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보를 위해 지난 4월 파리에 다녀왔죠. 그곳에서 보낸 날들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그동안 활동하며 파리에서 갈 기회가 꽤 있었는데, 이번 화보를 계기로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 나흘쯤 머물렀어요. 제가 날씨 운이 좋은 편이라 그런지(웃음) 촬영 당일에 하늘이 참 맑고 햇빛도 예쁘게 내리쬐더라고요. 그 덕분에 즐겁게 작업했고, 틈틈이 현지 분위기를 즐기기도 했죠. 일정을 마친 뒤에는 스위스로 넘어가 엄마, 언니와 함께 여행도 했어요.
여행지에서 맞은 어떤 순간이 앞으로의 삶에 영감을 주기도 하잖아요. 스위스를 여행하며 새롭게 느낀 점이 있나요?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마터호른에 가서 생애 처음으로 설산을 마주했는데, 대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듯했어요. 개인적으로 도시 여행을 선호하는 편인데도 배낭 하나 메고 자연을 만끽하러 떠나보고 싶더라고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은 패러글라이딩이었어요. 뛰어내리기 직전까지도 풍경에 대한 감탄과 무섭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어요. 그런데 지상으로 돌아오니 ‘새는 이런 기분일까?’ 싶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
지 못한 생경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간 해보지 않은 일들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봐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여행이었어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은 드라마 <남남>의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대책 없는 엄마 ‘은미’(전혜진)와 쿨한 딸 ‘진희’(최수영)의 이야기를 그린, 동명의 웹툰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죠. 원작을 반영하는 동시에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웹툰과 드라마 속 진희의 직업이 달라요. 드라마에 등장하는 진희는 경찰이라 단정한 단발이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에 웹툰의 진희처럼 머리카락을 붉게 염색하지 않았어요. 웹툰과는 다른 드라마 속 진희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죠. 드라마 전개상 진희가 경찰이어야만 하는 에피소드도 있어요. 원작 특유의 재미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말투나 성향 등을 참고했지만, 제가 표현해야 할 드라마 속 인물 자체에 더 집중하며 촬영했어요.
7월 17일에 첫 회를 방영하는데,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가요? 촬영이 마무리되면 제 손은 떠난 셈이니 마음을 비우려 하는 편인데, <남남>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요. 이 드라마가 시청자한테 의미 있는 작품이 되면 좋겠어요. 최근에 <퀸메이커> <길복순> <술꾼도시여자들> 등 여성 주인공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장르도 다양하잖아요. 은미와 진희의 일상을 담아낸 <남남>도 큰 관심을 받을 수 있기를, 더 나아가 보다 많은 여성 서사가 등장하는 데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요.
은미 역을 맡은 전혜진 배우와 어떤 호흡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전혜진 선배님을 아주 좋아해요. 혜진 언니와 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성덕’이 된 셈인데, 언니와 제가 모녀로 나온다니 더더욱 특별한 기회라고 느꼈어요. 혜진 언니가 마음껏 연기하실 수 있도록, 제가 호흡을 잘 맞춰야겠다는 생각도 감히 했고요.(웃음) 얼마 전 언니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있었는데, “수영이랑 연기했는데 너무 좋았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안도하고 감동했어요.
두 배우가 선보일 은미와 진희의 ‘케미’가 궁금해지네요.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미혼모로 혼자 딸을 키워온 은미와 엄마를 친구처럼 대하는 진희의 관계가 우리 주변에 흔하지는 않잖아요. <남남>은 세상에는 이런 모녀도 있다는 걸 말하는 작품이에요. 사랑, 원망, 존경 등이 어우러진 복잡한 감정을 품은 은미와 진희가 아옹다옹 살아가는 모습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어요.
<남남> 촬영을 마무리하며 SNS에 ‘진희야,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남겼죠. 어떤 마음을 담아 쓴 말이었나요? 작품을 통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진희가 은미를 바라보며 느끼는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운으로 여겨졌어요. 언젠가는 꼭 연기해보고 싶은 지점이었거든요. 모녀라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일 것 같아요. 가장 긴밀한 사이지만, 드라마 제목처럼 ‘남남’이기도 하죠. 맞아요. 제가 20대 후반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는데, 한편으론 엄마가 제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닐까 싶어 굉장히 두려웠어요.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묵묵히 버티다가 다시 만났을 때, 제가 비로소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더라고요.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저를 보호했다면, 이제는 제가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픈 곳은 없는지 살피게 되고, 좋은 것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스위스 여행을 다녀온 것도 엄마가 그곳 사진을 보여주시며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기 때문이에요. 엄마가 그 여행을 좋아해주셔서 기뻤죠.
엄마와 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남남이지만,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수영 씨도 타인의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죠? 그럼요. 제가 그어둔 선을 다정한 방식으로 훅 넘어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맛있게 먹은 음식을 기억해주거나, 느닷없이 예쁜 물건을 선물해주는 식으로요. 이처럼 누군가 저를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기꺼이 내어줄 때, 타인과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실감해요. 저도 주변 사람들한테 이런 감동을 전하고 싶고요.
얼마 전 유리 씨와 로스앤젤레스 여행길에 오르며 유기견 이동 봉사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수영 씨의 다정함이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닿는다고요. 봉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유기견이 많다고 들었어요. 매일 뜨는 비행기에 더 많은 유기견을 태워 그 아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면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미국 등지에 갈 때면 이동 봉사를 알아보곤 했어요. 유리는 이동 봉사가 처음이었는데, 저한테 아이들을 도울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유리가 그렇게 느끼고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해줘서 저도 고마웠어요.
15년 넘게 인연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데, 소녀시대 멤버들은 그만큼의 시간을 함께했어요.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이로요. 일로 맺은 관계지만, 이제는 서로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되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이번에 유리, 티파니랑 로스앤젤레스를 여행할 때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어요. 섭섭한 점이 있으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공평하게 양보하는 데 익숙해진 덕분에 아주 편했죠. 함께한 시간이 길어 서로를 잘 알지만, 아직도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은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아요. 우리가 같이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데뷔 직후부터 큰 사랑을 받은 소녀시대 멤버들은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수영 씨도 배우로서 입지를 굳건히 다져가고 있고요. 예전에는 “배우 최수영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걸 부끄러워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스스로 자기는 장난감이 아니라 여기던 <토이스토리>의 ‘포키’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돌 출신 배우를 보는 편견 어린 시선을 의식하며 일종의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죠. 이젠 그런 생각에서 많이 벗어났어요. 이 자유로움에 큰 갈증을 느꼈던 것 같아요. 마침내 찾은 자유를 발판 삼아 더 많이 경험하고, 배우로서 다양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더 많은 걸 이루고 싶기도 해요? 최근에 욕심이 생겼어요. 유리랑 티파니한테 이야기했더니 “수영이 입에서 저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구체적인 목표는 없지만, 더 많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 마음이 생긴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을 항아리에 비유한다면, 제 항아리에는 물이 아주 얕게 채워져 있어요. 이렇게 물의 양이 적으면 누군가를 위해 나눠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부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큰 사람도 아닌 것 같고요. 그러니까 전 스스로를 더 채워야 해요. 흘러넘칠 정도로 가득 채워서 더 많이 나눌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나눔을 위한 채움이군요. “네가 갚지 않더라도, 나는 너를 채워주겠다”라고 말하던 고마운 사람들이 제 곁에 많이 있었거든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더 베풀 수 있도록 한결 여유로워지고 싶어요. 그러면 제가 아끼는 이들에게 보다 큰 사랑을 전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