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이드 하이넥 스트레치 드레스 페라가모(Ferragamo).

홀터넥 드레스 이네스 디 산토 바이 헤리티크 뉴욕(Ines di Santo by Heritique NewYork), 화이트 다이아몬드 이어링 쇼파드(Chopard).

별 모양 이어링 페라가모(Ferragamo).

홀터넥 드레스 이네스 디 산토 바이 헤리티크 뉴욕(Ines di Santo by Heritique NewYork), 화이트 다이아몬드 이어링 쇼파드(Chopard).

별 모양 이어링 페라가모(Ferragamo).

홀터넥 드레스 이네스 디 산토 바이 헤리티크 뉴욕(Ines di Santo by Heritique NewYork), 화이트 다이아몬드 이어링 쇼파드(Chopard).

튜브톱 드레스와 별 모양 이어링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원숄더 드레이핑 드레스 페라가모(Ferragamo).

리본 장식 드레스 나임 칸 바이 헤리티크 뉴욕(Naeem Khan by Heritique NewYork).

 

우리가 칸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 열흘째 되는 날이네요. 지금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묘사해줄 수 있어요? 저는 지금 집에 있어요. 거실에요. 깨어 있는 동안 집에서 몸을 자주 의지하는 의자에
기대어 있습니다. 여우비가 지나갔어요. 10분도 채 내리지 않은 비였는데, 지나고 나니 햇살이 쏟아지네요. 창문을 열어놨더니 비가 지면에 떨어지면서 퍼지는 흙냄새가 물씬 올라와요. 창밖에 보이는 나무들은 이제 여름을 맞을 준비가 다 됐는지 초록 잎들이 한창 생명력이 넘치고요. 우리가 칸에서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오전 거리가 생각나는 냄새예요. 그때도 비가 지난 후였죠. 앞으로 봄과 여름 사이에 내리는 비는 칸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것 같네요. 집에는 딱 두 종류의 식물이 있어요. 한 달 전, 한 식물의 잎이 다 떨어졌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성하네요. 언제 이렇게 자란 걸까요?

한집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마주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인터뷰는 서울로 돌아온 후 하고 싶었어요. 가능한 한 그 시간으로부터 몇 발자국이라도 떨어져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회고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지금 문득 그곳의 어떤 풍경이 떠오르나요? 사소한 기억이라도 좋아요. 함께 있는 동안 저도 인터뷰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은 어쩌면 같은 마음으로 이렇게 다시 돌이켜 기억할 시간을 기다렸나 봐요. 그런 점에서 저 또한 회고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유)선애 기자님과 서면으로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인데, 마치 편지를 주고받는 기분이 드네요. 제게 준 책 중에 목정원 작가의 사진 산문집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를 기억하시죠? 유독 우리의 여행이 그 책에 나오는 사진들처럼 장면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시간순으로 남아 있다기보다 장면 장면이 선명하면서도 타임라인과 상관없이 자리하고 있어요. 지금 떠오르는 것은, 우리가 칸에서 상영하는 다른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한밤의 구시가지 골목을 마구 달리던 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동이 트는 줄도 몰랐던 숙소 거실에서 맞은 아침도요. 그 숙소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베란다가 넓고, 함께할 인원이 많아도 모두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큰 탁자가 있었죠. 사실은 그 공간을 채운 서로가 좋았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탁자에 놓여 있던 화병의 꽃도. 그 꽃과 향초도 기억나네요. 창문을 열어놓으면 밖에 피어 있던 흰 라일락 꽃 냄새가 들어왔죠. 또 시가지 카페 앞에서 한껏 차려입은 채 저마다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던 각국의 영화인들의 모습도 떠오르고요.

 

오버사이즈 레더 코트와 이어링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오버사이즈 레더 코트와 쇼츠, 니트 톱, 펌프스, 이어링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저는 퍽 좋은 순간을 마주하면 ‘먼 훗날 이 순간을 나는 어떻게 추억할까?’ 하고 자문하는 버릇이 있어요. 여빈 배우님은 칸에서 보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 같아요? 혹은 배우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 짐작하기도 하나요? 이 일을 하면서 늘 깨닫지만 혼자 해내는 일은 없다는 것. 수많은 사람의 최선이 무언가를 빚어낸다는 것. 그리고 그 최선은 많은 존재의 열망이라는 것이요. 이번 칸에 우리나라 작품이 꽤 많이 초청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요즘 문화 방면에서도 한국 아티스트가 조명을 많이 받고 있고요. 어떤 자긍심 같은 것이 생겨요. 또 늘 하는 생각이지만, 좋은 영화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다시 마음먹게 된 자리였어요. 저는 이 일이 참 좋거든요.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선뜻 내놓기는 어렵지만… 그저 좋아하는 만큼, 잘 노력해가고 싶어요.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은 배우로서 오를 수 있는 영예로운 자리이자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 의미에 압도돼 경직되거나 떨기 쉬웠을 텐데 여빈 배우님은 한결같이 한 톤을 유지하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의 화보부터 레드카펫에 서는 일까지 담대하고 명랑하게 해냈습니다. 마음속에 떨림이 있음에도 그 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스스로 다잡으려 노력한 건가요? 스스로 바라볼 때, 저라는 사람은 집중하는 순간 참 뜨거운 사람이다 싶으면서도 담담한 마음이 공존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저 지금 다가와준 순간을 오롯이 직시하고 싶었어요. 시차에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칸에 다녀와서 몸살이 났어요. 감기는 아직 낫지 않았고요. (선애 기자님은 몸이 괜찮으신가요?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최근에 제가 좋아하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칸에서는 모두가 각자 최선을 다해 무리하는 노력의 날들을 보낸 것 같다고. 어찌 보면 사랑에 빠질 때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무슨 일이든 사랑에 빠지는 서로의 모습은 참 신기한 일이고요.

 

니트 드레스와 롱 글러브, 펌프스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니트 드레스와 롱 글러브, 펌프스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2천3백 석을 가득 메운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경험은 어땠어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감격한 동시에 긴장되었을 것도 같아요. 마음이 복잡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생각보다는 단순했어요.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각각의 존재가 전하려는 이야기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며 귀 기울여주는 분들을 무수히 만나고 온 기분이 들었죠. 소중한 기분이라고 표현할게요. 다만 상영 후 기립 박수가 꽤 오랜 시간 이어지고, <거미집>의 감독님과 배우 분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라이브로 비출 때는 조금 수줍기도 했어요. 기분 좋은 수줍음이요. 눈만 껌뻑였죠. 그 환대가 좀 낯설고 참 감사해서. Merci beaucoup!

영화 <거미집> 첫 공식 상영 이후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리모는 “<거미집>의 상영은 놀랍고 위대한 프리미어였다. 관객은 영화를 즐겼고 반응은 뜨거웠다”라고 말했죠. 국내외 매체에서 호평을 받았고요. 본인이 이해한 <거미집>은 어떤 영화인가요? 저에게 이런 화두를 던진 작품이에요. 영화라는 것은 뭘까, 왜 그것을 사랑하나, 그리고 개인이 좇는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허덕일 때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답이 명확히 나오진 않았어요.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고 해도 그 꿈같은 밤을 놓칠 수 있을까? 살아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다 한날의 꿈이라면, 그 한여름 밤의 꿈을 충분히 꿔도 되지 않을까? 이 정도요.

<거미집>의 생생한 좌충우돌 이야기 속에서 전여빈 배우가 연기한 ‘미도’는 극에 사랑스러움을(아주 큰 숟가락으로) 한 스푼씩 넣더라고요. 투지와 ‘열쩡’마저 사랑스러운! 이는 배우의 역량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미도로 살아가는 일은 어땠나요? 미도의 어떤 면을 사랑했나요? 저는 미도에게서 사랑스러움을 보았거든요. 미도를 표현하며 사랑스러우려 애쓴 건 아니지만, 그의 열쩡 열쩡 열쩡 한 모습에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극 중 ‘김감독’(송강호)님이 ‘유림’(정수정)에게 ‘열정 유림’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실은 ‘열정 미도’라고도 불러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하하. 무언가를 거침없이 사랑하고 믿음을 쏟아붓는 사람, 서툴더라도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 말뿐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행하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미도를, 이 투명한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미도를 연기하는 동안은 즉흥적인 재즈 선율 같기를 바랐어요. 자기 빛을 명백하고 톡톡하게 발휘하면서도 이 모두의 앙상블에 어울리기를 고대하면서요. 쉽지는 않았어요. 거친 면이 분명히 존재하는 인물이라. 하지만 함께하는 모두를 믿고 기꺼이 풍덩 뛰어들어 내어놓고자 했죠. 거침없이 물장구치는 아이처럼 풍덩 빠져 놀려 했어요. 오로지 제 믿음과 에너지가 미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랐고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선배와 동료 배우 사이에서 저마다 내놓을 수 있는 보물을 원 없이 서로 나눈 현장이었죠. 그 자체가 배우로서 느낄 수 있는 엄청난 교훈이었고요.

 

스웨이드 하이넥 스트레치 드레스 페라가모(Ferragamo).

니트 드레스와 롱 글러브, 펌프스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컨템퍼러리 울 블레이저와 펌프스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함께하는 시간 내내 단정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여빈 배우님이 머문 자리는 늘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죠. 단정한 태도가 일상에, 배우라는 삶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느낄 때도 있나요? 상호작용에 대해서요. 하하. 제가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리 말해주시니 부끄러워요.

모두가 함께 지내는 장소이니 좀 더 애를 쓴 걸까요? 단정하고 단순한 삶을 살기를 늘 바라요. 배우라는 일의 특성상 프리랜서라, 맘껏 시간을 계획하기가 조금 어렵고, 제가 만나는 인물에 따라 제 텐션이 물들 때도 있기 때문에 인간 전여빈 자체의 단순함과 단정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늘 생각해요. 뼈대처럼요. 모든 것이 바뀌는 이곳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필수적인 간결함이요. 그것이 제게 일정 부분 안도감을 준다고 믿고요. 어떤 안도감은 좀 더 건강한 마음을 내어주니까요. 그와 동시에 조금 더 유연하자고 다짐도 해요. 언제 올지 모르는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처럼. 찰나의 파도를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기다림도 필요하고 기초 체력도 갖춰져 있어야겠죠. 하지만 저는 오직 파도만을 기다리지 않아요. 지금의 하늘도, 땅도, 바다도 두 팔 벌려 맞이할래요.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의 색이 얼마나 예쁜지요. 미루고 미룬 집 청소를 마침내 해야겠어요. 아시죠? 청소는 끝이 없다는 것을.

 

스웨이드 하이넥 스트레치 드레스 페라가모(Ferragamo).

스웨이드 하이넥 스트레치 드레스 페라가모(Ferragamo).

튜브톱 드레스와 별 모양 이어링 모두 페라가모(Ferragamo).

 

마지막 날 숙소에서 함께한 스태프 모두가 여빈 배우님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우리는 모두 알아차릴 수 있죠. 아주 짧은 만남에도 누군가가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요. 상대방의 자리에서 생각해보고, 관계를 소중히 하는 태도는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이를 잘해내는 사람을 결코 쉬이 볼 것이 아니고요. ‘관계’는 여빈 배우에게 얼마나 중요한 삶의 요소인가요? 결국 평행 요소라고 느껴요. 함께하는 사람이 행복감을 느낄 때, 저도 행복하다는 것을요. 세상은 도저히 혼자서 살아갈 재간이 없는 곳이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 존중하며 나아가려는 거죠. 또 누군가의 세상을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지 않으려 하고요. 서로의 재능을 함께 빛내며 아름다운 일을 맺어가는 과정은 결코 당연하지 않은, 감사한 일이고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만난 분들이 참 좋은 분들이었어요. 서로의 진심이 오가고 통하는 큰 행운을 누렸습니다. 큰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파리 공항에서 니스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을 유심히 보다 문득 이런 말을 했죠. “낯선 장소에서는 타인의 얼굴들이 새삼 크게 다가오곤 해요.” 여행의 즐거움과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도 우리의 여정에서 누구보다 씩씩하고 대범했던 여빈 씨가 다시금 떠오르네요. 여빈 씨에게 새로운 감흥을 안기는, 여빈 배우에게 새로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주로 무엇인가요? 어떤 사건이나 장소, 날씨 등도 해당될 수 있겠지만, 결국 사람이요. 특정한 존재.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무궁무진한 마음을 슬쩍 엿볼 때요. 그 순간순간이 저를 흔들어 깨어지게 하고, 그와 동시에 다시 일으켜 걸어가게 합니다. 더 나은 것을 바라보게 하고요.

이제 마무리할까요. 오랜만에 맞은 휴식기를 잘 보내는 중인가요? 요즘은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며 지내고 있어요? 방학이 찾아왔어요. 일상의 저를 돌보고 소홀했던 주변을 돌아보고 있어요. 아까 우리가 이야기 나눴듯 조금 더 단순하고 단정하게, 그러나 유연하게 나아가보자는 생각을 해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저에게 자주 물어요. 그리고 여전히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