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기 화이트 셔츠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네이비 울 테일러드 재킷과 슬랙스 모두 유니버셜 프로덕트 by 1LDK 서울(Universal Product by 1LDK Seoul). 정소민 인디 핑크 블라우스 에센셜(Essentiel), 벨벳 오버올 산드로(Sandro).
옐로 스웨터와 네이비 면 와이드 팬츠 모두 스튜디오 니콜슨 바이 1LDK 서울(Studio Nicholson by 1LDK Seoul). 모디파이드 펌프 스니커즈 베트멍 × 리복 바이 10꼬르소 꼬모(Vetements × Reebok by 10Corso Como).

 LEE MIN GI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연기할 ‘남세희’는 어떤 사람이에요? 잠시만요. 지난번에 남세희를 떠올리며 적어둔 글이 있어요. 아, 엄청 길게 적어놨네요.(웃음) 이 친구는 뭐든지 책임질 수 있는 정도만 해요.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무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 인생을 칼로 자르듯이 산술적으로 보는 거죠. 자신이 정한 선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는 인물이죠.

원래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캐릭터의 느낌을 손으로 직접 적어두나요? 매번 다른데 이번엔 손으로 쓰고 싶었어요.

손글씨를 좋아하나 봐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손으로 쓰는 게 성격에 더 잘 맞아요. 다만 악필이어서 저만 알아볼 수 있죠.

남세희를 만들어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어요? 주변 친구들과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결국 제 또래 젊은이들의 고민이 큰 줄기예요. 우리는 분명 우리만의 시대를 살고 있고 우리만의 생각이 있는데 인생을 살아가는 가치관은 여전히 부모 세대의 영향을 받잖아요. 가령 결혼만 해도 그래요. 복잡한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죠. 혹은 결혼 자체가 남녀의 의지만이 아니라 주변의 여러 여건에 의해 이뤄지기도 하고요.

그동안 일명 ‘쎈 캐’를 많이 맡았어요. 반면 이번 캐릭터는 우리 세상과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그 옷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그보다는 3년만의 작품이다 보니 제 스스로 힘이 빠지지 않아요. 이민기라는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힘을 들이고 있어요. 극 중에서는 오로지 맡은 인물로 임해야 하는데 잘하고 싶은 욕심에 제 자신이 많이 개입되는 것 같아요. 어서 역할에 온전히 녹아들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작품을 맡았으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잘 풀어냈으면 해요. 우리 세대의 고민을 이야기하니까요. 드라마가 정답이 아니라 고민을 던져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드라마는 공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해요. 타인의 공간과 나와의 거리를 지켜주는 게 매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타인의 공간을 쉽고 무례하게 침범해요. SNS도 마찬가지죠. 온라인에서 타인의 영역을 너무 쉽게 침범하곤 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고민해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되길 바라요.

<이번 생은 처음이라> 덕분에 하게 된 고민이 있나요? 인생을 살며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윗 세대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결국 자기 생각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세뇌처럼요. 그런 생각은 이전부터 많이 해왔어요. 가령 운전하고 가는데 누군가 클랙슨을 크게 누르고 제 차를 추월하면 엄청 화가 나잖아요. 그런데 조금 지나서 돌아보면 그 사람에게 혹시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더라고요. 모든 일은 한 번 더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네이비 하이넥 싱글브레스트 코튼 코트와 블랙 슬림 핏 슬랙스 모두 르메르 바이 무이(LeMer by MUI),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0여 년 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오래전 일인데도 기억나는 게 있는데 어떤 캐릭터라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때는 뭐든지 경험하고 싶었어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작품을 통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었죠. 제대로 공부하고 연기를 시작한 게 아니어서 무엇이든 경험해봐야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때와 지금, 연기를 대하는 마음이 변했나요? 변했다기보다는 요즘은 좀 떨어져서 보게 돼요. 이전에는 대사 한마디 하려고 대본만 치열하게 파고들었다면 이제는 좀 더 떨어져서 대본이 하려는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어요. 여전히 연기를 잘하고 있는지 물론 불안하죠. 하면 할수록 못하는 것 같아요. 어렵고. 나라는 도구는 하나인데 다른 걸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끔 지난 작품 속의 내가 더 낫다는 생각도 들어요.

누구에게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성격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뭘 조금만 해도 굉장히 잘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 모자라는 것에 집착하는 유형이 있고. 저는 후자예요. 그 모자란 부분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얼마나 모자라나, 이런 고민이 많아요.

뭘 더 채우고 싶어요? 너무 많아요. 전에 김혜수 선배가 나이는 들어가는데 그만큼 내 내면이 채워지고 있는가 하는 고민과 자꾸만 뭘 더 채우고 싶은 욕심때문에 밤마다 영화도 보고 책도 읽느라 잠잘 새가 없다고 하셨죠. 이제야 그 마음이 뭔지 알겠어요. 내가 좀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채우고 싶어요.

채우는 만큼 비우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내려놓고 싶은 욕심도 있나요? 몇 년 전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때까지 내가 겪은 스트레스의 근원을 알겠더라고요. 그 덕분에 비워내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실행에 옮기기도 했어요. 짊어지는 게 적을수록, 그게 비록 작은 물건 하나일지라도 생각이 가벼워지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어떤 어른이 되어야겠다거나 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겠다 다짐하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그냥 잘 나이 들어가면 좋겠어요. 좋은 경험을 하며 사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쁜 사람을 겪으면 타인을 경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을 많이 알게 될수록 상처 받는 일도 많고 그러면 힘이 든다는 걸 아니까 만나는 걸 피하게 되고. 말을 많이 해봐야 좋을 거 없다는 걸 아니까 말수가 점점 줄고. 좋은 사람과 좋은 환경에 있으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민기 블랙 오버사이즈 면 셔츠 헤드 메이너 바이 1LDK 서울 (Hed Mayner by 1LDK Seoul).
정소민 터틀넥 니트 풀오버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쇼츠 잇미샤(It Michaa).
이민기 핑크 스트라이프 셔츠 베트멍 바이 10꼬르소 꼬모(Vetements by 10Corso Como).
정소민 안에 입은 화이트 셔츠 클루드클레어(Clue de Clare), 겉에 입은 화이트 셔츠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핑크 시폰 톱 씨 바이 끌로에(See by Chloe), 그레이 체크 재킷 로맨시크(Romanchic).

JUNG SO MIN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돌아왔어요. <아버지가 이상해>가 끝나고 좀 쉬려고 했어요. 6개월간 이어진 작품이어서 보는 사람들도 저에게 지칠 수 있고 저 역시 많이 지쳤고요. 웬만하면 쉬려고 했는데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웬만하지 않았어요. 시놉시스만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나요? 전에는 제가 연기하게 될 캐릭터를 가장 중요하게 봤는데 지금은 전체를 보게 됐어요. 대본에 담긴 위트와 재치가 매력적이고 ‘윤지호’뿐만 아니라 그 친구들까지 너무 재미있고 사랑스러웠죠.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기대됐고요. 신기한 건 극 중 캐릭터와 제가 닮은 점이 무척 많다는 거예요. 지호는 늘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해요. 교대에 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국문과에 입학하죠. 저도 그랬거든요. 아버지는 제가 무용과에 진학할 줄 아셨는데, 몰래 연기과에 원서를 냈어요. 드라마 속 친구들 캐릭터도 실제 제 친구들과 닮았어요.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십년지기 친구 둘과 삼총사인데 지호도 그렇죠. 부모님이 진주에서 자라셨는데 드라마 속 배경도 진주예요. 작가님이 마치 저를 보고 글을 쓴 것처럼 닮은 구석이 많아요.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는 걸까요? 선택했을 때 제가 더 행복할 자신이 있으면 과감하게 행동하는 편이에요. 나를 더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걸 택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의 기준이 확고해야 해요. 20 대 초·중반의 저는 불안했어요. 많이 흔들리던 시기였는데 그때부터 인생의 가치관을 다져왔어요. 지금도 물론 삶의 가치관이 완성되진 않았지만 훨씬 여유가 생겼고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흔들리지 않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제 인생에서 배우라는 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컸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삶이 가장 중요하고 제 자신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있어야 배우 정소민이 있는 거니까요.

자신과 닮은 구석이 많은 캐릭터는 연기하기 더 수월할 것 같아요. 세세하게 아주 많은 것이 닮았는데 이상하게 연기하긴 더 힘들어요. 내가 남을 봤을 때는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내가 나를 보는 것 같아 오히려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보통은 캐릭터의 틀을 잡고 연기를 하는데 그 틀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그냥 나인데? 이런 생각이 들고 무방비로 노출되는 느낌이에요.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상대 배우와의 케미가 좋았어요. 그 케미가 잊히기 전에 새로운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하니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해요. 필요 이상으로 신경이 쓰여요. 다른 작품에서 연기하는 건데도 마치 바람을 피우는 느낌이랄까요?(웃음) 반면에 자신도 있어요. 이민기 씨와는 초·중반까지 ‘어색 미묘한’ 케미를 보여줄 거예요. 서로 끌림이 없는 건 아닌데 뭔가 어색한 사이거든요. 무엇보다 이민기 씨가 노련하게 많이 배려해줘요.

원래는 전작이 끝나고 뭘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어요? 2~3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어요. 전에는 틈이 생기면 뭔가를 배웠어요. 새로운 걸 배우고 경험하는 걸 좋아했죠. 그런데 이제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여유가 생기면 푹 쉬어요. 그 짧은 틈마저 어딘가에 정기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더라고요. 너무 달려서 그런가 봐요. 이젠 제 시간에 온전히 푹 쉬고 싶어요. 만약 지금 긴 휴식이 주어진다면 꼭 여행을 가고 싶어요. 원래 엄마와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는데 두 번이나 못 지켰어요. <아버지가 이상해>를 끝내면 엄마와 유럽에 가려고 예약까지 해두었는데 결국 엄마 혼자 가셨죠.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민이 이야기의 큰 줄기예요. 지호와 고민도 비슷한가요? 어떤 점에서는 비슷해요. 고민하는 이유는 결국 미래 때문이잖아요. 지호는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경제 적으로 어려운 10년 차 보조 작가예요. 당장 오늘을 살기 바빠 미래를 설계할 틈이 없죠. 미래를 설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저도 비슷해요. 고민이 같지는 않아도 공감하는 부분은 많아요. 가령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는 을의 억울함 같은 거? 지호라는 인물이 좋은 이유는 그런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유연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에는 늘 할 말 다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면 난 안 해.’ 이런 식이죠.

새로운 작품을 앞두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것 같아요. 그보다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로부터 꼭 뭔가를 배워요. 저와 다르기 때문에 뭔가를 배우기 마련이죠. 작품을 한다는 건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제게 없는 면, 하지만 닮고 싶은 면을 배우려고 노력하죠. 10년 가까이 연기하며 많은 캐릭터의 좋은 점이 제게 남았어요. 세상을 보는 관점도 좋은 쪽으로 바뀐 것 같고요.

지호에게 기대하는 건 뭔가요? 제일 닮고 싶은 건 이 친구의 ‘맑음’이에요.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상처 받으면 참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얘기해요. 쌓아두거나 삭이는 법이 없죠. 자신이 갑이라 그런 것도 아니고,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행동도 아니에요. 이제 촬영을 시작한 지 고작 열흘 정도밖에 안 됐지만, 작품을 하면서 지호의 그런 점을 꼭 체득하고 싶어요.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 그레이 니트 베스트 모두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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