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한 이후 지난 1년간 국내에서 열린 거의 모든 영화제에서 환대받은 영화 <너와 나>는 배우로도 활동하는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수학여행을 앞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하루를 가만히 따라가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빼곡히 아름답다. 두 사람이 오가는 길목과 들판, 집과 교실, 버스와 도로는 형형한 빛이 감싸고 있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적당히 불고, 벚꽃이 흩날리는 4월. 이야기가 끝을 향해 걸을수록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내려앉는다. 어떤 아름다움은 왜 이토록 모질고 혹독할까. 영화는 2014년 4월에 살고 있는 무수한 하은들을 껴안으며 계속 살아가자고 말한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있을지라도 이렇게 우리 곁에 세미가 돌아왔다고 다독이며.
세 사람이 지난 8월 열린 정동진독립영화제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인가요? 시은 저희 얼마 전에도 같이 만났어요. 현철 시골에 있는데 갑자기 시은 씨가 집합시켜서 두 시간 차 타고. 시은 <너와 나> 찍은 지 2년 정도 됐으니까 (개봉을 앞두고) 기억을 상기하려고 감독님에게 전화를 드렸었거든요. 근데 이야기하다 보니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더 확실하고 빠르지 않겠느냐 해서 만나게 됐어요. 혜수 그게 집합시킨 거랑 뭐가 달라요? 시은 그래서 우리 즐겁지 않았어요? 혜수 너무 즐거웠죠. 행복했잖아요.
함께 작업한 이들과 촬영 이후에도 가까이 지내고 수시로 만나는 일은 드물지 않아요? 시은 특별한 경험이긴 해요. 현장에서 친해지려고 노력은 하지만 시간 제약이 있다 보니 마음을 온전하게 주고받을 기회가 크게 없었던 것 같은데, <너와 나>는 촬영 이후에 더 가까워졌어요. 촬영할 때는 혜수 언니를 세미로만 봤거든요. 그러다 촬영이 끝나고 언니를 박혜수라는 사람으로서 보게 됐어요. 감독님도 그렇고요. 두 분이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게 느껴져서 마음을 더 열게 되기도 했고요. 혜수 촬영할 때는 시은이가 좀 시크했거든요. 근데 촬영 이후부터 ‘너무 보고싶다’, ‘우리 언제 보냐’ 하면서 엄청 집착해요. 이제야 마음을 열었구나 했죠(웃음). 우리끼리는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너와 나>가 개봉해서 좋다하다가도 아니야 개봉하지 마 하면서. 극장 상영이다 끝나고 나면 너무 허전할 것 같아서 상영 전부터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 정도의 사랑이에요.
감독님 행복하겠어요. 이렇게 배우들이. 현철 복 받은 것 같아요. 이런 현장을 만나는 게 흔치 않은 일이니까. 모두가 100%로 마음을 다하는 현장은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너와 나>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세미와 하은의 하루’라고 짧게 요약할 수있지만, 그 한 문장으로는 충분치 않은 이야기죠. 처음 대본을 받고 두 배우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떻게 이 이야기에 다가가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혜수 표면적으로는 사랑 이야기로 다가왔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려웠어요. 일단 그 안에 있는 하은이와 세미의 사랑 이야기만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그러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나도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은 처음 시나리오 읽을 때는 시적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많아서 이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동시에 감독님이 어떻게 연출할지 궁금하고 기대됐어요. 무엇보다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랑의 메시지가 좋았어요. 그런 마음으로 네 번의 오디션을 보고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현철 계속 강조하는….(웃음) 시은 4차 오디션까지 갔거든요.
그렇게 엄격한 과정을 거친 배우들과 작품과 관련해서는 주로 어떤 대화를 많이나눴나요?(웃음) 혜수 셋이서 서로 세미나 하은이 같은 면을 많이 발견했던 것 같아요. ‘방금 되게 하은이 같았다’ 하는 순간을 서로 포착할 때가 많았죠. 감독님이이 시나리오를 썼으니까 감독님 안에는 세미도, 하은이도 있을 거잖아요. ‘감독님 방금 되게 세미 같았어요’ 하는 순간들도 있었어요. 현철 대사 하나하나 어떻게 할지 혜수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전화도 많이 하면서. 작은 차이로도 세미가 짜증 내는 모습이 달라 보일 수 있으니까. 혜수 촬영 전날에도 ‘감독님, 이 어미를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하면서. 시은 왜 저한테는 전화 안 했어요? 현철 저도 그런 편인데, 시은 씨는 어떻게 해달라고 주문하거나 자주 만나서 친해지려 하면 오히려 더 망가지는 스타일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대본 이야기는 잘 안 하고 같이 공원에 가서 원반던지기 하고… 시은 씨는 되게 싫어하는데…. 시은 아니에요! 현철 저희 팀끼리 몰래 목포에도 다녀오고 그랬어요. 혜수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현장에서 힘을 발휘한 것 같아요. 그때 원반을 허투루 던진 게 아니라니까.
작년 이맘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한 이후 국내 거의 모든 영화제에 초청받았죠. 지난 1년간 함께 쌓은 추억도 많을 것 같아요. 세 사람이 공유하는 특별한 추억도 있나요? 혜수 영화제에 갈 때마다 좋았지만 특히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정동진에서 보낸 2박 3일의 기억으로 올해를 살아갈 수 있겠다고 일기에 적었을정도로 행복했어요. 촬영감독님, 조감독님, 스태프분들도 함께 와주셨는데, 다 같이 바닷가에 있는 시간이 꿈 같더라고요. 시은 <너와 나>의 여름방학이었어요. 현철 정동진 가까운 곳에 금진해수욕장에서 놀았는데 그곳이 그때 세월호에 탔던 한정무라는 학생의 고향이에요.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좀 떨어져 바라본 금진해수욕장이 참 아름다웠어요
영화 <너와 나>를 통해 관객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또 공유하고 싶은가요? 혜수 관객들이 영화를 보시고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떠올린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산업 안에서 상업적 성공을 목적으로 만드는 영화라기보다 모든 스태프의 진심과 사랑이 담긴 작업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내 인생에 다시없을 일일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에요. 무엇보다 저는 이 이야기가 오래오래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잊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이 영화가 더 많은 분에게 사랑 받았으면 좋겠어요. 현철 극장에서 보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시대에 만나 공통된 사건을 겪고, 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극장에 앉아 특정한 감정을 통과하는 경험을 오랜만에 다 같이 하면 어떨까….
어떤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함께 보자 권하고 싶은가요? 혜수 사랑에 서툰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세미를 보면서 거울 치료를 하시지 않을까요?(웃음) 세미가 그 하루 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무언가를 느끼고 성장하니까요. 현철 개개인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사연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저는 하은이 같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세미가 하은이 같은 사람들을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모두 다 해당될 것 같아요.
감독이, 배우가 작품을 지나오며 성장하고 무언가를 배운다고 가정할 때 영화 <너와 나>는 세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나요? 시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거, 인간은 절대 혼자서 살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관계에서 느끼는 안정감이나 편안함이 주는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혜수 <너와 나>는 제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에요. 내 주변에 이렇게 많은 사랑이 있구나, 나를 사랑하고 아끼고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새삼 알게 됐어요. 그 전에도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보답하려 애쓴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많은 에너지와 정성을 쏟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너와 나>를 찍으며 그 사랑이 피부에 그냥 와닿았어요. 감독님과 PD님이 저에게 보여준 무한한 신뢰가 저를 많이… 제가 가진 것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저 너무 진지해요? 현철 아니에요. 근데 아직 좀 덜 단단해진 것 같아요. 아직 눈물이 나잖아요. 혜수 그러네요. 현철 이 영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생각을 동력으로 오랜 시간 준비한 건데 그렇게 에너지를 완전히 쏟아내는 과정을 한 번 겪고 나니까 다음에는 다른 동력과 방식으로 멀리, 넓게 보면서 할 수 있는 작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돼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취하면 그것도 좀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선선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진 것 같아요. 혜수 감독님 말은 이해되지만 그 당시에는 그만큼 <너와 나>에 완전히 몰입했기 때문에 저도 그 마음으로 똑같이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현철 더 정확해지고 싶은 것 같아요. 과학자들처럼 꾸준히 들여다보고, 쉽게 들뜨지 않고요.
마무리할까요. <너와 나>를 지나오며 사랑에 대한 생각도 변했는지 궁금합니다. 시은 초반에 하은이를 연기할 때 하은이로서 느낀 사랑, 관객으로서 <너와 나>를 볼 때의 사랑이 달라지고 있다고 느껴요.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도요. <너와 나>를 여러 번 봤는데, 볼 때마다 제가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감독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혜수 내가 사랑에 대해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이야기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어요. 보통 관객들은 ‘영화 너무 좋아요’ 하지 ‘저는 이 영화를 사랑해요’라고 하지는 않거든요. 너무 신기해요. 저는 진심으로 이 영화가 주는 사랑의 힘이 오늘 그리고 내일의 저를 살게 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길 수도 있는데, 사명감을 느껴요. 이런 감정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알고, 이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제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어떤 신기한 에너지가 모여서 해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