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선 남지현은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의 햇빛에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름 한 계절을 오롯이 경북 문경과 전남 순천, 경기 이천과 남양주에 있는 드라마 촬영장을 다니며 보낸 흔적이다. 기억을 잃은 왕세자와 마을 최고령 원녀 ‘홍심’의 1백일간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에서 남지현은 강인하고 솔직하며, 제법 똘똘하지만 ‘허당기’도 있는 홍심을 연기한다.
1년 만에 다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하고 있어요. <백일의 낭군>에서 홍심은 성격이 밝고 꿋꿋하다는 면에서 지난 캐릭터들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배우로서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겠죠? 스무 살 이후 연기한 인물을 돌아보면 다 비슷한 면이 있어요. 아마 제 나이에 맞는 캐릭터를 제안받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크게 보면 비슷하지만 그 사이 작은 디테일이 있거든요. 작품마다 목표로 하는 것도 다르죠. 시청자들이 ‘이 아이가 많이 변해온 거구나’라고 느낄 만큼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쇼핑왕 루이>에서는 풋풋한 로맨스, <수상한 파트너>에서는 어른의 연애를 그렸던 것처럼요. 이번에는 사극인 데다 캐릭터가 좀 더 당차고 강인하기도 하고요.
로맨틱 코미디는 상대 배우와의 케미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상대 배우인 도경수와 호흡은 어땠나요? 둘이 하는 대사가 무척 많아요. 도경수 씨가 워낙 진지하게 드라마에 임하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특정 장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촬영이 진행될수록 친해지기도 했고요.
사전 제작 드라마예요. 방영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죠. 그래서 더 긴장되진 않나요? 첫 방송을 기다리는 지금은 우선 설레요. 사전 제작 드라마이기 때문에 오히려 감독님이나 연출부, 제작부 분들이 편집실에 들어가서 부족한 점을 챙기거든요. 장면을 연결했는데 분위기가 맞지 않으면 다시 찍을 수도 있고요.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상태로 보여드리는 거예요.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매 순간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임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없어요.
<백일의 낭군님>이 어떤 드라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는 송주현 마을 얘기가 나오면 웃게 되실 거예요. 초반에는 발랄하고 신나고 웃기다가 중반 정도 되면 애틋해지고 점점 사건들이 휘몰아쳐요. 배우들의 연기도 그 감정에 따라 달라지고요. 한 드라마에서 여러 감정이 이렇게 여러 단계로 드러나는 경우가 흔하진 않거든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해요. 드라마가 끝날 때쯤 많은 부분이 정리되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겠죠. 이 드라마로 나는 무엇을 얻었고 내가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점은 무엇이며, 앞으로 더 가지고 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보통 작품이 끝나면 생각이 많아지나요? 이 작품이 내게 무엇으로 남았으며 어떤 작품으로 남게 될지에 대해서요. 작품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드라마가 끝난 후에는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보통 방송이 끝나고 한 달쯤 지나면 침착하게 정리할 수 있어요. 이 드라마를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점을 어떻게 이겨냈고,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에 대해. 이번에도 그러겠죠? 시간이 좀 지나면 웃음이 많았던 현장의 추억이 먼저 생각날 것 같아요. 한창 더운 여름날 찍어서 힘들었는데,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그 고생을 보상받는 느낌이 들 만큼 잘 마무리되면 좋겠어요.
이전에 인터뷰할 때도 느꼈는데, 늘 밝은 기운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성격이 지금까지 연기해온 캐릭터에도 많이 반영되었겠죠? 그런 측면이 많아요. 하지만 보다 깊이 들어가면 다르기도 하고요. 모든 캐릭터가 그런 것 같아요. 나와 닮은 부분이 표현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부분이 담기기도 하고. 저는 제 에너지가 캐릭터에 많이 투영되는 편이에요. 제 연기를 오래 봐온 분들은 그런 면이 제 장점이라고 봐주세요. 저 역시 저만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유의 깊게 지켜보는 관점이기도 하고. 제 연기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잖아요. 현장에서 직접 전달할 수가 없어요. 꼭 무언가를 거쳐 감정이 전달되죠.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내가 표현한 만큼 전달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내 연기를 작게 봐야 할 때는 작게 보고, 크게 봐야 할 때는 크게 보면서요.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연습하는데 현장에 가서는 그냥 해요.(웃음) 현장에서는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나 감독님의 디렉션도 중요하니까요.
배우의 길에 일찍 들어섰어요.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나요? 아역부터 치면 벌써 14년쯤 됐어요. 스무 살 때부터 성인 역할을 하며 배우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변했어요. 아역을 연기할 때는 이 일을 계속 할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계속 하는 게 과연 옳은 건가. 그런데 스무 살이 되니 제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더라고요. 어릴 때는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인데, 대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레 관계도 폭넓어졌죠. 스무 살 때 연기 한 <가족끼리 왜 이래>도 제게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많은 선배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면서 그분들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일에서는 완벽주의자여서 자신을 괴롭히는 편이었는데 그 뒤로 많이 변했어요. 모두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죠. 어떻게 연기해야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신중히 모니터링하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어떤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변화하는 중이고요.
<수상한 파트너>를 끝내고 어떤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참 신기한 일이에요. 사극을 한 지 오래돼서 재미있는 사극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나 사극을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홍심 역할을 제안받은 거죠. 홍심이란 캐릭터도 너무 재미있었고요. 전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에는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적절한 시점에 그런 작품이 들어오거든요.(웃음) 스무 살 이후 쭉 그랬어요. 그래서 적당한 타이밍에 기회가 찾아오면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연기 공부는 계속 하고요. <백일의 낭군님> 촬영을 끝낸 지금은 개강해서 다시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있어요.
오늘의 인터뷰를 앞두고 전에 대학교 블로그에 올라온 인터뷰를 읽었어요. 대학에서는 연기 대신 다른 공부를 하고 있던데요. 대학에서는 공부하고 싶은 학문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게 준비했고요. 목표가 생기면 행동이 빠르거든요. 생각이 정리되면 바로 실행에 옮겨요. 방향성을 정하고 실행하면서 세부적인 것을 정리해가죠. 선택과 집중이죠.(웃음)
어떤 것들을 좋아해요? 일상에서는 사소한 것들을 좋아해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런데 연기와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목표로 정한 취미가 몇 가지 있는데 이루기가 어려워요. 학교 다닐 때는 생활이 규칙적인데 작품할 때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학교를 졸업하면 취미로 삼을 만한 것들을 배울거예요. 생각은 좀 해뒀어요. 제빵도 하고 싶고 악기도 하나 배우고 싶고. 공예도 해보고 싶어요.
SNS에 종종 여행 사진도 올라오던데요. 틈만 나면 여행을 가려고 해요.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한 번은 꼭 가고요. 완전히 낯선 환경에 떨어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확실히 무언가 하나 끝마쳤다는 느낌이 확 들거든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보는 게 좋아요.
낯선 환경에 있다는 사실이 두렵지는 않아요? 저도 제가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아마 지금껏 한 여행이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언젠가 혼자 여행 가고 싶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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