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절개 네크라인 톱 레지나 표(Rejina Pyo).

새틴 롱 드레스와 맥시 코트 모두 미우미우(Miu Miu).

니트 롱 드레스 포츠 1961(Ports 1961).

이어커프 마마카사르(Mama Casar), 타이 디테일 이어링 앵브록스(Engbrox). 셔츠와 미니드레스 모두 토즈(Tod’s).

 

한 해를 끝맺는 달에 본인이 출연한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고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드라마 <런 온>에서 연기하는 ‘서단아’는 어떤 인물인가요?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후계자예요.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후계 서열에서 밀리죠. 단아는 일 욕심도 많고 일을 잘해요. 좋고 싫은 게 명확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확실히 알고 있죠. 말투도 직설적이어서 못됐다는 소리도 많이 듣지만 저는 단아가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뿐이죠. 시간에 민감해서 빙빙 돌려 말할 시간에 필요한 말만 하는 거예요. 돌려 말할 시간을 아껴서 빨리 행복해지자는 마음으로. 그러다 지금까지 철저히 지켜온 자신만의 질서와 룰을 깨뜨리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돼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늘 반가워요. 맞아요. 단아는 쿨한 사람이에요. 제가 만나고 싶었던 캐릭터가 일 잘하는 청년이었어요. 일만 생각하고 목표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요즘 감성으로 그런 여성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마운 기회라고 생각했고요. 단아뿐 아니라 신세경 배우가 연기하는 ‘오미주’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에요. 단아와 미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당당하게 싸우고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으며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요. <런 온>의 박시현 작가님이 저희에게 여성 캐릭터들이 가져가야 할 목표의식을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사랑과 권력, 현실 때문에 여성 캐릭터가 흔들리는 일이 없을 거라고요. 작가님의 그런 확고한 태도가 좋아요.

이 드라마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뭔가요? 단아로서 생각했을 때 단아는 청춘을 겪어보지 못한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챙겨야 했죠.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경쟁하며 쫓기듯 살아왔어요. 그러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그가 지켜온 질서를 깨는 사람을 만나요. 이 점이 저에게 질문이 돼요. 지금까지 지켜온 규칙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무엇인가에 올인하는 청춘의 시간을 보낸 적 있는가 하는 질문이요. 단아는 늦은 나이에 청춘의 시간을 만난 거죠.

단아의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청춘이 떠오르기도 하나요? 바쁘고 치열하게 살던 때가 생각났어요.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게 너무 아까웠고,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쉬는 데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시절이었죠.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만 의미 있다고 여겼어요. 단아를 보며 소녀시대 시절의 제가 생각날 때가 있어요. 단아는 옷차림부터 늘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죠. 저 역시 소녀시대 멤버로 살 때는 공항에 갈 때도 편한 모습으로 갈 수 없었어요. 늘 옷차림과 태도를 신경 써야 했죠. 흐트러진 모습으로 어딘가에 서면 사람들이 수군거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시간들이 지금의 최수영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공부할 시간도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공부하고 노력하며 하나라도 더 배울 때 일하느라 발전한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끊임없이 소진되기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대학교를 졸업하는 데 7년이 걸렸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다양한 특기를 가지고 있으면 유리한데, 저는 작품을 하나하나 만날 때마다 과연 내가 할 줄 아는 게 뭔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좀 더 자신감이 생겼어요. 과거에 다양한 활동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현장에서든 어떻게 해야 잘해낼 수 있을지 감이 잡혀요. 소녀시대 수영으로 살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받은 선물 같아요.

<런 온>은 또래 배우들과 함께하는 작품이에요. 그 점이 또 다른 에너지로 돌아오겠죠? 또래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현장이 거의 처음이에요. <런 온>은 유독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얘기를 많이 나눠요. 치열하지만, 나만을 위한 치열함이 아니라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모두의 치열함이에요.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뜨겁게 느껴져요.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기존의 로맨스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은 장면을 잘 만들어보자는 거예요.

영화 <새해전야>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오늘 문득 생각나는 현장에서의 기억이 있나요? <새해전야>의 ‘오월’은 제가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밝은 성격을 지녔어요. 홍지영 감독님의 디렉팅에 따라 유연해지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깨달은 현장이었고요. 촬영 현장에서 제가 준비해간 것과 감독님이 원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스스로 디렉션에 따라 잘 조율해갈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도 모르게 어떤 벽 안에 절 가두고 있었더군요. 도레미파솔라시도로 예를 든다면, 제가 생각한 건 ‘시’였는데 감독님은 건반 저 끝에 있는 ‘도’를 말씀하시는 거였어요. 방향이 다른 게 아니라 결이 아예 다른 거였죠. 무척 짜릿하고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어떤 감정에 대해 토론하고 납득할 때까지 배우를 이해시키는 감독님의 디렉션이 참 좋았어요. 특별한 순간이었죠. <런 온>과 <새해전야> 모두 각 역할을 두고 작가님과 감독님이 저를 생각하셨다는 점이 너무 설레요. 저도 가지지 못한 확신을 창작자가 가졌으니까요. <새해전야>의 오월은 무척 사랑스러운 인물이에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인물이 저와 어울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전 늘 에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을 해왔기에 제게 중요한 건 숫자였죠. 예능 프로에 나가면 조회 수가 많이 올라가는 장면을 만들어야 했고, 프로야구에서 시구를 하더라도 잘해내야 했어요. 포인트를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었죠. 그런 저로부터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하셨다는 점이 너무 흥미로워요. 감독님의 눈에서 그런 확신을 볼 때 막 뛰어들고 싶었어요. 어떻게든 저를 한번 요리해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로맨스 장르가 던진 숙제가 있다면 무언가요? 영화에 네 커플이 등장해요. 등장인물이 많아서 제가 어떤 몫을 해내야 할지를 고민했어요. 여러 색깔의 인물이 등장하니 저만의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때 감독님이 감정 중심으로 하라고 조언하셨어요. 감정을 중심에 두면 그게 곧 인물의 이야기가 된다고요. 전 그 장면의 에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감정이었던 거죠. 감독님이 그린 확실한 그림을 체험해본 게 이 영화를 촬영하며 얻은 가장 큰 가르침이에요. 감독님의 디렉팅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표현해볼 수 있구나, 하는 경험.

유태오 배우가 오랜 연인으로 등장해요. 로맨스영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죠. 유태오 배우는 말 그대로 스타 같아요.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 굉장히 열정적이고 예술가라고 느껴지는 사람이죠. 연기할 때도 그만의 에너지가 있어요. 그가 맡은 ‘래환’이라는 인물은 재독 교포예요. 해외에서도 작업했고 외국어도 잘해서 실제로도 연기와 태도 모두 멋있었어요.

영화에서 가장 사랑하는 한 장면을 꼽는다면요? 래환이 제게 독일어로 “너는 내 인생의 기적이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독일어로 래환이에게 그 말을 똑같이 해요. 말 대신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듯 오랜 연인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흐름이 좋았어요.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하고 영화 개봉을 앞둔 2020년은 최수영에게 특별하게 남을 것 같아요. 서른 살에 접어든 해이기도 하고요. 시간이 미치는 좋은 영향이 있다면 무언가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느낌을 없애주는 것? 이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무엇을 했을 때 빛이 나고 어떤 사람을 만나야 즐겁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안다는 것. 20대 때 아주 많은 것을 경험한 끝에 얻은 지혜 같아요. 예전에는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지나가버리는 게 아까워서 더 많이 경험해보고 싶었죠. 많은 가지를 쳐봤고 이제는 뿌리가 남았어요. 그 뿌리를 중심에 두고 30대를 지혜롭게 보내보려고 해요.

그렇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선택하며 시간을 보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뭐예요? 즐거움. 작품을 선택할 때도 분량이나 역할에 상관없이 대본을 읽고 덮었을 때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어요. 대사가 자꾸 생각나고 직접 해보고 싶을 때. 그럴 때는 아무도 저를 말릴 수 없어요.(웃음) 즐거움 대신 다른 것을 위해 선택하면 후회가 남아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서른 살을 보낸 올해가 어떤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나요? 몇 년간 연말이면 항상 마음이 힘들었어요. 연말은 한 해를 살아온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잖아요. 축하를 받기도 하고. 그래서 뭔가 이룬 사람들만의 자리라고 여겼어요. 모임과 시상식, 파티 이런 것들 모두. 한동안은 늘 무대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했죠. 음악 관련 시상식 무대에 더 이상 서지 않게 됐을 때는 이상하게 연말이 외로웠어요. 모두 한 해 동안 이룬 일들에 대해 저렇게 축하받고 서로 응원하는데 저만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런 기분이 들어 쓴 노래가 ‘겨울숨’이에요. 이 노래를 만든 해의 과거 2년, 그리고 그로부터 2년 가까이 늘 그런 기분으로 연말을 보냈어요. 그래서 겨울과 연말이면 외로웠죠. 혼자라서 외롭다기보다는 뭔가 많이 경험한 건 분명한데, 뭘 배웠는지 대답할 수 없는 기분 때문이었어요. 경험한 만큼 결과가 있었는지 확신도 없었고. 하지만 지금은 분명 달라졌어요.

올해는 뭔가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아니라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는 연말이네요. 더없이 감사한 시간이에요. 지금의 저는 누군가를 마음껏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그러고 나니 제가 축하받는 사람이 된 거예요. 후회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마음껏 쏟아낸 뒤 비로소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지금 바람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새해 전야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보냈으면 좋겠어요. 부디 모두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