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예능 프로에 출연한 덕분인지 전보다 친숙한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요즘은 드라마보다 예능에서 보고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도 있을 정도예요. <백패커>나 <부산촌놈 in 시드니>는 출연 제안을 받을 때부터 참여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의견을 어필한 프로그램이에요. 주변에서는 사서 고생한다고 말했지만요.(웃음) 촬영하는 매 순간 행복하게 즐기면서 했고, 방송을 보면서도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생겨서 참 좋더라고요.
고생한 보람이 있겠어요. 노력한 만큼 주변에서 잘 봤다고 해주시니 감사하죠. 특히 가족들이 좋아해요. 할머니는 오매불망 제가 TV에 나오기만 기다리시거든요.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예능 프로에 더 많이 나가야겠다 싶어요. 부모님도 제가 나오는 방송은 열심히 챙겨 보시고요. 원래 조금 무뚝뚝한 분들인데 프로그램에 대해 말씀도 많이 하시고, 어떤 때는 저보다도 더 잘 아시는 것 같아요.
리얼 예능을 표방한다고 해도 꾸며진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예능 프로 속 안보현은 실제와 얼마나 닮았나요? 정말로, 완전히 리얼입니다. 제가 워낙 만들어진 것에 거부감이 큰 편이에요. 민망하기도 하
고, 예능을 연기로 다가가면 오히려 못 할 것 같아요. 그 때문인지 드라마 캐릭터에서는 볼 수 없는 성향이나 성격이 드러날 때가 많고, 그 모습을 보고 많은 분이 의외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제가 생김새와 달리 디테일하고 세심한 편입니다.(웃음) 함께 촬영하는 형과 동생들이 고생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나서서 요리도 하고 이것저것 챙기게 되더라고요.
어린 시절에는 복싱 유망주로 운동을 꾸준히 했잖아요. 오래 운동한 경험이 배우가 되는 데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동력이 운동하면서 몸에 익힌 끈기 덕분인 것 같아요. 쉽게 포
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제 안에서 솟아나는 자극제 같은 게 있거든요. 운동할 때도, 배우가 된 이후에도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고, 저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죠.
운동에서 연기로 진로를 바꾸면서, 완전히 다른 분야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연기할 때는 제가 살면서 한 경험을 돌아보며 배역과 교집합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가령 운동선수 역할을 맡았다면 제 추
억에 빗대 공감할 부분을 발견하는 거죠. 군인이나 검사, 부자로 살아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을 순 있잖아요. 그런 기억을 되살려 감정이입을 시작하는 거예요.
그동안 맡은 역할 중에서 본인과 제일 많이 닮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매번 바뀌는 것 같아요. <이태원 클라쓰>의 ‘장근원’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들인데, 운동을 하느라 열다섯 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제 모습과 비슷했어요. <그녀의 사생활>에서 맡은 ‘남은기’라는 역할은 제가 지닌 밝은 면을 보여줄 수 있었고요. 그리고 <유미의 세포들>의 ‘웅이’처럼 은근히 허당 기도 있어요.
그만큼 여러 얼굴을 꺼내어 보여줬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네요. 실제로 작품마다 새롭게 변신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해요. 전작의 캐릭터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가갔으면 좋겠거든요. 필요하면 가발을 쓰고, 체형을 바꾸는 등 외적인 변화도 과감하게 시도하고요. 시청자들이 인물과 이야기에 공감하실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는 거죠. 이런 노력을 다하는 것이 작품을 보는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도나 변신을 겁내지 않는 성정은 타고난 건가요? 타고난 듯해요. 잘하는 걸 계속 잘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에 더 눈길이 가요. 시작할 때는 잘해낼 수 있을지 매번 저 스스로도 의구심을 가지는데, 그래서 연기가 더 재밌게 느껴져요. 신선한 배역을 맡고, 평생 해보지 못할 일을 직업으로 갖고 살아볼 수 있잖아요. 그러려면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도전의 본보기가 되거나 특별한 자극을 준 사람도 있나요? 영화 <품행제로>에서 류승범 선배님의 연기를 봤을 때, ‘어딘가에 진짜 저런 사람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정도로 연기가 아니라 날것이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후 <부당거래>에서 검사 역할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완전히 다른 모습에 또 놀랐고요. 복싱 선수로 나왔던 <주먹이 운다>는 더 유심히 봤는데, 실제로 선수 같다고 느꼈어요. 이병헌 선배님도 매번 변신하며 팔색조 같은 매력을 보여주는 멋진 분이죠. 이런 배우들이 연기를 통해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바람대로 그간 드라마와 영화로 악인과 선인, 친근한 청년과 출세 지향적 인물 등 상반되는 여러 얼굴을 보여준 것 같은데요. 이 과정에서 배우로서 성장한다고 실감한 적도 있나요? 정확히 어떤 순간을 꼽을 수는 없지만, 모든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보다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겼고, 좋은 대본을 만날 기회가 생기는 것 역시 저에게는 일종의 성장이거든요. 배우를 꿈꾸면서 본 작품을 만든 감독님, 작가님, 선배님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돌아보면 새삼 성장했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늘 감사하는 부분이에요.
(인터뷰 시점을 기준으로) 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가 방영을 앞두고 있어요. 새 작품에선 어떤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색다른 방식의 판타지물이에요. 전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거예요. 신비로운 이
야기 안에 소소한 재미와 잔잔한 웃음거리도 담겨 있어 매회 힐링할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문서하’는 어떤 인물인가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굉장히 깊은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에요. 그래서 타인과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괴롭히죠. 개인적으로는 빨리 이 친구가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촬영했어요. 보듬어주고 싶은 친구거든요. 어떤 식으로 웃음을 되찾고, 다시 행복으로 나아가는지 지켜보게 되는 인물이라 생각해요.
<이태원 클라쓰>와 <유미의 세포들>에 이어 이번에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에요. 원작이 있는 작품을 재해석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원작 있는 작품을 맡으면 항상 부담감이 따라요. 웹툰의 인기가 대단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우선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하죠. 대본을 최대한 많이 보면서 원작과 싱크로율을 높이되 틀에 박힌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편이에요.
만화 속 인물을 연기하며 현실적 설득력을 부여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만화로 보면 멋지기만 한 대사를 현실로 똑같이 옮기면 그것이 구어체든 문어체든 입에 잘 붙지 않고 어색할 때가 많아요. 제 것처럼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감독님의 디렉션에 귀를 기울이고, 현장에 나가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해요. 원작의 주옥같은 명대사를 잘 소화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니까요. 이번에는 대사 외에도 제가 맡은 서하의 아픔이나 고통에서 비롯된 행동, 성격을 깊이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환생을 주제로 한 이야기예요. 혹시 환생을 믿나요? 저는 믿지 않아요.(웃음) 전생에 뭐였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요.
전생은 어땠을 것 같아요? 신분 상승을 꿈꾸는 노비나 야망 덩어리 호위 무사? 양반이나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은 분명히 아니었을 테고.(웃음) 어떻게든 더 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만약에 다음 생이 존재하고 이번 생의 기억을 딱 하나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가져가고 싶어요? 가족들이요. 제가 누구였다고 밝히려는 건 아니고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는 제비나 마니토처럼 숨어서 계속 챙겨주지 않을까요.
새로운 작품의 공개를 앞두면 늘 드는 기분이 있을 텐데, 이번엔 어떤 예감이 드나요? 어느 때보다 긴장이 많이 돼요. 워낙 기대치가 높은 작품이라 그에 부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크고요. 제 연기 변신을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해서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더 큽니다.
배우라는 직업이 주는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이라 생각해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중에 배우가 한 명도 없고, 그래서 시작할 때 제게 연기는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어요. 막연히 해보고 싶어 한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데 대해 느끼는 행복감이 크죠. 배우가 되는 걸 반대했던 가족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었다는 뿌듯함도 느끼고요. 아마 다시 태어나도 같은 일을 할 것 같아요.
다음 생에도 배우가 되고 싶다고요?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요. 그럼 이번 생보다는 더 일찍 배우의 길로 들어갈 것 같아요. 그만큼 배우라는 일이 재미있고, 더 긴 시간 경험하고 싶거든요.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