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끌레르 1월호 우원재 인터뷰와 화보

니트 스웨터와 셔츠 모두 가니(Ganni), 팬츠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슈즈 닥터마틴(Dr. Martens).

 

(촬영일 기준) 두 번째 EP <comma>가 발매된 지 약 열흘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공개 직후와 마음이 조금 다를 것 같아요. 공개 직후에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어요. 반응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죠.(웃음) 원래 반응을 살펴보는 편은 아닌데, 오랜만이기도 하고 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담은 앨범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잘 냈다’ 싶은 후련한 기분이 들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comma>의 이야기를 완성했나요? 팬데믹 기간에 번아웃이 심하게 왔어요. 억지로 작업을 이어가며 당시의 마음을 적어가다 보니 곡이 점점 쌓이더라고요. 코로나19가 잦아들고 번아웃에서도 벗어났을 때, 그동안 만든 곡을 추려 앨범으로 엮었어요. 이번 앨범은 힘을 뺀 담백한 무드로 가고 싶어서 제 기준에 신선하다고 느껴지는 몇몇 곡은 싣지 않았어요. <comma>라는 제목처럼, 제 커리어의 쉼표가 되어주는 앨범이에요.

코로나19로 뜻하지 않게 휴식기를 가진 2년이 본인에게 어떤 시간이었나요? 쉰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저한테 꼭 필요한 쉼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언제 행복한지 고민하는 일을 줄곧 미루다 이 시기에 할 수 있었죠.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고, ‘내가 하고 싶은 건 음악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어요. 제 마음을 면밀히 들여다보기까지 그 과정이 참 어려웠어요.

그 과정을 거치며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면요? 2022년 7월에 ‘Me (나야)’를 작업한 이후로 그간 힘들었던 부분이 해소되었어요. 40분 만에 가사를 쓰고, 원 테이크로 바로 녹음하면서 생각했어요. ‘난 내 감정을 혼자 머금고 있으면 안 되는, 배출해내야하는 사람이구나.’ 그 감정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음악에 담아내고 들려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거죠.

 

마리끌레르 1월호 우원재 인터뷰와 화보

후디와 팬츠 모두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이어링 셀린느(Celine),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자기 고백적 음악은 만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를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일은 다른 차원일 거라고 짐작해요. 고해성사와 닮은 것 같아요. 고해성사가 부정적인 생각이나 행동의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제 내면의 나체에 대해 세상에 내뱉음으로써 스스로를 용인하진 않으려 해요. 대중 앞에 공개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용기도 필요하지만 망설이진 않는 편이에요. 오히려 저 자신한테 솔직한 음악일수록 더 발표하고 싶어요.

사람들도 <comma>에 녹아 있는 솔직함을 감지한 것 같아요. ‘진솔해서 좋다’라는 반응이 많아요. 놀랐어요. 제가 유별나게 솔직한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누구나 이 정도 솔직한 생각을 한 번쯤 하지 않나 싶어요. 전 생각을 꺼내 보이며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밖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고요. 그럴 수 있죠. 음악을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공감을 바라지는 않거든요. 그럼에도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다는 피드백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해요.

이번 앨범도 프로듀서이자 절친한 동료인 쿄(KHYO)와 함께 작업했죠. 그가 우원재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특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보통 믹싱할 때 한 곡을 수백 번씩 듣는데, 작업을 전부 마무리한 이후에 효상이(쿄)가 ‘Me (나야)’를 믹싱하면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힘들어하는 내용의 가사를 계속 들어야 했으니까요. 그만큼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친구예요. 전에는 이런 존재가 제 삶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고맙죠. 음악적 의욕이 없던 시기를 효상이와 함께 버티며 <comma>라는 결과물을 남겼고, 그 사실 자체로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대화를 앨범 발매일에 나눴어요.

 

마리끌레르 1월호 우원재 인터뷰와 화보

셔츠, 쇼츠, 슈즈 모두 펜디(Fendi),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비니는 본인 소장품.

 

앨범 발매와 더불어 여러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어요.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요. 앨범과 관련한 모든 작업이 하나의 세트처럼 보여요. 듣는 사람에게 제 의도를 최대한 잘 전달하고 싶고, 그들이 앨범의 분위기를 보다 잘 이해해주기를 바라거든요. <comma>가 집에 머무르던 시간 속에서 탄생했고, 제가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있어서 스툴과 러그 등을 MD로 제작했어요. 전시 형태의 팝업스토어도 열었고요. 앨범 디자인과 아트워크, 비디오 작업에도 많이 참여했죠. 로스앤젤레스 부근에서 쇼트 필름을 촬영할 때 직접 의상을 준비하기도 했어요.

쇼트 필름이 참 아름답더라고요. 약 18분 동안 펼쳐지는 단편영화를 감상하며 <comma> 수록곡을 들을 수 있죠. 모든 앨범이 그렇지만, 특히 <comma>는 특정한 트랙을 강조하기보다는 전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쇼트 필름 말고는 이 앨범을 표현할 길이 없었죠. 쇼트 필름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각자 느껴지는 대로 해석하면 좋겠어요.

제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끝나갈 때쯤 등장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각자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서 하늘을 바라보며 눕고, 서로 손을 맞잡는 장면이요. ‘나’로 시작해 ‘우리’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아요.(웃음) 제 마음이 가장 따뜻해지는 장면이에요. ‘인생은 결국 혼자다’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이 문장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데, 역설적이게도 혼자서는 절대 못 산다고 생각해요.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인류사가 굴러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인류애가 있는 편이에요.

우원재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모든 것의 근원이요. 철학이나 종교의 이야기가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보고, 일상의 면면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부 사랑으로 귀결되더라고요. 외제 차를 사거나, 매거진을 읽는 행위에도 어떤 모양의 사랑이 담겨 있죠.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결국 사랑이에요. 세상에는 약 80억 명의 서로 다른 존재가 있지만, 전부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그 사실이 허무하기도 한데, 그렇기에 모든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아주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 또한 특별하고 소중한 거죠.

이번 앨범의 수록곡인 ‘Mommy’의 가사가 연상되는 지점이네요. ‘모든 게 의미 없기에 값지고 아름답다’라는 말을 어머니가 해주셨다고요. ‘Mommy’에서 ‘엄마란 선생님과 전화 통화, 두 시간은 여태 내가 써온 가사’라고도 했잖아요. 어머니를 보며 느낀 점이 음악에 담길 때가 많아요. 평소 어머니와 둘만의 이야기를 자주 나눠요. 시답잖거나 정답이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어머니의 말이 있다면요? 제가 당신을 닮아 생각을 많이 하는 게 기특한 동시에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하셨어요. 제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 힘들어 보이나 봐요. 어머니가 이 말을 하실 때면 ‘생각하는 걸 좋아해서 한다’라고 말씀드려요.

 

마리끌레르 1월호 우원재 인터뷰와 화보

허리에 묶은 셔츠와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슈즈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네크리스처럼 착용한 벨트는 마리맘 나시르 자데(Marymam Nassir Zadeh), 슬리브리스 스웨터와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스로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느끼나요? ‘생각이 많아 보이나 보다’ 싶기는 한데, 제가 보기에는 그다지 많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냥 ‘궁금한 게 많네?’ 하는 정도예요. 이건 진짜 인정해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무언가를 알아가면서 재미를 느꼈어요.

궁금증을 해소해가며 성장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나요? 아니요. 지식의 확장을 성장이라 여기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운 지식을 얻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사람은 지식 밑에 있기 쉽고, 저도 마찬가지예요.

한 인터뷰에서 ‘무의’에 대해 말한 게 떠올라요. 의도하지 않고 행동하거나 말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무의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불가능에 가깝죠. 제 살아생전에 그 단계에 오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어요. 하지만 이뤄내는 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이를 꾸준히 좇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지금 가까운 사람들한테 어떤 존재이고 싶어요? 투명한 존재요. 각자 저를 보이는 대로 바라봐주면 좋겠어요. 물론 만인의 연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저를 나쁘게 보는 시선이 있을 때 스스로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럴 수 있겠다’ 하면서 진심 어린 반성도 할 줄 알았으면 하고요. 나를 돌아보는 일이 곧 남을 살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comma> 수록곡 ‘Glass’에서 이야기했듯이, 유리창은 낮에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데 쓰이지만 밤이 오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니까요.

쉼표가 되어주는 앨범을 냈고, 새해를 앞두고 있어요. 2023년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고 싶어요?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요. 요즘 ‘내게 다시는 오지 않을 수 있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매순간 제가 하는 일, 생각과 감정을 허투루 넘기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최선을 다하고, 핑계 대지 않는 것이 제 열심의 기준이에요. ‘왜 이렇게 힘든 거야?’ 하는 대신 ‘그럼 인생이 쉬울 줄 알았냐?’ 하는 거죠.

지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무엇이 우원재를 일으켜 줄 거라 믿나요? 음악이죠. 전 음악 안에서 엄살 부리잖아요.(웃음) 그렇게 풀어내고,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들려줄 음악도 기대하겠습니다. 혹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음… 제가 자기주장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갖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높이 평가받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전혀 대단하거나 철학적이지 않아요. 여느 사람과 다를 게 없죠. 전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고, 만약 제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느꼈다면 이미 저와 같은 생각을 해본 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