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지후’와 함께한 마리끌레르 10월호 화보

 

지난해 이맘때 마리끌레르와 만나 영화 <벌새>와 <빛과 철> 이야기를 했어요. 지난봄에는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치열했던 시간을 복기했고요. 그리고 이제 새 작품 <작은 아씨들>로 다시 만났네요. 1년여간 아주 많은 일이 있었죠. 정말로요. 지난해 말에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영화 촬영을 하고, 새해가 되어선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죠. 대학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드라마 <작은 아씨들> 출연까지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 같아요. 정신없다 싶으면서도 지난 시간이 무척 생생하게 떠올라요. 모두 행복한 기억이라 그런 것 같아요.

<작은 아씨들>은 벌써 촬영을 마쳤다고 들었어요. 이전 작품에선 촬영 막바지가 되면 ‘드디어 마지막이 온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작은 아씨들>은 ‘왜 벌써 마지막이지?’ 싶더라고요. 실감이 잘 나지 않았어요. 아마 제가 연기한 ‘오인혜’라는 인물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끝내고 지금까지 줄곧 허전해요.

아쉬운 마음이 커 보여요. 촬영 현장이 너무 좋았거든요. 또 인혜의 완전히 깊은 곳까지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이 끝난 것 같아 아쉬운 면도 있고요.

이제 시청자로서 드라마를 보면서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인혜의 모습도 있을 거예요. 맞아요. 집에서 TV로 보면서 대본으로 읽었을 때, 현장에서 연기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첫 화가 방영되기 전까지 엄청 떨렸는데, 다행히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아서 조금은 긴장을 내려놓게 되었어요.

영화 시사회와는 다른, 드라마가 주는 긴장감을 겪은 셈이네요. 맞아요. 영화처럼 한 번에 공개되는 게 아니라 매주 두 편씩 나오니까 매회 반응이 달라질 수 있잖아요. 초반에는 잠도 안 올 만큼 긴장했어요. 전‘ 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내가 이 이야기에 잘 어우러지게 연기했을까’ 이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엄청 쫀 거죠.(웃음)

호평이 이어지고 있으니 편히 봐도 될 것 같아요.(웃음)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그중 막내 인혜는 언니들의 희생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자존심 강한 인물로 그려져요. 자신의 감정을 삭이는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언니들에게 짐이 되기 싫고, 그래서 최대한 스스로 알아서 하고 싶은데 언니들은 그러도록 놔두지 않잖아요. 그게 미안하면서 조금은 귀찮고 짜증스럽기도 한 거죠. 그렇다고 나쁜 애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워낙 어린 나이부터 삶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죠. 동시에 미술을 하기 때문에 예민하고 감성적인 부분도 있을 거라 여기면서 인혜를 연기했어요.

인혜를 연기하기 위해 꽤 오래전부터 미술을 배웠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손을 쓰는 방식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아요.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계속 취미로 남겨두고 싶어요.

어떤 즐거움을 발견한 건가요? 오롯이 내 붓질에만 몰입하는 시간이 심적으로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그림을 그리거나 볼 때는 조급한 마음이 사라지고 여유로워져요. 완성하고 나면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도 들고요.

 

배우 ‘박지후’와 함께한 마리끌레르 10월호 화보

드레스 푸시버튼(pushBUTTON), 부츠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네크리스 엠아이영(mi0),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벌새>의 ‘은희’, <빛과 철>의 ‘은영’, <지금 우리 학교는>의 ‘온조’, 그리고 <작은 아씨들>의 ‘인혜’까지. 모두 10대 소녀지만, 그 사실 이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인물을 연기해왔습니다. 10대 소녀에 대한 편견과 전형을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요? 애초에 편견 없이 접근한 것 같아요. ‘10대 소녀는 이렇다’라고 단정 지은 적 없고, 저 역시 10대일 때 ‘어떤 유의 학생’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기존 작품 속 학생들과 다르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은희, 은영, 온조, 인혜 모두 그 사람 자체로 바라보며 연기했다고 생각해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이들을 떠올리면 따라오는 마음이 있을 것 같아요. 이름이 입에 붙어서 그런지 몰라도 오랫동안 봐온, 살아 있는 인물인 것 같아요. 제 인스타그램에 제가 맡았던 인물별로 각각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모아놨거든요. 그걸 보면 기분이 묘해요. ‘이 친구들과 함께한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중에 시간이 한참 흘러도 생각날 것 같아요. ‘은영이는 엄마랑 잘 살고 있을까?’, 온‘ 조는 대학에 갔을까?’ 하면서요. 제가 워낙 상상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연기할 인물을 마주할 때, 첫 만남에서 가장 먼저 어떤 부분을 보나요? 그 인물이 이야기 안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잖아요. 그래서 가장 먼저 ‘어떤 눈빛으로 그 사람을 바라볼까’ 하고 생각해요. 누구나 자신의 감정에 따라, 마주한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다른 행동과 말, 눈빛이 나오잖아요. 그런 부분을 정리하는 작업을 제일 먼저 해요.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도 있을 텐데요. 맞아요. 실제 저라면 이해하지 못할 상황도 많죠. 주로 누군가를 무례한 방식으로 대할 때예요. 인혜를 보며 언‘ 니들한테 이렇게까지 함부로 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럴 땐 ‘얘도 사정이 있겠지’ 하며 합리화하려고 애써요. 제가 이 인물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고 싶거든요.

그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기는 거죠?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주는 거죠. 그런데 지금까지 만난 인물 중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경우는 없었어요. 모두 정이 가는 사람들이었죠. 다른 이의 시선에선 차갑고 이기적으로 보여도 저에겐 그마저 안쓰럽고 보듬어주고 싶은 애들이었거든요.

실제로는 어떤 사람에게 정이 가나요? 박지후 배우가 사랑하는 인물들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투명한 사람이요. 악의 없는, 그저 진짜 착한 사람이요. 제 친구들이 다 그래요. 그런데 제게는 은희, 은영, 온조, 인혜도 다 그런 친구들이에요.

사랑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든 애정을 기울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가요?(웃음) 그런데 명확한 선은 있어요.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긴 하지만 윤리적 기준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어요. 그거 하나는 확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