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세 번째 EP <her>를 발매했어요. 이 음반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지(ZEE) <her>의 가제가 ‘너라는 세계’예요. 청자 주변의 연인, 어머니, 어린아이 등을 자유롭게 떠올리며 이번 앨범을 들어준다면 좋겠어요. 오주환 음악이 아도이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각자 생각하는 대상에게 닿았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아요. ‘her’는 여성을 의미하지만,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대상을 가리킬 수 있을 거예요.
음반 커버의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달라졌어요. 스페인 일러스트레이터 아그네스 리카르트와 협업했죠. 박근창 아그네스의 그림은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쨍한 색감이 참 좋더라고요. 지 <her> 커버의 얼굴을 봤을 때 성별, 나이, 인종을 비롯한 특성이 단번에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어요. 작가가 그려준 여러 버전의 얼굴 중 하나를 골라 점차 발전시켜나갔죠.
<her>를 작업할 때 전작에 비해 무엇을 신경 썼나요? 지 ‘아도이의 음악적 색깔’ 하면 마치 구름처럼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이 들어요. 이 색깔을 계속 가져가는 동시에 일부 트랙에서는 발이 땅에 붙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담아보려고 했어요. 정다영 ‘Antihero’와 ‘Saint’ 등 일부 곡들은 공연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요. 무대 위에서 표출되는 에너지가 좋았던 ‘Don’t Stop’이나 ‘San Francisco’와 비슷한 느낌의 곡들도 <her>에 수록하려고 했죠.
이번 음반의 믹스를 제주에서 했다고 들었어요. 오주환 우리와 믹스를 자주 진행하는 스튜디오가 서울과 제주에 마련되어 있는데, 엔지니어가 <her> 후반 작업을 제주에서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지 서울은 아무래도 생활하는 곳이라 신경 써야 하는 게 많잖아요. 제주에 가니까 쉴 땐 쉬고, 작업할 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어요. 박근창 스튜디오가 바다 근처에 있었고, 마음껏 탈 수 있는 서프보드도 있었어요. 하루는 주환이 형하고 서핑을 즐긴 후에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열쇠가 똑 부러지더라고요. 오주환 바닷바람에 열쇠가 삭아버린 거죠. 그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웃음) 지 엔지니어가 석양을 아주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해가 저물 무렵이면 계속 시간을 확인하시다가 느닷없이 “지금 나가야 해!”라고 외치셨죠. 제주에 머물 때 흐린 날이 많았거든요. 결국 석양을 두 번 정도밖에 못 봤어요.(웃음)
‘Simply’와 ‘Antihero’가 <her>의 타이틀곡이에요. 오주환 제가 곡 소개를 글로 정리해서 휴대폰에 저장해놓았는데, 한번 읽어볼게요. ‘Simply’는 “사랑이란 바다에 빠진 나, 그런 나를 손잡아 구해주는 너”. ‘Antihero’는 “청춘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버텨내는 우리가 영웅은 아닐지”. 지 ‘Simply’는 물에 빠진 듯한 느낌의 곡이에요. 예전에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하는 사람을 촬영한 장면들을 모아 한 편의 영상으로 만든 적 있는데, 그 영상을 ‘Simply’ 뮤직비디오에 넣었어요. 정다영 뮤직비디오 속 텔레비전에 그 영상이 나와요. 지 제 영상을 본 정진수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더해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주셨어요. 한 여성이 영상 속 주인공과 함께 헤엄치듯이 몸을 움직이죠. 오주환 ‘Antihero’ 뮤직비디오는 이우정 감독님이 직접 영화 <최선의 삶> 미공개 신들을 활용해 제작해주셨어요. 평소 아도이의 음악을 자주 듣고 ‘Antihero’도 너무 좋다며 먼저 연락해주셨죠. 멋진 장면들을 음악에 맞춰 넣어주셔서 감사해요.
아도이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을 살펴보니 <her>에 #여르메아도이 (여름에 아도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였어요. 오주환 아도이의 사운드가 청량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여름, 파도, 해변, 서핑, 맥주의 이미지가 떠오르죠.
이제 여름을 지나 가을이에요. 올가을에 들어볼 만한 <her>의 트랙을 각자 하나씩 추천한다면요? 박근창 잔잔하게 듣기 제격인 ‘Simply’를 꼽고 싶어요. 오주환 전 ‘Antihero’요. 여름과 가장 어울리는 곡이지만, 여름의 열기는 가을에도 이어지죠.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일부 나라의 가을은 언제나 뜨겁습니다.(웃음) 지 <her> 마지막 트랙에 ‘Up’이라는 연주곡이 있는데…. 정다영 아, 내가 ‘Up’ 하려고 했는데! 지 여름의 뙤약볕이 아니라 가을밤이 연상돼요. 정다영 같은 곡으로 골라도 되죠?(웃음) ‘Up’은 지난가을에 지가 키우던 고슴도치 ‘솜솜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서 만들어진 곡이에요. 이러한 탄생 배경과 분위기가 가을과 잘 맞고, 듣고 있으면 아련한 기분도 들어요.
이번 음반은 전반적으로 사랑에 관한 노래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지 ‘Saint’는 엄밀히 말하면 사랑 노래는 아니에요. 종교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거든요. 박근창 믿음. 정다영 믿음, 소망, 사랑! 지 생각해보니까 사랑 노래가 많긴 하네요. 우리가 평소에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고요.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요? 정다영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사랑받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힘들어진다고 느껴요. 20대 때처럼 사랑에 온 마음을 쏟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삶의 경험들이 쌓여가다 보니 두려움이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요? 만약 제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건 참 감사한 일일 거예요. 사랑의 대상은 사람뿐 아니라 음악을 비롯한 그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 테고요. 박근창 저도 같은 의견이에요. 지 모든 것의 해답은 결국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사랑받기 위해서인 것 같고요. 사랑이 삶의 동력이 되는 거죠. 오주환 사랑은 실체가 없지만,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포섭되어 있잖아요. 모든 걸 아우르는 사랑이 제일 가치 있다고 느껴요. 사랑이라는 단어도 참 매력적이죠. 지 이미 사랑을 앨범명에 한 번 썼어요. 아도이의 두 번째 EP가 <LOVE>거든요. 다음엔 프랑스어로 ‘아모르(amor)’라는 제목을 지을까 봐요.(웃음)
한 인터뷰에서 “지가 곡의 뼈대를 만들어오면 멤버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더하는 방식으로 곡 작업을 자주 한다”고 말했어요. 네 멤버가 다 같이 작업하다 보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듯해요. 지 조율이 쉬울 때도, 힘들 때도 있어요. 본인의 아이디어가 제일 좋다고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끊임없이 토론하거나 투표를 거치며 어떻게든 곡을 완성해나가요. 정다영 결국엔 한 명이 설득하고, 다른 멤버들은 설득당해야 해요. <her> 수록곡 중 지가 멜로디까지 만들어온 ‘Simply’는 멤버들의 이견이 없어서 비교적 수월했어요. 반면 ‘Saint’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멜로디가 금방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기존에 멜로디를 짜던 방식과는 달리 공부하듯이 작업에 임했어요. ‘NY’도 마찬가지로 ‘좋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았죠. 지 ‘NY’ 작업을 1집 때 시작해서 이제야 완성한 만큼, 사이키델릭한 버전을 포함해 여러 버전이 있어요. 나중에 공연할 땐 다른 버전으로 들려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얼마 전 밴드 도시와 함께 오프라인 공연 <ADOY × dosii>를 열었어요. 팬데믹 시대에 진행한 의미 있는 공연이었을 것 같아요. 오주환 뮤지션은 공연을 하고 앨범을 발매해야 존재 의미가 있죠. 코로나19로 활동에 제약이 많지만, 아도이는 <her>를 냈고 마스크를 쓴 채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박수만 치는 관객들 앞에서 공연했어요. 뮤지션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의지를 보며 힘을 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 외에도 팬데믹 시대가 시작된 후 다수의 온라인 공연에 참여해왔죠. 코로나19처럼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면 무기력해질 수도 있을 텐데요. 지 전 그렇게 무기력하진 않았어요. 오주환 제가 보기엔 지가 엄청 부지런해요. 때론 누군가의 부지런함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자동차 바퀴 하나가 터졌을 때, 나머지 바퀴 세 개가 열심히 굴러가면 어느 지점까지는 도달해서 수리를 받을 수 있잖아요. 어려운 상황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고,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박근창 멤버들이 각자 맡은 일을 잘 해준 덕분이죠. 주환이 형은 아도이의 1~2년치 계획까지 미리 세워둬요.
큰 그림을 그리시는군요.(웃음) 아도이의 큰 그림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요. 오주환 사실 “넌 다 계획이 있구나” 해도 그대로 실행되진 않더라고요.(웃음)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어느 나라에서든 동일한 퀄리티의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싶어요. 쉽지 않겠지만, 필요한 단계들을 하나씩 밟아나가야죠. 지 목표는 크게 잡아야지. 오주환 그럼 아도이의 목표는 <마리끌레르> 커버를 장식할 수 있는 밴드가 되는 겁니다.(웃음)
밴드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박근창 밴드는 팀으로 출전하는 스포츠 경기 같아요. 개인전에 비해 긴장과 외로움이 적죠. 오주환 친한 솔로 아티스트들을 공연장에서 만나면 되게 심심해하더라고요. 아도이로 약 5년간 활동하며 힘든 적도 물론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훨씬 많아요. 해외 투어에서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고, 공연을 마친 후에 다 같이 펑펑 울었던 것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아도이는 ‘커머셜 인디밴드’를 지향한다고 들었어요. 이를 위해 지금 아도이에게 필요한 건 뭘까요? 정다영 코로나19 종식. 그래야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다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과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겠죠. 박근창 빨리 팬데믹 시대가 끝나면 좋겠다. 오주환 아도이가 이미 커머셜 인디밴드이기 때문에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는 더 많은 무대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요.
현재보다 더 상업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기도 한가요? 지 그렇진 않아요. 아도이를 결성하기 전, 각자 음악을 하고 있을 땐 말 그대로 완전 ‘인디’였거든요. 당시와 비교하면 그래도 지금 잘 나아가고 있구나 싶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아도이다움’은 뭘까요? 오주환 열정, 열정, 열정!(웃음) 정다영 전 ‘커머셜 인디밴드’ 할게요. 오주환 제가 생각하는 아도이다움은 ‘근성’이에요. 그동안 홍대에서 와해되는 팀들을 정말 많이 봤거든요. 우린 네 멤버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아도이라는 팀을 이뤘고, 나이가 어리진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매력을 발산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아도이의 근성은 처음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나요? 오주환 비슷해요. 시간이 지나면 근성이 줄어들 수도 있겠죠. 그래도 아예 없어지지만 않으면 돼요. 불꽃이 조금 사그라들더라도 바람을 넣으면 어느 순간 다시 타오르니까요.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아도이로서 오래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박근창 저도 동의합니다. 오주환 근창이가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지 지금 근성이라고 했는데! 박근창 아니야, 시간 많아.(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