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성경 - 자수를 놓은 시스루 상의 니나 리치 바이 10 꼬르소 꼬모(Nina Ricci by 10 Corso Como), 화이트 팬츠 제이어퍼스트로피(J Apostrophe), 링 젤라시(Jealousy).

자수를 놓은 시스루 상의 니나 리치 바이 10 꼬르소 꼬모(Nina Ricci by 10 Corso Como), 화이트 팬츠 제이어퍼스트로피(J Apostrophe), 링 젤라시(Jealousy).

지금, 이성경 - 블랙 상의 월포드(Wolford), 슈즈 메노드모쏘(Meno de Mosso),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상의 월포드(Wolford), 슈즈 메노드모쏘(Meno de Mosso), 쇼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금, 이성경 - 레드 블라우스 쟈렛(Jarret), 화이트 쇼츠 곽현주(Kwak Hyun Joo), 슈즈 메노드모쏘(Meno de Mosso), 이어링 넘버링(Numbering).

레드 블라우스 쟈렛(Jarret), 화이트 쇼츠 곽현주(Kwak Hyun Joo), 슈즈 메노드모쏘(Meno de Mosso), 이어링 넘버링(Numbering).

지금, 이성경 - 블랙 상의 블루마린(Blumarine).

블랙 상의 블루마린(Blumarine).

이성경 인터뷰

 

배우 이성경의 행보에는 낭비가 없다. 단 세 작품, 3년 차 배우가 꾸려온 필모 그래피치고는 꽤 묵직하다. 데뷔작인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배우라면 한번쯤 소망하는 노희경 작가와 작업했고, 차기작 <여왕의 꽃>에서는 선배 김성령과 투 톱을 이뤄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이끌었다. 시어머니와 치인트를 합친 신조어 ‘치어머니’라는 두터운 팬덤을 지닌 2016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의 ‘백인하’라는 왕관을 쓰기까지 그녀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재능과 끼가 수혈되는 배우의 세계에서 비슷한 함량의 행운이 한 사람에게 세 번이나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세 작품 속 이성경이 맡아온 캐릭터는 어딘가 닮아 있다. 여백 없이 쾌활한 에너지로 가득하지만 미세한 틈 속으로 파고들수록 드넓은 공간이 펼쳐지는, 양면을 가진 소녀와 여성이었다. 센 말투와 표정, 과장된 웃음으로 켜켜이 쌓은 위장은 회를 거듭할수록 서서히 벗겨졌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오소녀’가 그랬듯 <치인트> 속 백인하 역시 낯설고 생경했다. 하지만 6회를 남겨둔 지금 ‘어느 순간 내가 백인하를 기다리고 있더라’ 하는 등의 간증들이 슬그머니 터져 나왔고, ‘농약 같은 매력’, ‘표정 부자’ 같은 수식이 그녀 앞에 붙기 시작했다. 종영을 앞둔 지금 이성경은 조금 가벼워졌다.

“원작을 그대로 지키고 싶은 마음과 원작을 아끼는 만큼 기대가 큰 걸 알고 있어요. 극 초반의 전개와 제 연기가 원작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호감을 얻지 못한 사실도요. 하지만 이번 작품을 하며 크게 배운 게 있다면 천재지변이든 사고든 그 어떤 상황에서든 배우가 역할을 맡은 이상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스스로 짊어지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죠. ‘아쉽다, 속상하다’ 같은 소리는 어릴 때나 하는 것이라는 걸요.”

그녀는 최근 영화 <브로커> 촬영을 위해 머리 색을 바꿨다. <공모자들> <기술자들>을 연출한 김홍선 감독의 작품으로 김영광 등 또래 연기자 외에도 천호진, 선종학, 고창석, 조달환 등 ‘연기 귀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녀는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혈질 국선 변호사 역을 맡았다. “무게와 기름기를 뺀 잘 만들어진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감독님과 이야기가 잘 통해요. 지금의 느낌이 좋다면 맞는 거겠죠? 아주 잘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치인트> 속 ‘오영곤’과 ‘손민수’ 같은 암유발자들 틈에 백인하가 등장할 때면 사이다를 연거푸 원샷했을 때의 통쾌함을 느꼈어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받아들이기는 본인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의 논란도 각오해야 했을 테고요.
연기는 물론 외모상으로도 현실에 없는 사람처럼 컨셉추얼하게 연출해야 했어요. 어느 날은 오드리 헵번처럼 단발 가발을 쓰기도 하고, 마릴린 먼로도 되어야 했죠. 저 역시 원작 속 냉철하고 도도한 백인하를 좋아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쉬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배우는 여러 상황과 다양한 목소리를 고려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욕심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한편으로는 원작 속 인하와 드라마 속 인하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도 우리가 인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사랑했던 원작 속 인하는 그 모습 그대로 웹툰 속에 남겨두는 거죠.

정식 연기 수업을 받지 않았기에 테크닉의 함정에서 자유롭죠. 하지만 이 점은 배우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어요. 방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최종 바람은 딱 하나예요. 연기로 많은 분들에게 신뢰를 주고 싶다는 것. 드라마를 보는 동안 이성경의 호흡이나 시선 처리에 불안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기하는 것이 당장의 꿈이고 목표예요.

작품을 거듭하면서 연기와 배우에 대한 고민도 커질 것 같아요. 또래 연기자들과 미니시리즈만 했다면 절대 몰랐을 것들을 주말극에서 배웠어요. 선생님들의 섬세하고 깊은 연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볼 수 있으니까요. 또 가족 시청자가 주요 타깃인 주말극의 특성상 이야기 전개나 연기 방식 등을 새롭게 고민해야 했고요. 일상생활 중 틈만 나면 무의식적으로 작품 생각을 하는 저를 보면서 ‘아, 배우라는 직업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고민하는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야 한 걸음 떼기 시작했구나’ 싶더라고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가봐요. 지금을 즐기려고 하지만 적어도 일과 관련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최선을 다해 매달리는 편이에요. 모델 시절에는 페이지 끄트머리에 발만 나와도 ‘메인 화보보다 더 잘해서 나중에 메인 화보 해야지’ 했거든요. 밤새 수십 컷을 찍을 때도 행복했어요. 왜냐하면 그것도 못 찍던 순간을 겪어봤으니까요.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우울한 일만 떠올리자면 끝도 없어요. 마인드 컨트롤도 훈련이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특히 부침이 심한 배우라는 직업에서 마인드 컨트롤은 더더욱 필요하죠. 말은 이렇게 해도 안 될 때도 많아요. 하지만 일 외에 일상생활에서 형식적인 노력은 안 하려고 해요. 마음을 추스르려다가도 하다 하다 안 되면 그냥 ‘안 해!’ 해버려요. ‘내가 거칠어 보여? 이렇게 거칠 수 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여성스럽기도 해. 착하기도, 못되기도 하고 여리기도 강하기도 하지. 사람은 다 그래.’ 해버리죠. 적어도 아닌 척 포장하지 않는 거예요.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솔직해지려고 하죠. 내 마음을 잘 알아야 인식하고, 제대로 인식해야 스스로에게 속아서 실수하고, 훗날 자책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야 실수와 자책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곧 사진집이 나오는데 글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혼자 있을 때 적어두던 생각들을 짧게 넣게 됐어요. 대체로 방금 한 말 같은 글이에요.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죠. 하지만 흉내 내지 않고, 생각이 흐르는 대로 머릿속에 있는 제 말투 그대로 적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의 비극은 말과 글 등 모든 자료가 기록으로 남는다는 거죠. 어느 날 문득 흑역사가 되어 부끄럽게 만들 수도 있어요. 이미 해놓은 부끄러운 게 많으니까.(웃음) 지금은 세련되지만 나중에 촌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고, 유행이 돌고 돌아 10년 뒤에는 다시 멋스러워질 수도 있잖아요. 당연히 흑역사가 될 수도 있는데 그걸 걱정해서 현재를 못 누리는 것도 바보고요. 예전 화보들 보면 부끄러운 것들도 있는데 ‘이때 메이크업 트렌드가 이랬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못생기게 나왔어’ 하고 웃어넘겨요. 숨기려고 한다고 숨겨지는 거 아니니까요. 이 역시 말은 이렇게 해도 잘 안 됩니다.(웃음)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롤모델이라고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는 삶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이에요. 자신이 출전하지 않는 경기에도 벤치에서 자리를 지키며 동료들을 응원하죠. 그런 사소한 모습을 보면 깨닫는 게 많아요. ‘아, 나도 말 좀 조금만 해야지’ 하고.(웃음) 커쇼처럼 행동으로, 삶으로 증명하는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늘 보니 성경씨 호방한 여장군이네요. 배우로서 좋은 기운을 나누고 싶어요. 좋은 것들은 주변에 많이 이야기하는 편인데 사람들이 ‘너는 다 칭찬만 하니?’ 해요. 저는 좋은 것만 기억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반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별로였다는 의미예요.

오늘 인터뷰의 큰 주제가 ‘The Next Big Thing’이에요. ‘빅’이 되라고 응원해주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웃음)

 

지금, 이성경 - 레드 셔츠와 블랙 쇼츠, 이어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드 셔츠와 블랙 쇼츠, 이어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