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뮤지션 태양보다는 ‘보는 사람’으로서의 아티스트 태양을 조명하려 한다. ‘사랑하는 것을 왜 사랑하는지’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 같다. 대외적인 소식이 없음에도 대중에게 태양은 보는 과정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다. 당신이 보고 느끼는 총합이 음악에 담길 거라는 믿음에서다. 요즘 무엇을 유심히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시간을 주로 보내는 공간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2년 전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 때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피고 지는 꽃과 식물, 나무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러다 하늘을 볼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하루 안에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과 구름의 모양, 노을이 뜨고 지는 풍경들에 마음이 간다.
그래서일까. 태양의 음악을 생각하면 직관적으로 하늘의 풍경이 그려진다. 태양의 음악은 공감각적이다. 소리인 동시에 이미지로 기억된다. 특히 2집 <RISE>와 3집 <WHITE NIGHT>의 인트로는 듣는 순간 어떤 초자연적인 전경 아래 ‘놓여지는’ 상태가 된다. 유독 음악과 이미지의 상관관계가 밀접하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느꼈다면 나로서는 굉장히 기분 좋은 감상이다. 실제 듣는 이들이 그렇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으니까.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에 들어가기 전, 전체 앨범을 기준으로 하나의 방향과 색, 구체적으로는 이미지와 콘셉트, 테마가 어떤 방식으로든 내 안에 잡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구체화가 가능하다. 때로 싱글 등 짧은 호흡으로 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오히려 그때 더 방향 잡기가 어렵다. <라이즈(RISE)>의 경우 작업 전부터 라이즈라는 키워드가 있었고, 그 단어와 통하는 이미지와 사운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인트로 트랙을 만났다. 그 트랙을 들으며 앨범의 이름이 <RISE>여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그 외 다른 곡 역시 멜로디를 만들면서도 태양이 가장 뜨겁게 떠오르는 풍경, 구체적인 장소로는 아프리카 초원을 떠올렸다. <WHITE NIGHT>의 경우에는 <RISE> 앨범을 마무리하는 단계부터 다음 앨범은 ‘백야’라는 타이틀과 콘셉트를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에도 지지 않는 태양을 떠올리면서 푸르고 흰 그 분위기와 색을 상상했다.
어쩌면 그런 작업 태도가 태양을 아티스트이자 디렉터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앨범 커버는 물론 뮤직비디오, 무대미술까지, 큰 그림 아래 작업물을 완성해간다. 이 음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과정을 자기 의지로 구현해낸다. 내가 결과물의 형상보다는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지는 꽤 됐다.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일도 즐겁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그렇게까지 잘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음악을 만드는 시간, 무대를 디자인하는 과정, 이를 통해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감정을 일으킬 수 있도록 조직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긴 호흡으로 봤을 때 이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고,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내가 무대에 서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으려 한다.
<WHITE NIGHT> 앨범 제작 준비 기간을 담은 다큐멘터리 <白夜(태양이 지지 않는 밤)>에서 집념과 예민함, 엄중한 책임감을 봤다. 약간의 병인 것 같다. 신기한 게 이런 성향이 없다가 어느 순간 생긴 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힘들어하셨다. 어릴 때 양말을 안 신고 다녔다. 양말을 아무리 잘 신는다 해도 발끝이 양말과 딱 들어맞지 않잖나. 그 불균형을 보는 게 내겐 힘든 일이였다. 꽤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이 있다. 남들은 잘 느끼지 않는 생활의 불편이 늘 있었다. 그래도 음악을 하면서 나를 예민하게 만들던 불편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다. 많은 이들과 음악 작업을 하며 다른 이의 의견이나 태도를 수용함으로써 변화한 것도 있다. 내 마음 같지 않아도 어떤 순간에는 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전 인터뷰에서 ‘특정 미술 사조보다는 마음을 움직이고 영감을 주는 작가와 작품을 자유롭게 관찰하는 것, 그들이 추구하고자 한 개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나와의 연결점들을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연결점을 느낀 특별한, 처음의 순간을 기억하는가? 연결점을 느끼고, 다양한 개념과 디테일한 감정을 알게 한 첫 기억은 김환기 작가님의 ‘점화’였다. 추상화는 물론이고 달 항아리와 매화를 소재로 삼은 김환기 작가님의 구상화 ―‘항아리’(1957), ‘항아리와 매화가지’(1958) 등― 속 특유의 색채와 표현 방법도 좋아한다. 2017년 봄, 매화나무의 꽃이 막 필 무렵 김환기 미술관에 갔는데 큰 규모의 미술관이 아닌데도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기운이 있었다. 미술관 자체가 김환기 작가님처럼 다가오더라. 당시 <더 뮤즈, 김향안의 이야기Ⅱ Timeless> 전시 중이었는데 두 분의 사랑이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표현된 것 같았다. 그 안에 들어선 순간 이미 너무 따뜻했다. 그날 처음으로 ‘우주’(1971)를 실제로 마주할 수 있었고, 완전히 압도되었다.
압도적인 순간은 작품 자체의 힘으로도 만들어지지만 그 작품을 마주한 관람자의 당시 상태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의 강렬한 미적 체험이 이후 본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온 것 같나? 맞다. 무모한 말이겠지만(웃음) ‘저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정도의 충격이었다. 단순하고 담백하지만 작가의 사적인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그 솔직함이 범우주적인 표현으로까지 이어지는 작업이었다. 특정 대상을 구체화해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사유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무수한 고민과 고뇌,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에 추상화임에도 내게는 극사실주의처럼 다가온 거다. 그 범접할 수 없는 표현들을 두 눈으로 보면서 내가 이전까지는 결코 생각하지 못한, 개념적으로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경험치가 쌓이며 생기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라면 과거의 사례를 복기하며 ‘어떻게 하면 된다’라는 게 무의식적으로 그려진다. 이 예측 가능함이 새로운 접근이나 도전에 방해가 될 때가 있다. 당시 김환기 작가님은 물론 마크 로스코, 클리포드 스틸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자유로운 표현들, 개념을 만들어가는 과정들을 보며 내가 달리 생각하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나 역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가며 성장하고 싶다는, 새 마음을 먹게 한 거다. 동시에 그들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삶의 모습,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고뇌를 느끼고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공부하며 좀 더 넓은 시야로 내 인생과 커리어를 봤을 때, 추구해야 할 것들에 대한 방향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김환기, 마크 로스코, 클리포드 스틸 작품의 공통점이라 하면 정직하고 단조로운 질서 아래 예술가의 고유한 사유로부터 큰 힘이 발현되지 않나. 이는 태양이 추구하는 음악 방향과도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보면 닮고 싶어지지 않나. 일전에 음악과 관련해 ‘덜어냄’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맞다. 잘 덜어내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덜어내는 과정 속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보다 강렬하게 보여줘야 하니까.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작업 초반에는 더 많은 것을 표현하려고 애쓰다 최종 단계에 이르러서는 담백하고 단조로움 속에서 깊이를 만드는 것 같다. 이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과 음악도 마찬가지다. ‘덧붙인다’
는 것은 부족한 부분을 가리기 위한 작업이지 않나. 물론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감정을 전달할 때는 담백하고 단조롭게 전해야만 상대방이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경우 전하고자 하는 감정선에 맞는 단 하나의 악기, 유일하게 적합한 멜로디와 목소리, 짧은 단어와 문장이지만 최대치로 정제한 가사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효과를 목표로 한 기술적인 고민이고,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건 삶의 진정성이다. 내가 표현하는 음악과 노래는 결국 내 몸 안에 가려져 있는 나의 무언가가 전달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를 잘 전달하기 위해 나 스스로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최종적으로 진정성, 진실성의 여부는 그 누구보다 음악을 듣는 대중이 분명히 알 거라 생각한다.
유재하와 김광석 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선호가 같은 맥락 아래 읽힌다. 이분들과 동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가수가 된 이후 더 깊게 찾아본 음악들이다. 여전히 내게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 중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시대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 솔직하다. 가사와 멜로디 같은 내용적 측면에서도, 편곡 등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필요한 부분만 남긴 채 진솔하게 자기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현한다. 순수의 결정체처럼 다가온다.
진실성과 순수성이 담보된 결과물에 다다르기 위해 태양 스스로는 무엇을 덜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나의 삶 속에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온 많은 것들이 있다. 우선 이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습득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습관, 태도들로부터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떨어트리고 정리해야 한다. 결국 인간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인데, 과거의 것을 덜어내고 보다 나은 것들로 채워야겠지. 이는 절제로써 인내로써, 때로는 희생으로써 가능하게 될 거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사랑을 더 많이 담고 싶다. 그게 예술의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라고 생각한다. 데뷔 초반에 한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진정성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는 진정성이라는 말의 함의를 지금만큼 알고 정리한 상태에서 한 것 같진 않다. 이제야 어렴풋이 진정성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 같다. 이는 단순히 1년, 5년 안에 구축되고,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하나의 곡, 앨범으로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한 인간이 10년, 20년 동안 삶을 이어오며 이룩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과 가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내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기도 하다. 한때는 많은 사람에게 음악으로 영감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고 싶었다. 물론 그 의지가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정말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움직이기가 힘든 거구나’, ‘나라는 사람은 이런 인간이구나’를 더 절실히 느낀다. 최종적으로 음악과 노래라는 도구 없이도,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예술가로서의 태도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의 끝에 다다른다. 음악을 할 때뿐만 아니라 내 삶 자체가 진정성이 있어야 당장 내 주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지. 그게 뒷받침 되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가치와 목적은 의미를 잃은 거나 다름없다.
태양은 ‘보는 사람’이자 동시에 ‘보여지는 사람’이다. 아티스트로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은 지났다. 증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의 다음 할 일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나? 오랜 시간 어떻게 보여지고, 동시에 존재하고 싶나? 지난 4년 동안 그동안 알지 못한 나의 인격적인 어리숙함에서 벗어나 다방면으로 보다 성숙해 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아티스트로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 어떠한 증명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나 자신을 냉정히 바라보고,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며 발전시켜나가는 모습을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입증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삶을 바탕으로 한 진실된 진정성이다. 결국 나는 보여지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 하지만 그 무엇보다 분명히 존재하는 중요한 것들에 더 집중하고 싶고 그로부터 얻은 영감들을 앞으로의 작업으로 이어나가고 싶다. 이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만들어온 태양이라는 아티스트와 동영배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거리를 가장 이상적인 지점에서 하나로 연결시켜 내 삶과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이어나가고 싶다.
인터뷰는 끝났다. 부럽다. 진정성이라는 말로부터 멀어져 한 치 앞만, 발끝만 보고 살기 때문이다. 내 진정성의 유무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는 그 말이 지닌 함의를 의식하며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러운 거다. 내게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뭘 하든지 중요한 것 또는 잃으면 안 되는 것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태양’이라는 이름을 잘 지키고 싶을 것 같다. 소중한 이름이다. 태양이라는 존재는 정확한 때에 마땅히 뜨고 진다.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올 때는 보이지 않지만, 그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자기 일을 수행하고 있다. 가장 성실한 존재다. 찬란히 빛나기도 하면서. 어쩌면 이런 태양의 속성이 내가 가져가고 싶어한 모습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고. 우리가 태양이 뜨고 지는 당연한 이치에 대해 평소 깊게 생각하지 않듯이 나 역시 어딘가에서 내 일을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 설사 그 결과가 반드시 많은 사람들에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일으키는 삶을 꾸리고 싶다. 오늘 모든 답이 이렇게 흐르는데(웃음), 그래서 요즘 더 하늘을 자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처음으로 돌아가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더 깊숙이 이야기하면 작년 아이를 품었던 와이프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탄생한 아이 그리고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게 내게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었다.
어느 예술과도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지 않나. 맞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아직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 소름이 돋을 때도 있고.
그래서 태양을 둘러싼 삶의 아름다운 변화가 반가운 거다. 다음 음악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