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의 연인 이호정

데님 셔츠와 데님 플리츠스커트 모두 미우미우(MiuMiu)

1년 만이에요. 드라마 <알고있지만,> 촬영을 마친 후에 만났으니까요. 맞아요, 그때도 막 날씨가 더워지던 시기였어요. 그러고 보니 <알고있지만,>을 한 지 벌써 1년이나 지났네요.

그때 대화 말미에 좋아하고 아끼는 존재와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는 말을 남긴 기억이 있어요.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행복하게 지내는 중이죠? 사랑하는 존재를 위한 저의 역할을 아직도 찾아가는 중이지만,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고 잘 지내고 있어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맥주 한 캔에 맛있는 걸 먹으면서 재미있는 무언가를 볼 때, ‘스카’(반려견)랑 아침에 산책하면서 새소리를 듣는 시간 등 일상에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요.

그사이 새 작품의 촬영도 마쳤죠? 며칠 전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징크스의 연인>이요. 엄청 귀엽고 사랑스러운 판타지물이에요.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그리는데, 그 방식이 퍽 흥미롭고요.

‘조장경’이라는 인물을 맡았어요. 화려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인물이에요. 남들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말도 세게 하거든요. 한편으론 순정을 품고 있는 모습도 있고요.

장경을 만들어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장경이는 늘 되게 세게 말하고 표현해요. 차분한 주변 인물들과 달리 홀로 통통 튀고요. 그런 장경이가 어떻게 하면 극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룰지, 밉지 않고 사랑스러워 보일지 고민이 많았어요.

전작에서 보여준 인물과는 닮은 점이 없는, 새로운 모습일 것 같아요. 장경이라는 인물을 인지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연기해본 적 없는 유형의 인물인 데다 실제 저와도 닮은 구석이 없거든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저런 연구를 꽤 많이 했는데도 시간이 좀 빠듯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확실히 저에게는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유독 도전이라고 느낀 부분이 있었나요? 내 남자를 내 남자다 말하지 못하는, 하하. 말은 세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끙끙 앓는 부분이 은근히 표현하기 어렵더라고요.

 

징크스의 연인 이호정

딥 그린 스트랩 드레스 베르소 (Verso), 타이다잉 프린트 팬츠 에잇 바이 육스 (8 byYOOX), 슈즈 찰스앤키스 (Charles & Keith).

 

<알고있지만,>의 ‘윤솔’을 연기하면서 이제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었어요. 지금은 연기에 대해 어떤 마음인가요? 요즘 앙상블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예전에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컸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합이 맞아야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깨닫고, 소통과 믿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제야 깨달은 거죠. 한 번도 연기가 쉬운 적은 없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어렵게 느껴져요.

시야가 넓어진 셈이네요. 생각할 거리가 더 다양해졌어요. 어렵지만 그게 좋아요. 전보다 훨씬 더 많이 보고 배울 수 있게 됐거든요.

요즘 촬영장에 가면 어떤 것들이 눈에 먼저 들어오나요? 그냥 주변을 살펴요. 여기서 뭘 더 활용할 수 있을까, 감독님은 왜 여기에 이 장비를 설치할까, 저 조명은 어떤 방식으로 쓰일까? 둘러보면서 이런저런 의문을 갖는 거죠. 배우뿐 아니라 촬영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매 장면 더 잘 만들기 위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잖아요. 그걸 같이 살피고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의견을 더하기도 하고요? 네. 예전에도 제안하고 싶은 의견은 많았는데 거의 못 했어요.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거든요. 사실 말 안 하고 슬쩍 시도한 적도 있고요, 하하. 지금은 최대한 말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게 소통하는 데 큰 작용을 하잖아요.

이런 생각의 전환을 맞은 계기가 있나요? 같이 연기하는 선배님들에게 배우는 게 많아요. 선배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대단하다, 역시’ 이러면서 매번 내적으로 감탄하고 배워가요.

그 대화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요? ‘스크린에서 지면 현실에서 싸우게 된다.’ 현장에 있을 때만큼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인데,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라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뒀어요. 지금도 가끔씩 펼쳐서 읽어요.

어떤 분이 한 말인가요? (황)정민 선배님이요. 영화 <인질>을 같이 작업 하면서 들은 말인데, 이것 말고도 촬영 내내 아주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저 그때 진짜 즐거웠어요. 지금도 그때 기분이 생생할 정도로 아주 짜릿한 경험이었고요, 하하.

짜릿하다는 말을 들으니, 극 중에서 황정민 배우의 뺨을 매섭게 치던 장면이 생각나는데요.(웃음) 그렇죠. 그 장면, 너무 짜릿하죠. 저 그 신 촬영하는 날 손을 바들바들 떨 정도로 무척 긴장했었어요. 뒤에서 나름대로 엄청 연습했는데도 막상 하려니까 손이 안 나가는 거예요. 그날도 선배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장면은 제대로 한 번에 가야 한다는 말을 해주셨고, 그제야 마음을 굳게 먹고 한 번에 짝 소리 나게 하고 끝냈던 것 같아요. 아닌가, 두 번이었나? 하하.

 

징크스의 연인 이호정

블랙 슬리브리스 톱 코스(COS), 니트 롱스커트 베르소(Verso).

징크스의 연인 이호정

아이보리 재킷과 와이드 팬츠 모두 나누슈카(Nanushuka), 블랙 슬라이드 끌로디 피에로(Claudie Pierlot).

함께 해보고 싶은, 배움을 얻고 싶은 또 다른 배우가 있다면요? 전도연 선배님과 김혜수 선배님이요. 두분 다 너무 멋있잖아요. 아주 멀리서 봐도 되니까 그분들이 연기하는 현장의 일원으로 머물러보고 싶어요. 두 분은 연기에 대해 어떤 마음일지, 현장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해요.

지금 이호정 배우에게는 현장에 함께하는 사람이 동력이자 가르침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는 일할 때 ‘잘해내려는 마음’을 동력으로 삼아요. 어릴 때부터 서바이벌 게임 같은 환경에서 일하며 적응하다 보니 생긴 저만의 방식이죠. 연기를 시작한 이후로는 사람에게서 받은 자극을 동력 삼을 때가 많더라고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이 꼭 하나 이상은 있었고, 그래서 더 유심히 보고 배우려는 태도가 생겼어요.

그 동력을 기반으로 이호정 배우는 어떤 배우가 되어가는 중일까요? ‘배우 이호정’에 대해 들은 말 중 인상 깊은 말이 있었나요? 사실 제 연기나 배우로서 제 모습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거의 없어요. 제가 잘 묻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최근에 이솜 배우가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너는 그냥 부딪혀.” 어떤 의미인지 묻지는 않았는데, 저한테 그런 마인드가 있기는 해요. ‘한번 해보자. 그냥 하자. 뭐 어떻게 되겠어?’ 하는 태도요.

무언가를 시도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는 말로도 들려요. 겪어보지 못한 데서 오는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일단 도전해보면 한 가지 경험은 남는 셈이니 해보자고 결심하는 편이에요. 무엇이든 제가 직접 느끼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일로 남는 거잖아요.

부딪히는 배우, 괜찮은데요? 제 이런 면이 연기할 때 더 재미있는 지점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간혹 힘든 일이 생겨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먼저 찾게 만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