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삶의 목표,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하며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삼수생 ‘영호’(강하늘). 꿈이 있었지만 가족의 행복한 삶을 위해 그 꿈을 접고 다른 희망을 찾아 살아가는 ‘소희’(천우희). 우연찮은 기회에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의 무채색 일상은 색을 찾아가고 설렘으로 하루하루가 조금씩 밝은색이 되어간다.
반갑습니다. 강하늘 안녕하세요. 강하늘입니다. 천우희 안녕하세요. 천우희입니다.(큰 목소리로) 밖이 소란스러우니 대답을 크게 크게 할게요.(웃음)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시나리오로 처음 만난 영호와 소희는 촬영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겪으며 입체적으로 변해갔나요? 강하늘 대본을 읽으며 가장 재미있었던 건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비어 있었다는 점이에요. 시나리오 속 영호는 무채색이었기 때문에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감독님이 의도한 부분인데, 시나리오의 비어 있는 부분을 연기자가 표현하는 대로 조금씩 채워가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개인적으로 그 과정이 재미있었고요. 천우희 인물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아 열어두고 접근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인물이 대부분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데 반해 소희는 잔잔하지만 생활력이 강하고 독립심이 있으며 씩씩한 인물이어서 좋았어요. 또 전작들은 많은 분석이 필요하고 깊은 감정을 보여줘야 했던 반면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는 좀 더 자유로웠죠. 감독님이 지금까지 보여준 천우희와 다른 얼굴을 바라셨어요. 감정적인 표현보다는 앵글이나 화면에 담기는 비주얼 측면인데, 막상 현장에서 제가 가진 것을 꺼내 쓰다 보니 저도 모르게 생긴 습관이 나올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디렉션을 주셨어요.
영호와 소희는 미래가 불확실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에요. 자신들의 지난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나요? 강하늘 그때는 공연을 아주 많이 하던 시절이었어요. 공연만 하며 살았죠.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 ‘좋아하는 일을 해야 될까요,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할까요?’라는 대사가 나와요. 그런데 저 역시 한창 공연할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뭔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공연을 내가 좋아하는 건지, 해야 하니까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건지 계속 질문했죠. 그런 점에서 영호에 더 공감하게 됐어요. 천우희 와, 그래도 하늘 씨는 20대 초반부터 일을 했네요. 강하늘 아니 왜 이야기가 이렇게….(웃음) 천우희 저는 스물한두 살 때 별생각이 없었어요. 소희는 엄마와 언니를 위해,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저는 막막한 채로 20대 초반을 보냈어요. 연기를 좋아했지만 연기에 대해 절실히 생각하지 않았고, 연기를 해야겠다거나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도 없었어요. 뭐랄까, 여전히 중·고등학생 같은 기분이었죠. 사춘기가 지속되는 느낌. 무엇을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나 하는 생각을 하던 때였어요. 불안감과는 다른 감정이에요. 무언가 갈구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어야 잃을 게 있어서 두려운 건데, 그냥 ‘무(無)’와 같은 시간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나를 맡겨두다가 연기를 시작하고 비로소 삶의 희열감을 느꼈어요. 일상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 연기를 하며 희열을 느꼈죠.
멜로영화지만 두 인물이 편지를 통해 교감하는 설정이라 현장에서 마주보고 연기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겠어요. 편지로 전해지는 감정의 변화가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궁금해요. 강하늘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과 대화를 아주 많이 했어요. 실제로 만나는 장면보다 편지로 감정을 나누는 장면이 훨씬 많아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편지를 쓰는 동안의 행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가령, 편지를 한 번에 쓰지 않고 쓰다 지우기를 반복한다든지, 서성이며 쓴다든지. 편지를 쓰는 행위에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의 설렘, 둘 사이의 공감 등의 감정을 담고자 했어요. 천우희 저는 접근 방식이 조금 달랐어요. 두 인물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건 감독님이니까 감독님의 디렉션을 따라가는 편이었어요. 소희는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니 제가 가장 잘 알 수 있지만 그 외의 부분은 감독님이 그리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했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려 했어요. 그런 디렉션을 바탕으로 상상하는 과정이 굉
장히 좋았어요. 하늘 씨가 연기하는 톤을 직접 보지는 못 하지만 내레이션을 통해 감정과 상황을 상상하는 점이 흥미로웠죠. 다만 현장에서 상대 배우의 눈을 보고 이야기할 때 상상하지 못했던 교감이 이뤄지는 순간이 있는데, 물리적으로 그럴 수 없어 좀 아쉬웠어요. 대신 여러 다른 방식으로 교감하는 것이 새롭고 좋았어요.
서로에게 새롭게 알게 된 의외의 지점이 있나요? 강하늘 천우희라는 연기자가 가진 무게감과 분위기가 묵직하고 견고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천우희 근데 허술하죠? 허술한 사람이에요.(웃음) 강하늘 근데 제 막연한 선입견이었어요. 누나는 상대방의 것을 굉장히 잘 흡수하고 자유분방하게 연기하는 배우예요. 아주 좋은 느낌을 줘요. 감독님의 의견이나 현장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상황을 하나씩 흡수하고, 해결해가는 매력적인 배우예요. 전천후 매력들. 천우희 감사합니다.(웃음) 전 다른 작품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늘 씨를 보면서 막연하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넉살 좋은 사람일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하늘 씨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상하지만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선이 분명한 사람이었어요. 사실 우리는 누구나 심리적인 거리감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선을 넘지 않아요.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로 자유롭지만 자신의 것을 잘 지켜내요. 강하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웃음) 천우희
그래서 오히려 의외로 경계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도 그렇거든요. 굉장히 많은 사람을 접하다 보면 자신을 잘 지켜야 하니까요.
그래서 두 분이 말을 못 놓는 걸까요?(웃음) 천우희 하하. 분명 영화 촬영이 끝나고 뒤풀이 때 말을 놓기로 했는데 오늘 너무 오랜만에 만났어요. 강하늘 그러니까요. 서로 다른 작품을 한창 촬영하다 오늘 다시 만나자마자 인사했어요. “안녕하세요.”
이 영화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어떤 장면인가요? 천우희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궁금해요. 예고편에서도 그 장면이 참 예뻤어요. 전 영화마다 아역이 나오는 장면이 참 좋아요. 마냥 사랑스럽고, 아역 배우들이 울면 따라 울게 되고. 그 천진난만함이 너무 예뻐요. 강하늘 아. 저는 가장 먼저 저와 얼마나 닮았는지 확인하는데.(웃음) 천우희 중요한 부분이죠.(웃음) 강하늘 저는 가죽 공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장면이 궁금해요. 가죽 공방 자체가 참 예뻤어요. 그 공간이 화면에 어떻게 담겼을지 기대돼요. 실제 영화에 나오는 가죽 가방 중 하나가 마음에 쏙 들어서 샀어요. 요즘 자주 들고 다니는데, 그 가방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질지도 궁금해요.
오늘 문득 생각나는 현장의 특정 장면이 있나요? 천우희 바로 생각났어요. 부산에서 첫 촬영을 했는데 그때가 딱 오늘 같은 날이었어요. 꽃나무들에 꽃망울이 통통해지고 벚꽃이 피던 때. 촬영장 주변이 온통 봄빛이었어요. 영화에는 봄이라는 계절만 담겨 있지 않지만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주는 수채화 같은 느낌과 가장 잘 어울리는 현장이었어요. 선선한 바람도, 귀여운 꽃봉오리들도, 그리고 산들산들한 기분도. 강하늘 저는 포스터 찍던 날이 문득 생각나요. 그날의 햇살이 꼭 오늘 같았거든요. 촬영 현장은 늘 사랑하는 곳이죠. 그날의 촬영 장면을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현장에 가지만 계산대로 찍은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이런저런 조건에 맞춰 제 생각을 잘라내는데, 그 과정이 힘들지 않고 깨달아가요. 그럴 때마다 맞는 걸 찾아가는 느낌이에요. 여러 보기를 가져와 그중 하나를 찾아가는 느낌이죠. 그게 참 재미있어요. 천우희 맞아요. 절대 계산한 대로 되지 않아요.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가요. 물 흐르듯이 할 생각으로. 계산하고 가면 오히려 몸이 굳어요. 의도할수록 더 잘 안 되고.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다 같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만들어간다는 점이에요. 방향성을 가지고 간다는 게 좋아요. 내가 아닌 다른 인물로서 살아 있다는 느낌도 좋고.
영화를 통해 관객과 공유하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요? 천우희 희망과 설렘, 그리고 따듯한 느낌이 전해지길 바라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희박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해요. 살다 보면 그런 가능성을 아예 포기할 수도 있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소소한 것도 작은 기적이 될 수 있죠. 그런 작은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감사한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요. 강하늘 저도 비슷해요. 흔한 일상 중 하나가 기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12월 31일에 비가 내리면 누군가는 ‘왜 지금 비가 내려?’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될 수 있으니까요. 비를 기다리는 영호와 소희처럼요. 그렇게 사소한 기적이 삶에 내포되어 있어요.
코로나19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개봉을 하게 되었어요. 이 힘든 시기에도 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요. 영화가 가진 힘은 뭘까요? 강하늘 온전히 영화에 빠져 두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보는 동안 다른 생각을 떠올리지 않고, 시간을 알차고 재미있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그 힘 같아요. 24시간 중 22시간을 다른 일로 고민하며 보냈더라도 나머지 두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온전히 집중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제가 영화를 하는 개인적인 이유예요. 천우희 영화는 인간의 본질을 얘기하는 것 같아요. 현실을 담아 보여줄 때도 있고,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상상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해요. 삶의 결과 가장 가까운 것이 영화 같아요. 물론 좋은 드라마와 다른 영상 매체도 많지만 두 시간 동안 세상의 디테일을 가장 잘 담아내는 게 영화라고 생각해요. 관객은 재미나 위로, 혹은 함께 분노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고. 그렇게 원초적인 무언가를 집요하게 보
고 싶어 두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