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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용 셔츠 리스(Reiss), 팬츠 디올 옴므(Dior Homme).
나나 블라우스와 실크 스커트 모두 니나리치(Nina Ricci), 이어링 아이노(Aino).


쫓는 나나

드라마 <킬잇>에서 형사를 연기한다. 과거를 쫓는 형사 ‘도현진’이라는 인물이다. 연쇄 살인 사건을 파헤치면서 ‘김수현(장기용)’을 만난다. 굉장히 냉정하고 예리하며 똑똑한 인물로 심리학을 전공해 범죄 현장에서 냉정과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반면 약한 존재에게 정을 많이 주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굉장히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다. 강인하기도 하고.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싶다.

시나리오로 현진을 만났을 때 첫인상이 어땠나? 단편적이지 않고 다양한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 재미있었고 그래서 해보고 싶었다.

배우로서 도전일 것 같다. 도전이다. 대본에 적혀 있는 인물의 다양한 성격을 내가 연기로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우선 극 중 인물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킬잇>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만나는 사람이 현진이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때마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고 그래서 어떤 감정이 생기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드라마 <굿와이프>는 배우 나나를 각인한 작품이다.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드라마와 통하는 지점도 있고. 그때의 경험이 이번 작품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평소 장르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굿와이프>를 촬영하면서 다른 장르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굿와이프>에는 정보를 전달하는 대사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어려운 전문용어가 섞인 대사를 잘 소화하는 게 일종의 미션이었다. 그 경험 덕인지 이번에 형사로서 어떤 사건을 말로 설명할 때 좀 더 수월하게 머릿속에 들어오고 대사도 더 자연스럽게 연기하게 된다.

아마 이전 작품을 하며 배우로서 배짱이 조금은 생긴 게 아니겠나.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아서 배짱이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연기를 향한 열정은 점점 커지고 있다. 연기는 할수록 매력적이다. 다른 인물의 삶을 사는 것도 그렇고 그동안 내가 대중에게 보여줄 수 없던 모습을 보여줄 기회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연기는 내게 큰 도전이었고 그만큼 두려움도 컸다. 그래서 두려움이 큰 만큼 열심히 하려고 했다. <굿와이프>와 영화 <꾼>에서 많은 선배들과 촬영했는데, 현장에서 지켜본 선배들의 노력에 비하면 내가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더 노력해 열심히 하고 많이 고민하려고 한다.

반면 이번 작품은 젊은 배우끼리 극을 끌고 가야 한다. 그래서 부담감도 느낀다. 이전 작품에서는 내가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중심이 돼 사건을 풀어가야 한다. 사건을 파헤치다 새로운 인물을 만났을 때 합을 잘 이루고 그 인물과 만들어가는 스토리에서도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현장에서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눈다. 감독님은 카메라 너머로 늘 나를 주목하니 나를 가장 잘 아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고민에 대한 답을 찾곤 하겠다. 첫 촬영을 앞두고 많이 긴장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장에 가니 분위기가 참 편했다. 아마 감독님 덕분인 것 같다. 촬영장은 일하는 곳이 아니라 모두 신나고 즐겁게 노는 것처럼 지내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그리고 리허설 할 때 감독님이 먼저 의견을 말하는 법이 없다. 우선 배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게 둔다. 다 맞춰볼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연기하라고 하고 그렇게 유도한다. 첫 촬영장이 이렇게 즐거운데 앞으로 얼마나 더 즐거울지 기대될 정도였다.

몇 분 안에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가수와 긴 호흡으로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배우는 결이 완전히 다른 영역인 것 같다. 가수는 3분여 동안 정확한 컨셉트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집중력이 중요하다. 그렇게 키운 집중력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가수일 때는 그룹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다른 멤버에게 의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 다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본인의 현재 상태에서 덜어내고 싶은 것과 채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뭔가? 자신감을 채우고 싶고 집착을 덜고 싶다. 인상 때문인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대본에 집착한다. 대본 전체를 외우지 않으면 무척 불안하다. 감정으로 대사를 외우는 배우도 있지만 나는 대본을 받자마자 달달 외우고 그다음에 감정을 덜어내거나 채운다. 그런데 한번 나온 대본이 수정될 때도 많거든. 비효율적인 방식인데 그래야 안심하고 잠이 든다.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생긴 습관인가? 그렇다. 현장에서 대본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을 만큼 외운다.

앞으로 배우로서 계속 활동할 텐데 끝까지 잃고 싶지 않거나 변하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면 뭔가? 연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재미. <킬잇>을 만나기까지 공백기가 있었다. 그러다 이번 드라마 들어가며 대본을 보는데 너무 행복했다. 살아 있다는 걸 새삼 실감할 만큼.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날지 짐작할 수 없지만 늘 지금의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다.


쫓기는 장기용

동물을 살리는 수의사이자 킬러인 인물을 연기한다. 상황이 독특하다. 동물을 대할 때는 세상 누구보다 따듯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킬러일 때는 차갑고 냉소적인 인물이다. 한 인물이 양극단의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끌렸다. 해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

한 인물이 양극단의 성향을 모두 가졌다는 건 연기하는 배우로서 잘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할 것이다. 현장에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시도해보며 만들어가는 타입인데 그런 점이 나와 잘 맞는다. 액션 장면도 고민이 많다. 내가 출연한 작품 중에 개봉을 앞둔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의 액션은 무자비하다.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싸우는데 <킬잇>의 액션은 보다 절도 있다. 와이어도 타고 위험한 장면이 꽤 있는데 그래서 성취감도 크다.

숙제를 잘 마치고 <킬잇>으로 배우로서 어떤 점을 강하게 보여주고 싶은가? 부침 없이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느 하나에 목표를 두기보다는 작품마다 조금이라도 다른 느낌을 만들고 표현하고 싶다. 보는 사람들이 장기용한테 저런 면이 있었네, 이런 것도 가능하네, 하면 된 거다. 그리고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는 한 작품에 들어가면 첫 촬영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고 캐릭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중간에 연기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답답한 순간이 올 수도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는 어떻게 이겨내는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강변을 걷는다. 걸을 때면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사실 오래된 습관은 아니다. 하정우 선배를 무척 좋아하는데 얼마 전 선배의 걷기에 대한 에세이(<걷는사람, 하정우>, 문학동네)를 읽고 시작했다. 걷고 있으면 치열했던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할 때와 다른 즐거움이 있다. 이제는 쉴 때면 집에 있기보다 나가서 걷는다. 집에 있으면 잡생각이 많아지거든. 걷기는 특별하지 않은 게 매력이다.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비싼 장비가 필요한 일도 아니지 않나. 자신의 속도에 맞게 걷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올해 행보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킬잇> 이후 차기작이 결정됐고 <나쁜 녀석들: 더 무비>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잘해낼 수 있을지 걱 정되진 않나? 쉬지 않고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기회가 생긴 만큼 잘해내고 싶다는생각이 강렬하다. 걱정보다 설렘의 감정이 훨씬 크다. 그 설렘을 동력 삼아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체력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힘든 만큼 더 잘해내고 좋은 결과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배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백기가 생기기도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이렇게 바쁘게 활동하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진 않았다. 그런 시기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모델 일을 할 때도 일이 없는 시기가 있었다. 컬렉션 기간에 부지런히 패션쇼 무대에 서야 하는데 고작 한두 개 쇼에 오르고 끝날 때도 있거든. 그럴 때면 자연스레 잡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을 때면 당장 눈앞의 현실에 조급해하지 않고 큰 그림을 그려보려 애쓰곤 했다. 이를테면 패션쇼 영상을 보며 연구하거나 운동해서 몸 관리를 하는 식이다. 일이 없다고 좌절하고 가만히 머물러 있기보다 뭐든 내게 도움 되는 일을 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좋은 생각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배우라는 직업을 대하는 태도에 달라진 점이 있나? 우선 처음보다는 편해졌다. 전에는 긴장을 지나치게 많이 한 나머지 뭐든 먹으면 체했다. 지금은 체하진 않는다.(웃음) 그때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현장에서 스태프나 배우와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한다. 물론 촬영장은 여전히 긴장되는 곳이다. 아마 내가 고민을 많이 하는 성향이라서 그런 것 같다. ‘아, 연기란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우선 쉬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고 촬영장에 있고 싶다.

연기란 도대체 뭘까. 어떤 즐거움이 있기에 모든 배우가 연기하는 순간을 사랑하는 건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내가 욕심내던 캐릭터를 만난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일이 없을 때를 생각하면 액션 연기를 하다가 다치고 촬영 스케줄 때문에 잠잘 시간도 없는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도 쉬지 않고 싶다. 언제든 지 기회만 생긴다면 열심히 하고 잘해내고 싶다. 난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너무 많다. 어떤 배우로 성장해갈지 나 스스로도 기대된다.

오늘 이 자리는 <마리끌레르> 3월호를 위한 인터뷰다. 아직 겨울이지만 봄을 위한 책인 셈이다. 지금의 장기용은 어느 계절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나? 봄. 봄으로 가고 있다. 추웠던 겨울을 춥게만 보내지 않았고 따듯한 이불과 함께 잘 버틴 후 봄을 향해 가는 중이다. 추운 겨울에 촬영을 시작하는 <킬잇>도 열심히 임해서 좋은 결과물로 따듯하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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