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 권해효

김의성 코듀로이 재킷 쇼앤텔 (Show and Tell), 셔츠, 유니크한 소재의 팬츠 모두 코스 (COS), 윙팁 슈즈 에스.티. 듀퐁(S.T. Dupont).
권해효 헤링본 수트 에스.티. 듀퐁(S.T. Dupont), 테일러드 셔츠, 블랙 로퍼 모두 코스 (COS).

김의성 권해효

 

권해효

권해효

영화의 영역에 이제 막 들어온 젊은 배우들에게 ‘어서 와’라고 반겨주는 선배이자 형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영화 감독과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배우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 들었다. 배우 조윤희 씨의 아이디어가 그 시작점이다. 배우이자 지금 연기자를 가르치고 있다. 배우를 양성하는 입장에서 신인 배우 혹은 배우가 되고 싶은 친구들의 고민을 많이 듣게 되는데, 결국 독립영화계의 고민도 같다. 배우들은 작품이 없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배우가 없고. 독립영화가 되었든, 상업 영화가 되었든 배우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무척 제한적이다. 반면 독립영화계는 다양한 배우를 접할 기회가 없어 한 배우가 계속 돌아가며 출연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와중에 배우들을 보여줄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배우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독립영화계의 한 연결 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던 차에 서울독립영화제와 함께 하게 됐다. ‘60초 독백 대회’인데 최종 예심을 통과한 사람들이 서울독립영화제 기간에 영화제에 초청된 감독들 앞에서 자신들의 연기를 보여주는 거다. 60초 미만의 독백 연기를 보내면 그걸 보고 예심을 한 후 최종 파이널리스트 25명은 라이브로 60초간 연기를 하게 된다.예심은 나와 조윤희 배우가, 본심에서는 감독과 관객이 함께 심사할 것이다.

‘독백 대회’라고 이름 붙였다. 오디션이 아니라 대회라고 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오디션은 배역을 놓고 그 배역을 위해 찾아가는 일이고, 독백 대회는 말 그대로 무대 위에서 기술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 저런 사람도 있었네’ 하며 일종의 발견을 하는 거다. 파이널 무대에 오를 25명 정도의 배우를 열심히 찾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 독백 대회는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나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모르겠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이번 독립영화제에도 출품작이 매우 많다는 기사를 읽었다. 1천2백 편 정도 된다. 그중에서 골라야 하니 영화제 쪽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독립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니 좋은 일이긴 한데, 정작 그렇게 만든 영화들을 보여줄 곳이 영화제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극장에서 상영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까 아이러니한 거다. 스크린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정작 영화를 틀 곳이 없다니. 배우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많은 배우가 있지만 모두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를 두고 그저 ‘배우의 생태계가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없이 많은 배우 지망생이 자신의 이력서와 프로필 사진을 들고 뛰어다니는데 많은 제작사와 방송사 입구에 ‘더 이상 프로필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공지가 붙어 있거나 사무실 입구에 프로필이 산처럼 쌓여 있다.

권해효 타미진스 쇼앤텔

베이식한 디자인의 니트 톱 타미 진스(Tommy Jeans), 밴딩 팬츠 쇼앤텔(Show and Tell), 슈즈 코스(COS).

도대체 영화가 무엇이고, 연기가 무엇이길래 하고 싶은 사람이 끊이지 않는 걸까? 글쎄 말이다. 분명 그 안에는 무조건 좋고 긍정적인 것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답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예술의 다른 영역, 이를테면 음악이나 미술은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영역인 것 같다. 가령 연주자는 1만 시간, 2만 시간이 걸려 연습해야 익힐 수 있다. 그런데 연기자는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접근성이 좋은 셈이다. 숫자가 많은 데는 그런 영향도 있을 것 같다.

후배 입장에서는 선배의 이런 취지가 든든할 것 같다. 영화인으로서 연기만 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니다. 다양한 활동을 한다기보다는 끼워주니까 고마운 거다. 작심하고 한다기보다 요청을 받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거다. 그리고 계속해서 끈을 놓지 않고. 서울독립영화제는 내후년이면 20년째 사회를 보는데 독립영화건, 독립영화가 아니건 영화의 영역에 이제 막 들어온 젊은 배우들에게 ‘어서 와’라고 반겨주는 선배이자 형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너무 빨리 늙어버리지 않나. 이‘ 나이에’ 라는 말로 빠지려 하기도 하고. 독립영화를 만들고 이런 축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나 함께하고 싶다.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건가? 응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도 올해의 배우 상을 심사했는데 한국 영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비전과 뉴 커런츠 부문 작품을 보면 반갑고 좋다. 영화제 내내 마음에 드는 영화의 감독, 배우들과 매일 밤 같이 술 마시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어차피 어려운 길을 가게 될 테지만 응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힘이 되지 않나. 딱 그 정도의 역할이다. 언젠가 같은 작품에 출연하게 되면 더 좋은 것이고.

젊은 영화인의 독립영화를 보면 좋은 기운을 많이 얻을 것 같다. 장편독립영화는 만듦새가 훌륭하다. 좋은 영화가 참 많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거다. 독립영화라는 이름에는 가볍고 경쾌한 걸음도 포함돼야 하는데 상업 영화가 담아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다뤄야 한다는 강박감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홈리스, 여성, 학교, 죽음 뭐 이런 것들. 하지만 좋은 작품은 분명히 많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작품 중에 얼마 전 개봉한 <박화영>과 <살아남은 아이> 모두 좋았다. <죄 많은 소녀>는 한 배우가 끌고 나가는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고, 늘 즐거운 영화를 만드는 정가영 감독의 영화들도 좋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공녀>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광화문 시네마의 작품은 늘 눈여겨보게 된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나지막이 엔딩을 하는 방식이 굉장히 좋다.

이번 독백 대회 심사를 앞두고 기대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참여한 배우들이 희망을 봤으면 한다. 그리고 이번 독백 대회의 파이널 무대에 올라온 배우들이 내년에는 어딘가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소식이 들리기를 기대한다. 우리도 어려운 시간을 견뎌왔다고 하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 독백 대회가 무엇도 보장하진 않지만 2018년에 수많은 배우 중에 그래도 조금은 선배란 사람이 조금이라도 ‘이 배우들은 괜찮은 배우인 것 같아요’라는 말로 등 떠밀 때 그들이 좀 덜 지치고 계속 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권해효 김의성 타미진스

권해효 베이식한 디자인의 니트 톱 타미 진스(Tommy Jeans), 버건디 울 재킷, 밴딩 팬츠 모두 쇼앤텔(Show and Tell).
김의성 레이어드한 터틀넥 톱 맨온더분(Man on the BOON), 컷아웃 디테일의 재킷, 팬츠 모두 코스(COS).

 

김의성

김의성

나는 어쨌든 내 일로 먹고살고 있다. 그러지 못하는 후배나 동료를 현장에서 굉장히 많이 보는데, 그들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이번 대회에 대해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외국에서 진행한 독백 대회 영상을 보면 아무런 장치 없이 배우가 한 명씩 나와 1분 정도 독백을 하고 다시 다른 사람이 나와 독백을 한다. 독백 대회를 통해 숨어 있던 배우, 안 보이던 배우들이 드러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면 좋겠다. 나도 참여하고 싶었는데 떨어질까 봐 포기했다.(웃음) 내게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이 이름을 잘 모르는 배우들,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알리는 일이다. 프로필을 들고 돌아다니며 아주 작은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오디션을 보고 싶거나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었는데 이번 독백 대회가 좋은 시작이 될 것 같다.

오디션이 아닌 ‘대회’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최종 파이널리스트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좌절할 것 같다.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1등을 뽑는 것일 뿐, 누굴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끼리는 ‘천하제일 독백 대회’라고 이름 짓자는 말도 나왔다. 자신을 신나게 뽐내고 그걸 빛내는 잔치가 되었으면 한다. 다 같이 신나게 놀고, 누군가 상을 받는 것뿐이다. 혹여 좌절한다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직업 배우가 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고, 이 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리그에 들어가기만 해도 좀 낫다. 그때부터는 다른 욕심이 생기겠지. 생계를 잇기 어려운 배우도 많고, 좌절도 겪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상은 그리 공평하지 않고, 연기 잘하는 순으로 배우들이 줄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섣불리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고 말할 수 없지만 배우로서 생계를 이어가지 못하더라도, 다른 일로 생계를 이어가며 연기할 기회가 있으면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었으면 한다. 자신을 연기로 표현하는 일 자체는 굉장히 멋진 일이니까. 직업 배우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배우라는 자존감과 기쁨은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계의 선배로서 책임감도 있을 것 같다. 그보다는 재미가 더 크다.(웃음) 이렇게 캐주얼하게 대답하지만 실은 마음 아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은 어마어마한 배우가 되어 있는건 아니지만 나는 어쨌든 내 일로 먹고살고 있다. 그렇지 못한 후배나 동료들을 현장에서 많이 보는데, 그들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쑥스럽기는 한데, 선배로서 일종의 쉬운 오디션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김의성 맨온더분 코스

레이어드한 터틀넥 톱 맨온더분(Man on the BOON), 팬츠 코스(COS), 윙팁 슈즈 에스.티. 듀퐁(S.T. Dupont).

현장에서 선배 배우로서 후배들이 털어놓는 고민도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조언도 하고. 그러는 편이다. 내가 좀 쉬우니까.(웃음) 그런데 딱히 좋은 대답은 못 해준다. 열심히 하라는 말도 못 하겠다. 대개 ‘좀 살살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연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니까. 좀 더 살살하고, 자신을 좀 더 믿고 걱정이나 후회는 좀 덜하라고 한다. 오늘 하루 재미있게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이렇게 도움 안 되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웃음)

좋은 선배 혹은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물어보기 전에 참견하지 않는 사람. 그런데 물어보기 전에 참견하지 않기가 쉽지 않다. 내게만 해당하는 법칙을 모두에게 적용하려는 순간 좋은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것이 나보다 후세대가 지닌 경험보다 훨씬 소중한지도 잘 모르겠다.

한국 영화계에서 독립영화란 어떤 존재일까?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영화 자체로 자기만의 길과 문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상업 영화의 농장(farm) 역할을 한다. 그래서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기가 조금 어려울 때가 있는데 두 얼굴을 다 가진 것 같다. 상업 영화를 지향하는 젊은 인재들이 뭔가의 준비 과정으로 독립영화를 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독립영화의 시스템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기에 그 길을 쭉 가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두 얼굴 모두 한국 영화 산업의 밑받침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다. 새로운 힘이 발휘되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고 말이다.

최근에는 어떤 영화에 눈길이 갔나? 결국은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나를 놀라게 하는 이야기. 최근에 본 독립영화 중에는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이 그랬다.

영화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새로운 영화가 끝없이 만들어지는 걸까? 나는 영화광은 아니다. 영화를 엄청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배우로서 부끄러운 얘기일 수도 있는 좋아하는 영화는 있지만 너무 어려운 영화는 보기 힘들다. 독백 대회도 어마어마한 사명감이나 뜨거운 열정으로 함께한 것도 아니다.(웃음) 연기는 내가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며, 다행히 재미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버니 좋기도 하다. 무엇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다. 그 현장에 가 있는 것도 좋고. 현장에서 맞는 아침의 차가운 공기, 사람들이 준비하는 모습, 열정을 가지고 뛰어다니는 것, 그리고 연기하는 배우들, 모니터를 보며 고민하는 감독. 이런 모든 모습을 보는 게 좋다. 그리고 그 현장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 모두.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가서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밤새도록 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 들고, 지나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모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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