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해제 후 첫 공식 스케줄이다. 기분이 어떤가? 훈련소에 갈 때만 해도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다녀오니 마음이 편하다. 앞으로 입소할 애들을 보면서 ‘어휴, 내가 그 마음 다 안다’ 싶고. 군대까지 다녀왔으니 더 이상 댈 핑계가 없다. 20대에는 군 복무를 전환점 삼아야지 했는데 이제는 다른 구실이 없다.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고 진지하게 임하려 한다.
갓 제대한 전역자 특유의 경직된 파이팅이 느껴진다.(웃음) 맞다. 지금 파이팅이 넘친다.(웃음) 그사이 두세 살 나이가 더 들기도 했으니까. 곧 드라마에 들어가야 하는데 복무 중에 살이 많이 쪘다. 체중을 감량하며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나야 새로 보이는 것들이 있지 않나? 배우의 세계에서 잠시 떨어져 지내며 과거의 연기들을 되짚어보기도 했나? 이전에 출연한 작품들을 유튜브의 짧은 영상으로 보긴 했다.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왜 저랬나 싶기도 하고, 못 보겠더라. 새로 시작하는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 어떤 연기를 해야 할까 고민스럽기도 했다. 굳이 이전 것들을 끄집어내 복귀한다기보다는 처음 연기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입대 전 인터뷰들을 찾아보니 당시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린다는 이야기도 했더라. 이제는 좀 정리가 되었나? 정신이 없었나 보다. 왜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했을까? 외로웠나? 사람 만나 이야기하니까 마냥 좋았나보다. 물론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질문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시키면 다 해볼 생각이다. 하라고 하면 무조건 하는.(웃음)
군대가 약이 된 건가? 내년에 다시 인터뷰하면 다른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왜 이러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힘찬 모습일 때 만나서 좋다. 12월 4일 첫방송하는 KBS2 월화드라마 <저글러스 : 비서들>로 곧 복귀한다. 소집 해제 후 바로 작품을 만났으니 운이 좋다. 20대에는 쉬지 않고 작품을 했다. 가장 오래 쉬었던 기간이 한 달 정도다. 제대 후에는 쉬엄쉬엄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삶이 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계획처럼 되면 또 재미없지 않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긴장도 많이 하고, 그 긴장의 힘이 원동력이 되어 의외의 성과를 낼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 분이 시간이 지난 뒤 어떻게 해석되고 평가될지 모르지 않나. 모두 나에 게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하며 연기하고 싶다.
타인의 관심과 관계를 전면 거부하는 철벽형 남자 주인공 ‘남치원’을 맡았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마녀의 법정> 후속 작품이다.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과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캐릭터다. 대본이 6회까지 나와 있는데 그중 복싱하는 장면이 있어 열심히 복싱을 배우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감독님에게 이야기해뒀다.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하고 있는데 사회의 시간은 참 빨리 가지 않나.(웃음) 촬영 전까지 박차를 가하려 한다. 첫 신에 등장하지 않는다해도 첫 촬영 때는 현장에 나가볼 생각이다.
곧 첫 촬영인데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떨릴 것 같다. 겁나고 떨린다. 철벽남이지만 밉지 않고 애틋해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내가 잘해야 한다. 감독님과 작가님은 물론 같이 연기하는 강혜정 누나를 비롯해 (백)진희와 (이)원근이에게 많이 알려달라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화보 촬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뭘 했는지···.
뭘 하긴, 아주 잘했다. 사진가가 계속 칭찬하던데. 잘 찍어주시지 않았나. 최다니엘이라는 사람의 얼굴선과 그 느낌을 잘 담아주신 것 같다. 나 조차도 새롭게 보게 된 면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키가 크기도 하고, 화보는 옷이 중요하니까 주로 전신 촬영을 했었는데 오늘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신 것 같아 유난히 좋았다. 스태프들이 멋있게 꾸며주었고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구나···. 전에는 내가 나서서 구상을 좀 했는데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웃음)
힘을 좀 빼겠다는 말인가? 나이에 맞게 자연스럽게 연기해야 좋을 것 같다. 20대에는 조숙한 게 좋은 줄 알았다. 또래 연기자들에 비해 조숙하다는 말이 듣기 좋기도 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걸 왜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나 싶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 지금의 모습에 충실하고 싶다. 그러려면 힘을 빼야겠지.
라디오 DJ를 두 프로그램이나 했고 애착이 남달랐던 걸로 안다. 라디오는 여전히 내게 특별한 매체다. <별이 빛나는 밤에>나 <텐텐클럽>을 듣고 자란 세대니까. 여름에 라디오에서 납량 특집 할 때 들은 무서운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듣는 행위는 보는 것보다 잔상을 훨씬 길게 남긴다. 그런 점이 여전히 내게는 매력적이다. 라디오가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장르가 되긴 했지만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런 은은한 것들에 계속 힘을 싣고 싶다.
맞다. 요즘의 SNS가 하는 소통의 역할을 과거 라디오가 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카톡이 다 하는 세상이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친구들끼리 편지를 주고받았다. 연애편지뿐만 아니라 마니토도 있고 별거 많지 않았나. 특히 여자애들은 다이어리를 엄청나게 썼다. 시 옮겨 적고, 스티커 붙이고···. 그때의 문화에 대한 향수가 있다. 시대와 세대는 변하기 마련이고 새 흐름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당시 감성들이 공존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전직 DJ로서 좋아하는 음악은? 장르를 편식하지 않고 음악이라면 다 듣는다. 록이나 헤비메탈도 좋아하고 발라드나 R&B, 피아노 연주곡도 좋아한다. 음악의 힘은 듣는 이의 생각과 감정을 즉시 움직이게 만든다는 데 있다. 나는 아직도 쿨의 ‘애상’을 들으면 중학교 때 생각이 난다. 꼬랑지 머리 기르던 시절로 순간 이동 한다. 뭐든 좀 쌓여야 전달되는 것이 연기라는 점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은 늘 부럽고 멋있는 존재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무슨 음악을 듣고 있나? 브라운아이드소울의 ‘사랑의 말’이라는 노래 참 좋다. 특히 차 안에서 들으면 좋다.
마지막으로, 출발선에 선 지금의 마음이 궁금하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걸 하고 싶다’ 하는 게 없었다. 확신을 가지고 재미있게 연기한 경험이 적고, 해야 하니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품을 계속 해왔지만 늘 ‘이게 나에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을 품었다. 일단 당장 해야 하니까 하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야 불이 붙기도 하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 되고 싶다’는 유의 용기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는 뭐든 일단 부딪혀보고 해보려 한다. 끝까지 해보고 안 되면 한계를 인정하고, 잘해내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계속 부딪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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