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과 영웅이 공존할 수 있는 단어인가?’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이 공개되기 전에 품었던 이 의문은 첫 화에서 경쾌하게 해소되었습니다. 왜소한 체구의 모범생 ‘시은’(박지훈)이 학교 폭력에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의 영리한 두뇌를 이용해 맞서 싸우는 순간, 제목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박지훈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대개 싸울 때, 특히 학원물에서 계획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잖아요.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뒤엉킬 때가 많은데, 시은은 계산적으로 싸운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그런 시은이 왜소한 체구를 지녔다는 점도 흥미로웠고요. ‘체구가 작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싸움을 못한다’는 선입견을 타파하는 데서 오는 신선함이 있었어요.
오롯이 시은의 명석함에 기댈 것 같던 초반부의 싸움은 이후 ‘수호’(최현욱), ‘범석’(홍경)과 함께하며 새로운 양상을 만들어내요. 친구가 되어가는 세 사람의 관계 또한 이 드라마의 주요한 요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홍경 1부부터 4부까지, 5부부터 8부까지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뉜다고 해도 될 정도로 초반부와 후반부의 결이 달라요. 앞에서는 장르물에 가까운 액션 신이 주를 이룬다면, 뒤에서는 세 친구의 감정이 얽히면서 갈등과 성장을 반복하는 드라마가 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관계의 변화 역시 액션 못지않게 이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시은, 수호, 범석. 각자 자신이 맡은 인물의 어떤 점에 집중하려 했나요? 최현욱 수호가 지닌 에너지를 잘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특히 초반부의 수호는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에서 흐름을 경쾌하게 바꾸는 인물이잖아요. 계속 텐션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홍경 극에는 그려지지 않는 서사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두 친구가 범석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어요. 시은과 수호가 우연한 만남이 쌓이면서 인연을 맺은 친구라면, 범석은 발버둥치며 이들과 관계를 만드는 쪽이거든요. 나쁜 건 나쁘다고 말하는 시은과 이에 동조하며 같이 싸워주는 수호를 보며 동경하게 됐고, 그 마음으로 범석이 먼저 다가가서 친구가 된 거죠. 그래서 범석을 이해하는 데 두 친구와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박지훈 저는 시은의 눈에 집중했어요. 시은이 말이나 행동으로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잖아요. 그래서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떤 마음인지가 눈에 잘 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세 친구의 싸움은 이기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지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들이 지키고 싶어 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했나요? 박지훈 물론 친구들도 있겠지만, 나 자신도 포함이 되는 것 같아요. <약한영웅 Class 1>의 학교는 그야말로 정글이거든요.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나와 친구들을 지키려고 맞서죠. 이 싸움은 결국 정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옳지 않은 것, 나쁘다고 여겨지는 것으로부터요. 한편으로는 이들의 싸움이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맞서지 않고 다른 방식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최현욱 사실 시은과 범석도 그렇지만 수호 역시 싸움을 싫어하고 피하려는 쪽이거든요. 그냥 경찰에 신고하자고 하거나 시은에게 맞서지 말고 도망치라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싸움은 이들에게 최후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박지훈 첫 화에 시은이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와 다시 공부하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손을 보면 떨고 있어요. 아마 이후에도 매번 무섭고 두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용기를 낸 거죠.
실제로는 어떤가요? 자신이 꼭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을 때 어떤 방식을 택하는 편인가요? 박지훈 저도 회피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존재가 가족이고 친구고 반려견 ‘맥스’라고 생각하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편이거든요.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하는 성격이라 그런 점은 시은이랑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최현욱 그런데 지키고 싶은 게 자신이라면 쉽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길게 갖고, 이후에는 아예 피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스스로를 바꾸려는 시도를 할 것 같아요. 홍경 최근에 한 생각인데, 내가 나를 지키려면 확실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 않나 싶어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과 부딪치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럴 때 납득하게 되는 마지노선을 알고 있으면 방식을 택하기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정답이 없으니까요. 또 스스로는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 때, 생기는 문제나 돌아오는 비난을 감내할 용기도 있어야 할 테고요.
치열하게 싸워나가면서 친구가 된 시은과 수호, 범석처럼 세 배우도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면서 돈독해지는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최현욱 시은의 계산대로 탁 하고 들어맞던 액션도 있었지만, 저는 그보다 서로의 갈등으로 감정이 격해져 마구잡이로 밀치고 잡아당기면서 싸운 액션 신이 더 많이 생각나요. 엄청 고생했거든요.(웃음) 박지훈 진짜 피, 땀, 눈물을 다 흘려가면서 찍었어요. 최현욱 그 신을 찍고 감독님이 잠시 나가서 환기하고 오라고 하셔서 셋이 산책을 했어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진 않았는데, 걸으면서 부쩍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애틋했어요. 좋았어요. 지금도 좋아요. 박지훈 갑자기?(웃음) 최현욱 그때도 지금도 이렇게 셋이 대화하고 있는 게 참 좋아요. 촬영할 때 느낀 건데, 뭔가 잘 안 맞는데 서로 좋아하는 사이 같아 보여요. 홍경 잘 안 맞아요.(다 같이 웃음) 최현욱 그래서 처음에 삐거덕거리기도 했어요. 박지훈 테트리스 할 때 잘 쌓아두다가 하나 삐끗해서 줄을 채우는 데 실패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처럼 맞춰질 듯하면서 안 맞춰지고 그랬어요. 최현욱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아요.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는데, 아마 캐릭터들의 관계가 쌓여갈 즈음부터 저희도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작품을 완성해 내놓은 지금은 무엇이 남았나요? 최현욱 좀 전에 제가 ‘대화하고 있는 게 참 좋아요’라고 말했잖아요. 이 드라마를 찍는 내내 정말 그랬어요. 각자 연기에 대한 생각이나 연기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요. 그런 부분을 서로 얘기하면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어요. 제가 그래서 연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연기하는 것 자체도 좋지만, 연기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서 얻는 것도 있으니까요. 박지훈 크랭크업 하기 전에 감독님이 두 배우에 대해서 얘기해줬어요. 경이 형은 ‘정석대로 연기한다, 네가 배울 점이 되게 많을 거다’라고 하셨고, 현욱이는 ‘들판에 풀어놓은 강아지 같다’고 표현하셨어요. 그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마어마한 아이디어를 가진 친구라고 말씀해주신 기억이 나요. 그 말을 듣고 ‘나와는 많이 다르구나, 궁금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두 사람한테 배운 점이 많아요. 촬영하면서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홍경 저 역시 나이를 떠나 두 배우를 보면서 배운 점이 많아요. 서로 달라서 오히려 좋은 자극을 주고받은 것 같아요.
치열한 시간을 거쳐 만든 이 작품이 시청자에게 어떻게 다가가기를 바라나요? 홍경 저는 항상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이든 예상치 못한 상태로 어딘가 얻어맞듯 봐야 더 재미있지 않나 싶어요. 그저 이끌림으로 시작되어 이 이야기의 흐름에 툭 하고 마음을 맡겨보면 좋을 것 같아요. 최현욱 드라마 형태이긴 하지만 회차를 나누지 않고 바로 8부 전체를 동시에 공개했으니, 영화처럼 한 번에 끝까지 보게 되는 작품이면 좋지 않을까요. 보느라고 밤새우는 분이 많기를 바랍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