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리 롱 랩 원피스 르917(Le 17 Septembre), 화이트 레더 슬링백 힐 지미추(Jimmy Choo).
네오 민트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 사이드 라인 와이드 팬츠 모두 아에르(aeer).
화이트 퍼프소매 블라우스, 체크 와이드 팬츠 모두 잉크(EENK).
블루 크롭트 셔츠 르917(Le 17 Septembre), 아이보리 웨이스트 포켓 팬츠 블러썸에이치컴퍼니(Blossom H Company).
그린 프릴 시스루 블라우스, 멀티컬러 플레어스커트 원피스 모두 3.1 필립 림(3.1 Phillip Lim).
5월에 방영하는 드라마 <초면에 사랑합니다>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다. 지금까지 연기한 작품의 캐릭터와 비교했을 때 가장 밝은 인물일 것 같다. 계약직 비서로 일하는 ‘정갈희’를 연기한다. 나의 보스는 손이 많이 가고 챙겨줄 것도 많은데 나는 재계약을 위해 ‘따까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엄청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 보스가 사고를 당해 안면 인식 장애가 생긴다. 그런 보스를 위해 내가 그의 눈이 되고 손발이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로맨틱과 코미디 중에서도 코미디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들과 결이 많이 다르고, 그래서 걱정되고 무섭기도 하지만 기대된다. 즐거운 현장 분위기가 어떤 결과물로 이어질지도 궁금하고. 정갈희라는 인물은 나와 여러모로 많이 다르다. 늘 텐션이 높다. 이를테면 나는 벌레를 보더라도 그냥 조용히 ‘어, 벌레다’ 이 정도로 말하는데, 갈희는 의자 위로 팔짝 뛰어올라 소리를 지르는 정도의 차이랄까. 닮은 점이 있다면 잘 참는다는 거. 극 중 대사에도 나오는데 갈희는 뼛속 깊이 ‘을’인 캐릭터다. 피도 을이고 세포도 을이고.(웃음) 나도 무덤덤하게 어떤 상황이든지 잘 참는 편이다.
데뷔가 늦은 편인데도 지금까지 잘 올 수 있었던 건 그런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다. 스스로 잘 견뎌냈다고 칭찬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 많다.(웃음)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시간이 지나면 불안감 같은 감정에 익숙해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더라. 다만 지금은 그런 감정이 나만 겪는게 아니라는 걸 조금 알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잘 다스리기는 쉽지 않다. 엄마가 늘 많은 힘이 된다. 내가 잘 참을 수 있는 건 모두 엄마 덕분이다. 처음 연기를 시작하고 뭐가 뭔지도 제대로 몰랐을 때 엄마가 오늘 어땠느냐고 물어보면 너무 좋다, 재밌다고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짜증도 많이 부리고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늘 따듯하게 받아주신다. 엄마가 이런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를 잘 받아주고 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먼저 알아채신다. 연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극 중 인물에 따라 내가 조금씩 변한다. 처음엔 그런 변화가 어색하고 이상했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며 불안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변화를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인다.
과거 인터뷰에서 배우가 되기 전 회사원과 방송국 기자였다는 이력이 많이 언급되었다. 사회생활을 배우로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건 다른 경험을 가진 배우라는 면에서 연기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모로 단련되었다. 아마 내면이 조금 성숙해졌을 테고. 스스로 단련하는 법을 익혀서 그런지 연기하면서 힘들다가도 그 감정에 깊이 빠지지 않고 잘 빠져나온다. 회복 탄력성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아마도 더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면 다른 삶이 좀 궁금했을 것 같다.
무엇으로부터 회복하려고 하나. 자신을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작품이 끝난 후 찾아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허탈감 같은 거. 그럴 때는 딱히 방법이 없다. 그냥 방 안에 있는다. 세상 고독 다 진 사람처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불을 박차고 나오게 된다. 그럴 때면 엄마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고 그런다.
엄마를 향한 마음이 애틋하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 나를 많이 사랑해주는 엄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엄마에게 나라는 존재는 최고가 아닌가. 우리 엄마는 나밖에 모르는 딸 바보다. 밖에서 자존감이 낮아진 채 돌아와도 집에 오면 다시 정신 차린다. 드라마 <미생>에도 그런 대사가 나오지 않나.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다.’ 처져 있다가도 힘을 내야 엄마한테 덜 미안하다.
자신의 길을 늦게 선택한 셈이니 그에 따른 불안감도 컸을 것 같다. 처음엔 그랬다. 연기를 하기로 결심한 후 수업 듣고 오디션 다니던 때. 오디션에 떨어질 때는 당연한 거라 생각했고 딱히 상처받지도 않았다. 오디션을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았다. 그런데 한 6개월쯤 계속 떨어지니까 점점 두렵더라. 자꾸 실패하니까 이러다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다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 오디션을 봤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았는데 그 절실한 마음이 통했는지 1차 오디션이 끝나고 테스트 촬영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엄마가 옆에 계셨는데 엄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이 일에 확신이 있지 않았나? 아니, 확신은 없었다. 전혀. 오히려 욕심이 없었기에 하게 됐다. 내가 배우로 성공해서 엄마에게 차도 사드리고 집도 사드리고, 이런 생각도 없었다. 그냥 세끼 밥만 굶지 않으면 되겠다 싶었다. 나 하나 굶지 않고 살 수 있겠지, 뭐 이런 생각. 돌이켜보면 그때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제야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초면에 사랑합니다>에 진기주란 배우가 캐스팅되었다고 하니 감독님이 연기가 궁금하다고 했다더라. 앞으로도 사람들이 내 연기를 궁금해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의 세계에 잘 적응해가고 있는가? 이제는 많이 적응했고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 같다. 엄마가 보기에도 좀 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단다. 잠잘 때 뒤척이는 일도 줄고(웃음) 엄마가 나를 훤히 들여다보시거든. 내 딴에는 포커페이스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엄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내가 예민한 편이어서 늘 신경성 위염을 달고 사는데 요즘은 조금씩 덜해지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내가 적응을 많이 했다 싶고 조금은 마음이 가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외향적인 활동을 거의 안 한다. 운동을 싫어하고 사진도 잘 안 찍는데 가끔 주변에서 SNS에 사진 좀 자주 올리라고 하면 뼈가 아프다. 정말 올릴 게 없거든.(웃음) 그런 말을 들으면 심장이 덜컥한다. 예전에 미니홈피 할 때나 열심히 했지.
그거 아나? 목소리가 굉장히 작다.(웃음) 원래 그렇다.(웃음)
그래서 말에 집중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상대 배우와 케미스트리가 중요할 것 같다.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인데 김영광 씨는 그렇지 않다. 초면에 말도 잘 걸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사람이다. 어제 먹은 건강식품부터 아침에 자신이 무슨 운동을 했는지 등등. 신기할 만큼 이야기가 끝이 없다. 난 말수가 없는 편이어서 그런 모습이 신기한데, 영광 씨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재미있다. 이야기꾼이다. 그 덕분에 빨리 편해지고 친해졌다. 나를 편하게 대해주니 자연스레 같이 편해진다. 영광 씨가 감정에 솔직한 편이어서 나도 솔직해진다. 원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어떻게든 숨기고 좋게 풀어볼 생각을 하는데 영광 씨는 좋지 않으면 숨기기보다 솔직히 드러내고 그냥 둔다. 그런 성격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더라.
<초면에 사랑합니다>로 2019년을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채우고 싶은가? 작품으로 꽉 채우고 싶다. 지난해 드라마 <이리와 안아줘>를 끝낸후 연기에 대해 새롭게 깨닫고 어렴풋이 뭔가 더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학구열 같은. 그런 느낌이 샘솟는 찰나에 작품이 끝났고 뭔가 더 풀어 보고 싶은데 정해진 작품이 없어 갈증이 생겼다. 답답하기도 했고. 쉬지 않고 연기하고 싶다. 그래야 내 연기도 조금씩 더 나아질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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