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 베스트, 재킷, 팬츠, 후드 머플러 모두 엑슬림(Xlim), 이어 커프 톰 우드(Tom Wood), 슈즈와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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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고 궁금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나아가야 하니까.
그저 삶이 현재의 내게 쥐여주는 것들을 열심히 해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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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과 팬츠 카르넷 아카이브(Carnet-Archive), 선글라스 발렌시아가(Balenciaga), 슈즈와 비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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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이후에 사진을 촬영하고 싶어 만나자마자 인터뷰부터 하게 됐다. 괜찮다.(웃음)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최근 3년 만의 EP <w18c>를 기습적으로 공개했다. 어떤 생각을 품고 준비한 앨범인가? 많은 아티스트가 그렇듯, 나도 음악이 현재의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일기와 같다고 느낀다. 한데 요즘은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는 말보다는 기분이나 감정을 담으려 했다. ‘편안하고 싶다’, ‘평화롭고 싶다’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BOTH KNEE TOUCH THE FLOOR’부터 ‘GAWI’까지 총 4곡을 담았다. 무엇에 중점을 두며 수록곡을 작업했나? 대부분 공익 근무 기간에 만든 곡이다. 당시 출퇴근하는 일상을 처음 겪었고, 새로운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으니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었다. 그 덕분에 정신적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반복되는 일상이 지닌 의외의 이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음악을 통해 최대한 반복을 표현하려 했다. 리듬, 곡의 구성 등 어떤 식으로든. 더 지루하게, 말도 안 되게 만들어 ‘이건 반복에 관한 앨범이다’라고 명확히 전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즐기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기도 해야 하니 그 사이의 밸런스를 찾는 데 집중하며 작업했다.

반복의 이점을 발견한 것이 어떻게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진 건가? 인생을 살다 보면 확실한 건 없지 않나.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 그러지 못해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이고 강력한 것을 통해 안정을 찾은 게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파괴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반복’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한 거다.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했으니 이를 음악으로 들려주며 ‘이건 어떠냐’ 권장해보고 싶었다.

<w18c>라는 제목, 새하얀 커버 이미지, 서로 다른 색을 활용한 수록곡 영상 등 앨범 전반적으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지점이 많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은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의도적인 건지는 묻고 싶다. 그렇다. 요즘 내 음악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지 않아 <w18c>에 대해 어떤 해석이 있는지 모른다. 제대로 해석했다면 대단한 사람이다.(웃음) 몇 년 전에는 내가 감추지도 않은 무언가를 찾아내는 이들을 본 적도 있다. 다양한 해석이 있어 좋다. 나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곡 안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걸 즐기곤 했으니까.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면 이번 음악 외에도 의도를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곡이 많다. 숨기는 이가 있어야 찾는 이도 있지 않나. 결국 듣는 사람을 위한 것 같다. 내 생각엔 ‘이 음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고민하다 보면 ‘그래서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듯 하다. 리스너가 음악을 듣고 고민하는 과정은 창작자를 이해한다기보다 각자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일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는 당장 와닿지 않는 예술도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그 누군가의 수가 더 늘어나면 좋겠다.

이번 앨범 전곡의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래퍼를 넘어 프로듀서로서 영역을 점점 넓혀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250 형과 프랭크(FRNK) 형의 삶의 질이 달라지는 걸 보며 작곡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또 프로듀싱이 일종의 명상으로 여겨졌다. 똑같은 걸 계속 듣다가 어떤 시점이 지나면 무의식이 결정을 내리더라. 이 작업을 할 때 내가 인간 김동현으로서 쉬는 것 같았다. 랩 가사를 쓸 땐 하지 못한 경험이라 프로듀싱에 매력을 느낀 듯하다. <w18c>를 함께 작업한 친구들과 작곡 팀을 만들었다. 앞으로 프로듀서 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여보려 한다.

프로듀싱을 시작한 후 작업 방식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표현 도구가 늘어나니 가사의 양이 줄었다. 오히려 가사를 덜어낼 때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말에 생각보다 제약이 있다는 걸 자주 느낀다. 이는 내 음악 취향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 뷰리얼(Burial), 론(Lone), 플로팅 포인츠(Floating Points)의 음악처럼 가사 없는 곡을 많이 듣는다. 언제부턴가 힙합 음악을 들으면 ‘왜 자꾸 나한테 뭐라고 하지?’ 싶다. 한때 음악적 스승이라 여기며 자주 듣던 아티스트들의 음악마저도. 이를 듣고 배운 대로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곡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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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미우미우(Miu Miu), 이어 커프 톰 우드(Tom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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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활동에도, 삶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생긴 듯하다. 수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불교 철학의 영향도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원래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로 살았다. 그런데 불교 철학을 파고들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내가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반대가 아닐까 싶다. 삶이 나를 컨트롤하는 듯하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 선택한 게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면 많지 않다. 단편적인 예로 어떤 대학이나 회사에 가겠다고 마음먹어도 그곳에서 받아줘야 가능한 일이지 않나. 이는 소망한 거지 선택한 건 아니라고 본다.

김동현이 음악을 하는 건 선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웃음)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만들고, 음악에 대해 깊이 고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부모님 밑에
서 태어나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본인이 왜 음악의 세계 안에 계속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내가 가장 즐거운 순간은 음악과 관련이 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주제가 음악이 아니면 대체로 지루할 정도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 또한 음악과 맞닿아 있어야 열심히 할 수 있다.

그토록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게 직업이 되어 받는 스트레스는 없나?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 또 음악 만들어야 해?’ 하는 마음이 든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만약 사람들이 나한테 원하는 곡을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과거의 내 음악에 담긴 전투적인 가사를 이제는 딱히 쓰고 싶지 않은데 리스너가 바라기 때문에 써야 할 때. 물론 꼭 해야 한다면 할 테고, 멋이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거지만 어려움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음악에 대한 본인의 기조를 지키며 활동해왔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이겨내야 하는 유혹도 있었을 텐데, 흔들리지 않을 만큼 마음이 확고해졌나? 결혼하고 안정된 삶을 사니 마음이 요동칠 일이 많지 않다. 똑같이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왠지 저 사람이 더 좋은 인생을 사는 것 같고, 우리 모두 시작은 같았지만 지향점이 점점 달라지는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축이 생긴 거다. 초반에는 무언가를 깨달은 건가 싶었는데, 그냥 내가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딱히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 청소기 돌리고 설거지도 하다 보면 남의 인생까지 살필 여유가 없다.

보다 자유로워졌다는 말로도 들린다. 훨씬.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래서 내 음악은 어때야 한다’라는 잡념이 사라졌다. ‘난 지금 이런 사람이니 이런 음악을 하겠다’ 하는 식으로 생각이 단순해졌다.

그런 마음으로 탄생시킨 음악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세상에 선보이는 기분은 어떤가? 좋다. 발매는 배출이다. 공들여 음악을 완성하더라도 공개하지 않으면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작업을 마무리한 뒤 이런저런 준비와 조율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참기 힘들기도 했다. 프로젝트 시안을 계속 공유하는데 오래도록 컨펌을 받지 못하면 지치는 것과 비슷하달까. 컨펌이 꼭 나야 하듯이, 음악은 반드시 나와야 한다.

“만들고 싶은 걸 만든다. 어떤 길로 인도할지는 봐야 알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처럼 느껴진다. 맞다. 삶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고 궁금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나아가야 하니까. 그저 삶이 현재의 내게 쥐여주는 것들을 열심히 해나갈 뿐이다.

현재를 중시하더라도 새해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다. 목표는 없지만 소망이 있다. 우리는 보통 생각을 문장 형태로 떠올리지 않나. 한데 명상을 잘하는 사람의 머릿속은 문장이 없어 고요하다고 하더라. 난 고요한 상태를 억지로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쏟고 있다. 2024년에는 명상의 중수에서 고수로 가는 도전을 해볼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수의 삶을 살고 싶다. 시끄럽지 않은 조용한 인생을 살려면 본인이 하는 일을 잘해야 할 거다.

그렇다면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고수가 되어야겠다. 이미 고수니까 초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뮤지션 김심야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민함. 주변 사람들은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창작자에게 그것만큼 좋은 건 없다고 본다.

이제 마무리하고 촬영하러 가야 할 것 같다. 혹시 미처 못한 말이 있나? 오히려 말을 많이 한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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