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웅 셔츠 엔지니어드가먼츠 (Engineered Garments), 안에 입은 톱 카브엠트(Cavempt), 데님 쇼츠 디스이즈네버댓 (Thisisneverthat), 스니커즈 아식스(Asics). 나상현 블루종 재킷과 셔츠, 팬츠 모두 겐조(Kenzo), 스니커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백승렬 베스트와 톱, 팬츠 모두 아모멘토(Amomento),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클럽 투어 ‘여름빛’을 시작했어요. 나상현 서울에서 두 번의 공연을 마쳤고, 내일 대구에 갑니다.

어떤 의도로 기획한 투어인가요? 나상현 저희 음악 중에 ‘여름빛’이란 곡이 있는데, 지난 여름날을 추억하는 내용이에요. 그 곡의 가사처럼 매년 여름 우리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같이 뭔가를 보고 느끼고 즐기면서 추억해보자는 생각에서 기획하게 됐어요. 이제 2년째인데, 길게 이어가는 게 목표예요.

‘여름빛’ 투어를 하면서 이 계절을 이전과 달리 체감하게 된 부분이 있나요? 강현웅 공연장에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다같이 뛰어놀다 보면 그 존재가 희미해져요. 투어를 대표하는 곡인 ‘여름빛’이 아주 빠른 템포의 경쾌한 곡이라 연주하다 보면 결국 냉방이 소용없더라고요. 그 덕분에 전보다 훨씬 뜨겁게 여름을 나는 중입니다.(웃음)

다들 더위에는 강한 편인가요? 나상현 굉장히 약합니다. 백승렬 저는 엄청 강해요. 강현웅 저는 이 둘의 딱 중간쯤.(웃음) 나상현 저는 원래 여름 나는 걸 힘들어했는데, 투어를 하면서 땀을 그렇게 많이 흘리면서도 역설적으로 여름을 미화된 모습으로 기억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나상현씨밴드가 어쩌다 여름날을 대표하는 밴드가 된 건가요? 투어 때문만은 아닌 것 같거든요. 나상현 저도 되게 신기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제가 어릴 때부터 여름이 생각나는 음악을 좋아하긴 했어요. 음반 작업을 하면서 이런 제 취향이 영향을 미쳤을 테고, 자연스럽게 우리 음악에 여름이 담기게 된 것 같아요.

새 EP <축제>에서도 여름의 기운이 느껴지던데요. 이번 앨범은 어떤 고민을 하며 완성한 건가요? 나상현 이전에는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매번 새로운 사운드를 만드는 게 우선순위였다면, 이번에는 그 시도를 통해 만든 우리 팀만의 정수를 보여주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곡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까 하는 기술적인 측면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음악을 해왔고, 사람들이 우리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상현씨밴드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어요. 그리고 이를 더 단단하게 다져서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작업했고요. 강현웅 저희가 공연을 꾸준하게 꽤 많이 해온 편인데, 그 시간 동안 고민한 것들을 정리한 앨범이지 않나 싶어요. 그 덕분인지 나상현씨밴드다운 음악이라는 평이 많아요.

이를 뒷받침하는 요소 중 하나가 가사죠. 나상현씨밴드는 늘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노래해요. 가사에 유독 많이 나오는 단어가 ‘우리’이기도 하고요. 나상현 저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항상 생각한 게 있는데요. 현재의 삶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거예요. 만나서 얘기해보면 다들 뭐가 잘 안 되고, 그래서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더 많아요.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어떤 사람의 삶이든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갈 수 없는 건 필연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럼 힘겨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서 위안을 얻어야 할지 고민했고, 음악으로나마 서로에게 좀 기대어 힘을 얻어보자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강현웅 그래서 ‘우리만의 축제를 여는 거야’(‘축제’)라고 노래하는 거죠. 뭔가 대단한 걸 해내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고 외치기보다 행복하기 어려운 세상이니까 우리끼리라도 덜 불행하게 지내도록 기운을 보태주자는 거죠.

 

 

그렇다면 나상현씨밴드가 노래하는 ‘우리’의 범주는 어디까지인지도 궁금해요. 나상현 예전에는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범위를 우리라 생각하고 곡을 썼는데,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그 범위가 보다 넓어진 것 같아요. 개인적인 관계에서 너와 내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 보다 큰 범주를 포괄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문장도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도록 보편적인 언어로 정리하려 노력했어요.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 각자의 상황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누구나 느꼈을 감정의 원형을 그려내려고 한 거죠.

이런 의도가 담긴 나상현씨밴드의 음악이 완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어요.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분업화가 잘 이뤄지는 밴드로도 알려져 있는데, 각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나상현 일단 곡을 만들고 이후 편곡과 프로듀싱까지 다 제가 하고요. 제가 만든 데모를 다 같이 들어보면서 앨범에 실을 곡을 1차로 선별하고, 어떤 식으로 완성할 지 저를 제외한 두 멤버가 의견을 내요. 그럼 제가 재가공을 해서 믹스마스터인 승렬이 형에게 넘기죠. 현웅이는 모든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보태고, 같이 조율하고요. 백승렬 저는 스스로 포장 업자라 생각해요. 러프한 상태의 사운드를 제 주관을 넣어 듣기 좋은 음악으로 만드는 믹스 마스터 역할도 하지만, 앨범 아트워크도 담당하거든요. 앨범의 내용물과 겉모습 모두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거죠.

이번 앨범을 예로 들면 포장 과정에서 어떤 면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백승렬 우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전보다 많아진 것을 체감하면서 이전처럼 러프하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러프하다는 표현이 완성도 측면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 저희가 보여주는 방식이었는데 아무래도 관객이 늘어난 만큼 받아들이기 쉽도록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특히 이번에는 미술관에 전시되어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책 같은 앨범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그리고 아트워크는 앨범명이 <축제>이니 옛날 연회장에서 영감을 받아 오브제나 컬러를 화려하게 구성하려 했고요.

굿즈 디자인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라고 들었어요. 백승렬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밴드를 보면 굿즈가 되게 예쁜 경우가 많아요. 음악도 물론 중요하지만, 굿즈로 유입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미술관처럼 공연장에서도 굿즈 사는 즐거움이 큰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안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우리 음악의 맥락에 맞으면서도 예쁘고 질 좋은… 잘 팔리는 디자인에 집중합니다.(웃음)

 

“누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상현

 

실제로 반응이 꽤 좋던데요. 지금은 투어 현장에서만 판매하는데 인터넷에서도 판매해달라는 댓글이 심심찮게 올라올 정도로요. 백승렬 저도 봤는데요. 그러면 포장이랑 송장 관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포장 업자로서 고민이 큽니다. 나상현 아, 이건 진짜 포장의 영역이구나.(웃음)

대화의 시점을 잠시 나상현씨밴드의 시작점으로 옮겨볼게요. 그런데 2014년 겨울에 참여한 옴니버스 앨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와 2015년 발매한 첫 EP <찌릿찌릿> 중 무엇을 시작으로 봐야 하나요? 나상현 누군가는 한 곡이라도 실렸으니 2014년이 우리의 데뷔 연도라고 하는데, 또 일각에서는 밴드의 이름으로 첫 앨범을 낸 때가 시작점이라는 거예요. 중대한 문제는 아니지만 저희끼리는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 깔끔하게 처음 밴드를 결성하던 날을 시작점으로 정했어요. 2014년 7월 7일입니다.

시작부터 여름과 뗄 수 없는 밴드네요.(웃음) 그때를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생각나나요? 지금처럼 분업화가 잘 되어 있지는 않았을 텐데요. 나상현 개판이었죠.(웃음) 그럼 9년이나 존속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은 못했겠죠? 나상현 전혀요. 1년도 내다보지 않았어요. 그냥 학교 축제 나가려고 모인 거였어요. 저는 당시에 밴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게 직업이 될 거란 생각은 못했고, 혼자 취미 삼아 곡을 쓰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현웅이를 만나 팀을 만들게 된 것만으로도 엄청 신났고, 축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니 그걸로 됐다 싶었죠. 그런데 축제 무대를 함께했던 누군가가 ‘너네 밴드를 만들었으니 홍대 공연도 같이 하자’ 하는 바람에 클럽 공연도 하게 됐고, 또 공연을 본 사람에게 앨범을 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 앨범도 내게 됐죠. 매번 이런 식으로 운 좋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존속의 이유를 밴드 안에서 찾아보면요? 백승렬 느슨해서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느슨했다’는 것이 전력투구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밴드로서 같이 음악 활동을 하면서도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의 결속력이 있었던 거죠. 또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19로 생계가 위협받으면서 팀이 깨지는 경우도 봤는데 저와 현웅이는 이전부터 따로 생업이 있었고, 상현이는 음악 외주 작업을 병행하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열어두었거든요. 그 점이 공연을 못할 때도 밴드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지 않았나 싶어요.

 

 

음악을 하는 것 자체의 즐거움도 있었을 테고요. 어떤 일이든 힘든 만큼 그 안에 기쁨도 존재해야 지속 가능하잖아요. 백승렬 이 밴드의 존재 목적은 ‘즐거움’이에요. 부와 명예와 출세는 사실 모르겠고, 우리가 만드는 음악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놀자는 게 유일한 목표거든요.

음악으로 인해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백승렬 공연 때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와주는 관객들에게 기분 좋은 임팩트를 줘야겠다고 마음 먹는데, 사실 그 공연으로 저희가 얻는 게 더 커요. 저희끼리 무대에서 노는데 관객이 함께 놀아줄 때, 즐거움이 가득한 특유의 표정이 있거든요. 그 표정을 볼 때마다 참 행복해요. 그리고 또 다른 즐거움은 끝나고 맥주 마실 때.(웃음) 사실 이번 투어 첫 공연 때 뭔가 잘되지 않은 것 같아 걱정됐거든요. 그런데 끝나고 맥주를 마시다 마지막 공연 매진 소식을 들었죠. 그러니까 갑자기 언제 걱정했나 싶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런 작은 순간순간의 즐거움도 있어요. 강현웅 정확히 말해야지. 첫 공연 끝나고 ‘왜 이러지?’ 하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두 잔 들어가니까 그냥 기분 좋아지던데요. (웃음) 백승렬 걱정이 아니라 그냥 술이 부족했던 걸로.(웃음) 나상현 저는 다같이 노래할 때도 좋지만, 곡과 곡 사이에 잠시 틈이 날 때마다 친구 여럿이 모인 것처럼 마냥 떠들 때가 있는데 그 시간도 굉장히 좋아해요. 마치 투어 공연장이 아니라 다 같이 어딘가로 놀러 온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 되게 재미있어요. 그게 저의 즐거움입니다.

 

 

백승렬 톱과 팬츠 모두 아모멘토(Amomento),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나상현 셔츠와 팬츠 모두 겐조(Kenzo), 스니커즈 아식스(Asics). 강현웅 블루종 재킷 토(Recto), 안에 입은 톱 카브엠트(Cavempt), 데님 쇼츠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 스니커즈 아식스(Asics).

 

10주년까지 앞으로 딱 1년 남았어요. 나상현씨밴드가 10년을 맞았을 때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2021년에는 한국대중음악상 모던록 부문 올해의 앨범 선정, 인스타그램 팔로어 10K 이상 달성, 길가다 행인이랑 사진 찍기(종종) 등의 바람을 남겼는데 실제로 거의 다 이뤘어요. 나상현 그게 유튜브 콘텐츠를 찍으면서 제가 적은 바람이었어요.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이룰 수 없을 만한 일들을 적은 거였죠. 신기하게도 거의 다 이뤘지만요. 그런데 지금은 보다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돼요. 그냥 지금의 흐름대로 안정적으로 쭉 가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름빛 투어도 그렇고, 새 앨범을 낸 것도 그렇고,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거든요. 굳이 욕심을 부리자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면 해요. 강현웅 좀 전에 얘기했던 대로 나씨밴(나상현씨밴드)은 소박하게 그냥 우리끼리 하는 게 재미있어서 지속하는 팀이었어요. 그렇게 저기 보이는 등대까지만 가보자 하고 노를 젓기 시작했는데, 등대를 지나 이제 바다에 나와버린 느낌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제 또 어디를 바라보고 가야 할지 목표를 잡으면서 동시에 배가 기울지 않도록 중심을 잃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백승렬 올해는 나씨밴 10주년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해라고 생각해요. 잘 준비해서 우리의 10주년을 즐겁게 맞이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좀 사사롭지만… 논문을 잘 써서 졸업 준비를 마치는 것이 목표고요. 강현웅 진짜 너무 사사로운데! 백승렬 마지막 바람은 주변 친구들 다 건강하기. 나상현 아, 갑자기?(박장대소) 백승렬 아프지 말기, 울지 않기, 행복하기.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처음으로 참여한 앨범 제목처럼‘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음악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나요? 나상현 아무리 좋아하고 바라던 것도 일이 되면 좋아하는 마음이 옅어지잖아요. 저희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조금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막연하게 ‘할 수 있을까? 하면 좋겠다’ 하고 바라던 일을 우리가 다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생각을 하면 모든 고민이나 괴로움이 묵은 체증 가시듯 내려가요. 누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 잘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