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틀 속에서 안락함과 편안함만 추구하는 건 더 이상 나의 몫이 아니다.”
<비열한 거리>에서 ‘병두’의 발걸음은 어딘지 불안정하다. 가진 것도,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지킬 가족만 있는 건달의 인생. 버티고 버텨보지만 그에게 남은 건 의리나 우정 따위는 조금도 없는 비극뿐이다. <쌍화점>의 호위 무사 ‘홍림’. 왕을 사랑했고 왕이 사랑하는 무사지만 왕후를 사랑하고 왕후가 사랑하는 남자가 된다. 하지만 그는 어떤 사랑도 지켜내지 못한다. 조현병을 앓는 <괜찮아, 사랑이야>의 ‘장재열’. 조인성 스스로 지금도 돌아보면 가장 애잔한 인물이라는 장재열은 트라우마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자신을 해한다. 권력을 가까이하고 싶었던 검사인 <더 킹>의 ‘태수’는 왕이 되기 위해 짓밟혀도 짓밟기 위해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안시성>. 온 세상을 손에 넣으려는 당태종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안시성을 함락하기 위해 쳐들어오고, 5천 명의 군사를 이끄는 성주 양만춘 장군은 성과 그 안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전투에 나선다. 그의 활을 움직이게 하는 건 욕심이나 욕망 같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9월 개봉을 앞둔 이번 작품까지, 조인성이 작품을 고르는 속도는 의아할 정도로 느릿해서 그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다시 찾아 보기에도 벅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의 인물들은 관객이 그에게 기대하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있다. <안시성>도 마찬가지다.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새로운 리더이자 젊은 사극이며 많이 알려지 않은 고구려의 역사다. 제작비 규모도 꽤 크고 많은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주인공으로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고분투했을 테고, 자신이 만들어야 할 역사 속 장군의 새로운 모습을 고민했을 테지만 그건 관찰자의 추측일 뿐이며, 그는 무사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을 뿐이라 말한다.
돌이켜보면 조인성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 등장할 때가 있다. <안시성>의 촬영이 끝난 후에 중국 어느 곳에서 일행과 옷을 맞춰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하고, 정가영 감독의 독립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에서 목소리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있을 법한 곳에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타인의 SNS 사진에는 등장하지만 자신의 계정은 없고, 꼭 필요한 홍보 활동 외에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도대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면 왜 이렇게 보기가 어려우냐는 질문에,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답한다. 하지만 어디선가 불현듯 등장할지도 모른다. 작품 속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인물로, 혹은 타인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보통의 일상을 사는 조인성으로.
오늘이 <안시성> 기자 시사회 전날이어서 아쉽게도 시나리오만 보고 인터뷰를 준비했다. 아쉽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더 좋았을 텐데.
영화에 자신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영화가 좋았건 싫었건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서로 그에 대해 대화가 오고 갈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시나리오는 구체적일 수 없다. 텍스트만 담긴 것과 그걸 바탕으로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상(像)이 들어가고 그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영화는 텍스트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대본에 있는 내용으로 컨셉트를 정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도합해 나오는 결과물이다. 시나리오는 일종의 스케줄 표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분량을 촬영하고 어느 정도 진행되고 뭐 이런 큰 그림들. 여기에 감독과 기획한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의도와 의견을 들어보고 마음이 가면 서로가 생각 하는 모습을 정리해간다.
<안시성>의 시나리오가 마음을 잡은 이유가 뭔가? 시대 배경이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고대사라는 점. 그래서 상상을 더해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더 많고, 고대사가 주는 엄숙함이 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을 기존과 다르게 표현할 방법을 찾다가 나를 캐스팅한 거겠지.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거고. <안시성>은 엄숙함에서 벗어난 영화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보통 사극 하면 묵직함을 떠올린다. 하지만 익숙한 것일 뿐 그 시대에 꼭 그랬으리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안시성>은 고대사가 주는 엄숙함이 있지만 좀 젊게 풀어내려고 했다. 당시 전장에 나선 사람들은 모두 젊은 사람 아니었겠나. 우리는 기존과 다른 사극을 만들고 싶었다.
다르다는 것은 생소한 것이고 익숙하지 않아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그런 데서 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운가?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두렵다는 이유로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해야 하고, 나도 이제 선배 배우가 되어가는데 새로운 시도를 겁내고 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럼 결국 도태될 뿐이다. 새로운 배우는 계속 나오고, 물론 그들과 경쟁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나이가 들며 선배가 되었고, 정해진 틀 속에서 안락함과 편안함만 추구하는 건 더 이상 나의 몫이 아니다. 안정적인 게 좋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때가 있다. 막 연기를 시작한 신인 배우나 젊은 배우들은 그런 안전함 속에서 힘을 기르는 것이 좋지만, 선배들은 이제 그 틀을 벗어나야 한다.
고구려라는 역사적인 배경이 특별히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 한편으로 고구려 역사 전체를 보여줄 수는 없다. 그래도 이 영화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시작점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점점 더 다양한 시대 혹은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찾으려는 열망이 다양한 배경을 끌어들이는 듯하다.
여러 선후배 배우들이 함께 등장한다. 현장을 잘 다독이고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잘 이끌고 가려고 하면 오히려 잘 안 된다. 뭘 이끄나. 다만 내 자리를 잘 지키고 있으면 된다. 특별히 나서서 뭘 하기보다는 그냥 내가 그 자리에 잘 있는 거지. 시간 약속 잘 지키고, 준비 제대로 하고, 모여야 할 때 잘 모이고, 그런 부분을 잘 지키면 나머지 것은 신경 쓸 게 별로 없다. 다 각자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고. 양만춘이라는 지도자도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옛날의 리더십은 권위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하지만 아니다. 그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성주로서 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을 뿐이다.
사극은 픽션과 논픽션의 조합이다. 사극은 현대극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다르던가? 사극이 주는 자유로움이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중에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사적인 사실이 있지만 경험해보지는 않았으니 오히려 자유로운 셈이다. 나 역시 그렇고. 어느 날 한 선배에게 작품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그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살아본 적 없는데 정해진 말투나 태도 같은 것을 누가 알 수 있겠어.” 궁중의 문화는 사료에 많으니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지만 그 시대 서민의 삶은 기록이 많지 않다. <사도>만 보더라도 궁중의 어투로 대화를 나누다 아이가 웃으니까 “그런데 넌 왜 웃어?”라며 가볍게 말하지 않나. 사극이 오히려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 흥미로웠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언가? 그때그때 다른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서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직접 쓸 수는 없으니까. 혹은 기획이 좋은 경우도 있다. 좋은 감독님이면 한번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 선택하기도 한다. 하나의 기준으로 선택하기보다 범위를 넓게 두는 거지. 이번 영화는 기획이 좋았다. 고구려 이야기라는 점도 그렇고, 역사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양만춘의 이야기라는 점도 그렇다. 양만춘은 말하자면 제대로 칭송받지 못한 영웅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이라면 표현하는 데 오히려 한계가 있었을 텐데, 양만춘은 인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더 재미있겠다 싶었다.
대규모 전투 신을 구현해야 했을 테니 촬영 현장이 전작들과 많이 달랐겠다. 막연했다. 앞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인데 20만 대군이 몰려온다고 하니. 20만 명이 도대체 얼만큼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텅 빈 블루스크린 안에 무엇이 있다고 가정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연기 경험은 있으니 거기에 기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액션도 중요한 작품이다. 현대극의 액션과 사극의 액션은 느낌이 다를 것이다. 싸움은 두 가지인 것 같다. 죽으려고 싸우거나 살려고 싸우거나. 안시성 전투의 싸움은 전체를 살리기 위한 싸움이다. 그래서 좀 광기가 어려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큰 차이가 없다. 다 몸짓이니까. 반면 감정 상태는 매우 다르다.
촬영하면서 영화로 나왔을 때 가장 기대한 장면이 있었나? 마지막에 활 쏘는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데다 주몽의 활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소 신화 같은 얘기이기도 하고. 그 신화적 요소가 있어야 영웅화되기도 하니까. 역사에 존재하는 일이긴 하지만 진짜로 활을 쏴서 눈에 맞았는지, 아니면 그냥 퇴각했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신화처럼 보이는 내용을 관객이 ‘아,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느꼈으면 한다.
<안시성>의 양만춘은 지금껏 조인성이 보여준 캐릭터와 결이 많이 다르다. 그간의 작품에서는 의지하고 싶은 인물보다는 보호해야 할 것 같은 인물이 많았다. 지금은 이전에 비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졌나? 나이 들수록 좋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변화는 내가 의도한 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과정일 뿐. 내게 오는 시나리오도 점차 달라지더라. 특별히 내가 변하려 노력한 건 없다.
이번 작품은 조인성에게도 도전이었을 것 같다. 주위에서 도전이라는 말을 많이 했지만 도전을 위해 선택한 건 아니다. 음, 재미있으면 한다. 나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내 외모에서 오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작품을 선택하는 데 제약이 많이 생기다 보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멜로 작품을 비교적 많이 했는데 난 이제 한도 초과다. 여러 가지를 해야지. 어떤 틀 안에 머문다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박제돼 있어야 한다. 그걸 하나하나 깨려고 노력해야지. 비록 실패할지라도.
자신에 대한 편견 중 가장 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뭔가? 늙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안티에이징이라고 하지 않나. 안티에이징이 아니라 웰 에이징이 맞는 것 아닌가. 잘 늙어가야지. 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역행하려 해서는 안 된다. 계절도 바뀌는데 사람이 뭐라고 늙지 않을 수 있나.
20대에 30대를 상상해본 적 있는가? 상상은 해봤지. 그때도 막연히 잘 나이 들고 싶었다. 지금도 이렇게 작품을 계속 하고 있는 걸 보니 나쁘게 살고 있진 않은 것 같다.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잘될 가능성이 없다. 지금보다 잘될 가능성은 0.001퍼센트? 힘든 시기를 잘 견디며 20대를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40대도 상상해보나? 그때는 지금보다 편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작품을 한다는 건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하는데, 좀 더 쉽게 선택하고 싶다. 가령 영화에서 큰 역할이 아니어도 하고 싶으면 툭 하는 거다. 캐릭터만 좋으면 선택하고 그 작품 안에서 해내고 싶다.
예전과 지금, 연기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는가? 그럼. 확실히 달라졌다. 전에는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표현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연기를 잘 안 하려 한다. 전에는 어떤 감정을 표출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한다. 툭. 어차피 툭 던지는 것 안에 다 들어 있어야 전달이 더 잘된다. 관객은 다 느낄 수 있다.
연기할 때 고통과 기쁨 중 어떤 감정이 더 많이 드나? 고통의 순간. 모든 게 어렵다. 연기하는 것 자체도 어렵고 추운 날 춥지 않은 척, 더운데 덥지 않은 척하는 것도 어렵다. 연기하는 순간이 계속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다. 고통의 시간이 8할이다. 그런데 촬영하다 보면 ‘아, 해냈다’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가있다. 그 찰나의 기쁨 때문에 연기를 계속 하게 된다. ‘덕업일치’가 되면 좋은데 잘 안 된다. 대신 그게 힘들다는 걸 깨닫고 나니 덜 괴롭다. 한때 일하면서도 즐거워야 하는데 왜 즐겁지 않지 하는 생각에 힘든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되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고, 받아들였다.
과거에는 ‘덕업일치’의 순간을 기대하는가? 기대했었다. 잘 안 될 뿐. 보통은 괴롭고 어느 순간 좋고.
작품을 선택한 후 개봉하기까지 가장 힘든 때와 행복한 때가 있다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촬영장에 있을 때. 촬영할 때 가장 행복하다. 가장 힘든 순간은 영화 개봉 직전의 홍보 기간이다. 지금 같은.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생각하면 불안하기도 하다. 막상 개봉하면 운명이니까.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지금이 가장 모호한 시기다.
영화가 공개된 후 나올 반응에 대한 압박감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있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비난받았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누가 기억하겠는가. 합당한 비판은 물론 받아들이지만 상처가 되는 비난은 쓰레기통에 버린다. 내게 득이 되는 비판은 받아들이되 저급한 비난은 취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던 건 아니다. 다치고 찢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굳은살이 생겼다. 새싹도 밟혔다가 다시 돋아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더 억센 잡초가 되기도 하고. 봄나물은 돌도 뚫고 나온다고 하지 않나. 지난 상처들이 이겨낼 힘이 되어 돌아온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오고, 아무리 더워도 가을은 온다. 다만 그 시간 속을 살 때는 고통스럽다. 그 순간마저 고통스러워하지 말라고 하면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더라. 비난받을 때 내가 고통 속을 걷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그렇다고 망가지진 않는다. 내가 왜 고통스러운지 고민하면 오히려 힘들어진다. 그냥 인정하면 된다. 지금 내가 고통 속을 걷고 있구나. 그렇게 걷다 보면 고통의 길은 끝난다.
얼마 전 여행지에서 찍힌 사진이 SNS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작품이나 작품 홍보 활동이 아니면 조인성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는데, 여행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찍힌 그 상황이 어색했다. 맞다. 나도 그렇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날 의식하지 않는데 그 광경이 어색했던 것 같다.
살아가는 방식이 전에 비해 좀 변하고 있나? 물론. 다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배우는 곧 상태다. 어떻게 사느냐와 어떤 배우가 되느냐는 같은 말이다. 지금의 상태가 곧 지금의 연기다. 지금의 배우 조인성이 괜찮다면 지금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내가 작품을 하는 속도가 느리다고 하는 데, 이보다 많이 하기에 난 체력이 안 된다.(웃음) <안시성>도 연습과 리딩, 준비를 3개월 정도 했고, 6개월간 촬영했다. 지금의 템포가 내겐 적당하다.
연기하지 않을 때 여행도 많이 다니나? 오래전 인터뷰에서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한 걸 읽었다. 자유롭게 걸을 수 있어 좋다. 보통의 삶이라고 해야 하나. 전에는 외국에 가야 그럴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에서도 자유롭다. 여행지가 어디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외국으로 여행을 가서 괴롭다면 무슨 소용인가. 괴로움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여행지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지금 조인성의 삶은 어떤 상태인가? 전에는 어떤 상태로 살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냥 산다. 그냥. 삼시 세끼 챙겨 먹고 그냥 산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이게 행복이지 싶다. 오늘까지 난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 문제 없으니까.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동생은 일 잘하고 있고, 나는 아픈 데 없고. 꼭 기분이 좋아야 행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아무 일 없다는 것, 무사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그렇게 마흔이 되고 쉰이 되었으면 좋겠다. 배우로서 나이 들어도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이 있는가? 사기는 치지 말자. 관객을 민망하게는 만들지 말자. 어떤 순간에도.
이런 가치관이 만들어기지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았다가도 사람들한테 위로받으니까. 차태현 선배가 그렇고 고현정 선배도 그렇고, (정)우성이 형이나 (이)정재 형도 나를 위해 많은 얘기를 해준다. 너무 감사한 일이지.
돌이켜봤을 때 배우로서 힘든 시간은 언제였나? 한 3, 4년 전. 내가 잘 가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만했다. 주변 사람들이 잘한다고 말해줄수록 자신을 바꾸기가 어렵다. 내가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맞다고. 내가 증명하지 않았느냐고. 잘해냈는데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결국 교만한 거였다.
힘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나? 그냥 지나갔다. 아무리 붙잡아도 시간은 가니까.
가끔 지나간 작품을 다시 보기도 하나? 아니.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남겨둔다. 그런데 유독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불안할 때 그렇다. 현재가 불안하면 과거의 작품을 볼 때가 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현재다. 오늘이 중요한 사람.
오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오늘 이 많은 스케줄을 어떻게 다 소화하지.(웃음) 내 이름이 다양한 매체에 자꾸 등장하는 게 어색하다. 너무. 그래도 우선 이번 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보통 한국 영화가 한 주 간격으로 개봉하는데 명절이어서 동시에 개봉하니 최선을 다해야지.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난 가진 게 별로 없는데 자꾸 앞장서게 된다.(웃음)
그러게 지금껏 너무 꽁꽁 숨어 있었던 거 아닌가. 작품 외에 조인성은 드물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살고 싶었던 걸까?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의도가 있으면 반드시 들킨다.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고 행동하면 들키고 민망해진다.
의도를 들키는 게 뭐 대수로운 일인가? 들켜도 상관은 없는데, 그런 의도가 보이는 순간 상대가 미워 보인다. 나는 그렇다. 무수가 상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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