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랑이 하고 싶은 지질한 중년 남자는 오늘도 어김없이 처음 만난 젊은 여자에게 자꾸 예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생을 다 아는 지성인인 양 젠체한다. 그러다 말문이 막히면 ‘참 똑똑하네’라며 말을 돌린다. 배운 중년 남자의 속 보이는 허세. 잠깐 같이 있자며 주차장 입구에서 애인을 껴안고는 내일 아침 일찍 보자며 보채면서 아내 앞에서는 만나는 여자 같은 건 없다고 뻔뻔하게 거짓말하며 상황을 회피하는 남자. 권해효는 홍상수 감독의 <그 후>에서 이 지질한 중년의 남자 ‘봉완’을 연기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지질한 구석, 책임지기보다 회피하기 바쁜 모두의 비겁함, 그건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후>는 영화의 내용과 제목이 완벽히 잘 맞아떨어진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내가 알기론 대부분 촬영이 끝날 때까지 제목이 없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야 정해지는데 그래도 <그 후>는 마지막 촬영을 할 때쯤 정해졌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봉완’의 그 후는 어떻게 됐을까? 사람마다 영화를 대하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는 서늘했다. 사랑을 포기하고 가정으로 돌아간 남자의 그 후는 여전히 비겁할 거다. 자신의 비겁함을 타인을 이유로 들어 계속 회피하고 또 고민하겠지.
홍상수 감독의 많은 남자 중에 특별히 애정이 가는 남자가 있는가? 공감이 되지 않는 인물은 없다. 그중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정재영이 연기한 역할이 특히 좋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울컥했던 영화다. ‘만나서 반가웠어요’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에서 울컥했다.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진다는 게 도대체 뭔지 생각했다. 박광정 배우가 돌아가신 지 내년이면 10주년이 되는데, 언젠가 배우 오지혜가 어느 잡지에 그에 대한 추억을 담은 글을 기고하며 마지막에 이렇게 썼더라. ‘광정이 형,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게 생각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내와 부부로 출연하기도 했다. 칸 국제영화제에도 함께했으니 특별한 경험이었겠다. 홍상수 감독이 ‘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내인 것 같다’며 제안했다. 연극 무대에서 아내를 만났고 함께 무대에 함께 선 적도 있어 익숙한 경험이었지만 영화에서 부부로 출연하는 일은 특별했다. 칸에 간 것 역시 좋은 경험이었다. 유럽은 처음인데다 좋은 계절에 갔고 마침 70주년 칸 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에 갔으니 행운이었지. 부부가 함께 간다는 게 굉장히 멋진 일이기도 했다. 많은 영화인이 현장에서 부러워했다.(웃음)
홍상수 감독과 작업할 때는 다른 촬영장과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 같다. 캐릭터를 분석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아 배우가 힘들 수도 있을 텐데.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그 인물이 어떤 인생의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고 상상하고 그걸 표현하며 재연하는 게 배우다.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이 묘한 이중성이 있다. 권해효가 하는 연기지만 타인의 모습을 재현해야 하니 말이다.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는 건 결국 연기하는 사람이 ‘권해효’라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이 편하기도 하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스스로분석할 일은 없지 않나? 당장 나에게 1초, 1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도 전혀 예측이 안 된다. 홍상수 감독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의 진실에 가까이 가려고 하기 때문에 가장 편한 작업이기도 하다. 촬영 직전에 주어지는 대본, 롱 테이크, 어마어마한 집중력 그리고 감독만의 특별한 리듬감.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믿어야 하는 신뢰. 그런 것들이 서로 맞지 않으면 불편할 수도 있다. 감독이 영화 전체를 지휘하는 지휘자라면 배우는 보통 연주자의 역할을 하는데 홍상수 감독의 현장에서 배우는 악기가 된다. 다만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재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촬영 직전 잠깐의 리허설 때 배우의 입을 통해 처음 만들어지는 그 순간, 장면, 배우와 배우끼리 만나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순간이 장면을 완성해간다.
일련의 작품들로부터 관객은 감독 본인의 이야기가 투영되어 있으리라 추측하게 된다. 감독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순간도 당연히 있고 자기가 겪은 일도 있겠지만 출연 배우를 비롯한 다른 사람이 겪은 일도 굉장히 많다.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지금껏 없었던 드라마틱한 이야기, 사건 혹은 충돌을 일으키는 일을 고민하고 그것이 영화의 매력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 출발한다. 영화 산업의 규모가 점점 거대해지면서 제작 과정이 정교하게 짜여 하나의 산업이 되어가고 있는 와중에 홍상수 감독은 여전히 현장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을 담아낸다. 하지만 애드리브는 전혀 없다. 다만 오늘과 내일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내일 생각한 것은 내일 촬영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대단한 사건보다 집중하게 되고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몰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미학적인 구조도 꽤 단단하다.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의 한계를 잘 알고 있어서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에 가까운 말이 오고 갈 때의 긴장감에서 오는 힘도 있다. 굉장히 미묘하고 재미있는 작업이다.
감독의 여러 작품 속 캐릭터는 일관되게 ‘지질한’ 구석이 있다. 내가 살아 온 방식과는 다른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너나 그 놈이나’라고 생각할 것 같다.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홍상수 감독 영화의 남자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지질하다’고 쉽게 단정 짓게 되는 그들이 사실 ‘숨기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술에 취하거나 혹은 처음 만난 여자에게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들이댈 때 속마음을 순간 들켜버리는 거지. 이 시대의 우리는 누구나 여러 가지를 숨기고 산다. 좋은 집, 멋진 옷 혹은 시계나 차로 숨기고 싶은 것을 가리는 거지. 홍상수 감독의 작품 속 인물들은 포장하고 치장하지 않아 배우의 입장에서 편하고 좋기도 하다.
정작 배우 권해효는 비겁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시민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배우 말고도 시민운동가라는 설명이 있다더라. 전화해서 고쳐달라고 해야 하나.(웃음) 시민활동가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괴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시민운동 응원단 정도가 맞는 것 같다. 처음엔 응원단장 정도의 역할이었는데 재일 조선학교를 위한 ‘몽당연필’의 대표라는 직함을 갖게 되면서 시민운동가로 불리는 것 같다.
유명인이 시민운동가의 역할을 해주면 사회의 특정 이슈를 공론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 않나? 공론화를 위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싸워온 분들을 생각하면 죄송하다.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나 역시 뒤늦게 알게 됐으니까. 나는 그저 그분들을 만나고 뭐라도 하나 보태고 싶어 참여하는 것뿐이다.
신념대로 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바른 신념을 가지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신념에 대한 강박은 없다. 필요도 없고. 과연 이 사회가 신념이라는 게 존재 가능한 사회일까? 이 사회를 개판으로 만든 사람들에게도 신념은 있다. 지난 9년, 혹은 IMF 경제 위기 이후의 20년 동안 왜 측은지심과 부끄러움이 바닥으로 처박혔는지 모르겠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신념이 아닌 부끄러움인 것 같다. 옳지 않은 것을 알더라도 외면했을 때의 부끄러움, 내가 몰랐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움직이면 두려움도 있지만 굉장한 기쁨도 있다. 나를 움직이게 한 것 역시 신념이 아닌 부끄러움이었다. 반정부 인사나 군사독재에 맞붙었던 사람들, 그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들과 만나면서 행동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움직이니까 기쁨이 커졌다. 가령 재일 조선학교와 관련한 일을 할 때면 설렌다. 조선학교를 전혀 몰랐던 젊은 사람들이 나와 단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힐 만큼의 큰 기쁨이 있다. 이건 배우로서 겪는 기쁨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오로지 먹고사는 일만 고민했다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을까?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10년 전보다 지금의 내 모습이 더 좋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하나? 좋은 어른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게 되기는 틀린 거다. 그냥 나이를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 정도? 20대에는 ‘이놈의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40대 이상은 다 사라져야 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 나이가 되어 있더라. 과연 나는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50대가 되어서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게 있다. 호구조사 안 하기. 그리고 코털 잘 깎고 다니기.(웃음) 입을 닫고 지갑을 열기. 아, 그런데 지갑을 열면 입까지 덩달아 열려서 문제다.(웃음)
세상이 앞으로 좋게 변하리라는 희망이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놔둬도 굴러가는 세상은 절대 없다. 지난 2015년에 저스틴 트뤼도가 캐나다 총리가 되면서 내각의 남성, 여성 비율을 50:50으로 했다. 모슬렘, 장애인, 호모 섹슈얼 할 것 없이 골고루 내각을 구성하자 기자 한 명이 그 이유를 물었다. 총리가 ‘왜냐하면 지금은 2015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는데 여기에 서 중요한 건 이 멋진 대답이 아닌 기자의 질문이다. 여성의 권익과 평등지수가 높은 나라인 캐나다에서 기자가 그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시민들에게 왜 이런 내각이 있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인식시키는 거다. 수만 년 동안 세상이 남성 위주로 돌아가던 관성이 있으니 자칫하면 언제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버릴 지 모른다. 지난 9년간 한국 사회를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 민주적인 질서를 쟁취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 다음은 당연히 더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현재 쟁취한 민주 정부가 최소한 20년은 가야 하며 시민사회에서 민주 정권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공교육의 시민교육이 중요하다. 외국에서는 초등학교 때 노동 3권과 공화정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나.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소모적이어서 그런 시스템에서 자란 아이들이 지금의 시민사회를 잘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거라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에 올해의 배우상 심사를 맡는다. 평가하는 자리는 아니다. 어워드와 페스티벌은 엄연히 다르지 않나. 세계 영화의 변방이나 다름없던 부산에서 아시아 영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창구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닌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시장에 한국과 아시아의 젊은 감독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내 역할은 올 한 해 영화에 나타났던 젊은 흐름을 보고 구경하는 거다. 잔치이자 축제의 자리인 거지. 김호정 배우와 함께 심사하게 됐다.
심사의 기준이 있나? 확률상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확률은 낮다.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연기가 나올 확률도 그렇고.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확률은 제로에 가깝고 나쁜 시나리오, 나쁜 대사가 있는데 좋은 연기가 나올 확률은 20% 정도밖에 안 된다. 배우가 맡은 역할을 잘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에게 또 하나 필요한 건 좋은 시나리오를 찾아내는 선구안이다. 좋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올해의 배우상을 받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좋은 영화란 뭘까?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다음 장면을 떠올릴 수 없는 이야기. 그런 점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늘 좋은 영화였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다음 대사, 다음 이야기를 맞혀본 적이 있는가? 그러기 힘들다. <그 후>만 봐도 그렇다. 영화에서 봉완이 화장실에 가다 헤어진 여자와 재회하며 껴안고 있다. 많은 관객이 과거 회상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때 갑자기 아름(김민희)이 등장한다. 바로 지금 일어난 일이다. 칸에서 영화를 보는데 프랑스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울랄라’를 외쳤다.(웃음)
최근에 본 좋은 영화는 무엇이었나? 올해는 이상하게 영화를 많이 못 봤다. 아마 지난 연말부터 이어진 정국 때문인 것 같다. 작년에 본 영화 중에는 있다. <캐롤>과 <우리들>이 좋았고 보면서 많이 운 영화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다. 영화의 짜임새를 떠나 진정한 보수의 가치가 와 닿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극보수주의 노감독의 어마어마한 진짜 신념이 보였다. 한국의 보수는 욕망과 이익을 바탕으로 하지 않나. 극우라는 말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심사를 통해 젊은 배우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들에게 권해효라는 배우는 어떤 선배가 되고 싶은가? 연기 잘하는 선배. 그거면 됐다. 현장에서 가끔 첫발을 내딛는 배우들을 만날 때면 해주는 말이 있다. ‘현장의 수십 명의 스태프들은 너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돕기 위해 있는 거다.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 평가받는다 생각하지 말고 용기 내 해봐라. 틀리면 또 찍으면 되니까 걱정 말고.’ 내가 젊었을 때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아 내가 후배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
20년 넘게 연기를 하다 보면 지치는 순간도 있겠지. 지칠 때야 많지. 대본이 이상하거나 배역이 별로인 작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연기하는 일 자체에 지쳐본 적은 없다. 연기를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일이 싫증을 느낄 새가 없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 공연처럼 연기를 하는 무대가 다르기도 하고. 어떤 배역을 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정말 점프를 해서 보여줘야 하거나 진짜 내 속을 보여줘야 할 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연기를 할 때마다 가장 단순히 해내는 용기다. 배우들은 끊임없이 숨기고 치장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데 연기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단순하게 하는 거다. 단순한 것이 진짜에 가깝다. 헛짓거리 하지 않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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