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전염병 창궐로 저마다의 방에 고립됐던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영화가, 극장이 삶을 얼마나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드는지 절실히 경험했다. “제각각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타인들이 모여 영화를 바라볼 때 만들어지는 기운, 공통적인 감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웃는 데서 저 사람도 웃는구나, 내가 슬플 때 저 사람도 슬프구나 하는 공유되는 느낌들이요. 반드시 영화가 아니더라도 타인과 무언가를 함께 본다는 행위는 중요하고, 이는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감각들을 되살린다고요.” 올해 마리끌레르 영화제에 함께한 전여빈 배우는 <마리끌레르 영화제> 특별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은 지금까지 마리끌레르가 영화와 극장, 배우와 관객에게 예우를 다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패션 매거진이 주최하는 유일한 영화제, 마리끌레르 영화제가 제10회를 맞았다.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도 굳건히 영화제를 이어온 마리끌레르는 엔데믹과 창간 30주년을 맞아 4년 만에 성대한 개막식을 준비했다.
지난 4월 20일, 3백50여 명의 영화 산업 관계자와 패션·뷰티 브랜드 담당자들이 한날한시 CGV 용산아이파크몰에 모였다. 개막식의 진행은 영화 <벌새>와 OTT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배우로서 존재감을 뚜렷이 남긴 배우 박지후가 맡았다. 마리끌레르 발행인 손기연 MCK 퍼블리싱 대표의 인사로 행사는 시작됐다. 그는 “마리끌레르는 1937년 프랑스에서 시작해 1993년 한국판을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마리끌레르 영화제는 창간 20주년을 준비하며 파티를 열기보다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로 결심하며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올해 마리끌레르가 30주년을, 마리끌레르 영화제가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영화 산업을 잘 모르던 때에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김동호 위원장님, 오늘도 이 자리에 함께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깊이 인사를 전했다.
“ 할머니가 되어서도 좋은 배우로 마리끌레르 영화제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배우 전여빈
상은 총 세 부문에 걸쳐 감독과 배우에게 전해졌다. 가장 먼저 ‘마리끌레르 상’은 패션, 뷰티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과 보다 나은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온 마리끌레르가 영화인들을 응원하는 의미를 담은 상이다. 감독 부문 시상을 위해 마리끌레르 매거진의 박연경 편집장이 무대에 올랐다. 영화 <다음 소희>로 인해 현장 실습생 보호를 위한 ‘다음 소희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으로 운을 뗀 그는 “영화가 세상을, 잡지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믿는다”라는 생각을 밝히며 영화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을 호명했다.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의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배우 유태오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마리끌레르상’을 전했다.
“10년 전, 마리끌레르 영화제는 창간 20주년을 준비하며 파티를 열기보다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로 결심하며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올해 마리끌레르가 30주년을, 마리끌레르 영화제가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MCK 퍼블리싱 대표 손기연
두 번째 시상 부문은 한국 영화의 가장 빛나는 현재를 보여주는 감독과 배우에게 전하는 ‘레디언스 상’이었다. 감독 부문 시상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센터장이자 명필름 대표인 심재명 대표가 진행했다. “동시대 가장 혁신적이고 개성 강한, 패기 넘치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들”이라는 명쾌한 평과 함께 연상호 감독과 변성현 감독에게 상패를 전했다. 이어 권해효 배우는 “마리끌레르 영화제의 영화상 부문별 이름이 참 좋습니다.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박정민 배우와 전여빈 배우를 무대 위로 호명했다.
마지막 시상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한국 영화 산업에 이바지한 감독과 배우에게 전하는 ‘파이오니어 상’이었다. 감독 부문 시상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박기용 위원장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마리끌레르 영화제가 칸영화제처럼 70회, 80회까지 이어지길 기원했다. 이어 수상자 최동호 감독을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부르며 “작년에 영화를 개봉하며 마음고생이 컸을 텐데 좌절하지 말고 자기 갈 길을 가라고, 개척 정신을 잊지 말라고 격려하는 상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최동호 감독을 응원했다. 시상의 마지막 순서로 김동호 위원장이 무대에 올랐다. “먼저 마리끌레르 창간 30주년을 이끌며 영화제를 10년 동안 키워온, 하나도 하기 어려운 일을 두 가지 다 꾸준히 한 손기연 대표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마리끌레르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오랜 시간 지원하며 동반자로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라는 인사에 장내는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뒤이어 “드라마, 영화, OTT를 넘나들며, 특히 해외에 한국 작품을 소개하는 데 기여하고 길을 개척해온 이”라고 배두나 배우를 소개했다.
모든 시상이 끝나고 마리끌레르 영화제의 김영우 수석 프로그래머가 개막작 <슬픔의 삼각형>을 소개했다. 작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신랄한 위트와 풍자로 국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영화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제10회 마리끌레르 영화제의 시작을 함께했다. 이날 3백50여 명의 초청객들은 영화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우리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마주할 수 있다는 감격으로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만들어낸 이야기를 보다 큰 스크린에서 온전히 만나길 원하는 이들의 열정이 영화제를 빛나게 했다. 오직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만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파이오니어’라는 상 이름이
저를 굉장히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가야 할 것 같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나아갔던
지난 시간의 노력에 대한 칭찬처럼 느껴집니다.”
배우 배두나
올해 제10회 마리끌레르 영화제는 개막작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부터 한국과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인 배두나 배우의 ‘배우 특별전’, 박정민·전여빈·유태오 배우와 함께하는 ‘배우의 시작’, 해외에서 호평받은 국내 미개봉작을 상영하는 ‘마리끌레르 초이스’, 주목해야 할 한국영화를 소개라는 ‘나우 앤 넥스트’까지,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24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마리끌레르 영화제와 여타 영화제의 차별점이기도한 특별한 관객과의 대화(GV)는 올해도 이어졌다. 무려 9편에 이르는 작품의 GV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개막 첫날, 배우 특별전의 배두나 배우가 영화 <공기인형>으로 관객을 만났다. 그는 배우연구소 백은하 소장과 함께 18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관객들과 추억을 나눴다. 둘째 날에는 영화 <Birth>의 유지영 감독과 한해인 배우가 극장을 찾았다. 책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인 최지은 작가와 함께 임신과 출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유의미한 시간을 공유했다.
셋째 날, 가장 먼저 영화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의 이광국 감독과 여설희, 우화정, 서지안 배우는 국가인권위원회 김민아 소장과 함께 영화의 여정을 유쾌하게 되짚었다. 이어 영화 <로그 인 벨지움> 상영 후 감독이자 배우로서 유태오 배우와 뮤지션 시온이 마주 앉았다. 두 사람 모두 독일에서 성장했다는 공통분모 아래 어느 곳에서도 듣지 못한 귀한 대화가 오갔다. 배우 전여빈은 자신의 강렬한 시작이었던 영화 <죄 많은 소녀> 상영 이후 배우연구소 백은하 소장과 함께 처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인 듯 생생한 기억으로 나눈 진솔한 진심이 오갔다. 셋째 날의 긴 여정은 영화 <지옥만세>로 마무리됐다. 임오정 감독과 오우리, 정이주, 박성훈 배우, 이은선 영화 칼럼니스트가 관객들과 만났다.
영화제의 마지막 날,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 <리턴 투 서울>을 상영하고 데이비 추 감독과 박지민 배우가 관객을 만났다. 또한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의 화제작이었던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는 조현철 감독과 박혜수, 김시은 배우 그리고 깜짝 모더레이터로 조현철 감독의 형 매드클라운이 함께했다. 마지막으로 배우 박정민은 첫 연출작 <반장선거>와 초기 단편 <세상의 끝> <앰부배깅>을 상영하며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와 유쾌한 자리를 가졌다. 10주년을 맞이한 만큼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관객과의 대화가 펼쳐졌다.
PIONEER
배우 배두나
“‘파이오니어’라는 상 이름이
저를 굉장히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어디 물어볼 데 없이 외로웠지만
내가 가야 할 것 같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나아갔던 지난 시간의 노력에 대한 칭찬처럼 느껴집니다.
손기연 대표께서 이야기했듯 마리끌레르가 사랑하는
영화인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만든
마리끌레르 영화제가 오래 번창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 최동훈
“현재 <외계+인> 2부 후반 작업 중입니다.
많은 분들이 ‘최동훈은 작년에 영화가 기대만큼
성적을 못 내서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는 힘을 잃지 않을 거야,
잘하고 있을 거야’라고 오해하고 있더라고요.
앞으로도 여러분의 많은 걱정을 부탁드리면서
저는 열심히 작업해 2부를 꼭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리끌레르 영화제,
상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힘이 많이 되네요.”
RADIANCE
배우 박정민
“배우로서 잘 살아가라고
경각심을 주는 상인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존경하는 선배님과 동료, 후배들이 계시는데요.
선배님들께서 뚜벅뚜벅 걸어가셨던 그 발자국을
잘 따라가는 배우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후배님들에게는 작은 귀감이라도 될 수 있는
올바른 배우가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감독 연상호
“영화 <정이>의 배우와 스태프 덕분에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운 강수연 선배님, 김현주 배우님,
류경수 배우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감독 변성현
“짧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우 전여빈
“2018년도 마리끌레르 영화제에서
루키상을 받았었습니다.
당시 영화 <죄 많은 소녀>로 이 자리에 왔었는데요.
그때의 저는 그 기회가 배우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순간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배우로서
시작을 열어준 순간이었다는 걸 느낍니다.
‘동시대 강인하고도 우아한 목소리를 내는 패션 매거진
마리끌레르’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소개하는
마리끌레르 영화제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좋은 배우로
마리끌레르 영화제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MARIE CLAIRE
감독 정주리
“마리끌레르가 어떤 패션 매체보다 진정으로
영화와 배우를 생각하는 매거진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 상은 제10회 마리끌레르 영화제에 앰배서더로 함께하는
배두나 배우의 영예로운 필모그래피에
두 편이나 함께했다는 데 대한 칭찬인 것 같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로 함께 고생한 배우,
스태프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배우 유태오
“영화 <로그 인 벨지움>은 팬데믹 당시
외롭고 두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 시작한 영상 기록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배우자의 도움 덕분에 영화로 완성됐고,
배급사 엣나인의 후반 작업 지원으로
극장 상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를 전합니다.
이후 코로나19에 걸려 고생을 했습니다.
숨 쉬는 일부터 나이 들어가는 일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영화와 잡지를 통해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