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 포인트 랩스커트 팬츠 비뮈에트(BEMUET(TE)), 슈즈 잉크(EENK),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플리케 장식 오프 숄더 블라우스 낸시부(NancyBoo), 데님 팬츠 알렉산더왕(alexanderwang).

 

“마인트 컨트롤이 주효한 것 같아요.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마음이 온전치 않으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거든요.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전보다 마음이 단단해진 것 같다고 느꼈어요.”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에게는 매해 연말이 아니라 이맘때가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일 거예요. 시즌을 마칠 때마다 어떤 마음이 드나요? 잘했든 못했든 시즌이 끝나면 항상 섭섭해요.

시원섭섭한 게 아니고요? 네, 섭섭한 마음이 훨씬 커요. 그 시즌에 선보인 프로그램도, 그때 입은 의상도 다시는 못 만나잖아요. 준비한 기간까지 합치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근차근 제가 만들어온 것들을 보내줘야 하니까 아쉬워요.또 이렇게 열심히 만든 건 이제 없어지고, 다음 시즌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기도 하고요. 머리가 좀 아픈 것 같기도 해요.(웃음)

쉬는 시간은 가졌나요? 벌써 진천선수촌에 들어가 훈련을 시작했다면서요. 아니요, 안 쉬었어요.

전혀요? 다음 시즌을 위해서라도 휴식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쉬면 그때는 좋아도 몸무게 관리하기가 쉽지 않고, 다시 탈 때 체력을 끌어올리는 과정도 굉장히 힘들어요. 작품이 정해지지 않아도 스케이팅이나 점프 연습은 계속 하면서 다음 시즌 준비를 이어가는 편이에요.

그럼 지금이나마 성공적인 지난 시즌을 자축하는 시간을 가져보죠.(웃음) 지난 2월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부터 시작해볼게요. 시즌 초의 부진을 털고 클린 연기로 금메달을 따냈어요. 4대륙 선수권은 꼭 나가고 싶어 한 대회였어요. 그 대회를 위해 시즌을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웠고, 그래서 몸에 힘도 적당히 빼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어요. 쇼트 프로그램에서 6등을 했는데 그다지 속상하진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큰 실수도 없었고, 프리 프로그램도 남았으니까요. 순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프리에서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할지 그것만 생각했는데,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
나 싶어요.

쇼트에서 6위를 했는데, 프리에서 1위까지 올라가는 건 아주 드문 일이잖아요. 그래서 더 놀랍고 기뻤을 것 같아요. 프리가 끝나고 나서 운이 좋으면 메달을 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프로그램을 깔끔하게 마쳤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금메달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고, 거기에 운이 더해진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 금메달로 자신감을 얻은 덕분일까요? 다음 달에 열린 세계선수권과 그다음 달 월드 팀 트로피에서 연이어 은메달을 획득했어요. 엄청난 기세였죠. 자신감을 얻었다기보다 부담을 덜어낸 것 같아요. 4대륙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이번 시즌에 그래도 한 건은 했다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세계선수권부터는 좀 더 재미있게 대회를 치를 수 있었어요.

어떤 종목이든 시즌 후반이 되면 체력이 저하되고, 그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해인 선수는 지난 시즌 초반보다 오히려 후반에 월등히 높은 집중력을 발휘했어요. 지친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요. 솔직히 마지막 대회인 월드 팀 트로피 때는 조금 힘들기는 했어요.(웃음) 사실 체력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마인트 컨트롤이 주효한 것 같아요.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마음이 온전치 않으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거든요.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전보다 마음이 단단해진 것 같다고 느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요? 프랑스에서 열린 그랑프리 대회에서 쇼트 때 큰 실수를 했는데, 그러고 나니까 프리 연기를 하기가 너무 두려운 거예요. 이번만큼은 꼭 잘하고 싶었는데 그게 또 마음처럼 안 되는 것 같고, 너무 아프게 넘어지기도 해서 무섭더라고요. 무거운 마음으로 아침 연습을 끝냈는데, 코치 선생님이 저를 잡고 “갈라 쇼 할 때 어떤 기분이 들어?” 하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재미있죠”라고 대답했더니, 그 마음으로 하라고 하시는데, 그 순간 마음이 가벼워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잘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즐기자,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믿어주자 하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러고 나서 프리에서 또 한 번 넘어지긴 했는데 그땐 많이 아쉽진 않더라고요. 비록 그 대회에서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저 자신을 믿게 된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이해인 선수를 얘기할 때 담대하다는 평이 많아서 타고난 게 아닐까 싶었는데, 마음을 다잡는 많은 시간이 있었네요. 타고나길 담대한 사람이었으면 예전부터 잘했을 거예요.(웃음) 잘해야 하는데, 실수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긴장한다고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깨달은 후로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해요.

 

브라톱과 스커트, 재킷, 롱부츠, 헤어밴드 모두 미우미우(Miu Miu).

브라톱과 스커트, 재킷, 롱부츠, 헤어밴드 모두 미우미우(Miu Miu).

 

 

잊지 못할 순간이 많은 지난 시즌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 하나를 꺼내본다면요? 마지막 대회인 월드 팀 트로피요. 가기 전에도, 거기서 지낼 때도, 끝나고 나서도 다 즐겁기만 했거든요. 메달도 땄고, 또 대회중에 제 생일이 있어서 엄청 많은 사람들한테 축하도 받았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완벽한 대회였어요.

팀 형태로 참여한 대회는 처음이었죠? 키스 앤 크라이 존에서 선수들이 다 같이 모여 서로 응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에게도 생경했거든요. 귀여워 보이기도 했고요.(웃음) 시상식에서 단상에 누군가와 같이 서는 건 처음이었는데, 즐거움은 함께하면 배가된다고 하잖아요. 진짜 그랬어요. 그런데 경기할 때는 엄청 떨리더라고요. 다들 “편하게 해. 우리는 나온 거 자체가 행운이야”라고 말하는데, 너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절 바라보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어느 때보다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모두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어서 더 좋았던 대회였어요.

시즌 초반과 후반, 희비가 분명했던 시즌을 치르며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은 구성이 스텝 시퀀스였죠. 이전 시즌보다 동작이 훨씬 과감해졌는데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어요. 스텝 시퀀스는 보통 점프를 위해 힘을 보충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라 여기는데, 저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호흡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되도록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는데, 그 때문인지 (제 연기에서) 스텝 시퀀스가 더 재미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구성에 대한 의견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편인가요? 점프 배치를 비롯해 대부분은 선생님과 상의하는데, 스텝 시퀀스 순서는 주로 제가 짜는 편이에요. 지난 시즌 프리 프로그램인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는 스텝 시퀀스를 마지막에 두었을 때 임팩트가 더 크겠다 싶어서 그런 선택을 했고요. 다음 시즌에는 또 어떤 스텝 시퀀스를 볼 수 있을지 기대되는데요. 스포일러를 남기면(웃음) 한 프로그램은 부드러운 스타일이고, 또 다른 프로그램에선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되게 센 스텝 시퀀스를 보여줄 거예요.

꾸준히 트리플 악셀을 연습해왔고, 언젠가 프로그램에서 시도해 성공하고 싶다는 소망을 언급한 적도 있어요. 이 기술은 선수에게 언젠가는 꼭 오르고 싶은 산 같은 존재인 건가요? 처음으로 시도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계속 연습하면서 기회를 보는 중이에요. 엄청 큰 과제로 생각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성공한 적이 있는 점프이기 때문에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언젠간 작품에 넣어보고 싶은 바람은 있어요.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해내고 나면 한 단계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또 다른 면에서 다음 시즌 기대하거나 목표로 삼는 것이 있다면요? 사실 트리플 악셀은 옵션 중 하나일 뿐이에요. 하면 좋고, 안 하면 안 하는구나 싶은 거죠. 진짜 목표는 다른 데 있어요. 제가 그랑프리 대회에 데뷔한 지 3년 차거든요. 그런데 아직 메달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다음 시즌에는 메달을 따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는 게 바람이자 목표예요.

이룰 거라 생각하면 됩니다.(웃음) 맞아요. 그래서 된다고 생각하려고요.(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1년 내내 겨울을 사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에게 여름은 어떤 계절로 느껴질지 궁금했어요. 신기하게 링크장 안에서도 계절의 변화가 느껴져요. 여름이면 링크장도 더 습하고 따뜻해져서 반소매 옷을 입고 연습해요. 싸늘한 기운이 없는 게 어쩐지 좋아요. 지상 훈련을 할 때 쪄죽을 것 같은 건 좀 싫긴 한데, 그래도 얼어 죽을 것 같은 한겨울보다는 나아요.

의외네요. 동계 스포츠 선수들은 추위에 더 강할 것 같거든요. 추위에 잘 버티는 거죠.(웃음) 해내야 하니까요.

 

 

집업 후디 뮈글러 × 에이치앤엠 (Mugler × H & M), 보디수트 시아워 (SIIOUR), 스커트 비뮈에트 (BEMUET (TE)).

자카드 톱 잉크(EENK), 플리츠 팬츠 비뮈에트(BEMUET(TE)), 스니커즈 나이키(Nike).

 

아플리케 장식 오프 숄더 블라우스 낸시부(NancyBoo), 데님 팬츠 알렉산더왕(alexander wang), 스니커즈 나이키(N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