환은 연애할 때 어떤 남자일지 궁금해요.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건 다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에요. 두 사람이 연애할 땐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과 아무리 가까워도 예의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번 사랑에 빠지면,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좋은 만큼 행동에 옮기는 편이에요. 아, 준우가 그랬던 것처럼 여자친구가 코 푼 휴지를 치우고 화장실 악취를 참는 건 실제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줄 수 있어요. 사랑하면 뭐든 다 괜찮아요.
어떤 연애를 꿈꾸나요? 저는 꽤 ‘순수’한 연애관을 가진 남자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순진’하지는 않죠.(웃음) 몇 번의 사랑을 겪으면서 다치기도 하고, 꿈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런 경험으로 배운 것도 많아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애는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긍정적이고 밝은 관계예요. 초기에 뜨겁게 사랑하다 권태기도 겪고, 또 관계가 지속되면서 정도 들고.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일상적인 연애의 흐름이 좋아요. 오랜 시간 가까이 두고 보면서 같이 발전해나가는 그런 연애요.
시끌시끌했던 올해가 끝나가네요. 박유환에게 2015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요? 앞으로 더 열심히 나아갈 수 있는 탄력을 받은 시간. 올해는 정말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었어요. 나 자신을 위해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유난히 자주 한 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