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 보육원 퇴소를 앞두고 있는 ‘도윤’(현우석),15년 만에 도윤을 찾아와 자신을 아버지라 소개하는 ‘승원’(정웅인), 승원의 또 다른 아들인 ‘재민’(박상훈). 세 사람은 갑작스레 가족이 되어 한집에 살기 시작한다. 변화가 어색한 도윤은 홀로 한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갈 계획을 세우지만, 승원의 죽음 이후 재민의 보호자가 되기로 한다. 가족의 일원으로 보내는 하루하루에 점차 적응해가던 도윤의 일상은 승원이 숨긴 진실이 드러나면서 혼란을 맞이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도윤은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승환 감독의 첫 장편이자 현우석 배우의 첫 주연작,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는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한다.
(촬영일 기준) 영화 <아이를 위한 아이>가 곧 개봉합니다. 이승환 7월 21일에 개봉하니 10여 일 남았네요. 아직 실감이 나진 않아요.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는 것도 영광스럽고요. 현우석 6월 말에 열린 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서 <아이를 위한 아이>가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었어요. 감독님과 나란히 앉아 큰 스크린으로 작품을 감상하니 심장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뛰더라고요. 극장 상영이 시작되면 그때와 다른 느낌으로 두근거리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이 <아이를 위한 아이>의 첫 공식 활동이라고 들었어요. 이승환 매거진 화보는 처음이라 인터뷰 후 이어질 촬영 때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이 잘 오지 않아요. 현우석 배우가 모델로 활동하며 화보 촬영을 많이 해봤으니 오늘은 제가 배우의 디렉팅을 받아보려고요.(웃음) 현우석 모델과 배우의 일이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표현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가지고 연기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배우 활동도 즐겁고 행복하게 이어가는 중이에요.
보호종료 아동인 도윤 역에 현우석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해요. 이승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무렵인 3년 전 제 머릿속에 그려진 도윤은 쌍꺼풀 없는 눈매와 날것 같은 이미지의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현우석 배우를 발견했죠. 강인함과 연약함, 귀여운 인상과 슬픈 감정 등 공존하기 어려운 이미지가 동시에 느껴지더라고요. 상상하던 도윤과 달랐지만, 이 배우라면 도윤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현우석 배우에게 도윤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현우석 처음엔 되게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에 내면의 여린 구석이 보였고요. 이런 식으로 도윤에 대해 연구할수록 다방면으로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도윤이라는 인물을 만들어갔어요. 감독님은 도윤을 설명할 때 항상 ‘시니컬하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니 그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었죠. 이승환 도윤이 올곧은 소신을 지닌 인물로 표현되기를 바랐거든요.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시니컬한 태도가 도윤과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도윤의 시선을 따라 흘러가는 영화라 감독과 배우의 호흡이 중요했을 거라 짐작해요. 현우석 제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도록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잘하고 있다”, “네가 생각한 대로 하면 된다”라는 말을 자주 해주셨죠. 이승환 그게 다른 방식의 압박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일동 폭소) 현우석 그랬나요?(웃음) 이승환 농담이에요. 현우석 배우와 한 회차도 빠짐없이 함께했는데, 현장 안팎에서 <아이를 위한 아이>를 향한 큰 책임감과 애정을 보여주더라고요. 저에게도 배우에게도 특별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요. 현우석 맞아요. 첫 주연작이라 잘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컸는데, 감독님의 믿음 덕분에 스스로 한 발짝 더 내디딜 수 있었어요.
첫 주연이라 도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을 것 같아요. 현우석 원래 작품 속 인물에 깊이 빠지는 편인데, 도윤에게는 특히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아이를 위한 아이>를 준비하고 촬영하는 기간만큼은 제가 아닌 도윤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 편집본을 확인할 때, 감독님이 “화면 속 도윤과 지금 내 옆에 있는 우석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라는 말을 하실 정도였어요.
한동안 도윤이 되어 살아보며 그와 본인의 닮은 점을 찾기도 했나요? 현우석 제 입으로 말하긴 조금 부끄럽지만(웃음) 나이에 비해 성숙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승환 맞는 말이에요. 첫 미팅 당시 현우석 배우가 스무 살이었는데, 사려 깊으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2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일상적인 대화도 잘 통하는 편이라 가끔은 30대 초반인 저와 또래처럼 느껴지기도 해요.(웃음)
이번 영화에서 보호종료 아동을 다룬 계기가 있었나요? 이승환 보호종료 아동 자체에 주목했다기보다는 홀로서기를 앞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회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요. ‘가족과 학교에 소속되어 지내던 기간에 나 자신을 오롯이 마주한 시간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공동체가 주는 안정감에 속아 스스로를 조금씩 지우고 있었던 건 아닌지 고민한 거죠. 그게 <아이를 위한 아이>의 출발점이에요.
나이가 들어 보육원에서 나온 도윤은 승원과 재민을 만나 가족을 이루죠. “나는 새로운 우리가 된 줄 알았지만, 여전히 또 다른 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라는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이승환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는 친근감과 결속력을 모두 지닌 단어잖아요. ‘무언가를 가두는 공간’이라는 뜻을 지닌 동음이의어로 해석할 땐 보호를 넘어 구속의 의미도 있고요. 이 같은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가족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아닌 ‘나’의 관점으로 가족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우리와 나의 상관성에 대해 고민하며 <아이를 위한 아이>의 시나리오를 완성해갔어요. 진실이 모두 밝혀진 뒤, 각 인물이 달리 보이는 순간을 포착하려 했죠.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거치며 여러 상황을 마주한 보호종료 아동의 이야기를 영화에 무겁지 않게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에요. 이승환 전작들은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끈질기게 따라가며 공감을 얻어냈다면, <아이를 위한 아이>에서는 인물들을 힘들게만 그리지 않으려 했어요. 그래서 인물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뒀고요.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보다는 그들이 주어진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켜보고 응원하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현우석 도윤은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슬픔, 즐거움, 당혹감 등을 느껴요. 감정의 변화가 큰 인물이니 한순간도 도윤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에 임했어요.
‘우리’라는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교감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현우석 진실이 드러나자 도윤은 재민의 곁을 떠나지만, 나중에 그를 다시 찾아와 같이 여행을 떠나요. 이때 두 사람이 각자의 미래에 대해 나눈 대화가 떠올라요. 도윤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을 했고, 이를 들어주는 재민의 표정도 인상적이었거든요. 그 장면을 촬영하던 순간이 마치 사진처럼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승원, 재민과의 관계가 도윤에게 남긴 긍정적인 영향도 있을까요? 현우석 도윤에게는 승원과 재민을 만나 느낀 낯선 감정이 점점 물러나며 그들과 서로 자연스레 스며드는 과정이 있었을 거예요. 두 사람에게 어느 정도는 유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승환 도윤, 승원, 재민은 각자 자신만의 생각을 기반으로 삶을 선택해요. 서로의 선택에 동의하진 못하더라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공감한다면 그 공감의 영역만큼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성장을 도윤이 경험했다고 생각해요.
도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현우석 자신에 대한 믿음이요.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옳다고 여긴 것들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으니까요. 결말 이후의 도윤은 더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이승환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도윤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더 씩씩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보호 아동의 자립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었습니다. 보호가 종료되는 연령도 만 18세에서 만 24세로 연장되었고요. 이승환 돈과 주거 공간 등 현실적인 지원도 충분해야 하죠. 하지만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할 거예요. 보호 아동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에서부터 지원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선택지들이 늘어날 테니까요. 이들이 살아가며 맞이할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본인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묻고 싶어요. 현우석 <아이를 위한 아이>에 함께하며 배우이자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어요. 이번 영화를 통해 얻은 처음들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열심히 나아가고 싶어요. 이승환 제가 영화를 통해 던진 질문에 관객마다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승원에게 공감하거나, 재민에게 더 큰 연민을 느끼거나, 도윤의 절친한 친구인 ‘창림’(김수겸)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는 식이었죠. 그래서 다양한 관점을 아우르는 시선과 진중한 태도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스스로 정해놓은 방향성 안에서 무조건적인 답을 내리지 않으며 영화를 만들어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