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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컬 체크 패턴의 자카드 오버사이즈 니트 코트, 화이트 셔츠, 타이, 네크리스, 스트라이프 팬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이종석은 언제나 달리고 있었다. <학교 2013>부터 그 속도가 빨라지더니 <너의 목소리가 들려>부터 <피노키오>까지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자신이 너무 빨리 소진될까 두려워 한숨 고르기로 결심한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쉬어보니 모든 걸 쏟아내 뜨겁게 연기하는 순간이 너무 빨리 그리워졌다. 그 공백기의 한가운데에서 파리에 다녀온 이종석을 만났다. 편한 트레이닝팬츠를 입은 채 카페에 들어선 이종석은 머리가 좀 자란 듯했다. 그는 요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자신이 출연한 작품이 재방송되고 있으면 밤을 새워 보기도 하고, 여전히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과 같이 연기 수업을 듣고, 또 매일같이 운동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참이다. “이제 깨달았어요. 나는 쉬는 것보다는 열심히 연기하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걸요. 쉬기 시작한 지 딱 3개월째부터 연기가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어요.” 아마도 내년엔 우리는 다시 전속력으로 달리는 이종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지금 그 전에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의 뜨거운 나날을 위해, 잠시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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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지 울소재의 더블 브레스티드 롱 코트, 데님 팬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파리에서의 여정은 어땠나? 사실 여행하는 것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보통 여행을 가서도 오후 12시 넘어서 일어나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래도 이번에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곳저곳 다녔다. 몽마르트르에도 올라가고 에펠탑도 보고 그랬다.
<피노키오>가 끝나고 한참을 쉬어가는 느낌이다. 맞다. 죽을 것 같다.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 이 속에 있는 연기 열정을 쏟을 곳이 없다니. 어제도 새벽 4시부터 <피노키오>를 3회 연속 재방송을 하길래 아침까지 밤을 새워 봤다. 촬영 당시 했던 대사를 따라 하면서. 지금 이렇게 연기하지 않는 시간이 아깝다.

더블브레스티드 턱시도 재킷, 새틴 라이닝 디테일 팬츠, 턱시도 셔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더블브레스티드 턱시도 재킷, 새틴 라이닝 디테일 팬츠, 턱시도 셔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일부러 좀 오래 쉬는 건 아닌가? 그동안 놀랄 만큼 드라마와 영화에 골고루 출연해왔다. 처음에는 그랬다. 배우가 드라마를 1년에 두 편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다작을 하다가는 대중이 나를 지겨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 쉬었다가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을 고를 때 고민도 더 많이 하려고 했고, 좀 더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데뷔 당시부터 드라마와 영화를 골고루 해온 터라 <피노키오>가 끝난 다음에는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주연이 아니더라도 선배들과 함께 연기할 기회를 기다렸다. 아, 그런데 올해를 이렇게 흘려보내게 될 줄이야. 너무 충격적이다.(웃음)
다음 작품으로 바라는 장르가 있나? 장르와 상관없이 선배들과 함께 하는 작품이라면 어떤 것이든 도움이 많이 된다. <관상> 때도 그랬다. 사실 <관상>을 찍을 때만 해도 욕을 엄청 먹었다. 그때는 신인이었고, 연기할 때 위축되는 면도 있었다.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을 때이다 보니 부족한 점도 많았다. 그때는 <관상>의 내 연기를 보는 게 괴로울 정도로 불만족스러웠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그 이후로 굉장히 발전했다고. 아마 그때쯤 내가 내 연기에 대해 뭔가 각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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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스트라이프 수트, 글렌 체크 니트 베스트, 화이트 셔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어떤 각성? 선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계속 보고 있으면 내 또래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과 확실히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연기의 기술이 다르다. 선배들이 연기할 때 옆에서 연기의 기술이나 호흡 같은 것을 지켜보다 보면 습득할 수 있다. 물론 습득한다고 똑같이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흉내 내다 보면 얼추 따라갈 수 있지 않겠나.

배우에게는 연기를 위해, 연기를 하지 않은 시간도 중요하다. 쉴 틈 없이 작품을 할 때도 또래 배우가 나오는 다른 작품을 굳이 챙겨 봤다. 뭐 하나라도 배울 게 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고 싶었다. 잘 봐두었다가 좀 써먹어야지, 뭐 이런 마음. 작품과 작품 사이에 쉬는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공부하면서 나를 채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이다. 지금 1년 가까이 공백기를 가진 건데, 이번에는 ‘다음 작품에는 이걸 써먹어야지’ 하는 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다음 작품을 할 때 어떤 무기를 들고 나서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연기를 하지 않은 시간 동안 나 자신이 그다지 많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 가장 큰 고민이다. 예전에는 작품과 작품 사이에, 딱 한 달을 쉬어도 충분히 충전되는 기분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그동안 너무 다작을 해서 내 영혼을 다 써버린 건 아닐까. 작품을 많이 할 때는 좀 쉬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딱 3개월 쉬고 나서 알았다. 나는 쉬지 않고 연기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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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미어 칼라 블랙 트렌치코트, 화이트 셔츠, 아티클 패턴의 브이넥 니트 톱, 블랙 팬츠, 옐로 러버 솔 슈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요즘도 계속 연기 수업을 받고 있나? 매주 신인 친구들이랑 수업을 하고 학교에서도 연기 수업을 듣는다. 정말 재미있다. 학교에서는 대부분 배우 경험이 없는 학생들과 수업을 듣는다. 기술적으로는 내가 나을지 몰라도 그들이 연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조금 서툴러도 참 좋다.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가 있는데, 한국어는 어눌하지만 연기할 때면 그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내가 연기할 차례가 되면 정말 열심히 하게 된다. 나를 얼마나 주의 깊게 보겠나. 나는 발성이 약한 편인데 수업할 때는 어찌나 또박또박 말하는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음 좋다고 칭찬까지 받았다. 내가 사실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말하는 게 귀찮다고 해야 하나? 평소에도 발음을 좀 흘리는 편인데, 집에서도 웬만하면 전화도 잘 안 받고 문자로 해결한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칭찬에 익숙한 게 스타 아닌가. 자신의 단점을 그렇게 명확하게 설명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난 사실 열등감이 되게 많은 사람이다. 특히 내가 잘하고 싶고 욕심내는 것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그래서 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야 못하는 걸 억지로 하지 않는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나는 다른 배우에 비해 목이 트이지 않아서 소리를 지르는 연기가 잘 안 된다. 그래서 대본에 그런 장면이 나오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다. 모니터링도 열심히 한다. 내가 출연한 작품을 자주 돌려 본다. 내가 연기한 장면을 계속 돌려 보다 보면 화면 속 내가 마치 제3자처럼 보인다. 그러면 내 연기가 매우 객관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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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비 블루 핀스트라이프 수트, 화이트 셔츠, 블루 라이닝 디테일 캐시미어 롱 베스트, 더비 슈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가꾸기 위한 노력도 하나? 남자 배우들은 쉬는 동안 몸을 만드는 데 열중하기도 한다. 운동은 거의 매일 한다. 쉬는 동안 몸이나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벌크업 운동도 했다. 요즘 몸이 너무 커진 것 같기도 해서 잠시 쉬는 중이다. 승마랑 클라이밍도 배워봤는데 그만뒀다. 승마는 생각보다 엉덩이가 아팠고, 클라이밍을 했더니 손가락이 막 다 까지는 거다.(웃음)
사실 이곳에 들어섰을 때 당황했다. 머리도 한참 안 자른 것 같고 해서. 머리를 자른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니까 자르지 않았다. 그리고 조만간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나. 일단 기르는 중이다. 작품에 들어가게 되면 머리를 길러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때 가서 헤어피스라도 붙이면 되지. 그러면 어색하고 이상해 보인다. <관상> 찍을 때도 실제로 머리를 길러서 촬영할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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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클래식 싱글 수트, 옐로 라이닝 디테일 메시 스티치 니트 베스트, 타이, 화이트 셔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연기는 하면 할수록 쉬워지는 것 같나? 아니.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정말 심각하게. 데뷔 당시보다 지금이 더 떨린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상대 배우와 시선을 맞추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초점이 자꾸 상대방의 눈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양쪽 눈을 바라보는 게 힘들어서 언제부턴가 한쪽 눈을 보며 연기하는 거지. 카메라를 통해 볼 때 티가 나진 않겠지만 상대방의 오른쪽 눈만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감정을 온전히 다 받을 수가 없다.
생각이 너무 많다. 조금 무모하고 자만해도 되는 나이다. 맞다. 연기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직관적으로 연기하지 않는다. 고경표와 학교에서 연기 수업을 같이 듣는데, 같은 대본으로 연기하는 데도 그 친구와 내 연기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나는 장면과 동선을 철저히 분석하고 연기하는데 그 친구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연기한다. 나에게 없는 재능이다. 그런 재능을 가진 배우를 보면 동경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연기할 때 내가 짜놓은 틀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진다. 부끄럽고 괴롭다. 잘하고 싶은 욕심에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선배 배우들 인터뷰 찾아 보는 걸 좋아한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고민을 읽으면 힘이 많이 된다. 아, 선배들이 얘기한 게 이거였구나,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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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컬러의 피코트, 화이트 셔츠, 데님 스키니 팬츠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선배들처럼 나이가 든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많이 한다. 이번에 파리에서 화보 찍을 때 모니터링을 하는데 얼굴에 팔자주름이 보이는 거다. 충격이었다. 그래서 호텔에서 많이 생각해봤는데 왠지 나는 멋있게 늙지는 못할 것 같다. 주름이 멋있는 남자 배우가 못 될 것만 같다.
뭐가 두렵나? 또래 배우보다 외모가 망가지는 역할도 많이 했는데. 더벅머리로 나온 적도 있고, 1970년대 촌스러운 교복을 입고 등장한 적도 있다. 일부러 그런 캐릭터를 골랐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를 ‘라이징 스타’로만 볼까봐 두려웠다. 나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은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만큼 할 수 있어’ 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무게 잡고 멋있기만 한 역할 말고, 망가지는 캐릭터라면 배우로서 내 가능성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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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더블 롱 코트, 화이트 셔트, 램스킨 와이드 드로스트링 팬츠, 스니커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내년에는 좀 달라지고 싶은 점이 있나? 나는 낯선 사람들과 있는 게 어색하다. 선배 배우에게도 먼저 다가가고 싶은데 마음이 편치 않다 보니 낯선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가면 얼굴이 막 빨개진다.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면 죽을 만큼 힘들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어떻게 진심을 담아 빨리 말하고 내려갈지를 고민한다. 수상 소감도 성의 없어 보이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짧게 한다. 이제 좀 변하고 싶다. 선후배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연기에 대한 조언도 듣고 싶고, 고민을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쉽지 않다. 그래서 팬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팬들은 내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이기도 하고.
그래도 친구들 앞에서 이종석은 좀 편해지겠지. 친구들과 함께 있는 이종석은 어떤 모습일까? 글쎄. 나는 친구들이랑 밥을 먹고 계산할 때 장난으로라도 서로 밥값을 내라며 미루는 게 싫다. 예전에 돈이 없을 때도 그랬다. 차비가 없을지언정 내가 내고 말지, 뭐 이런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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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포인트 칼라의 블랙 맥시 롱 코트, 화이트 셔츠, 타이, 블랙 팬츠, 더비 슈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벌써 올해의 마지막 달을 앞두고 있다. 2015년은 이종석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까? 기억나지 않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없다. 작품을 한 해에는 작품을 기억하면 그해가 떠오른다. 올해는 남겨놓은 게 없는 기분이다.
내년에는 바빠지겠다. 내년에는 다작할 거다. 쉬어보니 다작이 정답이었다. 나는 쉬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시간이 많다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머릿속이 온갖 다양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이걸 다 비워내고 작품에 대한 생각만으로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