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을 맹신하는 여자가 있다. 미신은 커녕 인생을 오로지 수학과 과학에 세계에서 살아온 남자가 있다. 여자는 이 남자와 하룻밤을 자야 자기 운이 풀린다는 점괘가 나오자 이 남자에게 들이대기 시작한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운빨 로맨스>는 그렇게 완전히 다른 두 남녀가 만나 밀고 당기고 투닥거리다 어느새 서로를 걱정하고 그 마음이 점점 커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로맨틱한 에너지가 충만한 믿고 보는 황정음 이 ‘점은 내 운명’이라고 여기는 ‘심보늬’를, 남편 대신 모두의 첫사랑이 된 류준열이 수치로만 모든 걸 판단하는 게임회사 CEO ‘제수호’를 연기한다.
다시 로맨스, 황정음
“저 류준열씨 팬이에요.(웃음) 호흡이 너무 기대돼요. 이 배우에 대한 데이터가 많지 않아 신선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조합을 이룰지 많이 궁금해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는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는 편이에요. 극의 흐름에 따라 감정에 몸을 맡기는 편인데 이번엔 초반에 캐릭터를 확실히 잡아야 할 것 같긴 해요. 아직 확실한 건 없어요. 촬영에 들어가서 상대 배우와 호흡하며 밸런스를 맞춰가다 보면 좀 더 확실해지겠죠.”
망가져도 사랑스러운 황정음이 돌아왔다. 그녀가 가장 잘 해낼 것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다.
“매번 진화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새로운 걸 시도하기보다는 제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리되 그걸 좀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작가님이 써주시는 글에 제가 가진 것을 섞어서 새로운 걸 탄생시키는 게 배우의 역할이니까요.”
<마리끌레르> 화보 촬영을 앞두고 황정음은 스튜디오에서 주저 없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우리가 사랑하는, 솔직하고 망설임 없는 그녀답다.
“저한텐 짧은 머리가 긴 머리보다 훨씬 잘 어울려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계속 변신하고 싶어요.”
자신을 꽁꽁 숨기기보다는 솔직히 드러내는 데 익숙한 황정음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배우다. 그리고 그 용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드라마 <비밀> 전후로 달라졌어요. <비밀> 이전의 황정음에게 연기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해내야 하는 대상이었죠. 그런데 <비밀> 이후에는 연기가 재미있어졌어요. 이제 작품을 앞두고 겁먹지 않아요. 걱정한다고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설령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힘든 시간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죠. 그 시간마저 제게 흡수되고 나면 또 다른 내가 나오더라고요. 걱정할 필요도 자만할 필요도 없어요. 어느 때는 모두에게 대단하다고 칭찬받지만 또 어느 날에는 한없이 초라한 배우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수많은 제 모습이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것 같아요.”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처럼 삶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변화를 맞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것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뒤와 옆도 볼 줄 아는 유연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중이다. 그리고 그녀는 요즘 행복의 한가운데에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을 할 때가 제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더 행복한 시간이 오더라고요. 지금 일을 하고 있어서 감사하고, 늘 제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 감사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하고, 자기 전에 또 감사해요.”
그 행복한 나날에 만난 로맨틱 코미디이니 배우의 좋은 에너지가 연기 너머로 그대로 전해질 것이다.
“제가 요즘 제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태양의 후예>예요. 연출, 작가, 배우의 삼합이 어쩌면 그렇게 잘 맞아 떨어질까요. 역시 송혜교 언니가 일등인 것 같아요.(웃음) <운빨 로맨스>도 그런 드라마가 되면 좋겠어요. 모든 합이 잘 맞는, 그래서 재미있는 드라마요.”
처음으로, 류준열
석 달 만에 류준열을 다시 만났다. 고작 석 달만인데 그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갑작스레 아프리카에 다녀왔고 <섬. 사라진 사람들>과 <글로리데이>가 개봉했다. 지금은 조인성, 정우성과 함께 영화 <더 킹> 촬영 중이고, 틈틈이 80여 개 매체와 인터뷰도 했다. 그새 몸무게가 6kg이나 줄었다는 그는 조금 야위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운빨 로맨스>에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요즘 많이 바쁘겠다고 인사를 건네니 그는 석 달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예의 그 쑥스러운 듯한 웃음으로 답했다.
“바쁘다고 말하기가 좀 그래요. 밥 먹을 시간도 있고 잠잘 시간도 있으니까요. 친구들이 ‘요즘 바쁘지?’ 하고 물어보면 별로 바쁘지 않다고 말해요. 그래야 앞으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웃음) 요즘 친구들 만날 시간이 없긴 한데, 언젠가는 다시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죠. 얼마 전에 감기에 심하게 걸렸었어요. 그때가 좀 고비였던 것 같기도 해요. 백수일 때는 아프면 그냥 집에서 쉬면 됐는데 아파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하니까 다 되더라고요.”
석 달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 그에게는 새로운 것을 마주하고 경험하고 배워가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류준열이라는 새로운 배우에게 쏟아지는 관심에는 늘 응원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는 모든 순간이 새로운 세계를 공부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보내는 중이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저럴 때는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배워가는 중이에요. 연기가 되었든 태도가 되었든. 지금 촬영하는 <더 킹> 현장에서도 선배 배우들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고, <운빨 로맨스>도 그런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정음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는 게 가장 기대돼요. 누를 끼치지 않고 배운다는 마음으로 하려고요. 제겐 많은 것이 다 처음 겪는 일이거든요.”
그의 말마따나 요즘 그에겐 많은 것이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출연한 영화가 연달아 개봉하는 것도, 미니시리즈의 주역이 된 것도,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된 것도 모두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제 연기 팔자에 로코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봄처럼 기분 좋고 설레는 감정을 ‘수호’라는 인물에 잘 담고 싶어요. ‘정환’과 다른 캐릭터를 보여줘야겠다는 부담감 같은 건 없어요. 제가 원래 ‘부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잖아요.(웃음)”
긍정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이 남자는 봄의 끝자락부터 여름 무렵까지 수호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배우에게 때론 지난날의 뜨거운 호응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법도 한데 절대적인 긍정의 힘을 가진 류준열은 생애 첫 로맨틱 코미디를 앞두고 설레며 기대하는 중이다.
“연기는 항상 자신감 있게 하려고 해요. 또 하나의 인물을 잘 만들어야죠. 시청률은 제가 손댈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요즘 가장 재미있는 일을 하나 꼽으라면 <운빨 로맨스> 대본을 읽는 거예요. 이야기도 재미있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보고 있으면 신나요.” 인터뷰를 마칠 무렵 ‘봄은 좀 즐기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휴대폰을 들어 거실 한가득 놓인 꽃 사진을 보여주었다.
“팬들이 선물한 꽃 덕분에 집이 꽃밭이 되었어요. 방 안에도 죽 늘어놓아서 침대에 누워 있으면 보여요. 아무리 바빠도 제가 포기하지 않는 일상이 있다면 ‘정리’예요.(웃음) 꽃도 그렇고 편지도 상자 안에 잘 정리해둬요. 자기 전에 하나씩 읽어보는데 참 재미있어요. 그렇게 꽃을 보는 느낌으로 사람들이 <운빨 로맨스>의 사랑을 봐주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