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핀스트라이프 셔츠, 네이비 패턴 타이, 브라운 체크 팬츠 모두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브라운 샌들 발리(Bally).

화이트 피케 셔츠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베이지 팬츠 아미(Ami).

네이비 수트 클럽모나코(Club Monaco), 화이트 셔츠 에잇 바이 육스(8 by YOOX), 블루 샌들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아까 촬영할 때 들었는데 햇빛을 좋아한다면서요? 야외에서 햇빛 쬐는 걸 좋아해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거든요. 몸 관리 중일 땐 특히 더 그런데, 지난겨울에 촬영하며 진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이제 여름이라 다행이네요. 화보를 촬영하고 있으면 연기하는 듯한 기분도 들어요? 네. 오늘은 날카로우면서도 나른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떠올렸어요. 화보 촬영은 매번 새롭고 즐거워요. 평소 사진을 자주 찍지 않으니까 화보가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2013년에 개봉한 <노브레싱> 이후 두 번째 영화인 <파이프라인>이 5월 26일에 관객을 찾아요. ‘땅 아래 숨겨진 기름을 훔쳐 인생 역전을 꿈꾸는 도유꾼들의 이야기’라고 소개돼 있어요. <파이프라인>을 준비하며 용접을 비롯해 기름을 훔치는 장면에 필요한 기술을 배웠어요. 촬영 현장에서 직접 하진 않았지만, 전문가처럼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했죠.

소재가 독특해 촬영 현장도 이전 작품들과 사뭇 달랐을 것 같아요. 땅굴에 들어가면 흙냄새가 심하고 기관지나 피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하루 종일 촬영해야 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위해 세트를 황토로 제작했더라고요. 좁은 공간이지만 환기가 잘되도록 정밀하게 설계했고요. 그 덕분에 쾌적한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천공 기술자 ‘핀돌이’를 연기하죠. 그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핀돌이는 오로지 돈에 대한 야망으로 도유 범죄를 저질러요. 경찰이 들이닥치거나 잠입 수사를 할지도 모르니 땅굴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할 때도 깔끔한 수트 차림을 하고 있어요. 고급 시계를 차고, 비싼 차도 끌고 다니죠. 하지만 핀돌이는 점차 자기 자신보다 더 정의롭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돼요. 그 상황을 풀어가는 모습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판단력이 뛰어나 불리한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행동하며 해결해가거든요.

<파이프라인>은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 등을 만든 유하 감독의 작품이에요. 핀돌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며 감독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해요. 핀돌이가 민첩하고 예민한 캐릭터인 만큼, 감독님은 그의 말투에서도 툭툭 던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를 원하셨어요.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예요. 예의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핀돌이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면도 지니고 있어요. 이 지점에 대해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연기하며 쏟아내는 것보다 더 깊은 감정을 끄집어내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고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결과물을 봤을 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스스로 한층 성장한 기분이라 <파이프라인>은 제게 굉장히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핑크 브라운 더블 수트와 그레이 페이즐리 스카프 모두 김서룡(Kimseoryong), 틴트 선글라스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민트 골지 피케 니트 토즈(Tod’s), 카키 스트링 팬츠 에잇 바이 육스(8 by YOOX).

카키 블레이저와 카키 벨티드 팬츠 르메르(Lemaire), 다크 그레이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3년 만의 드라마 출연 소식도 들려요. 판타지 로맨스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에서 ‘멸망’ 역을 맡았어요. 긴장되는 마음으로 1화를 본방 사수했어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봤는데, 한편으론 저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들기도 했어요. 무엇이든 100% 만족하기는 어려운 듯해요.

1화에서 멸망이 한 대사가 인상적이에요. “하찮고 사라질 것들이 뭐가 그렇게 위대한데?” <멸망>에서 멸망이라는 단어는 재앙뿐 아니라 인간의 수명이 다하고, 꽃이 시들고, 트렌드가 바뀌는 등 사라지는 모든 것을 가리켜요. 수천 년 동안 그 장면들을 바라보는 존재인 멸망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멸망은 마음속에 큰 슬픔을 가지고 있어요. 슬픔을 직면하다 보니 이제는 덤덤해진 거죠. 그러다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덤덤한 척 살아가는 인간 ‘동경’(박보영)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요.

전작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쇼핑왕 루이> 등에서도 로맨스가 돋보였어요. 멸망과 동경은 어떤 케미를 보여줄까요? 멸망은 동경과 어떠한 계약을 맺은 후 그에게 휘둘리기 시작해요. 항상 자기 멋대로 행동했는데, 동경에게는 통하지 않으니 짜증이 나면서도 슬슬 마음이 그를 향해 움직이죠. 멸망이 동경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 과정이 흥미로워요. 티격태격하면서도 잘해주고, 연인처럼 보여도 결코 연인은 아니거든요. 가슴 아픈 일도 많이 생길 테지만, 둘을 응원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 거예요.

멸망은 자신의 생일에 단 한 명의 인간이 가진 소원을 들어줘요. 만약 지금 멸망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 소원을 이뤄준다고 한다면 뭘 말하고 싶나요? 음… 그냥 모두가 행복하게 해달라고 이야기할 거예요. 화내거나 싸우지 말고요. 다 함께 사는 세상이잖아요.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하면 저도 좋고, 그러다 보면 삶 자체가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최근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고기 구워 먹을 때요.(웃음) 어떻게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고기라면 언제든 좋아요. 사실 전 취미가 많지 않아요.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게임하거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해요. 밖에 나가면 에너지를 쏟는 스타일이다 보니 집에 돌아온 이후에는 조금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저 자신을 위해 가만히 있으려고 해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요? 그럴 때도 있지만 대체로 오만 생각을 다하죠. 아주 사소한 것부터 일까지도요. 모니터링하며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자체가 제게는 일의 연장선이니 일과 일상을 완벽히 분리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가수 활동을 시작으로 배우로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어요. 연기와 음악이 서로 시너지를 내기도 하나요? 둘 사이의 시너지가 분명히 있어요. 어떠한 상황을 상상하며 노래를 부르면 감정적으로 도움이 되고, 반대로 그동안 해왔던 음악 작업이 연기할 때 빨리 몰입할 수 있게끔 하기도 해요.

최근에 작업한 음악도 있어요? <멸망> OST를 직접 만들고 불렀어요. 현재 녹음을 마친 후 작업을 마무리해가는 중이에요. 오늘 일정 마치고 집에 갈 때 그 노래를 들으려고요.

아까 촬영할 땐 힙합 듣고 싶다고 했죠. 화보 촬영장에서는 주로 힙합을 들어요. 그래야 파이팅 넘치거든요.(웃음) 그날의 기분을 대변하거나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다는 것이 음악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요.

데뷔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초반에 세웠던 목표를 얼마나 이뤘나요? 처음 가수를 꿈꿨을 땐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의 제게는 아주 큰 목표였으니까요. 가수가 된 이후에도 여러 목표를 하나씩 실현할 수 있었어요. 앨범을 냈고, 콘서트도 열어봤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제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계속 새로운 목표들이 생겼어요. 앞으로도 끝은 없을 것 같아요. 아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종적인 꿈일 듯해요. 누가 봐도 잘한다고 느끼게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개개인의 취향을 초월하고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연기도 노래도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라요.

앞으로의 서인국에게 기대할 만한 관전 포인트를 꼽는다면요? 많은 걸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연기와 음악 활동은 물론이고,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가면서요. 앞으로 제가 뭘 하는지 지켜본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