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퀸을 장식한 벨벳 재킷과 팬츠, 메탈 트위드 카프스킨 소재 이어링 모두 샤넬(Chanel), 탱고 앵클 스트랩 힐 발렌티노(Valentino).

블랙 더블브레스트 재킷과 팬츠 모두 레지나 표(Rejina Pyo), 카프스킨 펌프스 샤넬(Chanel), 골드 링 티파니(Tiffany & Co.).

그레이 원피스와 블랙 빅 칼라 포인트 셔츠, 블랙 햇 모두 더 로우(The Row), 링 모두 부쉐론(Boucheron).

시퀸을 장식한 벨벳 재킷과 팬츠, 메탈 트위드 카프스킨 소재 이어링 모두 샤넬(Chanel).

 

좀 전에 인터뷰와 함께 공개되는 영상 콘텐츠에서 좋아하는 10가지를 소개해주었어요. 그중 흥미로워서 꼭 이유를 묻고 싶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소설 <가녀장의 시대>예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최근 특히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였어요. 다섯 살 터울의 오빠가 있는데 되게 어릴 때부터 오빠 시대의 전유물이라 할 만한 음악이나 영화, 만화를 같이 즐겨 봤어요. 그중 하나가 <슬램덩크>여서 영화를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예매하고 영화관에 갔는데, 오빠 또래 40대 남자들이 다들 들떠서 자리를 가득 채우는 거예요. 영화를 많이 봤지만 그런 광경은 살면서 처음 봤어요.(웃음) 그 경험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영화도 너무 재미있게 잘 만들었더라고요. 이미 이곳저곳에서 열렬히 애정 표현을 하는 작품이지만, 저 역시 즐겁게 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꼽았어요.

<슬램덩크> 하면 꼭 따라오는 질문이 있잖아요. 어떤 캐릭터를 제일 좋아하나요? 원래는 불꽃 남자 ‘정대만’이요.(웃음)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송태섭’에게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더라고요. 원작 만화에서 서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인물 중 하나잖아요. 그 인물을 중심에 놓고 만든 영화를 보면서 작가가 캐릭터 하나하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온 마음을 다해 작품을 만들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지나간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면, 이슬아 작가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지금 시대를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느꼈나요? 이슬아 작가의 칼럼이나 에세이를 재미있게 읽은 터라 장편소설 발간 소식을 듣자마자 검색해서 구매했어요. 일단 표지가 귀여워서 좋았고요.(웃음) 내용은 역시 재미있더라고요. 어딘가 통쾌한 지점도 있고요. 아주 새로운 형태의 가족 드라마예요. 작가님이 ‘드라마로 만든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쓴 작품이라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림을 상상하면서 읽게 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제가 보통은 끝까지 읽은 책이 아니면 추천하지 않는데, 이 소설은 초반부만 읽고도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롭게 본 작품이에요.

이 외에도 지금 좋아하는, 최근의 관심사 몇 가지를 더 들려주었죠. 취향이 꽤 방대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전에는 스스로 되게 편협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확실히 시각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작품에 출연할 때 반영되기도 하고요. 그런 시너지가 흥미롭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신작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정은채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면모를 더할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설렘은 사라지고 익숙함과 편안함만이 남은, 결국 헤어짐을 향해가는 오랜 연인의 이야기인데요. 보는 내내 나 혹은 주변의 이야기라며 공감하는 이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현실적이라는 소감이 많았고요. 저 역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고, 그점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해요. 특히 30대라는 나이에 초점을 맞춰 공감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대개 30대라고 하면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고, 이를 추진력 삼아 나아가는 시기라 생각하잖아요. 그렇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자신에 대해 정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로 인해 느끼는 괴리감이 있고, 그게 자신뿐 아니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죠. 이런 지점에서 와닿는 부분이 많은 영화라 생각해요.

제목이 지닌 모호함은 ‘아영’(정은채)과 ‘준호’(이동휘)의 이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런 질문을 품게 돼요. ‘두 사람은 언제 헤어진 걸까?’ 마음이 어긋난 순간인지, 헤어지자고 말한 순간인지, 시간이 흘러 비로소 마음을 정리하게 된 순간인지요. 극명하게 느껴지는 이별의 시점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초반부터 두 사람의 대화에 어떤 벽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미 헤어진 거라 생각할 수 있고,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서야 이별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개인적으론 이별을 고하는 건 초반부지만, 후반부에 재회한 후 서로 연락처를 지우는 장면에서 종지부를 찍지 않았나 싶어요.

한편으론 관계를 지속하는 일만큼이나 잘 끝내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돼요. 사실 ‘잘’이랑 ‘이별’이 한 문장 안에서 소화가 안 되긴 해요.(웃음) 꼭 관계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시간이든 모든 것에 처음과 끝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끝에 충실하는 게 잘 이별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비록 이별이라도 순간순간 진심이었다면 그걸로 잘된 거라 생각해요.

아름다운 이별이 있다고 믿는 거죠? (웃음) 아름다운 이별, 있죠.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아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겉으론 아무 탈 없어 보이지만, 실은 일도 연애도 괜찮은 척하느라 솔직하지 못할 때가 더 많은 인물인데요. 좀 복합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에 집중하기 때문에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잘 감추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은 특히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만날 때나 일을 할 때 많이 발현돼요. 남자친구인 준호에겐 좀 달라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대화를 주도하려 애쓰지만 느닷없이 속얘기를 터뜨리기도 해요. 가장 진솔한 대화는 오히려 준호와 이별한 후 만난 새로운 사람과 나누고요. 이런 아영의 모습을 이상하거나 특이해 보이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누구나 만나는 사람에 따라, 맺는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곤 하잖아요. 그래서 아영이 내보이는 감정들이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하는 데 집중했어요.

아영을 탐구하는 시간 못지않게 오랜 연인인 준호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지도 주요한 과제였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연인을 넘어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을 거예요. 더군다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준호를 먹여 살리는 아영으로선 마치 부모가 된 듯 그를 대하게 될 테고요. 아영은 자신이 가장처럼 많은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준호가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 둘만의 관계를 계속 의식하며 그려나갔어요.

준호 역을 맡은 이동휘 배우와의 만남은 어땠나요? 영화를 보기 전까진 쉽게 상상이 되는 조합은 아니었거든요. 상대역이 이동휘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되게 신선한 조화를 이룰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어요.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배우의 면면이 녹아들면 준호라는 인물이 마냥 못나보이진 않게, 인간미를 지닌 형태로 돋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동휘 배우가 예상대로 준호를 너무나 매력적으로 표현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영이 그렇게 오래 관계를 지속해왔구나 싶을 정도로요. 둘의 이야기가 코믹하지도, 그렇다고 고요하고 잔잔하지만은 않기를 바랐는데 그 정도를 잘 맞춰주지 않았나 싶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배우로서 어떤 부분이 마음에 남았나요? 시나리오로 읽었을 때 아영에게 극적인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짧게 지나가는 장면에서도 아영에게는 소용돌이가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여파가 남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렇지만 이 파고에 관객까지 같이 휘말리진 않기를 바랐어요. 이 영화는 집에 가서도 곱씹게 되는 어떤 메시지가 담긴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아영이나 준호와 같은 시기를 보내는 중이거나 이미 지나온 이들이 자신의 어떤 시절을 회상하며 이런저런 감정을 떠올리게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했는데, 그런 바람을 감독님이 담백하게 잘 매만져 담아준 것 같아 너무 좋아요.

오래 고민해온 아영의 이야기를 완성했어요. 이 인터뷰까지 마치고 외국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이제 어디로 떠나나요? 캐나다요. 겨울에서 더 추운 겨울로 갑니다.(웃음)

추위는 잘 견디는 편인가요? 아뇨. 아주 많이 타요. 그런데 이상하게 겨울을 좋아해요.

 

컷아웃 포인트 뷔스티에와 와이드 카고 팬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이어커프와 링 모두 부쉐론(Boucheron).

컷아웃 포인트 뷔스티에와 와이드 카고 팬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이어커프와 모두 부쉐론(Boucheron).

슬리브리스 원피스 JW 앤더슨(JW Anderson), 네크리스와 링 모두 티파니(Tiffany & Co.).

오프숄더 원피스 로에베(Loewe), 링 모두 프레드(F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