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BIFF

니트 터틀넥과 와이드 팬츠 모두 김서룡(Kimseoryong).

김재영
<돈> <은주의 방>

드라마 <은주의 방>, 영화 <돈>에 이어 지금은 두 편의 드라마를 촬영 중이다. 배우로 데뷔한 이래 가장 꽉 찬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내지  않았나 싶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했고, 전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어디 가서 배우라고 당당하게 말하진 못한다. 내 입으로 쉽게 말하기 어려운 직업인 것 같다. 그래도 올해는 ‘내가 배우의 길을 향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확고하게 든 것 같다.

영화 <돈>을 보면서 ‘우성’이라는 인물을 소화하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우성처럼 완벽하다는 이유로 생겨난 캐릭터 전우성을 표현해야 하는 데다 유지태, 조우진,류준열 등 강렬한 힘을 가진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해내야 했을 테니. 전우성이라는 캐릭터는 냉정한 돈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돈보다 친구 일현(류준열)을 좇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혼자만 다른 지점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주눅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밝고 위트 있는 우성의 분위기를 더 재미있게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작품을 보면 늘 아쉬운 부분이 크게 보인다.

그럼에도 전작에 비해 유연해졌다,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반응도 있다. 그동안 주로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의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게 내 본모습이라 그런 것 같다. 평소에는 <돈>의 우성처럼 까불거리고 장난스러운 성격이다. 오디션을 볼 때 엉뚱한 짓도 많이 하고, 말도 웃기게 했는데 감독님이 영화에도 그런 모습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셨다. 나 스스로도 멋있거나 어두운 역할에서 벗어나 가볍고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은 갈증이 있었는데, <돈>과 드라마 <은주의 방>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연기하면서 대중의 반응에 신경 쓰는 편인가? 엄청 쓴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요즘은 더욱 그렇고. 실수를 안 해야겠다, 허점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편해지고 싶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히 떨쳐내기엔 아직 부족한 단계인 것 같다. 모델 출신이라는 사실도 지금은 괜찮지만, 전에는 신경 쓰이는 부분 중 하나였다. 오디션 볼 때 연기를 보여주기도 전에 모델은 연기를 못하니까 이미지만 보면 된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모델로 활동한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연기를 하게 된 거니까.

지금까지 한 작품 중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장면 하나를 꼽는다면? 영화 <두 남자>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연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 재미를 붙인 것 같다. 처음에는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두 남자> 때는 달랐다. 영화를 찍기 두 달 전부터 거의 매일 감독님과 만나서 같이 밥 먹고 영화 보면서 캐릭터 얘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온 환경을 대입해보기도 하고 캐릭터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보기도 했다. 악역이라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어떤 작품보다 감정이입이 잘됐다. 나름 만족하는 장면이 있다면 마동석 선배님을 때리는 신이다. 연습할 때는 솔직히 무서웠다. 누가 감히 마동석 선배님을 때릴 수 있겠나 싶어서. 그런데 막상 촬영할 때는 ‘성훈’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해서 겁 없이 들이댄 것 같다.

캐릭터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나? 일단 이 캐릭터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을 한참 갖는다. 그러고 나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감독님과 상의한다. 사실 <두 남자>의 성훈이라는 인물은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렇게까지 악하게 굴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고준 선배님과 대화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됐다. 선배님이 <청년경찰>에서 장기 밀매를 하는 조선족 역할을 맡았었는데, 연기할 때는 자신이 하는 범죄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줬다. 범죄인 건 알지만 이걸 하지 않으면 우리 조선족 식구들이 굶어 죽는다, 그러니까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갔다고.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내가 아니라 그 캐릭터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달리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배우로서 표현해내고 싶은 역할이나 작품이 있나? <은주의 방>에서 ‘민석’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로망 같은 남자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현실의 연애에 있을 법한 남자를 연기해보고 싶다. 영화 <연애의 온도> 같은 로맨스물. 사실 망가지는 역할을 무척 해보고 싶다. 모델 때부터 지금까지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멋있는 캐릭터다. 돈 많고, 일 잘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살아온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해서 그런지 자꾸 속으로 ‘그래도 사람인데’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멋있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이질적이라고 느끼는 거다. 그래서 나를 내려놓고 맘껏 망가지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내게서 나오는 에너지 중 가장 큰 밝음을 제대로 표출해보고 싶다.

배우로서 지금 고민하는 건 무엇인가?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을 때마다 반대로 나의 색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요즘 그런 생각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맡은 캐릭터 말고 실제 내가 좋아하는 것, 나랑 잘 맞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 나에 대한 생각이 무뎌지는 것 같다. 아직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 속에서도 연기를 계속 해나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어렵긴 하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한편으로는 즐겁다. 연기하면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새로운 걸 알아가는 과정도 좋다. 그럴 때마다 연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재영 BIFF

니트 터틀넥 김서룡(Kimseor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