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은 십개월의 미래

최성은 십개월의 미래
퍼플 컬러 패턴 바디 수트, 블랙 롱 드레스, 청키한 블랙 레더 슈즈는 모두 프라다(PRADA).

 

10월 14일 영화 <십개월의 미래>가 개봉한다. 주인공 ‘미래’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임신이라는 변수에 부딪혀 숱한 우여곡절을 겪지만, 부모님이나 남자친구, 산부인과 의사 어느 누구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미래는 늘 그래왔듯 다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묵묵히 행동한다. 최성은은 영화에서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게 된 스물 아홉의 프로그래머 ‘최미래’를 연기했다. 그는 모든 질문 뒤에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조심스럽지만 확고한 어투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좋은 배우의 길을 고민하며 끊임없이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그에게서 강인하고 단단한 미래의 모습을 보았다.

 

곧 개봉을 앞둔 <십개월의 미래>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최미래’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려 했나요? 영화 촬영했던 게 3년 전이거든요. 생각을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해서 시간이 좀 걸려요.(웃음) 일단 미래는 지금까지의 삶에 있었던 대부분의 일들을 자신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잘 이뤄온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믿음도 강하고 솔직해요. 그런 미래에게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임신’이라는 변수가 생겨요. 혼란스러운 상황 앞에서 어쩌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크게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죠. 그럼에도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여 선택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는 인물이에요.

<괴물>의 ‘유재이’나 <십개월의 미래> 속 ‘최미래’처럼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서사를 가진 인물에게는 어떻게 접근하려 하나요? 다큐멘터리를 참고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미래를 준비할 땐 유튜브에서 영상도 많이 찾아봤어요. 재이에게는 엄마의 실종이라는 사건이 굉장히 크게 자리하고 있어요. 제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아픔이죠. 미래 같은 경우는 갑작스러운 임신을 제외하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20대의 삶을 살아온 친구라고 생각해요. 저도 미래에 대해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은 크게 없었으니까요. 다만 촬영 당시 제 주위 사람들 중에서도 임신을 한 여자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상황이 낯설긴 했죠. 하지만 같은 20대 여성으로서 충분히 미래의 상황에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었어요.

촬영을 마친 지 3년이 지나서야 개봉을 하게 되었어요. 그 사이에 영화에 대한 감상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3년 전의 저는 미래의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미래가 제 친구라면 진심으로 응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미래가 왜 그랬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라는 마음이 커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 주변에 임신을 한 사람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여성 주인공의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도 많아졌어요. 그렇게 보고 들은 경험들이 제 안에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가 아닐까 해요.

영화는 미래의 시선을 따라 10개월의 시간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어요. 10개월 동안의 여정을 통해 관객들과 어떤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나요? 영화가 보여주는 미래의 10개월은 우여곡절도 많고 정말 다사다난해요. 그 가운데 미래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 주길 바라요. 임신이라는 사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10개월간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보고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연기한 캐릭터가 온전히 이해 받길 바라는 배우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세요.(웃음) 좀 더 나아가서는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사람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쉽게 얘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 사람의 속사정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판단해선 안되는 거잖아요. 임신이 아니더라도 어떤 일의 결과만 보고 잘잘못을 따지거나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어요.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엇나가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요.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짐승 같은 캐릭터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최성은 십개월의 미래
비즈 칼라 디테일의 화이트 셔츠는 시몬로샤 by 10CC(SIMONE ROCHA by 10 CORSO COMO SEOUL). 실버 이어커프는 포트레이트리포트(PORTRAIT REPORT).

 

첫 장편 독립영화를 남궁선 감독님과 함께 했어요.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사실 이렇게 긴 호흡의 영상 작업은 <십개월의 미래>가 처음이었어요.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감을 잘 못 잡았을 때였죠. 근데 캐스팅이 확정되고 거의 바로 촬영을 시작했어요. 촬영도 한 달 안에 끝내야 해서 거의 매일 찍었고요. 모든 것이 급하게 돌아가는 현장이었다 보니 감독님과 함께 캐릭터를 구축해 나갈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그린 미래와 제가 표현한 미래가 조금 달라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점이 조금 아쉽더라고요. 감독님이 어디 가서 이런 얘기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웃음) 남궁선 감독님은 미래를 조금은 우유부단하고 쉽게 흔들리는, 쉽게 말해 어디 한 군데 나사가 빠진 듯한 모습을 가진 캐릭터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남들이 봤을 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싶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요. 하지만 저는 미래가 솔직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도 가능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이 맞다고 믿는 것에 있어서는 강하게 밀고 나가는 에너지가 있는데 그런 면을 더 크게 본 거죠.

감독님이 그린 미래와 최성은이 표현하고자 한 미래의 중간 지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숙제였겠네요. 네. 그 과정이 어려웠어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니 감독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생각하신 캐릭터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고자 이런저런 시도도 해봤었는데 잘 안됐어요. 갑자기 임신이 됐고, 남자친구는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애를 낳자고 하고. 저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들을 제일 가까이에서 맞닥뜨리는 사람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미래의 입장에서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저돌적으로 맞서려는 행동을 선택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최성은이라는 사람의 본모습이 많이 나온 거죠.

최성은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저도 솔직하게 할 말은 하는 편이에요. 근데 미래랑 다른 점도 있어요. 미래는 답을 자기 안에서 찾으려고 하거든요. 임신 테스트기 15개를 사서 자기가 믿을 수 있을 때까지 해보는 사람이니까. 저는 타인에게서 답을 구하려 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남들의 목소리를 많이 신경 써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자기주장도 확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 해요. 그래서 미래가 부럽고요.

감독님은 그런 성은씨에게서 미래의 어떤 면을 봤던 걸까요? 가만히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사람 있잖아요. 감독님이 생각했던 미래는 그런 캐릭터였다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가만히 있으면 도무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는 사람에 가까웠대요. 그리고 지금껏 만나본 여자 중에 제일 철벽을 쳤다고.(웃음) 근데 그 안에서 어떤 에너지를 느꼈다고 하셨어요. 밀어붙이면서 뚫고 나갈 수 있는 에너지. 그게 미래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씀하신 걸, 저도 어느 인터뷰를 통해서 읽었습니다.(웃음)

 

 

“지금까지 알고 있던 최성은 너머의 최성은을 발견해냈으면 좋겠어요. 연기를 하면서 만나게 될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저의 또 다른 모습을 찾길 바라요. 그게 좋은 배우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요.”

 

 

최성은 십개월의 미래
테일러드 베스트 톱과 트라우저 팬츠는 가브리엘리(GABRIEL LEE). 블랙 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작년 12월 마리끌레르와 나눈 인터뷰에서 연기하는 것에 대해 ‘나라는 사람 안에 있는 우물을 계속 파는 일’이라 표현했죠. 내 안의 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채우는 일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연기 외적인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는 편인가요?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이에요. 내가 뭘 할 때 재미를 느끼는지, 뭘 해야 행복한지 잘 모르거든요. 뚜렷한 취미가 있거나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도 아니고요. 작품 하나를 끝내면 이 고민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작품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엄청 공허해요. 예전에 비해 참여하는 작품의 개수가 조금씩 늘어나다 보니까 이런 삶의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겠다는 게 느껴졌어요. 삶의 태도를 바꿔야 연기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나요?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어요.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엇나가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요.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짐승 같은 캐릭터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최성은이라는 사람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일 것 같은데요. 맞아요. 돌이켜 보면 저는 늘 답을 찾으면서 살아왔더라고요. 어떤 시기가 찾아왔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늘 그 상황에서의 정답을 고민한 거죠. 그래서 그렇게 극단적일 정도로 제멋대로인 사람을 연기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살아온 방식에 변화를 줘보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니까. 제가 같이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배우들도 그런 공통점을 갖고 있어요. 연기하는 리듬이 굉장히 독특하거나, 예상치 못한 호흡을 쓰는 사람들.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실제 삶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본인의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요.

벌써 10월이 되었어요. 남은 올 한 해의 계획이 있나요? 지금 <젠틀맨>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데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요. 잘 끝내서 연말에는 마음 편히 쉬고 싶어요. 그래야 다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의 최성은에게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뭘까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최성은 너머의 최성은을 발견해냈으면 좋겠어요. 가끔씩 ‘내가 고집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거든요. 저도 모르게 살아왔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내가 아는 내 성격, 내가 믿고 있는 최성은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으려 하는 거죠. 연기를 하면서 만나게 될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저의 또 다른 모습을 찾길 바라요. ‘나는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가고 싶어요. 그게 좋은 배우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