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김소진
블랙 점프수트 포츠1961(Ports 1961). 이어링 제이미앤벨(Jamie & Bell). 브레이슬릿 모두 피아제(Piaget).
부산국제영화제 김소진
블랙 코트, 안에 입은 드레스, 화이트 사이하이 부츠 모두 프라다(Prada), 골드 이어링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그간 인터뷰를 많이 안 하셨죠? 영화 홍보할 때 몇 번 해봤는데요. 이렇게 대대적으로 한 적은….(웃음)

대부분 사양하셨다고 들었어요. 조심스럽고 섬세한 성정을 지녔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잘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런가 봐요. 마음만큼 표현이 잘 안 돼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연기는 제 일이니까 하는데요. 인터뷰는 연기가 아니니까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 오늘 제가 말을 잘 못 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열심히 답해볼게요.

처음부터 배우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요. 대학에서는 영상 제작을 공부하고, 이후 연극 연출로 전공을 바꾸고 다시 연기 전공으로 옮겼습니다. 꽤 여러 행선지를 돌아 배우가 되었어요. 제가 대단한 포부가 있어서 배우가 된 건 아니에요. 연극이라는 매체를 좋아했고 그 안에서 살아있는 것이 행복했지만 그렇다고 배우만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연극이 하고 싶어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거죠. 어떻게 지금까지 하고 있는지 저도 신기해요.(웃음) 궁금하고 관심이 가는 지점들, 내 생각과 마음을 따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배우의 자리에서 마음이 멈춘 데에는 본인의 기질 혹은 연기하는 과정에서 느낀 무언가가 작용했을 텐데요. 궁금함? 궁금한 것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두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사교적인 편은 아니에요. 굉장히 소극적인 부분들이 있고 학교 다닐 때도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늘 누군가의 삶을 궁금해했어요. 저 사람은 어떤 생각과 어떤 상황들을 경험하며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요. 한데 제가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경험하면서 지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연극을 하면 다양한 삶을 지켜보고 경험하고 만날 수 있는 거고요. 그 속에서 제가 얻는 삶의 원동력이 있었어요.

그 점이 20대 내내 무대 위에 선 이유기도 하지요? 흔히 연극은 삶이라고 하잖아요. 연극 작업을 하며 그 말을 온전히 경험했어요. 무대에 올려진 결과물로서만이 아니라 완성을 위해 작업하는 모든 과정이 삶이었던 거죠. 동료 배우들을 만나고, 낯선 사람과 다양한 감각을 공유하고, 부딪히고 싸우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고.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기적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이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무척 많아요.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연기를 하고 싶어,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보다는 그저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내고 싶은 욕망이 더 컸어요. 연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김소진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주니까. 조금이라도 잘 살아가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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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러플 트리밍 톱, 팬츠 모두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이어링, 브레이슬릿, 링 모두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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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더 재킷, 화이트 블라우스, 이어링 모두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연극 무대에 오르는 와중에 2010년부터는 틈틈이 영화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한재림 감독의 <더 킹>이 큰 변곡점이 되었죠. 당시 백상예술대상을 시작으로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 등 그해 대부분의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어요. 크게 주목받았고요. 본인에게는 굉장히 낯선 시간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떠셨어요? 정리가 안 됐었던 것 같아요. 갑작스러웠고요. 단역으로 우연히 상업영화에 참여했고 내가 다시 돌아올 곳은 무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 영화 작업을 할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어요. 무엇보다 정리가 안 됐던 건 스스로 별로 한 게 없다고 느껴서였던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안희연’이라는 인물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정작 촬영 현장에는 열 번 정도 갔거든요. ‘나는 열 번밖에 안 갔는데’ 싶은 거예요. 나보다는 더 많이 고생한 사람들이 있는 걸 잘 아니까 내가 한 일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어요. 한데 제가 주목을 받으니 상대적으로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더라고요. 동시에 앞으로 영화 작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어요.

잠시 들르는 곳으로 생각했던 영화 현장이 연극만큼이나 의미 있는 공간으로 느껴지게 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영화란 나에게 뭐지?’라는 그 질문을 하게 됐고,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스태프와 배우, 감독님 등 영화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들이 얼마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군분투하는지 곁에서 볼 수 있었어요. 연극 작업에서 느꼈던 감동을 느끼기도 했고요. 이 사람들을 다시 현장에서 만나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점점 영화에 대한 애정이 커진 것 같아요. ‘한번 해보지, 뭐’ 식의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서는 안 되는 곳이구나, 연극에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부은 것처럼 영화 안에서도 주어진 몫들에 대해 책임있게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연극을 하다 영상 매체를 경험한 배우들이 주로 낯선 현장과 카메라라는 존재의 이물감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잖아요. 그런 낯섦을 느끼지 못했는지 영화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서도 진짜 기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작품마다 현장이 다르니 현장의 낯섦으로 인한 시행착오는 지금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무대가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쳤듯 영화 현장 역시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 할 거면 모르겠는데 이 곳에서 일을 계속할 거면 이 환경과 친해져야 한다고요. 그래야 내 숨을 쉬면서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거라고 봤어요. 함께하는 동료나 선배님들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거든요. 일상과 슛의 경계가 없다고 할 정도로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지 놀라요. 주위 환경에 제압당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배우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최대한 보여주려면 나름의 마음가짐과 생각,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고요.

자신만의 숨을 쉴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본인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나요? 답이요? 처음 영화 현장에 왔을 때는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어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세팅된 상황에서 배우는 연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초반에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사실에 대한 부담과 압박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연기에 몰두해야 할 힘이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불필요하게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거기서부터 오는 불안감을 계속 경계하려고는 하는데 지금은 최대한 뭘 더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지금 네가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편이에요.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마음이 조금 괜찮아져요.

지난 8월, 한재림 감독과의 두 번째 영화 <비상선언>이 칸 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았습니다. 재난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대체로 압도적인 서사와 긴장을 만들어내지요. 2분짜리 예고편만 봐도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보셨나요? 특별한 누군가만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고요.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으로서 나는 과연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게 될까라는 질문이 드는 작품이에요. 시나리오만 봐도 분명 힘들 것 같았지만, 그만큼 궁금했고 직접 몸으로 부딪혀내고 싶어 선택했어요. 재난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을 만큼 몸과 마음이 참 아팠어요. 재난영화는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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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코트 프라다(Prada), 골드 이어링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부산국제영화제 김소진
블랙 재킷, 스커트, 이어링, 링 모두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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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트위드 재킷, 레드 팬츠, 벨트, 네크리스, 이어링 모두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만 봐도 굉장합니다. 영화 <더 킹>에서 그랬듯, 그럼에도 배우로서 자신만의 기운으로 나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 만약 그렇다면 그건 제가 기가 세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연기라는 게 서로 기를 겨루는 것이 아니니까요. 경험 많은 선배님들이 지닌 것들을 제가 어떻게 넘을 수 있는 것도 아닌거고요. 한데 그렇게 보였다면 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떤 캐릭터는 그렇게 존재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더 킹>에서 안희연은 그렇게 존재해야 하는 인물이기에 배우로서 그 점에 충실했던 거예요. 인물과 인물 사이에 흐르는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야 하는 역할이었으니까. 이를 위해 저는 작품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해보는 것이고요.

연기가 어렵고 괴롭다고도 했습니다. 어렵고 괴로운 마음을 내려놓고 담대하게 연기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결국에는 내가 나를 믿어줘야 되는 것 같아요. 모두가 다 나를 믿어주지는 않잖아요. ‘그럼 소진아, 너라도 너를 믿어야 하는 거 아니니’ 해야죠. 우리는 아무래도 내 안의 말보다는 주변의 말에 더 귀 기울일 때가 많고 그러다 보면 휘둘리게 되고, 결국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두려움과 불안이 커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를 믿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조금 모나고 부족하고 서툴기도 한 나를, 그래도 내가 믿어줘야겠죠.

오늘 얘기를 나눠보니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배우로서의 고민과 분리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과 연기를 구분해서 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특별히 배우 김소진으로서 이런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없어요. 저에게 주어진 삶 안에 연기와 배우가 있는 거니까요. 삶의 과정 안에서 해나가고 있는 것이죠. 아까 이야기했던 궁금함이라는 지점과도 같은데요. 그 궁금함이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무언가를 보게 하기도 하고, 찾을 수 있게 하고, 또 그것이 저를 또 행복하게 해요. 그래서 한 번 살아볼 만하다고 느껴요. 나에게 주어진 삶을 후회 없이 충실히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들고요.

충실히 살아가며 잃고 싶지 않은 자신의 어떤 모습이 있다면요? 음… 잃어버려도 괜찮아요. 무언가를 고수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때로는 아무 것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뭐가 있어서, 혹은 많아서 불편할 때가 있잖아요. 오히려 없을 때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거리들이 생기고, 다시 움직여보고 싶은 행동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다 잃어버리고 나면 그다음 무언가 또 채워진다고 생각하는 게 제게 더 이롭고, 흥미로운 것 같아요. 딱히 가진 것도 없고요.(웃음) 뭔가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렇게 그대로 흘러가고 싶어요. 계획이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니 순간순간을 살다 보면 무언가가 또 주어지겠지, 그럼 또 그것대로 충실히 대하고요.

삶이든 영화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어떤 것이 나다운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최대한 편한 숨을 쉬고 싶어요. 나에게 자연스러운 숨을 쉬면서 살고 싶어요.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이 순간에 내가 내 숨을 쉬고 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삶도 연기도 맞고 틀린 게 없으니 무언가를 기준 삼아야 한다면 ‘내가 지금 자연스러운가’예요. 무언가가 왜 불편한지도 계속 궁금해할 거 같아요.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이유를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또 찾아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