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패턴 원피스 마린 세르 바이 분더샵(Marine Serre by BoonTheShop).
블랙 베스트와 팬츠, 벨트, 슈즈 모두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화보 컨셉트를 직접 제안했어요. 어떤 모습을 상상하며 정한 건가요?
제 나이 스물여섯에 남기고 싶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의 모습을 담기에 가장 좋은 방식을 고민하다 클래식한 흑백사진을 떠올렸어요. 평소에 좋아하던 사진의 형태거든요. 흑백만이 지닌 힘이 있잖아요.

그동안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기도 하고요.
맞아요. 그게 요즘 가장 큰 재미예요. 작품에서 배역으로 보여준 모습 이외에 사진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는 게 좋더라고요. 모니터링하다 보면 저도 모르는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안 해본 걸 시도해보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차고 진취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무엇이든 조심스러워하는 성정도 엿보여요. 작품을 선정할 때 고민이 많긴 해요. 도전이 무서운 건 아닌데, 하게 되었을 때 최소한 플랜 A부터 D까지 미리 계획하고 시뮬레이션도 해봐요. 고민은 치열하게 하되,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크게 주저하지 않는 편이에요.

플랜을 D까지 세워요?
거의 A, B, C, D, E… A를 실패하면 B를 해보고. B가 실패하면 다른 시도도 해보는 식이에요.

대개 어디까지 갔어요? A에서 끝났어요, 아니면 E까지 갔어요?
장르에 따라 다른데 아무래도 일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게 많지 않죠. 그러다 보니 C나 D까지 갈 때가 있어요. 다행히 오늘은 A에서 끝났어요. 완전 A.(웃음)

연기할 때 선택할 수 있다면 새로운 걸 시도하는 쪽인가요, 아니면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는 편인가요?
어릴 땐 꼭 하고 싶은 걸 했어요. 제가 뭘 잘하는지 몰랐으니까요. 잘하는 걸 찾기 위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 거죠. 그래서 남장도 해보고, 액션물도 해보고. 도전에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러다 한 2, 3년 전에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고민한 시기가 있었어요. 감독님이나 주변 사람들한테도 많이 묻고 다녔어요. 그렇게 계속 하다 보니 이제는 어떤 연기가 편하고, 많은 분이 제 어떤 모습을 좋아해주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어요. 데이터베이스를 쌓은 거죠. 지금도 알아가는 중이지만요.

최근에 알아낸 사실이 있다면요?
잘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분이 제 밝은 모습을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여신강림>이나 이전의 로맨틱 코미디물에서 맡았던 캐릭터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그런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캐릭터들이 주변 사람들한테도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굳이 제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오히려 밝은 걸 연속적으로 하는 데 대해 두려움을 갖기보다 제가 계속 보여주는 밝은 모습이 어떻게 하면 겹치지 않을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점프수트 보테가 베네타 (Bottega Veneta).
베이지 원피스와 슈즈 모두 스포트막스(Sportmax).

 

지난 작품을 복기하는 편인가요?
아역으로 데뷔해서 벌써 15년이 지났으니 꽤 많은 작품이 쌓였을 텐데요. 한참 안 봤는데 최근 팬들이 제가 아역때부터 출연한 작품을 영상으로 편집해서 커피 차랑 같이 보내주신 덕에 필모그래피를 살필 기회가 있었어요. 저도 잊고 있던 옛날 모습도 있어서 ‘아 저 때 저랬었지, 그 작품 좋았었지’ 하면서 되새겼어요.

15년을 배우로 지내면서 기점이 되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한참 아역으로 활동하던 중에 중학교 2학년 때 키가 갑자기 컸어요. 원래 되게 작았거든요. 그런데 중2 여름방학 때 확 컸어요. 살이 틀 정도로요. 아역을 하기에는 키가 크고, 그렇다고 성인 역할은 할 수 없어서 한동안 오디션에서 떨어지기만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제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요. 특정 이유로 못 하게 되니까 오히려 욕심이 확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연기를 좀 더 직업으로 바라보고 진지하게 임하게 됐어요.

또 다른 기점도 있었을까요?
열아홉에서 스무 살이 되는, 아역 배우에게 마의 구간이라고 말하는 시기요. 그 시기가 중요하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두려우면서 동시에 기대가 컸어요. ‘나이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뀐다! 나 이제 교복 벗는다!’ 하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숫자만 바뀔 뿐 제가 바뀌진 않더라고요.

20대 중반에도 교복을 입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심지어 올 초까지 계속 입고 있었잖아요.(웃음) 시간이 지나니까 그게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주기로 따지면 지금쯤 또 기점이 될 만한 시기가 도래했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오고 있어요.

요즘은 어떤 생각에 빠져 있나요?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을 선택하거나 대중을 만나는 기회가 다양하고 많아지기 때문에 이 일에 적응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하면 할수록 작품 선택하기가 더 힘들고 어렵더라고요. 요즘 고민은 차기작에 대한 거예요. 비단 이미지 변신에 한정한 생각은 아니고요. 이‘ 제 다 보여준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걸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요. 계속 고민 중인데, 아무래도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충전되기까지 시간을 두고 쉬면서 다음을 기약하려고요.

이렇게 충전하는 시간엔 무얼 하면서 보내나요?
지루한 대답일 테지만 책을 많이 읽어요.

지루하기보단 예상했던 대답이에요.
언젠가 한 번은 그 예상을 엎어야 하는데.(웃음) 그런데 정말 책을 많이 봐요. 가끔은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은데 시간은 한정적이고, 눈은 두 개뿐이고, 수용할 수 있는 뇌는 하나라 아쉬워요. 읽고 싶은 책은 미리 사두는 편인데, 항상 많이 밀려 있거든요. 사실 지금도 집 앞에 책이 도착해 있어요. 절판됐던 건데 어렵게 구했거든요.

어떤 책이에요?
언니가 추천해준 건데 <가위 들고 달리기>라는 책이에요. 너무 좋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최근에 중고로 찾았어요. 읽으면 후기를 올릴게요.

이 정도 애정이면, 책과 사랑에 빠지게 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어요.
부모님이 책을 엄청 좋아해서 자주 읽으시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습관을 들인 것 같아요. 요즘 조금씩 글을 쓰기도 하는데, 그러잖아도 얼마 전에 책이 왜 좋은지에 대해 써봤어요. 한마디로 책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책에 실망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더 집착하게 되는 지점도 있어요. 사람 일이 늘 마음처럼 되지는 않잖아요. 이럴 때 누군가에게서 좋은 해답을 얻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고요. 그런데 책은 기대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위로가 되는 글귀를 제게 선사해요. 그때의 놀람이나 감동이 커요. 늘 제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예요.

직업이 배우라는 것과 책을 사랑한다는 두 가지 사실로 미루어 봤을 때, 문가영이라는 배우는 이야기의 힘을 믿을 거란 예상이 되네요.
맞아요. 제가 생각하는 이야기의 힘은 다른 관점을 열어주는 거예요. 영화나 드라마, 책 속의 다양한 이야기가 제 이해의 폭을 넓혀줘요. 영화나 드라마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저와 성향이 완전히 다른 캐릭터나 장르여도 읽다 보면 설득되어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힘은 곧 설득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어떤 글이든 쓰는 이들을 동경해요. 활자에서 나오는 힘, 참 신기해요. 글 쓰는 거 어렵지 않아요? 어떻게 써요?

개인적으로는 마감이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좀 전에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는 글은 어떤 형태인가요?
단어일 때도 있고 문장일 때도 있고. 그리 길진 않아요. 그냥 생각나는 걸 써두는, 기록에 가까운 글이에요.

문가영 배우의 세계 안에 들이고 싶은 이야기나 감정은 무엇인가요?
너무 많아요. 배우에게는 실패해도 다 연기 공부에 써먹을 수 있다는 굉장히 좋은 쿠션이 있으니까, 어떤 감정이든 여과 없이 제 세계에 들여놓으려고 해요. 감정이 눈에 보이는 거라면 그걸 슬라임처럼 엄청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평소 생활은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서 움직이려하는 편인데, 감정만큼은 불규칙적이어도 피하거나 숨기지 않고 그대로 둬요. 물론 사람들 앞에서는 아니고, 혼자 있을 때만요.(웃음) 생각도 공상도 많이 하면서 감정적인 부분만큼은 자유로운 면을 들이려고 하는 편이죠. 그 외에 사람 문가영으로서 항상 마음속에 두려고 하는 건, 여성과 인권 문제예요. 그게 곧 제 문제이기도 하니까, 늘 공부하려고 해요.

일에서도, 삶에서도 늘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희망 사항 중 하난데,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단순하고 쉽게 많은 것을 받아들이면서 일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고민이 많아서 늘 피로한 삶을 살거든요.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을 되게 많이 들어요.

본능적이고 직관적일 때도 있나요?
연기할 때요. 그래서 연기를 좋아하나 봐요. 작품 선택은 고심해서 하지만, 연기할 땐 의외로 즉흥적이에요. 정보 전달이 아닌 감정적인 신은 대본도 잘 안 봐요. 어떤 맥락인지보고 대사만 다 외우지, 나머지 것들은 현장에서 하려고 해요. 어떤 환경일지,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까요. 저 애드리브도 좋아해요. 아마 연기할 때 가장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연기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요.(웃음)
그러니까요! 공무원이 되었을 수도 있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